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사를 하면서 책장에 꽂힌 책들이 정리하고 버리는 가운데 구석에 있었기에 눈여겨보지 못하던 조그만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日本이 美國을 추월하고 韓國에 지게 되는 理由 》 35년 전인 1986년 7월에 나온 책이다.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의 謝世輝(사세휘, 일본 발음으로는 사세키) 박사가 저술한 것을 김희진씨가 번역해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펴냈다. 당시 사세휘 박사의 이 책은 큰 인기였다. 맨 먼저 한국경제신문이 지면에 연재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 결국엔 펴내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라는 내용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이고 또 신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 각계에서 이 책을 사서 보았고 당시 문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사세휘 박사는 1985년까지의 통계를 가지고 미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력을 비교하고 있는데.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역사ㆍ문화ㆍ정치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미래를 전망하였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7%에 불과하였고, 전 분야에서 최소 20년은 뒤처져 있다는 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국을 많이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시애틀이란 도시는 좀 생소할 것이다. 로스앤젤리스나 샌프란시스코는 어느 정도 듣거나 보고 알지만, 그보다 훨씬 북쪽, 캐나다와 국경을 거의 접하고 있는 시애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매장이 있는 미국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의 발상지가 시애틀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언론계 30년 이상을 근무한 나 같은 사람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정보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시애틀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라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 7년 전 이맘때, LA에 사는 처제 동서를 보러 갔는데 두 내외가 우리를 차에 태우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까지 자동차 여행을 준비했기에 그 덕에 시애틀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가면서 동서의 설명을 들으며 시애틀이 이런 곳인가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현대를 대표하는 상당수 미국 트렌드의 발상지가 시애틀이었던 것이다. 컴퓨터 산업을 일으켜 미국을 21세기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본사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희망의 새해니 뭐니 하면서 해를 바꾸어도 사람들은 오로지 코로나 발생이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하다. 예전에 혹독한 추위가 오면 봄 봄 노래를 불렀는데, 요즘에는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바깥나들이도 못 하고 대부분 집콕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 봄을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는다. 하긴 예전보다 난방시설이 좋아져 굳이 따뜻한 봄날이 사무칠 이유는 없으렷다. 한동안 영하 십몇 도 이하로 내려가다가 어느 틈엔가 영상 15도까지 올라가는 변화무쌍함도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일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집안에만 있으면서 하늘만 보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인데, 문득 달력을 보니 아니 오늘이 입춘이구나! 盤登細菜燕依人 오신반(五辛盤)을 내오고 처마에 제비 드니 此是東皇按節辰 지금은 봄의 신이 행차하는 때로세 誰言極否難回泰 그 누가 말했던가 꽉 막히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忽破窮陰復睹春 어느덧 심한 추위 다 지나고 봄이 돌아왔는 걸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입춘/임인년(1782, 정조6) 예전에는 이랬단다. 입춘에는 오신반을 먹었단다. 매운맛이 나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는 현재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인생 칠십에 배우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말도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신 분들로부터 들으면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가야금 음악가이신 황병기 님이다. 가야금 연주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황병기 선생은 2013년에 갑자기 《논어 백 가락》이란 책을 내셨는데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논어》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귀절을 설명하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책이 나온 2013년에 황병기 선생은 77살이셨다. 말하자면 70대 후반에 접어든 때인데, 이 때에도 배움의 중요성, 아니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서 잔잔하게 말씀을 하신다. "아무리 노인이 되어도 뭔가를 알고 배우려는 게 사람이다. 노인도 세상 뉴스는 알고 싶고 손주들이 어떻게 지내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한 음식 프로그램에 손이 멈춰졌다. 장안에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사 앞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고 그 속에는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요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 화상으로 연결돼 각자의 조리대에 재료를 쌓아놓고 있었다. 서울에서 요리사가 요리방법을 알려주면 영상으로 그것을 보고 요리를 해나가는데 요리가 잘못되면 요리사가 개선방법을 즉석에서 가르쳐주고, 잘 된 것은 칭찬을 해주니 각국에서 참여한 자원자들이 원하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눈앞에서 배우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맛보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화상회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세상에, 이제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직접 수강생이 되어 직접 눈앞에서 요리를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가상공간을 통해 접촉과 교류, 쌍방향에다가 다방향의 회의나 수업, 교육하는 이른바 비대면(非對面) 문화가 ‘뉴 노멀’, 혹은 새로운 대세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가 되어 봄이 돌아오자 만물이 새로운데, 성명께서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리신 지 큰 나라인 경우 천하에 호령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 세월은 위에서 흘러 하늘의 운수가 바뀌었으며, 백성은 아래에서 곤궁하여 사람의 일이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1663년 새해가 되자 교리 이민서(李敏敍) 등이 당시의 왕인 현종에게 올린 차자(箚子:왕에게 올리는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의 시작은 이렇게 한다. 효종을 이은 새 임금이 즉위한 지도 5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면 정사를 다 파악해서 나라가 편안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지금 전하께서는 ....왕위에 계신 기간이 적은 것이 아닌데 세도가 나쁜 쪽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심이 벌써 떠나갔으니 대업을 보장할 수 없으며, 국가의 형세가 이미 기울었으니 나이가 한창때인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명께서는 위로 선왕께서 부여하신 막중한 사업을 생각하시고 아래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상황을 살피시며, 계절이 바뀐 데에 느낌이 일고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슬퍼하시며,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생각하고 안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무리 겨울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나이가 들어 눈 앞에서 날아갈 듯이 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는 마음에는 늘 비장함이 파고든다.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 가졌던 찬란한 꿈과 희망이 결국에는 또 후회의 반복이라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밤의 어둠을 깨고 나오는 새벽, 새해의 첫 해를 정성껏 맞이했다. 예전에는 첫 해에 자신에 관한 소망을 담았다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우리 자식 손주들,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 달라진 것이긴 하지만. 한 해를 바꾸는 때를 세(歲)라고 한다. 세모(歲暮)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바뀌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다. 중국 고대의 역사에서 교훈을 알려주는 경전인 《서경(書經)》의 홍범(洪範) 부분을 보면 "임금은 해(歲)를 살펴야 하고, 귀족과 관리들은 달(月)을, 낮은 관리들은 날(日)을 살펴야 한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상이 잘 돌아가고 못 하고는 일 년을 단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임금은 크게 전체를 보아야 하고 그다음 신하들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월 빠르다. 시간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하면 바보인 것 같다. 엄연히 뻔한 진리인데 새삼 읊조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터. 그래도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누구처럼 새해가 되었다고 희망을 노래한 것이 언제던가, 벌써 일 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아하려고 했던 몇 가지 일들은 반의반도 시작도 못 하고 또 어영부영 살다가 다 써버렸으니, 여름 장미꽃잎처럼 팽팽하고 빛나던 나의 꿈은 어느새 시들었고 다시 찬 바람에 가시마저도 숨구멍을 닫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일모레가 섣달그믐이다. 우리가 양력을 쇠니 양력으로 따져볼밖에. 섣달그믐이 어떤 밤인가? 해가 바뀌는 밤이다. 절서(節序)의 빠름은 전광석화와 같고, 시간의 흐름은 달리는 말이 문틈을 스쳐 가거나 뱀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단다. 시인은 해가 저물어 간다고 자신의 감회를 부쳐 읊고, 공자(孔子)는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음을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평생을 내 집으로 생각하며 살던 회사를 나온 지도 벌써 해로 보면 두 자릿수에 가까워진다. 그전에는 선배들이 하던 대로 여행도 가고 놀기도 놀고 또 선배들의 도움으로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초겨울에 접어든 요즈음에 나는 천 원의 행복 속에 빠져들고 있다. 시중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천 원짜리 전문점을 가주 간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이 행복을 주는 곳은 동대문 밖 종묘 옆 담자락 주위로 펼쳐진 중고시장이고 그 가운데서도 옛 책들을 파는 몇몇 서점이다.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거기서부터 동묘공원 담을 따라서 청계천까지 광범위하게 중고품 시장이 펼쳐져 있어서 대낮에는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오셔서 자기한테 필요한 물건을 골라 흥정하고 사가는 풍경이 정겹다. 그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에 하나 또 저 안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두 개의 큰 중고책 서점, 다른 말로 하면 옛 책 서점이 있는데 각 서점 앞에는 길에다 책을 널어놓고 한 권에 천 원씩을 받고 책의 주인을 찾는다. 길에 누워서 주인을 기다리는 이 책들은 베스트 셀러였던 소설류나 수필들, 혹 신변잡기류, 철 지난 자기개발서적, 곧 돈 벌어 성공하는 법, 여행안내서, 요즘 쓸모없는 사전류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 용도가 끝난, 도서라는 지식유통체계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은 그 책 더미 속에 가끔 보물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지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동지라 하면 팥죽을 생각하게 된다. 팥죽이라고 하니 서울에서 송추로 가는 도봉산 오봉 기슭 석굴암의 팥죽 전설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792년, 당시 석굴암에는 노스님과 동자승 단둘이서 살았는데 그날은 마침 동짓날이었고, 밖에는 많은 눈이 와서 마을과의 왕래가 끊기었다. 동자승이 아침 일찍 일어나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그만 불씨가 꺼져 있었다. 노스님께 꾸중 들을 일에 겁이 난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같은 시간. 석굴암에서 10여 리 떨어진 아랫마을 차(車) 씨네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의 차 씨 부인 파평 윤씨가 인기척에 놀라 부엌 밖으로 나가보니 발가벗은 아이가 눈 위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차 씨 부인이 "어디에서 새벽같이 왔느냐?"고 묻자 동자승은 "오봉 석굴에서 불씨를 얻으러 왔다"라고 대답했다. 차 씨 부인은 하도 기가 막혀 "아니, 스님도 너무 하시지. 이 엄동설한에 아이를 발가벗겨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