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지난 3월 8일, 도서출판 하우(대표 박영호)에서 일본어판으로 나왔다.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은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이다. 류의석 선생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시절 3.1만세운동에 앞장서던 이기준 선생이 외할아버지이고 아버지 류규동 선생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이다. 특히 아버지 류규동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당할 위기를 간신히 넘긴 뒤 일본 선생님의 추천과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삶을 일궜는데 나가노 기소후쿠시마가 그곳이다. 그러나 류규동 선생은 그곳에 발을 내디딘 조선인 징용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 폭파 작업 중 양쪽 눈을 잃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난 류의석 선생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던 산골 나가노현 기소후쿠시마를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해방 뒤 조국에 건너와서도 일본 문학을 사랑하며 일본어 실력을 키워갔다. 그러던 류의석 선생이 《백범일지》를 일본어판으로 출판하고자 마음먹고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70살이 넘은 시기였다. 번역에 몰두하길 여러 해, 드디어 국내최초의 《백범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경기도 화성시, 발안 3.1독립만세항쟁의 선구자인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제가 어제(30일) 향남읍에 있는 탄운 이정근 의사 창의탑에서 열렸다. 일기예보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10시 30분부터 열린 추모제 시각에 맞춰 거짓말처럼 비가 개어 무사히 추모제를 마칠 수 있었다. 사단법인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가 주관한 어제 추모제에는 광복회 경기도지회 안소헌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유지, 탄운장학금 수여자와 학부모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탄운 선생 순국 100주기의 의미를 되새겼다.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919년 3월 31일, 화성 발안 장날 만세시위에서 제자들과 지역민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앞장서다 일경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하는 만행으로 그 자리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복부에서 흐르는 피를 손에 움켜쥐어 일경의 얼굴에 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장렬히 순국하신 분이다. 탄운 선생은 33세 때,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으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당해 관직을 버리고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창호(1878.11.9.~1938.3.10.) 선생을 2019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江西郡 草里面 七里) 봉상도(鳳翔島, 일명 도롱섬)에서 태어났다. 1896년 18살 되던 해에 구세학당 보통부를 졸업하고 조교를 맡아 학생을 지도하였다. 이후 독립협회에 가입한 선생은 귀향하여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설립해 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를 통해 사회와 민족에 대한 소명의식과 국민교육의 중요성을 깊게 자각할 수 있었다. 1902년 혼인 직후 미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리버사이드 일대의 한인지도자로 부상하였다. 1905년 4월에는 동지들과 함께 조국 광복을 목표로 삼는 미주 한인단체인 공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907년 5월 공립협회 제3대 회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언론활동과 교육진흥, 실업진흥 등 여러 가지 구국사업을 펼쳤다. 이후 공립협회는 1909년에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1910년에는 대동보국회와 통합되어 1910년 5월 10일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한인국민회로 발전하였다. 같은 시기 선생은 조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금서(禁書)이며 근대문학의 거탑 <임꺽정>의 작가이자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고 남북통일을 갈구한 민족사의 큰 어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선생은 제가 닮고 싶은 선각자입니다. “내 아들아, 너희는 어떻게 하나 조선 사람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국치를 당한 1910년 8월 29일에 자결한 아버지 홍범식 선생의 고결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 절개는 암울한 시대의 횃불이었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단재 신채호, 조소앙, 창강 김택영, 예관 신규식 등과 조선독립을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그 당시 창강 선생께서 집필하신 <홍범식전>에는 “외모는 비록 온순하나 내심은 실로 강개막측하였으니 이는 아마 노상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차마 원수놈의 나라에서 밥을 먹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수원박물관이 3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 수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3.1만세운동 100돌 기념 주제전 ‘수원여성의 독립운동’을 연다. 독립운동 비밀결사단 구국민단 활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선경(1902~1921),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끈 김향화(1897~?) 등 수원여성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유물 6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회는 ▲일제 식민지배와 수원사람들의 항거 ▲수원기생 만세운동의 주역 김향화 ▲구국의 선봉에 나선 학생 이선경 ▲수원여성의 독립운동 등 코너로 구성된다. ‘일제 식민지배와 수원사람들의 항거’에서는 수원 주민의 3.1만세운동, 비밀결사조직, 사회운동, 의열투쟁 등 수원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에 관한 사진ㆍ유물 등을 볼 수 있다. ‘수원기생 만세운동의 주역 김향화’에서는 1919년 3월 29일 김향화를 비롯한 33인의 의기(義妓)가 수원에서 펼쳤던 만세 운동 관련 사진·유물 등을 전시한다. ‘구국의 선봉에 나선 학생 이선경’에서는 독립운동 비밀결사단 구국민단에서 활동한 산루리 출신 이선경의 생애와 그와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을 재조명하고, 구국민단 결성 과정ㆍ활동 등을 기록한 사진·유물 등을 전시한다. 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만세함성은 우렁찼다. 손에 손에 든 태극기는 3월 하늘을 빛냈다. 역시 광주였다. 빛고을 광주에서는 어제(3월25일), 100년 전 3.1만세운동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광주지역 여성독립운동가의 산실인 수피아여중고(당시 수피아여학교)에서 오후 3시부터 진행된 행사는 ‘3.1만세운동 재현 릴레이 독립의 횃불’이라는 주제로 수피아학생들과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이날 ‘3.1만세운동 재현 광주 릴레이 독립의 횃불’ 행사에서는 생존 애국지사인 노동훈 선생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다. 수피아여중고에서 행사를 마친 뒤 횃불행진은 양림동을 거쳐 광주 3.10 만세운동 집결지인 부동교를 거쳐 5.18 민주광장까지 1시간여의 행진이 이어졌다. 수피아여고 출신 독립운동가인 박애순, 진신애 윤형숙 지사와 광주 출신의 이광춘 지사를 위한 헌시(獻詩)를 쓴 필자도 이날 행사에 초대 받아 케이티엑스로 달려가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사실 필자로서는 이러한 만세운동 재현행사 참여는 처음이었지만 100년 전 광주지역 만세운동의 산실인 수피아여고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글을 쓴 사람으로 감회가 깊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은 「안중근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이 26일(화) 아침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유족(외손녀 황은주, 외증손자 이명철)과 친족, (사)안중근의사숭모회 임원과 회원, 잠수함사령부 장병, 시민,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안중근 의사 약전봉독, 육군사관학교 생도대표 최후의 유언 봉독, 참석 내빈 추모사, 감사패 수여, 안 의사 순국 109주기 전국 학생 글짓기대회 수상자 시상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날 안중근 의사 추모를 위해 스가와라 토시노부(菅原敏允)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국제교류협회 회장과 카와시마 야스미(川嶋保美) 전 미야기현 의회의원 등 20여 명의 일본 인사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에 평소 안중근 의사를 기리며 존경하고 있는 스즈키 히토시(鈴木仁) 전(前) 요코하마 시립중학교 교사와 사가현에 안중근의사 동양평화기원비를 건립한 야마사키 케이코(山綺惠子) 씨도 방한한다. 추모식에서는 ‘평화주의자’ 안중근 의사를 널리 알린 스즈키 히토시씨를 비롯한 3명이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수원시가 ‘수원특례시 실현’을 비손하고, 3.1만세운동ㆍ임시정부수립 100돌을 기려 여는 ‘자전거 홍보 투어’ 참가 시민을 모집한다. 수원시청에서 화성시 제암리 3.1만세운동 순국기념관을 왕복하는 46km 코스다. 수원시자전거연맹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3.1만세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캐나다인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1889~1970)가 제암리 학살사건을 촬영하기 위해 1919년 4월 수원에서 제암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 것에서 착안해 마련했다. 4월 18일 아침 8시 30분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 광장에서 출발한다. 황구지천ㆍ봉담ㆍ향남을 거쳐 제암리 3.1만세운동 순국기념관까지 왕복 46km 코스를 주행한다. 관심 있는 시민은 25일부터 4월 9일까지 수원시자전거연맹에 전화(031-253-6629)로 신청하면 된다. 선착순으로 100명을 모집한다. 참가자에게는 점심과 음료, 간식, 기념 티셔츠 등을 제공한다. 참가비는 1만 원이다. 프랭크 스코필드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 의학자이자 선교사로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내한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모습과 제암리ㆍ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이자 민족 계몽 운동가였던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1주기 추모식」이 10일(일) 오전 11시,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에서 열린다.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실)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은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학생,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흥 안 씨 안명옥 대표의 약전 봉독,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김재실 이사장의 추모식사와 국가보훈처 이병구 차장 등의 추모사, 도산 뮤지컬팀의 추모가,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안창호 선생(1878. 11. 9.~1938. 3. 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며,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자주 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역설하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동(同)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공립신보>를 발행하였다. 1907년 귀국 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였고, 1909년에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손병희(1861.4.8.~1922.5.19.) 선생을 2019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선생은 1861년 충북 청원(청주)에서 출생하여 1882년 동학에 입문하였다. 1894년 호서지방 중심의 북접(北接) 사령관인 통령(統領)에 임명되어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기수로서 활약하기에 이른다.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국권을 수호하고, 또 회복하기 위해 민족을 계몽하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선생은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를 비롯한 수십 개의 남녀학교를 인수 또는 신설하여 운영함으로써 민족의 동량을 육성하였다. 선생은 1919년 1월 동경유학생의 2.8독립선언계획, 신한청년당 및 기독교계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독립선언 방식의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펼침으로써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알리고, 일본의 정부와 귀족원ㆍ중의원, 조선총독부 파리강화회의의 열국의 대표에게 한국의 독립에 대한 의견서와 청원서를 보내기로 하였다. 선생은 권동진, 오세창, 최린과 3.1독립운동의 골간이 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