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어령 장관님! 기어코 가십니까?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고도 남들 다 하는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시고 담담히 암과 더불어 살아오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삶의 생각과 이야기를 해주시며 의연한 지성의 길을 보여주시기에 그래도 한참을 우리 곁에 더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황망히 우리 곁은 떠나십니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을 때도 또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라고 하시면서 왜 곧 피는 꽃을 마다하시고 먼 길을 떠나시는 것입니까? 청천벽력의 소식에 장관님이 아껴주시던 이태행 전 새천년준비위원회 기획운영본부장과 작곡가 김수철 씨, 그리고 제가 빈소에 달려가 “어서들 오세요!”라고 해주시는 장관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장관님은 국화꽃 뒤에서 말없이 내려다보시며 반갑다는 웃음만 보이시는군요. 해가 바뀌고 처음인 만큼 세배하는 기분으로 털썩 엎드려 절을 하고 싶었지만, 하느님께 귀의하신 분이시라 국화꽃 한 송이로 저희는 마음을 전하면서 3년 전 봄에 장관님이 우리 3명에게 맛있는 점심과 함께 격려해주신 다음 곧 다시 모시겠다고 한 약조를 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를 맞았기에 지난해 허송세월한 것을 반성하며 이제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해 보자고 자리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그런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고 하면 5분도 못 가서 생각은 어느새 한강에 가 있고 이태리 로마에 가 있고 멋진 경치를 보고 싶어 집 밖으로 줄달음친다. 생각을 도로 붙잡아 놓으면 또 모르는 사이에 어디론가 막 날아간다. 새해 결심이고 뭐고 굳은 맘을 먹고 뭔가를 결심하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렇게 생각이 안정이 안 되고 마구 날아다니는 것을 불교에서는 ‘심원의마(心猿意馬)’라고 한단다. 우리 마음이 원숭이처럼 날아다니고 우리의 뜻은 말처럼 뛰어다닌다는 뜻일 텐데, 두 동물의 성질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촐랑대 마음이 조용할 새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말은 항상 뛰기만을 생각해 뜻이 가만히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오간다. 여기에서 사람이 근심걱정 때문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는 것이고,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위백양(魏伯陽)이 펴낸 것으로 전해지는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아래 문장과 같이 나온 뒤 역대 불교 선사들이 즐겨 쓰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겨우내 알몸으로 오들거리다 사색이 된 사시나무 무리들이 바람이 전하는 봄 희망에 젖어 휘파람으로 아우성인 우수 언저리 동장군에게 구속당해 두툼한 얼음이불 덮고 침묵 중이던 산골짝 웅덩이들이 해금되어 쩌렁쩌렁 살판났다 설렘으로 졸졸졸 자유 찾아 떠나는 물소리에 귀잠 깬 버들강아지도 꼬리가 제법 복슬복슬하고 권오범 시인의 ‘해토머리’란 시는 이처럼 겨우내 얼었던 대지들이 뜨뜻한 봄기운을 받아 몸을 녹이고 꿈틀꿈틀 되살아나는 자연과 초목과 동물들의 살판나는 분위기를 감칠맛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구나. 이번 주말이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렸다. 차가운 얼음덩어리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산골짝 웅덩이들이 살아나는 이 계절은 겨울은 아니고 봄도 아닌 어정쩡한 때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를 ‘해토(解土)머리’라고 불렀다. 땅이 풀리는 첫 계절이란 뜻이겠지. ‘따지기’라는 순수 우리말도 있네. 뭘 따진다는 게 아니라 따(땅)을 가두었던 얼음이 풀리면서 땅이 질척질척하는 때를 말한단다. 시기적으로는 우수에서 경칩 사이인 것 같고... 예전에 해토머리는 춥고 먹을 것이 모자라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필자의 성장기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따따따따따...." 나무기둥을 때리는 부리의 강한 음이 연달아 들린다. 딱따구리가 작업을 하는 소리다. 높은 나무의 굵은 줄기를 때리는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아침을 걷는 우리 같은 산책객들에게는 귀속의 귀지를 파내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안겨준다. 그런데 앗 오늘 아침에는 가까운 나무줄기에서 두 마리가 같이 날아오른다. 목 뒤와 꼬리 밑으로 빨간색이 보인다. 오색딱따구리인 것이다. 딱따구리는 대개는 혼자 있는 것이 보이는데 둘이 같이 날아올라 희롱을 하는 광경은 처음이다. 곧 봄이 온다는 소리인가? 머리 뒤쪽으로 까치 소리도 들린다. 올려다보니 아주 높은 나무 끝에 둥지가 보인다. 몇 그루 나무를 지나자 또 둥지가 높이 달려 있다. 까치둥지들이 몇 개나 있고 이들이 높은 피치로 우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까치만이 아니라 가끔은 작은 새들이 정말로 높은 톤으로 울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이 일대가 새들의 낙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동안 이곳을 거의 매일 지나면서도 잘 보이지 않던 까치둥지들이 오늘 아침엔 잘 보인다. 그것이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기에 보이는 것이리라. 여름에 나뭇가지마다 잎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침내 설을 지냈다. 요란한 호랑이 해의 설인데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는, 그야말로 설(雪)의 설이 되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침이 되어 중부지방, 특히나 내가 사는 북한산 일대를 덮어주니 마음이 그리 포근할 수 없다. 일찍 산에 올라 눈을 밟을 때의 그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눈가루들이 얼굴을 때릴 때의 상큼한 느낌, 가지마다 붙은 눈가루들로 해서 나무와 숲과 산이 보여주는 깨끗하고 고결한 자태... 설에 큰 눈이 온 것은 아주 귀하다는 기상당국의 설명 그대로 설에 주는 진정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올겨울은 좀 춥기도 추웠고 눈이 가끔 오곤 해서 겨울다웠다고나 할까, 아침의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 속에서도 설이라고 6인 이하로 가족들이 만나고 정을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입춘이다. 곧 봄기운이 들어서는 날이란 뜻이리라. 아마도 예년 같았으면 기온이 올라 남녘에서는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 서울에까지 올라올 것이련만,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역시 올겨울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는 뜻이리라. 그렇더라도 꽃나무에는 새 꽃의 기운이 망울망울 맺히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 종로구의 종로5가와 6가 사이 위쪽에는 효제동이란 곳이 있다. 북쪽으로는 이화동(梨花洞), 동쪽으로는 충신동(忠信洞)ㆍ종로6가, 남쪽으로는 종로5가, 서쪽으로는 연지동(蓮池洞)과 접해 있는 지역인데 지금부터 99년 전인 1923년 1월 22일 이곳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동네의 이혜수란 사람의 집에는 열흘 전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34살의 한 청년이 숨어들어 있었는데, 추적하던 일본 경찰이 새벽에 이 청년의 은신처를 알고는 무장경찰 4백여 명을 동원해 이 씨의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오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 청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 몇 시간 동안 일본 경찰과 지붕을 타고 다니며 권총으로 총격전을 벌여 많은 일본경찰이 죽거나 다쳤지만, 탄환이 다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자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아 자결하였다. 열흘 전 청년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것은, 당시 종로경찰서가 일제 식민통치의 골간을 이루었던 경찰력의 대표적인 본산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탄압, 압살하여 한국인들의 원한의 상징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폭탄으로 일본 경찰이 직접 죽거나 다친 것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집사람이 당혹해하며 "그게 떨어져 나가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한다. 며칠 전 눈이 많이 왔을 때 해를 넘긴 기념으로 절에 갔다가 거기서 받은 작은 진언 쪽지를 다른 책자 사이에 끼고 산길을 돌아서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가운데 하나가 어느새 빠져나가 없어졌다. 집사람이 은근히 힐난하는 눈초리다. 그 종이라는 게 스프링 사이에서는 빠질 수 있으니 잘 들고 가라고 일껏 당부했건만 그걸 놓쳤냐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다음 날 어제 온 산길을 다시 돌아가 보니 그게 산길 옆에 그냥 떨어져 있기에 바로 주워서 돌아왔다. 없었으면 절에까지 다시 가서 받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이건 천만다행이다. 다시 돌아가서 주워올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사는 것은 그게 안 될 때가 많다. 지나온 길에 뭔가 소중한 것을 빠트리고 왔어도, 그것을 다시 돌아가서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을 것 같은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The road not taken'는 우리에게 꽤 사랑받는 시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어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천지(天地) 사이에 있는 존재하는 것 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아는 것 같은 이 말은, 그러나 보통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어느 순간 가는 길을 멈추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눈에 들어오고 가슴에 느껴진다. 그때가 바로 해가 바뀌는 연초, 또는 설이다. 한겨울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아무것도 없을 때 여기에 잎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내게 되고, 이 나무에서 잎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다시 꽃과 열매로 바뀌며 또 누렇게 낙엽이 지고 마는, 이러한 변화의 이치를 보게 된다.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天地) 또한 그러하다. 낮에 밝았다가 밤에 어두워지는 것은 1일(日)의 변화요, 봄에 내놓고 여름에 키우며 가을에 죽이고 겨울에 마감하는 것은 1년(年)의 변화다. 사람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태어나 갓난아기가 되었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지고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집 주위 둘레길을 돌면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선은 자꾸 땅 쪽으로 내려가 있다. 둘레길에서 스치는 분들 가운데 마스크를 하지 않은 경우가 제법 있어 그들이 내뿜는 공기 속에 혹시나 바이러스가 있지나 않은가 하는 걱정 때문에 아예 공기를 들이마시는 방향을 다르게 해서 모면하자는 나의 얄팍한 계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우리는 산행을 하거나 길거리를 걸을 때도 나도 모르게 타인을 멀리하고 자기 몸을 사리기 위해서라도 점점 땅 밑으로, 발끝으로 시선이 내려가는 경향이 어느새 생긴 것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들 삶에 자신이 없어져 그런 것인가? 퇴직하고 매일매일의 뉴스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하면서 살다가도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끝없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고객을 놓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하늘을 찌르는데 방역의 고삐를 늦추니 곧바로 다시 확진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고, 이런 와중에 누구는 아파트 분양으로 수 천억이란 돈을 챙겼다는 소식, 그 동네에서 잇달아 벌어지는 자살 소식,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취직을 위해 수없이 자기소개서를 썼다가 찢어버리는 젊은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매일 아침 산책을 하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구름정원길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산자락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가는 착각을 하게 하는 멋진 구간인데 이 가운데 뉴타운 폭포동 아파트 쪽에는 물길이 모이는 작은 계곡이 있다. 향로봉 서쪽 암반에 난 길을 타고 폭포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와 평지를 흐르는데 큰비가 오면 물은 콸콸콸 멋지게 흐르지만 동시에 모래도 깎여 내려가며 계곡을 메우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지난봄에 구청에서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하는 바람에 전에 보던 자연적인 계곡은 판석이 깔린 물길로 바뀌었다. 당연히 예전 자연스러운 골짜기를 즐기던 우리들에게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사람들은 물길 옆에 하나둘씩 작은 돌탑들을 많이 쌓아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즐기곤 했는데 공사 이후에는 다 없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다가 두 달쯤 전에 작은 돌탑 하나가 생겼다. 돌탑이라고 해야 작은 돌들을 위로 쌓아 무릎에 찰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무미건조한 판석의 물길로 바뀐 것을 약간이나마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어 어느새 사람들은 쳐다보면서 좋아하곤 했다. 예전의 돌탑만큼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쌓은 돌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