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요즘 전자책 보시는 분들 많으시지요? 저는 그동안 종이책을 고집하다가 최근에 전자책을 사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은 종이책을 넘길 때의 그 감촉, 그리고 펼친 책에 코를 박을라치면 마음을 아늑하게 해주는 종이향은 결코 전자책이 줄 수 없는 종이책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뿐인가요? 펜을 들어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밑줄을 그을 때 펜을 통해 손가락에 전해져오는 미세한 떨림 등은 저에게 종이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즈음 어쩔 수 없는 필요성 때문에 전자책을 보기 시작하였는데, 전자책도 나름 좋더라고요. 제가 전자책을 보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지방 재판에 갈 때마다 재판기록뿐만 아니라 오가는 중에 보려고 항상 책 한두 권은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요즈음 지방에 갈 때마다 아내랑 동행하면서 가방이 빵빵해졌습니다. 간식거리도 넣고 냉동실에서 꺼낸 물도 몇 병 넣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조금 큰 갤럭시탭을 사서 재판서류도 전자화하여 여기에 넣고, 책도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갤럭시탭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자책을 보기 시작하였는데, 전자책은 전자책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 책은 산악계 원로이신 이용대 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님이 쓰신 수필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산정한담(山頂閑談)》은 산악계 원로가 지나온 산악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래서 책 표지의 부제에는 ‘산 위에 올라 인생을 돌아본다’라고 되어 있네요. 선생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혈기 넘치던 젊은 날 나의 산은 위험한 짓거리와 마주하는 치기로 가득했다. 여러 차례의 추락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산을 향한 열정을 꺾지 못한 채 오늘도 산에 오르고 있다. (가운데 줄임) 이번 글의 내용 대부분은 산과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알피니즘의 정체성, 산악인들의 사사로운 일상과 그들의 등산 활동이 배경이며, 이전 저서에서 못다 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주변 산사람들과 부담 없이 나누는 산정한담(山頂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삶의 터전마저 산기슭으로 옮겨와 둥지를 마련한 지 40년, 아직도 강북에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산의 품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 내 고집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윌리엄 홀덴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영화 <모정(慕情, A Many Spiendored Thing)>을 아십니까? 1955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홍콩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중국군 장교의 과부 한수인과 미국 특파원 마크 엘리엇과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텔레비전의 명화극장에서 <모정>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모정>은 작가 한수인(1916 ~ 2012)이 이안 모리슨과의 사랑을 그린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중국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수인은 벨기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국민당 장교 당보황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1947년 만주전선에서 전사하자,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퀸 메어리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호주계 영국기자 이안 모리슨과 사랑에 빠지지요.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안 모리슨이 한국전쟁에 영국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파견된 지 얼마 안 되어, 1950. 8. 12. 지뢰가 터져 전사하였기 때문이지요. 한수인은 소설 끝부분에 이안 모리슨이 한국전선에서 보내온 21통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는데, 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아산병원에 문상갈 때 잠실나루역에서 내려 성내천을 건너갑니다. 성내천변을 따라 걷는 맛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잠실나루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둘러보는 맛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책보고’라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www.seoulbookbogo.kr)인데, 여기에 30개 가까운 헌책방이 입주하여, 저마다 서가를 차지하고 각자 소장한 책들을 보여줍니다. 책들이 주제 별로 꽂혀있지 않고 헌책방별로 꽂혀있는 것이 조금 흠이긴 하나, 각자의 헌책방 서가마다 돌아보는 맛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문상가면서 ‘서울책보고’를 들렀는데, 여기서 《탐라문견록》이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입니다. 바다를 소홀히 하여 공도(空島)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시선사에서 한국 대표 서정시 100인선을 내며 61번째로 박수중 시인의 시집 《규격론(規格論)》을 펴냈습니다. 시선사에서는 기획 의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현대시는 독자와의 소통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인만 남아 있고 독자는 멀어져간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좋은 작품을 향유하고 감상해야 할 문학의 기능적 측면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시선사는 이를 바로잡고 시인과 독자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한국 대표 서정시 100인선을 기획하였다.” 공감합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월간중앙에 글을 연재한 인연으로, 그 후 월간중앙을 구독하고 있는데, 월간중앙에서는 잡지의 처음에 매번 시 한 편을 싣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시심(詩心)이 메말라서인지, 공감되는 시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는 왜 이리 어렵지?’ 하며 툴툴댄 적이 있었는데, 시선사에서 저 같은 독자들을 생각하여 이런 기획을 하였군요. 박수증 시인은 제 고교, 대학 선배입니다. 광복 전 해인 1944년에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셨으니까, 저보다 한참 선배이시지요. 서울법대를 나왔다는 것은 처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냈습니다. 박 시인은 저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낸 이후 써온 시 가운데 301편의 시를 고르고 골라 온통 짙은 파란색의 두툼한 양장 케이스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네요. 표지에서는 푸른색의 남자가 파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별들 사이로 두 줄기의 별똥별이 파란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고 있군요. 파란색의 디자인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도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저쪽의 그리움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나눔문화에서 저에게 시집을 보내왔는데,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내가 좋아할 만한 시가 수록된 쪽 3군데에 붙임쪽지(포스트잇)를 붙여서 보내왔습니다. 시집을 받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 보내는 연구원들의 정성에 이번에도 감동을 먹습니다.^^ 붙임쪽지를 붙인 세 시 가운데 하나는 시집 제목과 같은 ‘너의 하늘을 보아’입니다.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놓았네요.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이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우리문화 지킴이인 김 소장님은 인터넷신문인 <우리문화신문> 발행도 하면서, 그동안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 이야기》 등 우리 문화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책은 제목부터 독특합니다. ‘삼킴곤란’이라니?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은 김 소장님이 자신의 투병기를 책으로 낸 것입니다. 김 소장님은 지난해 9월 11일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었는데, 후유증으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장애 곧 ‘삼킴곤란(연하장애)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대학병원에서 그해 10월 25일까지 치료를 받다가 재활병원으로 옮겨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거의 10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지요. 그리고 올해(2022년) 3월 3일까지 집에서도 열심히 치료를 하여 삼킴곤란을 극복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치료받기에 급급한데, 소장님은 그때그때 치료일지를 기록하였다가 이를 책으로 내셨네요. 역시 매일 매일 독자들에게 <얼레빗>이라는 번개글(이메일)을 보내주시는 분이라, 이러한 투병생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에 사십년 동안 쌓인 찌꺼기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씻어 버리리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이 1549년에 제자들과 거창 신원면의 감악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남명은 감악산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조선의 양반이 홀라당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탁족(濯足) 곧 물에 발을 담그고 이 시를 짓지 않았을까요? 남명은 16세기 조선의 대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학자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다니요! 그만큼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유학자의 시치고는 좀 과격하지 않나요? 그러나 항상 은장도 같은 칼을 갖고 다니면서 때로는 칼끝을 턱 밑에 괴고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기까지 하며, 또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옷깃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도 달고 다녔던 남명이라면 능히 이런 시를 지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不作蘭畵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나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네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문 닫아걸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로구나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만약 누군가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야무언사지) 당연히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리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이 그린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의 왼쪽 위 여백에 쓴 글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문인화를 그리면 대개 그림 여백에 화의(畵意)를 써 놓지요. 추사는 한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20년 만에 어떤 계기가 있어 난초를 그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림 왼쪽 아래 여백에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이 난초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추사를 시중들던 시동(侍童)입니다. 불이선란도는 과천의 추사박물관 외벽에 크게 그려져 있듯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최종고 전 서울법대 교수님이 낸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에 관하여 글을 쓴 세계작가들에 대한 책이지요. 최 교수님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에서 33년 동안 법사상사를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졸업한 이후에 교수로 오셨기에 제가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최 교수님이 최근까지 서울법대 문우회 회장을 하셨고, 저도 2017년에 문우회 회원으로 가입하였기에 문우회 모임에서 가끔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 오래전에도 한 번 뵌 적이 있네요. 제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 졸업 논문을 무엇으로 쓸까 고민하다가, 성경에 나오는 법사상을 한 번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서울대로 최 교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지요. 그때 최 교수님이 좋은 점에 착안하였다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준비하다가 졸업논문 제출 시한까지 제대로 된 논문을 완성한다는 것은 도저히 제 능력 밖이라 포기했었네요. 그런데 어떻게 최 교수님이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이란 책을 쓰게 되셨을까요? 머리말에서 최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