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백색, 석간주색… 우리 문화유산에 쓰인 아름다운 색이 가진 이름들이다. 우리 고유의 색상이라고 하면 흔히 ‘백의민족’으로 대표되는 흰색을 떠올리지만, 사실 흰색은 다채로운 색깔 가운데 하나일 뿐 훨씬 다양한 색깔이 일상 속에 쓰였다. 그렇다고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으로 이루어진 오방색만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자색, 석간주색, 비색처럼 아름다운 색상이 참 많았다. 하리라가 쓴 이 책, 《문화유산에 숨은 색 보물을 찾아라!》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 황룡이 각자 색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양한 색을 알아가는 매력이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오방색’ 말고도 우리 역사에는 아름다운 색깔이 많았다. 흔히 고려청자에서 나는 오묘한 푸른색을 뜻하는 ‘비색(翡色)’이 대표적이다. 푸르면서도 녹색 빛이 도는 신비로운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총새 비(翡)’자를 써서 ‘비색’이라 하였다. 물총새 또한 깃털이 푸르고 영롱한 초록색 빛이 도는 까닭이다. 대한제국의 황후가 입었던 ‘적의’에는 아주 깊은 푸른색인 ‘심청색’을 썼다. 순종의 황후인 윤 황후가 입었던 적의는 ‘12등 적의’라 하여 꿩 무늬 154쌍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 “공주는 안으로는 밝으시지만 드러내지 않으시며, 재능이 있으시지만, 그 명예에 관심을 두지 않으셔 심덕의 온전함이 일부분만 나타났소. 공주의 글씨를 받아 보니, 선조 대왕의 필법에서 나온 듯하오. 필적이 웅장하고 건장할 뿐만 아니라 온화하면서도 두터워서 여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소. 필법에서 마음을 읽혀, 그 성정에서 깊이 감동하게 되니 가문이 엄숙하고 화목하겠습니다.” 정명공주. 선조의 늦둥이 공주로 태어나 여든이 넘도록 천수를 누린, 복 많은 여인이다.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자손들도 크게 번창했다. 어찌 보면 조선왕실의 공주 가운데 가장 많은 복을 누린, 운 좋은 여인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날이 있기까지 유년기에 엄청난 고생과 실망과 좌절이 있었다. 이복 오라버니이자 선조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정명공주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서궁(오늘날의 덕수궁)에 유폐시켰다. 정명공주도 이때 어머니와 함께 죽은 듯 숨죽여 살며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박성호가 쓴 책, 《화정- 정명공주 이야기》는 이런 극적인 공주의 일생을 소설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쓰러져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행운아야” 말할 수 있었던 평범하고도 화목한 일상이 갑자기 깨어졌을 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나 사용되던 비극이 갑작스레 자기 자신에게 닥쳐왔을 때, 아비 모건은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글을 쓴다. 이 책은, 작품의 시작과 끝을 정하고 인물의 서사를 전지전능하게 주물러왔던 극작가 아비 모건 자신의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기록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굳건했던 일상의 울타리가 하나씩 허물어진다. 연이어 찾아오는 끝모를 재앙 앞에서 슬퍼하고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그 모든 것을 회피하지 않는다. 자기연민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믿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각본 없는 현실이 막막하고 버겁게 느껴질 때, 작가가 보여준 삶의 단단한 의지는 자신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보리여울(麥灘) - 조수삼 舂白趁虛市(용백진허시) 흰 것은 찧어서 텅 빈 시장에 나가고 殺靑充夜餐(살청충야찬) 푸른 것은 베어서 저녁을 때우네 麥嶺斯難過(맥령사난과) 보릿고개 넘어가기 어려운데 如何又麥灘(여하우맥탄)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위 시는 조선 후기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이 함경도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풍속을 노래한 것 가운데 보리여울(麥灘-맥탄)이라는 곳을 지나면서 쓴 것이다. 특히 직접 눈으로 목격한 농민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읊고 있다. 익어서 하얗게 된 보리는 찧어서 살 사람도 별로 없는 텅 빈 시장에 가 팔고, 아직 익지 않은 푸른 보리는 그것이나마 베어서 저녁을 때우는 농민들을 본다. 조수삼은 먹거리가 없어 보릿고개도 넘어가기 어려운데,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걱정하고 있다. 1833년 헌종 10년. 전국 팔도에서 수많은 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모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83살의 노인, 조수삼이었다. 조수삼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과거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79돌 광복절 행사가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 주최 기념식으로 각각 열린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친일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반대하면서 따로 기념식을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말썽이 된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광복회는 논평을 통해 “1948년 이승만의 건국절 주장은 선열들의 피로 쓴 독립운동의 역사를 혀로 덮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세 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첫째,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유증일 것이다. 1948년 9월에 국회를 통과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이승만의 방해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이 법에 따라 특별재판소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사형 1명을 포함하여 12명밖에 안 되었다. 그마저도 실제 사형 집행은 1명도 없었고, 대부분 감형이나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 6,76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26,529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숙청 재판에 가장 먼저 끌려 나온 피고들은 나치 협력 언론인들이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어떤 순간에도 삶의 주인이 돼 성공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독서와 글쓰기라고 말하는 김은미 마음성장학교 대표의 '생존독서'가 8년 만에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격 복간됐다. '생존독서'는 대한민국 '코치들의 코치'로 알려진 김은미 대표가 마흔에 경험한 상실과 인간관계에서의 괴로움 속에서 건져 올린 깨달음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자존감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치는 상황 속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고 한다. 마흔, 그 혹독한 성장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독서 자기계발 바이블을 제시한다. ◇ 하루하루 버티는 생존의 삶을 넘어, 생동감 넘치는 존재의 삶을 위해 독서는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생존독서'는 독서, 글쓰기, 명상을 통해 스스로 존엄함을 지키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저자는 초판이 출간된 이후 지난 8년간 수많은 독자로부터 삶의 주인이 돼 매일 더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는 감사의 메일을 받았다. 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권오길 선생님께서 우리말에 깃든 생물 이야기 1권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 2권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을 한 달 반 간격으로 연이어 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생물 수필집을 내오시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스무 해 넘게 생물 수필을 써오시는 동안 우리말의 격언이나 잠언, 속담, 고사성어 가운데 생물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고 놀라셨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내내 우리말에 녹아 있는 선현들의 해학과 재능, 재치에 숨넘어갈 듯 흥분하여 혼절할 뻔하기도 했다고 하십니다. 으~음~~ 혼절한다... 저도 글을 쓰면서 제가 모르던 것을 발견하고 흥분하여 오르가즘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혼절할 뻔까지 하셨군요. 정민 교수도 옛 선인의 글을 읽다가, 짜릿함에 "말도 안 돼!"라고 외치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일어나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던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경험이 있나 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정말이지 글을 쓰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절정(絶頂) - 이육사(1904~1944)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지난 2011년 광복절 66돌을 맞아 MBC텔레비전에서는 이육사 일대기 '절정'을 방영해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드라마 '절정'은 39년이란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정신과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된 '절정'은 1940년 1월 발표된 이육사의 대표 시 가운데 하나로 일제 강점기 속 배달겨레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본명이 이원록인 이육사는 '절정'과 '광야', '청포도'를 비롯해 30여 편이 넘는 시를 발표했다. 또 그의 삶을 통틀어 모두 17회 감옥에 투옥됐으며,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1월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구금 중 순국했다. 그런 이육사 시인의 일대기를 방영했던 MBC텔레비전은 이번 광복절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와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국박!’ 국립중앙박물관을 줄여 부르는 애칭이다. 요즘 ‘국박’이 인기다. 예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묵직한 이름이 주는 엄한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소장품이 있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친근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책, 《보고, 쉬고, 간직하다》의 지은이 이현주는 일편단심 국립중앙박물관을 사랑해 온 ‘국박 바라기’다. 1990년 <박물관 신문> 담당자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홍보전문경력관으로 33년째 일하고 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신바람 나게 일한다. 3년 동안 박물관신문에 ‘박물관 풍경’을 찍어서 게재하기도 했고, 날마다 아침 SNS에 박물관이 관련된 글과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책도 한 일간지에 박물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아 연재한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칼럼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 박물관을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박물관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독자가 있다면 생각이 바뀔 것 같다. 박물관의 ‘제철 풍경’은 어떤 것인지,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장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양삼승 변호사가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양 변호사님은 1999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으신 뒤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대한변협 부협회장, 영산대 석좌교수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고교 11년 선배이시지요. 저번에,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선배님의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보니 선배님이 그동안 변협신문과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언론에 기고한 글, 한국법학원 주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등 주옥같은 글을 모아 책을 내셨더군요. 선배님의 아버님은 양회경 전 대법관이십니다. 대법관님은 1971년 6월 국가배상법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할 때 위헌 의견을 내셨지요. 그리고 유신 선포 이후 그때 같이 위헌 의견을 낸 8분의 대법관님들과 함께 타의로 옷을 벗어야 했지요.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이후 많은 위헌결정이 내려진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도 1992년에 위헌제청을 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여 위헌결정을 내린 것이 있더군요. 그 당시 선배님은 형사부 부장판사로 있을 때인데, 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