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달포 전 아침 운동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눈썰미 좋은 부인이 단풍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잎 하나를 집어 들어 보여준다. 아직 낙엽으로 떨어질 철이 아닌데 홀로 떨어진 그 잎은 팔방으로 뻗은 잎맥을 따라 빨간색이 안에서부터 번지는 모양이다. 보통은 잎이 다섯 개 정도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8개나 되어 별종은 별종이네. 그래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별종이라고 따돌림당해 먼저 가출한 것인가? 어찌 보면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혼자서 먼저 빨갛게 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미친 단풍잎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울의 대학 구내에 있는 '미친 나무'라 불리는 벚나무가 생각이 났다. '미친 나무'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한글탑 옆에 서 있는 벚나무 한그루를 말한다 이 나무에는 한 나무에 흰꽃, 분홍꽃, 진분홍의 벚꽃이 마치 ‘미친 듯이’ 함께 피기 때문에 그런 별명을 받았고 꽃이 한꺼번에 피는 때가 되면 해마다 이 나무를 보러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다. 왜 이 나무가 이처럼 ‘미쳤을까?’ 한 언론(2008년4월18일 동아일보)은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문 시구를 하나 적어놓으셨다, 男兒立志出鄕關(남아입지출향관)하여 學若無成死不還 (학약부성사불환)이로다 그리고 풀이를 해주시길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문을 나서는 마당에, 배움에 성취가 없으면 죽어도 아니 돌아오겠습니다”란 뜻이란다. 그러고는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어디 가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 성공 못 하면 고향에 무슨 낯짝을 들고 돌아오겠느냐, 그러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때가 1967년이었고, 당시 우리는 교육당국의 망설임 덕에 어려운 한자를 배우지 않고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국어선생님은 굳이 한자로 된 시구를 적어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이 구절은 억지로 문장을 외우고 뜻을 새겼다. 조금 더 커서 글귀를 조금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시 형태로 된 이 말을 누가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영 나타나지를 않아 사실상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근대 일본의 정치가가 한 말이라는 주장이 있기에 관심을 두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시가 일본의 도쿠카와 막부 말기에 겟쇼(月性)란 일본 스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을 거닐다가 길가에 붉은 꽃들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 하나를 보았다. 아니 이 한여름에도 나무에 꽃이 피나? 자세히 보니 역시 그랬다. 배롱나무였다. 한동안 서울에서는 볼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배롱나무들이 길가 여기저기에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화무십일홍! 우리가 가끔 입에 달고 사는 이 말은 열흘 붉을 꽃이 없다는 뜻의 옛 한문식 말이다. 주로 권력의 무상함을 의미할 때 쓰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꽃이란 것이 그렇게 오래 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깔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꽃이 바로 백일홍, 속칭 배롱나무꽃이다. 화무십일홍이요 열흘 붉을 꽃 없다지만 석 달 열흘 피워내어 그 이름 백일홍이라 뜨거운 뙤약볕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꽃봉오리 터지던 날 진분홍 주름치마 나풀거리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살포시 미끈한 속살 내비치는 한여름의 청순한 화신이여! ... 조선윤, <배롱나무꽃> 왜 나무 이름이 배롱나무인데 꽃은 백일홍이라고 하는가? 원래는 백일홍이 먼저 붙은 이름인데 이것을 읽다 보니 ‘배기롱’이 되고 다시 ‘배롱’으로 줄어들었단다. 이름이 한자에서 어느 틈에 순우리말 식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은평 뉴타운 4단지라고 하면서 꼭 폭포동이란 이름을 빼지 않고 말해준다. 요즘 도로이름 주소로 치면 나올 수 없는, 그렇다고 예전 지번 주소로 쳐봐도 나오지 않는데 버스정류장 이름이 폭포동이다. 속칭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도 ‘아니 무슨 동네 이름이 폭포동이 있나?’, ‘폭포가 동네 한가운데에 있나?’, ‘은평경찰서 앞 다리를 건너다보면 오른쪽에 인공 암벽이 보이던데 그걸 보고 폭포동이라고 하나?’ ... 등등 나 자신 궁금했다. 그런데 폭포동이라고 할 때의 '동'이란 말은 한자로 쓰면 洞인데 그 글자는 요즈음에는 행정구역의 기초단위로 쓰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그것 이전에 '골짜기'라는 뜻이 들어있다. 최근에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자락의 골짜기를 수성동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한자로 쓰면 水聲洞(수성동)이라고 되어 있다. 예전에 이 일대에 비가 좀 오면 그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엄청 크고 멋이 있어 사람들이 '큰 물소리가 들리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그렇게 썼고 겸재 정선이 이 골짜기를 그림으로 남긴 것이 있어 최근에 그 그림에 나오는 돌다리를 중심으로 계곡을 다시 복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운 여름 날씨가 정점을 치닫고 있다. 말복을 지났으니 이제 더위도 수그러들 것이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으려면 여전히 덥다. 선풍기를 틀고 있지만, 머리 쪽으로 열이 몰린다. 어쩔 수 없이 꺼내든 부채, 여름 내내 자주 활활 부치던 선면(扇面)에는 네 글자가 써있다. ‘隱惡揚善(은악양선)’이다. 지난해 여름에 안동 도산면에 사시는 우리 집안의 종손이 갖고 다니시던 것을 내가 빼앗은 것인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이 이근필 퇴계 종손과 함께 퇴계의 친필 중에서 이 글씨를 뽑아 부채로 만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기념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악행은 덮어주고 다른 사람의 선행은 드러낸다”라는 뜻의 이 말은 유교의 경전인 《중용(中庸)》 6장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 임금은 크게 지혜로운 분이실 것이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범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시되, 악(惡)을 숨겨주고 선(善)을 드러내시며, 두 끝을 잡고 헤아려 그 중(中)을 취한 뒤에 백성에게 쓰셨으니, 이 때문에 순 임금이 되신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인으로 평가받는 순(舜) 임금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중종 때 우부승지로 있던 송재(松齋) 이우(李堣)는 1512년 늙으신 모친 봉양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 도산에 와 있으면서 일찍 부친을 여읜 열두 살의 조카 황(滉, 퇴계)에게 《논어(論語)》를 가르치는 한편 그 이듬해인 1513년 봄에는 황의 여섯 살 위 형인 해(瀣, 온계)를 자신의 두 사위와 함께 청량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도록 했다. 이때 이우는 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열한 수의 시를 지어주었는데 첫 시는 이렇다. 讀書人道若遊山 사람들은 말하지,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서 深淺優游信往還 깊고 얕은 곳을 여유 있게 마음대로 오간다고. 況是淸凉幽絶處 하물며 청량산 그윽하고 빼어난 그곳은 我曾螢雪十年間 내 일찍이 10년간 형설의 공을 이룬 곳임에랴? ... 이우, '청량산으로 독서하러 가는 조씨 오씨 두 사위와 조카 해를 보내며' 여기에서 독서가 곧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화두(話頭)가 하나 생겼다. 퇴계는 숙부, 중형을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 길게 공부를 했거니와,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치신 숙부의 은공을 생각하며 뒤에 독서하는 것이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숙부의 화두를 산을 유람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철은 피서철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몸을 식힌다. 그런데 이런 때에 인간의 참된 삶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종교적인 구도를 찾는 사람들도 절이나 교회의 휴양공간 등을 찾는다. 거기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거기서 자신의 삶을 재설정하곤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천주교 가톨릭도 이 점은 공통인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따라는 가르침은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994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존 메인 세미나에 주인공으로 초청됐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존 메인 신부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이 세미나를 준비한 신부들은 자신들이 가려 뽑은 성경 사복음서의 대표적인 구절들을 미리 달라이라마에게 건네주고 그것에 대해 강의해줄 것을 제의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달라이 라마는 북런던에 있는 미들섹스 대학의 강의실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종교를 믿으면서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자신이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전령사는 꽃이라 하겠다. 3월에 매화가 피고 4월에 벚꽃, 개나리가 만발하다가 5월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해 6월에 온통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7월에는 우리나라가 연꽃 천지로 변한 것 같다. 예전 함창 공갈못가에 많이 피어 민요도 많이 만들어졌다지만 요즘엔 서울 근교 양평의 세미원을 비롯해 멀리 무안 백련지의 연꽃단지도 그렇고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에 연꽃이 피는 곳이 엄청 많아졌다. 좀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연밭에 나가서 막 피어나는 연꽃 봉우리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꽃이 나올 수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이야말로 꽃 중의 군자로다”라고 칭찬한 이후 우리나라 선비들은 더욱 연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 ... 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온다>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그것을 배설에 빗댄 해학과 신랄함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한복을 입고 까만 모자를 쓰고 소년이 그대로 할아버지가 된 것 같은 순수함 그 자체의 인상이었다 일본인 여러 명이 선 채로 일본어를 조금 지껄였을 때 노인의 얼굴에 두려움과 혐오의 표정 획 달려가는 것을 봤다. 천만 마디의 말을 쓰는 것보다 강렬하게 일본이 해온 짓을 거기에서 봤다. 이 시의 제목은 <총독부에 다녀온다>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아마도 일제시대 한국 민족이 당한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낀 모양이다.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가? 뜻밖에도 일본인 여성이었다. 2006년 2월 21일 일본 최대의 일간지인 요미우리는 1면 맨 밑에 있는 칼럼난인 <편집수첩(編集手帳)>에서 “시대에 뒤떨어져”라는 제목의 시 하나를 인용하면서 이례적으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자동차도 없고 워드프로세서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