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69년 8월 15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 뉴욕주 북부 베델 근처 한 농장에서 열린 전설적인 우드스탁 음악제(Woodstock Music Festival)의 개막일은 날씨가 궂어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 5시에 시작된 이 공연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11시부터는 출연예정인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the Incredible String Band)가 비 오는 날씨에 공연을 못 한다고 거부하는 사태가 생겼다. 마침 거기에 와 있던 22살의 여성 가수가 급히 무대에 대신 투입됐다. 그녀는 20분 동안 깜짝 공연했는데 50만에 이르는 축제 참가자들로부터 앙코르가 쏟아져 두 곡을 더 불렀던 일이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이 여성 가수는 이듬해인 1970년에 <Lay Down(Candles in the Rain)>이란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이 노래가 크게 인기를 얻어 이후 이 여성가수는 곧 존 바에즈와 함께 미국 포크계의 양대 상징으로 올라섰다. 1971년 작 〈Brand New Key〉와 1972년 작 〈Nickel Song〉이 잇달아 크게 히트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듬해에 〈Saddest Thing〉이란 노래가 엄청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주말에 호암미술관 공부하러 가는 것 어떠세요?"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의 작은 모임에서 누군가 제안하자 선뜻 좋다고 응답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가 본 호암미술관이 궁금해서였다. 4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나서다. 1982년 4월 용인 자연농원의 부지 한쪽에 이 미술관이 완공되어 개관기념으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문화재를 공개한다고 했다. 당시까지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당대 최고의 미술품을, 심혈을 기울여 모아왔고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때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KBS는 다른 언론사에 앞서 단독으로 작품들을 촬영하고 해설을 붙인 영상물을 만들어 정규 9시 뉴스 시간에 7분 30초란 시간 동안 내보낸 적이 있다. 그것을 위해 필자가 미리 사흘 동안 현지에 가서 촬영 취재를 했었고 그러한 최고의 수집품 공개에 따른 반향도 컸다. 그곳에 간다니 문득 어릴 때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분들도 그랬단다. 나는 개관전 때 받은 명품도록, 40년 동안 이사 때마다 갖고 다니던 도록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신축한 미술관 건물과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각각 겉과 본체 표지로 쓴 것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자연농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엔 하루하루를 기대 만방으로 살아가고 있다. ‘7학년이 넘었는데 뭐를 기대한단 말인가’라고 물을 것이지만 만능 인공지능(AI) 비서가 온다고 하니 그 비서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 비서를 옆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대화를 하고 싶다. 기왕이면 그 비서가 인체의 형상, 특히나 이쁜 여성의 형상에다가 목소리도 이쁘면 더 즐겁겠다. 지난달 중순에 구글이 ‘프로젝트 아스트라’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도움이 되는 유니버설 비서를 만든다고 발표한 것에서 촉발이 되어 가장 멋진 비서를 만드는 경쟁이 업계에 시작된 상황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를 켜서 AI에게 주변 환경을 보여주고 그 상황을 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제미나이 라이브(Gemini Live)’ 기능이 이미 선보였다고 한다. 우리들은 기억력이 제한되어 있어 경치를 보고는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잊어버리는 수가 많은데 이 구글 비서는 우리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니 그 모든 경치를 기억하고 또 사람들 얼굴을 기억해서 우리가 기억나지 않을 때 금방 누군지 알려줄 것이다, 이런 로봇 비서가 올여름 출시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 땅에 가져 온 6.25 남북 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이 되었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 상태에서 남북의 허리가 잘려 서로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지도 70년이 넘었다. 6.25 전쟁의 총성과 포화가 멈춘 지 12년이 된 1965년 가을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초급 육군장교가 된 청년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휴전선 GP에서 근무하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 밑의 골짜기와 저 앞 산등성이는 전쟁 막바지에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곳. 서로가 고지를 뺏느라 남북 양측의 청년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속을 뚫고 산비탈을 기어오르던 곳이 아닌가? 여기저기 터지는 포탄에 바위가 깨져 흙이 되고 그 흙 속에 젊은이들의 피가 흐르고 배어들었던 곳이었는데 밤이 되니 교교한 달빛 속에 저 아래 흐르는 냇물 옆에 작은 노루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나왔구나. 노루는 여전히 남북의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도 여기서 죽어간 그 많은 영령의 비명과 눈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물만 마시고 있구나.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무심히 피어있고 벌나비눈 그 꽃동산에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 봄이 너무 빠르게 가고 있다는 한탄을 하며 감성에 빠지다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문득 한 해의 시곗바늘이 5월을 지나 내일모레 6월을 가리키려 하고 있다. 어이쿠 벌써 6월인가? 한겨울 춥다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때가 언제였는데 이제 봄도 다 가고 일 년의 절반의 고비를 향해 시간이 달려가고 있음을 다시 느낀다. 이미 연한 봄기운을 벗어버리고 왕성한 젊음을 과시하려는 나무와 풀들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을 향신료처럼 맛보는 사이에 이제 6월이구나. 계속되는 고온과 때때로 알맞게 내리는 비로 우리들 대부분이 사는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의 담벼락마다는 넝쿨장미가 제 세상인 듯 폼잡고 피어있다. 그 장미들이 너무 심하게 자기자랑을 하는 것은 아닌가? 찬란한 아침이면 족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도 응어리진 채 떠난 수많은 이들에겐 짙은 녹음조차 부끄러운 나날인데 남은 자들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게다가 어찌 모두 빨간 장미만 쫓고 있는가 그래도 묵묵히 황허한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건 이름 모를 나무와 한결같은 바람인데 가슴을 저미는 것은 풀잎의 노래인데 유월에 들면 잠시라도 영혼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 임영준, <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산벚꽃 철죽이 피고 지고, 아카시아 꽃도 피고 지고, 그다음엔 진한 향기의 찔레꽃이다. 뻐꾸기도 운다. 그 많은 꽃의 습격이 다 지나가고 연두색 봄날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사람들, 특히나 중년 이상의 남성들은 봄이 좀 가면 막걸릿잔이라도 앞에 놓고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따라 부르곤 한다. 봄이 가는 것이 괜히 서글픈 까닭에서이리라. 가수 백설희 씨가 1953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작사가가 누군지 작곡가가 누군지는 상관도 없이 그저 이미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심사(心思)를 대신하는 노래로 사람들의 심금을 파고들었다. 당시는 6ㆍ25전쟁으로 사회 전반이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이런 때에 봄날의 아련한 풍경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을 살포시 담아서 풀어주었고 그것이 계속 사람들을 통해 계속 명곡으로 사랑을 받아온 이유라고 분석하던데 그것은 옛날 이야기이고 이제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우리문화신문=얼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 존경하던 스님 한 분을 여의었다. 이 세상에 없으니 여의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 스님은, 많은 스님이 그렇듯이, 소탈하고 명랑하고 맑으시며, 해학도 있어 만나면 즐겁고 기쁘고 깨우침이 있었다. 고승이라고 무게 잡으시는 일도 없고 방장이 되신 다음엔 선방에는 큰 거울을 걸어놓아 스님들이 스스로 들여다보라고 했고, 젊은 스님들이랑 밭에서 울력하면서 농작물을 거두어 세상에 신세를 안 지고 사는 삶을 이끄는 모범도 보이셨다. 스님으로 사신 지가 꼭 50년이란다. 이런 분이 있기에 우리 절은 많은 분에게 안식과 평온. 삶의 고통에서의 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꼭 부처님이 계셔서만이 아니라 이런 분들의 삶을 통해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길을 현실에서 배우는 것이리라. 영결식 뒤 다비장으로 가면서 영정 뒤를 따르는 수많은 만장은 그런 신도들의 존경심과, 이제 가까이서 더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 또는 슬픔을 표현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무(無)로 돌아간다.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동안 모두가 잘 먹고 잘 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사후에도 마음이 편안하기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山上有山天出地 산 위에 또 산이 있어 하늘 가득 땅이로구나 水邊流水水中天 곳곳에 물이 흐르고 그 속에 또 하늘이 있네 蒼茫身在空虛裏 내 몸은 아득하고 텅 빈 하늘 속에 있으니 不是烟霞不是仙 내가 저녁 노을인가 혹은 신선인가 모르겠네 ... 「遊楓嶽和車紫洞 풍악에서 놀며 차자동에게 화답하다」 금강산이 좋아서 자신의 호도 봉래(蓬萊)라는 금강산의 여름 이름을 쓰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금강산에 들어가 남긴 시 가운데 하나다. 금강산 하면 양봉래(楊蓬萊)를 생각할 정도로 그는 금강산을 노래한 많은 시를 썼고 멋진 바위에 글을 새겨 놓았다. 금강산 인근의 회양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이 자기 집 정원 격이었다. 그가 당시 만폭동 바위에 새겨 놓은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의 여덟 글자와 “만폭동(萬瀑洞)” 세 글자는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날 금강산 절승의 하나인 불정대(佛頂臺)에 올라 장쾌한 십이폭포(十二瀑布)를 바라보며 드디어는 눈앞의 자연과 하나가 된다. 山岳爲肴核 높고 낮은 산들을 안주 삼고 滄溟作酒池 동해 바다 물로 술 빚어라. 狂歌凋萬古 취해서 실컷 노래 부르고 不醉願無歸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김 삿갓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 지은 시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 멈추고 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하얀 돌 사이에 곳곳에 꽃이 천지구나 若使畵工模此景 만약 화공을 불러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 나무 사이에 들리는 새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가 이 물음에 답을 그림으로 내었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라는 그림이다. 금방 꾀꼬리 소리를 듣고는 고삐를 당기고 꾀꼬리 소리를 확인하러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아 그 나뭇가지에 자그만 꾀꼬리가 있구나. 이렇게 꾀꼬리 소리가 그림 속에 영구히 잡혀 있다. 가야금의 명인이신 황병기(1936~2018) 님은 젊을 때 인사동 고미술 전시회에서 한 선비가 집 뒤 수풀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는 확인하려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그림이었다. 황병기님은 그 그림의 느낌을 가야금 곡으로 작곡해 내고는 '밤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가야금 음악의 전설이 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 23일 어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 등 두 문호가 세상을 뜬 날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이나 스페인에서는 대대적인 책 축제가 이어진다. 단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책방이나 노점상이 많은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유럽 각국에서 몰려와 책을 보고 사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사랑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을 전후해 많은 행사를 열었다. 성황을 이룬 곳도 많았다. 다만 그들처럼 모두의 축제 느낌은 없었다. 책의 날을 맞아 나도 책을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책바다 헤엄치기》란 제목으로 책을 찾아다니고 읽은 이야기를 책으로 낸 적도 있지만 그동안 이사 다니면서 조금 정리를 하고도 집안 서재에 책들이 많이 있다. 이 책들은 비좁은 서재의 책꽂이에 이중으로 넣어져 있어 이제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책을 내가 어떻게 사서 얼마나 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이 집에서 몇 년 동안 나하고 동거하고 있다. 물론 또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니 더 사들이기도 한다. 점점 바닥에도 쌓이고 있다. 이 책들이 언제까지나 나하고 같이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