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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뮈텔 주교, 안중근 의사를 살인범이라 하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40]

   
▲ 《신흥무관학교》, 안천, 교육과학사, 1996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지난 6. 29. 안중근 기념관에서 열린 듀오 아임의 인문학 K 팝페라 갈라 콘서트에 갔을 때 안중근 기념관의 이혜균 부장으로부터 안천 서울교육대학 교수가 쓴 책 3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 중 신흥무관학교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적혀 있더군요. 책의 제목은 신흥무관학교이지만 책은 신흥무관학교에 대해서만 쓴 것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와 그의 동생 안명근 의사의 활약,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활약, 청산리 전투의 숨은 주인공 서일, 김광서 투사 등에 대해서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 눈길을 끝 것이 뮈텔 주교의 일기장입니다. 뮈텔 주교는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189084일부터 죽은 1933114일까지 일기를 썼습니다. 이 일기장에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던 사실이 드러났고, 안 교수는 이를 근거로 천주교의 반민족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도로 마지막 사형 집행 전에도 빌렘 신부로부터 미사를 집전 받지 았았습니까? 안 의사가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아버지 안태훈 진사 때문입니다. 개화파인 안 진사는 거주지인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아예 천주교당을 짓고 빌렘 신부를 초청할 정도였습니다. 빌렘 신부에 의하여 세계에 대한 눈을 뜬 안 의사는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빌렘 신부와 상의 끝에 서울로 뮈텔 주교를 찾아가 대학교를 설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안 의사의 간청에 뮈텔 주교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한국인의 학문이 높아지면 신앙심은 거꾸로 약해진다. 프랑스에서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신앙심은 약해진다. 대학교 설립은 도와줄 수 없다.” 

뮈텔 신부가 거절했다는 것은 안 의사의 자서전에도 나오는 얘기이지만, 그동안 천주교에서는 설마 뮈텔 주교가 그렇게까지 얘기했겠나 하며 반신반의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뮈텔 주교의 일기장이 공개되면서 안 의사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뮈텔 주교 생각은 조선인들, 너희들은 딴 생각 말고 무조건 서양 신부가 하라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라는 것인가요? 

안 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여순 감옥에 있는 동안 안 의사의 동생들은 빌렘 신부에게 여순에 와서 안 의사를 위해 미사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빌렘 신부는 기꺼이 승낙하고 뮈텔 주교에게 상의를 하는데, 뮈텔 주교는 살인범에게 미사를 베풀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심지어는 일본 검사가 허락을 했는데도 거절합니다. 뮈텔 주교의 일기장을 보지요. 

오늘 저녁 5시경에 여순 재판소의 일본인 검사로부터 안중근 사형수와 빌렘 신부의 면회를 허락한다는 공식 전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면회를 허락해 주어 매우 고맙지만 여순으로 신부를 보낼 수는 없다고 회답했다. (1910. 2. 16.) 

그러자 안명근이 달려와 뮈텔주교에게 거듭 허락해달라고 호소하는데, 이 또한 차갑게 거절합니다. 

오늘 저녁 8 시가 지나 여순에서 온 안명근(야고보)이 빌렘 신부를 안 토마스(중근)에게 보내주도록 다시 간청하러 왔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매우 중대한 이유를 들어서 그에게 설명했으나, 그는 불만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했다. (1910. 2. 21.) 

안명근으로서는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한 안 의사,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안 의사에게 미사를 해줄 수 없다는 뮈텔 주교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한민족이 처한 특수성은 전혀 이해하려들지 않고 오직 살인범에 미사를 베풀 수 없다는 뮈텔 주교의 독선! 저라도 그 상황에 있었다면 끓어오르는 화를 참느라고 무진 애를 썼어야 할 것입니다. 


   
▲ 순국 5분전에 어머니가 지어 보낸 옷을 입고 의연하게 있는 안중근 의사

우린 지금까지 안 의사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국가라면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사형수의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당시 왜놈들은 시신의 인도를 거절하였고 지금껏 매장 장소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뮈텔 주교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성직자이니 안 의사를 아무리 살인범으로 생각하더라도 시신은 가족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지요? 그러나 그의 일기장에 나오는 말은 이렇습니다. 일본인들이 그 주검을 가족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 극히 당연한 일이다.” 

안교수가 흥분하면서 글을 쓸 만하군요. 이런 주교이니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안 의사에게 미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를 징계하려고 할 것입니다. 뮈텔 주교는 빌렘 신부를 신부직에서 파문할 듯이 하면서, 신부직을 계속 유지하고 싶으면 안중근 의사 가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일일 보고하라고 합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빌렘 신부는 신부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뮈텔 주교의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105인 사건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다수 학설은 일제가 독립운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애국지사들을 - 특히 신민회 간부 - 사전에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사건을 왜곡, 조작하였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안 교수는 이 사건은 왜곡, 조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 안명근을 중심으로 하여 신민회가 기획한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뮈텔 주교가 아까시 장군에게 제보하여 발각되었다고 합니다. 곧 안명근 의사가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 하듯이 얘기한 것을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고하였고, 뮈텔 주교가 이를 아까시 장군에게 제보하였다는 것입니다. 뮈텔 주교의 일기장을 봅시다. 

빌렘(홍석구) 신부가(홍석구는 빌렘 신부의 한국식 이름) 총독부에 대한 조선인들의 음모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명근(야고보)이 적극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편지로 알렸다. 홍 신부의 요청에 따라 나는 그 사실을 아까시 장군에게 알리고자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데도 그를 찾아갔다. (1911. 1. 11.) 

계속되는 일기장 내용을 보면, 뮈텔 주교는 이를 제보하면서 당시 명동성당의 현안이던 진입로 문제를 아까시 장군에게 얘기하여 이를 해결 받습니다. 1. 13.자 일기에는 아까시 장군이 뮈텔 주교를 방문하여 자신의 이름과 테라우찌 총독의 이름으로 다시 감사하러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안 교수는 뮈텔 주교가 애국지사를 팔아 명동성당 진입로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대목에서 흥분합니다. 그러면서 명동성당으로 오르는 길은 민족혼을 팔아먹고 매국을 한 대가로 만들어진 도로인데, 여태 이를 성스러운 도로로 알았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며 통탄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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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런타인데이"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받은 날임을 알리는 경기도교육청 포스터

빌렘 신부는 자신의 보고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잡혀가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고 한 것에 대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요? 안 교수는 빌렘신부가 번민의 날을 보내다가 19146월에 안 의사 사촌동생인 안 봉근을 프랑스에 유학시키기 위해 데리고 프랑스로 귀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파리에서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안 교수의 책에는 뮈텔 주교의 친일적 행적에 대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나, 뮈텔 주교의 행태에 대해서 더 보면, 3.1. 운동 직후 서울 용산 대신학생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겠다고 하자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붙잡고 나라가 이렇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울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정말로 무서운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간청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라리 신학교를 떠나라고 했다.”(2011. 9. 21.자 한겨레신문 인터넷판에서 인용) 

그동안 저는 3.1. 운동 당시 왜 민족대표 33인중에 천주교 대표가 한 명도 없을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때문이었군요. 뮈텔은 동양의 미개한 지역에 와서 봉사한다는 생각에 한국인 성직자마저 동역자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뮈텔 주교는 의병들을 약탈자와 산적으로 표현하였다는데, 뮈텔 주교는 한국인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일본의 통치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런 자가 40년 넘게 천주교 조선교구장을 하였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조선 천주교가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순교자를 낳으며 동방에 아름다운 신앙의 불빛을 활짝 밝혔는데, 뮈텔 주교가 이런 천주교의 불빛을 흐리게 하였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해방 뒤 독재정권 시절 천주교가 독재정치에 대항하여 싸운 것도 이런 과거 천주교의 행태를 반성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아닐까요? 안 교수는 책 신흥무관학교의 마지막에서 ‘5쇄본 후기라며 2000122일 천주교가 대국민 사죄문을 발표하였는데, 안중근, 안명근 의사에 대한 본질적 예우절차는 아직 없다며, 천주교는 아직도 진실된 종교로 재탄생될 단호한 결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대국민 사죄문이란 주교회의가 <교회 쇄신과 화해>라는 반성문건을 통해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발표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천주교에서는 1993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을 하면서 안 의사를 복권하지 못하여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는데, 위 주교회의 문건을 통해 정식으로 사죄한 것이지요.  

그러나 안 교수 입장에서는 이런 완곡한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할 만 하겠네요. 사실 천주교가 48년간 안 의사를 살인범으로 놔두다가 1993년에 와서야 추기경의 강론을 통하여 안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복권하고, 2000년에 와서야 공식으로 사죄하며 복권하였다는 것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여튼 안 교수의 책을 통하여 제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진실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왜곡된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많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