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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도공 여자 후손 최초로 가업을 잇다

[맛 있는 일본이야기 197]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사카고우라이자에몽(坂高麗左衛門) 집안 최초로 여성 세습자가 나왔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13대 째를 이은 사카고우라이자에몽(坂高麗左衛門) 선생의 세습기념전(襲名記念展)입니다. 차도일여(茶陶一如)로 세상에 알려진 하기야키(萩, 하기도자기)는 이조도기(李朝陶技)를 계승하는 종가로써 4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유서 깊은 명문도예 집안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작년에 13대 세습을 받아 처음 발표하는 다완(茶碗)을 중심으로 품격 높은 작품 50점을 선보입니다.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위는 일본의 고급 백화점인 다카시마야(高島屋)에서 소개한 도자기전시회 안내문이다. 도쿄니혼바시 다카시마야(日本橋高島屋)점에서 작년 6월 열린 “습명기념 13세 사카고우라이자에몬덴(襲名記念 十三世 坂 高麗左衛門展” 전시회 주인공인 사카고우라이자에몽(坂高麗左衛門)은 임진왜란 때 도공으로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 이경(李敬)의 13대 손이다.

이경(李敬)보다 먼저 형 이작광(李勺光)이 일본에 건너갔는데 이작광은 당시 진주 근처의 관요(官窯)에서 일하다가 임진왜란 때 동료 도공과 함께 포로로 끌려갔다고 전한다. 훗날 가업을 잇게 된 동생 이경 (李敬,1568~1643)은 당시 10살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들은 사가현의 아리타(佐賀, 有田)일대와 심수관가(沈壽官家)가 정착한 곳으로 알려진 카고시마의 나에시로가와(鹿島, 苗代川)등지에서 가마 작업을 했으며 하기도자기로 유명한 야마구치의 하기시(山口、萩)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 11대 작품(감정가 70만엔, 한화 약 830만원), 작고한 11대 사카고우라이자에몽, 13대 작품(판매가 293,000엔), 13대째 가업을 이어온 사카고우라이자에몽(왼쪽부터 시계방향)

인구 5만여 명의 하기시는 죠카마치(城下町) 곧 옛 성곽도시로 역사적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성곽도시 답사를 하다가 만난 하기시는 교토처럼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전통이 잘 보존되고 있는 조용하고 안정된 느낌의 도시였다. 모리번주(성주)의 성이 있었던 자리는 주춧돌만 남아있었지만 지월산(指月山)에 오르니 하기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하기도자기(일본말로는 하기야키‘萩’라고 함)로 유명한 명성답게 도시는 구석구석 도자기와 관련된 가게가 즐비했는데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는 곳이었다.

이작광은 풍신수길의 부하였던 모리데루모토(毛利輝元)의 눈에 띄어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정착한 이래 목숨을 걸고 도자기를 구웠다. 포로 신분으로 끌려간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했었는데 일본인 시즈라는 여성을 만나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시즈라는 여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출병으로 나간 남편이 전사하자 홀로 살다가 이작광을 만났고 헌신적으로 조선도공 이작광을 돕다가 첫 해산 중에 그만 숨지고 만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작광이었지만 마음을 다 잡고 도자기에 몰두하여 그의 도예 솜씨는 “신의 손”이라 할 만큼 정평이 나있었다.

그가 만든 그릇은 왕실이나 막부(幕府)와 제번(諸藩)의 지배층 사이에 큰 호평을 받았으며 증답품(贈答品)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다가 이작광이 죽자 그는 어린 아들 광정(光政)의 양육을 동생인 이경에게 맡긴다. 동생 이경(李敬)은 2대 하기시의 번주(藩主)인 모리히데나리(毛利秀就)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되는데 번주로부터 고우라이자에몬(高麗左衛門)이란 이름을 하사 받는다. 조선사람에게 고려(高麗)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이상하겠지만 임진왜란 무렵만 해도 일본인들은 조선을 고려로 인식한 경우가 많다. 그 예로 임진왜란 종군일기에 해당되는 일기 중에 일본인이 쓴 《高麗日記》라든가 시마즈가고려군비로《島津家高麗軍秘》같은 것에서 ‘조선’을 ‘고려’로 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작광의 동생 이경(李敬)의 후손은 2대에서 8대까지는 고우라이자에몽(高麗左衛門)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있다가 9대째(1877)부터 이 이름을 썼으며 이번 도쿄 전시회를 하는 13대는 이 집안 최초 여자 도공으로 2011년 4월 고우라이자에몽가(高麗左衛門家)의 13대 도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1625년 모리(毛利)번주로부터 고우라이자에몬(高麗左衛門)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조선인 이경(李敬)의 후예는 388년이 지난 지금도 13대째 가업을 이어가며 조선도공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도자기 값이 도예의 품격을 좌우 할 수는 없지만 12대의 작품 1점이 현재 라쿠텐옥션에서 일본돈 648,900엔 (한화 약 770만원)에 팔리고 있으니 이작광 형제가 이룬 과업도 과업이려니와 13대를 이어오면서 조선도예를 갈고 닦아온 후손들 역시 훌륭하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