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철은 피서철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몸을 식힌다. 그런데 이런 때에 인간의 참된 삶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종교적인 구도를 찾는 사람들도 절이나 교회의 휴양공간 등을 찾는다. 거기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거기서 자신의 삶을 재설정하곤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천주교 가톨릭도 이 점은 공통인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따라는 가르침은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994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존 메인 세미나에 주인공으로 초청됐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존 메인 신부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이 세미나를 준비한 신부들은 자신들이 가려 뽑은 성경 사복음서의 대표적인 구절들을 미리 달라이라마에게 건네주고 그것에 대해 강의해줄 것을 제의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달라이 라마는 북런던에 있는 미들섹스 대학의 강의실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종교를 믿으면서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자신이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전령사는 꽃이라 하겠다. 3월에 매화가 피고 4월에 벚꽃, 개나리가 만발하다가 5월에는 장미가 피기 시작해 6월에 온통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7월에는 우리나라가 연꽃 천지로 변한 것 같다. 예전 함창 공갈못가에 많이 피어 민요도 많이 만들어졌다지만 요즘엔 서울 근교 양평의 세미원을 비롯해 멀리 무안 백련지의 연꽃단지도 그렇고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에 연꽃이 피는 곳이 엄청 많아졌다. 좀 부지런을 떨어 아침 일찍 연밭에 나가서 막 피어나는 연꽃 봉우리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꽃이 나올 수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이야말로 꽃 중의 군자로다”라고 칭찬한 이후 우리나라 선비들은 더욱 연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 ... 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온다>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그것을 배설에 빗댄 해학과 신랄함 서울에서 버스를 탔을 때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한복을 입고 까만 모자를 쓰고 소년이 그대로 할아버지가 된 것 같은 순수함 그 자체의 인상이었다 일본인 여러 명이 선 채로 일본어를 조금 지껄였을 때 노인의 얼굴에 두려움과 혐오의 표정 획 달려가는 것을 봤다. 천만 마디의 말을 쓰는 것보다 강렬하게 일본이 해온 짓을 거기에서 봤다. 이 시의 제목은 <총독부에 다녀온다>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아마도 일제시대 한국 민족이 당한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낀 모양이다.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가? 뜻밖에도 일본인 여성이었다. 2006년 2월 21일 일본 최대의 일간지인 요미우리는 1면 맨 밑에 있는 칼럼난인 <편집수첩(編集手帳)>에서 “시대에 뒤떨어져”라는 제목의 시 하나를 인용하면서 이례적으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자동차도 없고 워드프로세서도 없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2대 정종 2년인 1400년 3월 15일, 임금은 권근(權近)을 정당 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大司憲)으로 발령을 내었다. 나흘 후인 3월 19일 대사헌 권근(權近·1352∼1409)은 경연(經筵)에서 임금에게 “신이 본래 혼미하고 우직하며, 젊었을 때 일을 경험하지 못하여 관리들의 이치(吏治)에 서투릅니다. 전하께서 신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하게 사번부(憲司)의 장이 되게 하시니, 진실로 황공하고 진실로 기쁘나, 중외에 웃음을 남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도 한 가지 얻는 것이 있으니, 어찌 올릴 사항(事項)이 없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 관대히 굽어 실피셔서, 혹시 올리는 말이 이치에 해롭지 않거든 특별히 유윤(兪允)을 내려 주소서.”라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보름 후인 4월 5일에 봄 가뭄이 심해지자 임슴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봄이 가무니, 벼나 곡식들이 풍성하지 못할 징조인가 두렵습니다. 신이 언관(言官)으로서 감히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근심하고 두렵게 생각하여, 다시 금주령을 내려 나라의 비용을 절약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라 금주령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모든 식물은 다 나름대로 이름이 있는데, ‘이름 없는 풀’이라고 한다면 그 풀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그래 나에게도 이름이 없고 "어이 거기 이름 없는 사람?"하고 부르면 "왜 멀쩡한 남의 이름을 놔두고 그렇게 부르는거야?"라며 짜증이 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그 많은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들 이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얼마나 불러 주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든 것은 십 년도 더 전인 2009년, 부산에 있을 때 일간신문에서 이런 글을 본 이후였다. "와! 신갈나무, 너 참 튼튼하게 생겼구나, 얼레지 오랜만에 만나네. 기린초가 있는 것을 보니 붉은점모시나비도 찾아오려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숲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을 비로소 하나하나 구분하여 알아본다는 의미이며, 식물과의 인연의 시작을 말한다. 시인의 말처럼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듯이 우리가 이 나무들을, 풀들을 불러 주었을 때 그들은 의미가 되고 의도가 되며, 행복과 지혜를 건네기도 하는 그 무엇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까지 몰랐던, 눈부시게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을 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전 하지가 지났다. 벌써 지난 것이다. 새해를 맞아 우리들의 마음에 희망을 채우면서 이제는 코로나 사태가 풀리겠지 하다가 안 되어 백신만 기다리며 매일매일을 보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하지가 지나고 한해의 절반도 지나간 것이구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버트란드 러셀이 묘비명에 새긴 것으로 전해졌는데, 원뜻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원뜻과 상관없이 이 말 그대로 어여부영하다가 어느새 하지(夏至)를 그냥 보내버린 셈이다. 하지를 지난 만큼 이제 낮이 줄어들고 밤이 길어지고 있는데, 요즘엔 그냥 하루가 지난 것이지만 옛날에는 이런 하지나 동지에 대해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천문을 살피고 기상 변화를 기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치세(治世)의 기본이지만, 기상 변화를 미리 예측하기 어려웠던 고대에 나라에서 정월에 관대(觀臺)에 올라 하늘을 보고 음양의 기운, 사시사철의 흐름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24절기 중에 어떤 때는 분(分)이고 어떤 때는 지(至)인가? 이런 천지와 음양의 변화를 옛사람들은 ‘분지계폐(分至啓閉)’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춘분과 추분은 봄과 가을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의 5세기 초, 이른바 남북조 시대에 대륙 남쪽에는 송(宋)나라가 있었다. 당(唐) 이후 들어선 송(宋)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흔히 유송(劉宋)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 단도제(檀道濟, ?~436년)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흔히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책략이다”라는 36계의 저자로도 알려진 이 장군은 군을 잘 통솔하며 국정도 잘 이끌어 북쪽에 있는 위(魏)나라도 어쩌지 못했는데, 혼자 너무 잘나간다고 시기한 송나라의 권신과 왕족들이 왕명이라고 속여 궁으로 부르자, 그 부인이 이상한 일이라며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단도제는 왕명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들어갔다가 살해되었다. 장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건을 내동댕이치며 “어찌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문단 말이냐(壞汝萬里長城)!”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북쪽의 위나라 사람들은 “이제 두려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며 수시로 강을 건너 남쪽을 침범하였다. 1623년 3월 12일(음력) 김류, 김자점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옹립해 집권한 것이 인조반정인데, 서울에서 왕을 바꾸는 데 성공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봄처럼 비가 자주 온 해도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밤새 비가 온 흔적이 역력하고 낮이 되어서 잠깐 해가 나다가 밤이 되면 다시 어느새 빗방울이 뿌리는 날씨가 아마도 5월 한 달 내내 이어진 것 같고, 6월 들어 좀 바뀔까 해도 역시 또 그런 날씨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좋은 봄의 핵심인 5월을,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인지 뭐 때문에 출입과 사람 만나는 것이 제약을 받은 상황에서, 정말 가족, 친지, 친구들과 마음껏 회포도 풀지 못하고 이 좋은 봄을 그대로 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봄을 보낸 이유가 우리와는 다르다 해도 봄을 덧없이 보내는 데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고금이 같은 것일까? 고려 최대의 시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도 '봄을 보내며(送春)'라는 시에서 비슷한 감상을 남겼다(동국이상국후집 제3권 / 고율시(古律詩) 春去去能不悲 봄이 가려 하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非爾負吾吾負爾 네가 날 저버렸나 아니 내가 널 저버렸네 適我病中遭汝來 마침 병중에 너를 맞아서 未肯對花成一醉 꽃을 대해 한 번쯤 취해 보지도 못하였네 그래서 내년에 올 때는 늙은 것은 가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하던 소년 아도니스가 산돼지에 물려 죽었을 때, 아도니스를 살리려 아프로디테가 급히 달려오다가 가시에 찔렸는데, 그 피가 흰 장미에 떨어져서 붉은 장미가 되었다는 그리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아파트 담장에 피어난 장미들의 붉은 색이 정말로 아프로디테의 심장에서 흐른 뜨거운 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6월이다. 6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요즈음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장미를 자주 많이도 보게 되는데, 잘 가꿔진 정원에 따로따로 심은 장미가 아니라 담장을 타고, 울타리를 타고 줄기가 끝없이 뻗어가는 넝쿨장미(rambling rose)다. 우리가 어릴 때는 찔레꽃은 어디에나 많이 피었지만, 장미꽃은 보기가 쉽지 않아, 이 장미가 유럽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울산에 사는 향토사연구가인 이양훈 씨가 이 덩굴장미는 원래 한반도의 해당화였다가 1750년 무렵 부산 초량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돼 거기서 개량되었고, 1809년에 영국의 무역업자 찰스 그레빌(Charles F. Greville)에 의해 일본에서 영국으로 보내진 뒤에 세계로 퍼졌다는 설을 전한다. 출전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참으로 오랜만에 여의도 공원을 갔다. 공원 곳곳에 길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공원에 대해서 남다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생 근무한 KBS가 여의도 공원 남서쪽에 붙어있어 거기에 관련된 추억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연이다. 넓이 23만 제곱미터, 예전 평이란 개념으로 7만여 평이나 되는 이 공원은 예전에는 벌판이었고 거기엔 공항이 있었단다. 필자도 그 공항을 본 적이 없다. 공항이 있을 정도로 동서남북이 뚫리는 거대한 벌판이었다가 70년대 초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넓은 벌판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5.16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거기서 국군의 날에는 국군 사열이 벌어졌다. 1977년 봄 필자가 KBS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곳은 넓은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80년대에 국풍이 열렸고 이산가족 만남도 있었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끝까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것이 1997년에 갑자기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5년 7월 1일 조순 전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