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의 침략 죄를 폭로하는 일본군비행장 이라는 제목의 9월 24일자 중국의 길림신문(吉林新聞) 보도가 눈에 띈다. 침략의 기초 작업으로 군 비행장은 필수다. 그런 일제의 군비행장 시설이 중국 돈화시 사하연진(敦化市 沙河沿鎮) 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침략의 역사로부터 70여 성상이 지났지만 일제 군비행장터에는 비행기계류장, 3개의 활주로 등 비행장 전체의 윤곽과 형체는 남아 있다. 군비행장 위치는 사하연진(沙河沿鎮)에서 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1호산촌 (一号山村) 동남쪽에 있다. 중앙활주로는 콘크리트로 포장되어있으며 양측 활주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중앙활주로 끝에는 비행장 지휘탑으로 쓰인 다층탑 건물이 있는데 붉은 기와 형태이다. 동쪽의 3층 건물은 지휘감시대였는데 현재는 벽체 잔해만 남아 있다. ▲ 둔화시 일본군비행장 터의 격납고 시설 길림신문 제공 또한 비행기격납고 서쪽 500m지점에는 붉은 벽돌, 푸른 벽돌의 일본식 가옥이 3동 남아있는데 이곳에는 비행기 관계자와 가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는 주민들이 쓰고 있다. 일호산촌(一号山
[그린경제/ 얼레빗 = 최미현 기자] 용정이 나은 조선민족의 위대한 시인 윤동주의 민족정신과 작품을 기리고자 사단법인윤동주연구회가 지난 9월 27일 오전 시인 윤동주의 고향 용정에서 설립식을 가졌다고 길림신문(吉林新聞) 이 9월 27일자로 보도했다. ▲ 중국 용정의 윤동주 생가 입구 이날 설립식에는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 저자인 중견 소설가 김혁 씨가 회장으로 뽑혔다. 이번에 구성된 용정윤동주연구회는 용정 출신 문인을 주축으로 조선족 작가, 학자, 미디어 관계자가 힘을 모아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윤동주연구기념사업은 시인 윤동주의 생일인 12월 30일과 죽은 날인 2월 17일에 정기적인 기념행사와 윤동주 관련 연구 학술대회 등을 마련하고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채로운 기념 사업을 할 예정이다. ▲ 복원된 윤동주 생가 ▲ 생가 안에 초라한 추모 제단 모습 그밖에 용정윤동주연구회는 조선인의 용정 이주사, 항일투쟁사를 비롯한 용정 출신의 걸출한 인물의 역사를 정리하여 책으로 낼 예정이라고 길림신문은 보도 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조완구( 1881-1954) 선생은 서울 계동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1902년 한성법학전수학교를 마치고 내부 주사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종무관장 민영환의 자결과 처남인 금산군수 홍범식의 경술국치로 인한 자결 순국도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선생은 관직을 그만두고 대종교에 들어갔다. 대종교는 을사오적암살단을 조직하였던 나철이 창시한 것으로 단군을 섬기는 민족종교이자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상징적 존재였다. 선생은 대종교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1914년 북간도로 망명,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국'임을 선포한 독립선언이 발표되자 북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생은 이동녕 조성환 김동삼 조소앙 등과 함께 상해로 갔다.민족의 대표기구인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이를 위한 대표 인사를 29명으로 구성하였는데 선생도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먼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이후 27
[그린경제/ 얼레빗 = 최미현 기자] 구례잔수농악은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 신촌마을에서 전승되는 풍물굿으로 호남좌도풀물의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다. 이 풍물굿은 기본적으로 당산제만굿, 마당밟이, 판굿으로 구성되어 마을굿으로서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당산제만굿은 매년 정월 초사흗날 농악대가 오전 10시부터 마을의 당산을 돌면서 제만굿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굿을 마친뒤 풍물패는 마을의 각 가정집을 다니면서 액을 물리치기위한 마당밟이를 하며 이것이 끝난 후에 전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판굿으로 이어진다. 구례잔수농악은 전문적인 풍물패에 의해서 전승되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마을 풍물굿이다. 잔수농악은 과거 구례는 물론 인접한 순천 남원 일대까지 그 명성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과거 농악의운영과 관련된 문서도 전하고 있는데 1954년부터 작성된 '농악위친계칙(農樂爲親契則)'과 '농악취친계 계재수지부(農樂爲親契 契財收支簿)'가 그것으로 그 동안의 농악 관련 계칙과 재정 상태를 기록한 문서이다. * 중요무형문화재지정일 2010.10.21 자료 문화재청 제공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해외문화홍보원(원장 원용기)은 해외 거주 유학생 또는 일반인, 국내외 외국인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우리나라와 관련된 오류 발굴에 참여할 제2기 오류 시정 모니터단을 모집한다. 한국 역사, 문화 등에 대한 기본 소양과 책임감을 가지고 영어 또는 현지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국외 거주 유학생이나 교포' 또는 '한국어가 가능한 국내외 외국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한국 관련 전공자나 동아리 블로그 운영자는 우대 대상이 된다. 제2기 오류 시정 모니터단으로 선발되면 해외 주요 웹 사이트는 물론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 국외 현지에서 발견되는 한국 관련 역사나 문화, 영토, 국가 이미지 등에서 발견되는 잘못된 설명이나 오류에 대해 직접 시정 활동을 하게 된다. 또한 선택 사항으로 '내가 찾은 한국의 매력'이란 주제로 에세이나 영상 등을 제출하면 추가 활동 점수를 받아 우수 활동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니터단 전원에게는 임명장과 기념품이 제공되며 우수 활동자에게는 해외문화홍보원장 표창과 소정의 상금이 수여된다.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지난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개천절은 과연 단군 할아버지에 얽힌 화석화된 옛날이야기 또는 하루를 쉴 수 있는 공휴일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KTV(원장 김관상)에서는 오는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석학들을 초빙해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의 개념과 그 현재적 의미를 통해 개천절의 살아있는 의의를 되새겨보는 특집 프로그램들을 방송한다. 인문학열전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10월 2일(목) 낮 4시 방송 ▲ 인문학열전_정영훈 교수 2일 방송되는 인문학열전(연출 김진웅, 진행 홍사종)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편에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정영훈 교수를 초대해 단군 건국신화와 홍익인간의 의미를 들어본다. 한국사 속에서 면면히 전개돼온 단군민족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된 과정과 함께 단군 건국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짚어본다. 단군민족주의 연구가이자 단군과 고조선을 주제로 북한 학계와의 학술교류를 주도해온 정영훈 교수는 주요 논저로 《단군과 근대 한국민족운동》, 《북한의 민족문화유산 정책》, 《해방 후의 중도파와 통일운동》 등이 있다. 대한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오는 10월 1일(수) 낮 12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일본 기독교 목사단이 제1146차 수요시위를 찾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마음을 표현할 예정이다. 이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향한 위로와 사죄의 뜻을 직접 전하고 싶어 한국방문과 수요시위 참가를 결의하고 행동에 나섰다. 일본 내 원로 목사들로 구성된 이들은 직접 준비한 사과문을 수요시위에서 낭독하며, 이와 별도로 구 일본군 출신 목사인 무토 키요시(87세)씨의 사과문도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 후쿠시네마현에서 살고 있는 무토 목사는 17세 때, 자원입대해 혈서를 쓰고 자폭 특공대원으로 복무하면서 적의 배에 부딪쳐 자폭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774차 수요시위 모 그러나 이후 일본의 과거사와 자신의 이 같은 행동에 늘 죄스러움을 안고 살았던 그는 죽기 전에 반드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직접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이루고자 이번 수요시위 참가를 준비해다. 하지만, 최근 수술 후 거동이 불가능해진 탓에 안타깝게도 수요시위를 찾지 못하고 다른 목사들에게 직접 쓴 사과문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간호부 출신의 한
[그린경제/얼레빗=중국 연길 이윤옥 기자] 금은방의 반지 만드는 곳 구두 닦는 집 숙식이란 뜻은 고기종류의 내장류를 요리해서 파는 것을 말함 액세서리를 파는 집으로 장식의 세계라는 뜻이다 옷궤란 옷장을 말한다 토집이란 시골을 의미하며 시골집에서 만든 떡을 말함 중국에서는 빵, 죽, 만두를 잘 먹는다 목이버섯을 귀버섯이라 한다 연길 시내를 돌아다니며 참 재미난 간판을 찍어 보았다. 같은 한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할까 싶어 찍은 것이지만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도 많다. 목이(木耳) 버섯을 귀버섯이라 부르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 사진은 연길시내에서 용정의 윤동주 생가까지 택시를 전세내어 가는 도중에 눈에 띄어 차를 잠시 세우고 찍은 것이다. 중국이지만 자신의 말글을 중국어 보다 우선하고 있는동포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문화신문 = 중국 연길 이윤옥 기자] “젊은이들은 모두 돈 벌러 한국으로 나갔지요. 약자(弱子)와 노인 분들만 남았어요. 저도 나가지 못해 남았지만 지금은 살만해요. 돈 벌러 나간 조선족들 땅을 제가 다 맡아서 농사도 짓고 한족에게 빌려주기도 해서 이제는 걱정 없이 살지요” ▲연변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 왼쪽이 대문이고 돌비석은 담장으로 꾸며져 있다. ▲199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생가 ▲생가에는 작은 방이 두어개 있는데 입구 방에초라한 모습으로 이렇게 꾸며져 있다. 올해로 69주기다. 어제 29일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찾아갔을 때 “윤동주생가”는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용정시내에서 택시로 30분 거리인 윤동주생가는 왕복 60위안을 주고 전세 낸 택시로 갔는데 생가에 도착해보니 그만 나무 대문이 잠겨있는 것이었다.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 보니 대문 한켠에 관리인 전화번호가 적혀 있기에 전화를 거니 밭에서 일하다가 나왔다며 단숨에 아주머니가 한 분 달려 나왔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아래 보이는 집이 생가이며 집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멀리 산이 있는 이곳에서 윤동주 시
[그린경제/ 얼레빗 = 전수희 기자]강기동 선생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 오류동으로 이사하였는데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9년 1월부터 1911년 2월까지 약 2년여에 걸쳐 반일 투쟁을 전개하다 일제에 의해 총살 순국한 선생은 의병에 투신하기 이전에 의병을 진압하는 일본 헌병의 보조원이었다. 헌병보조원은 1908년 6월 도입된 것으로 선생은 일본어에 능통한 것을 계기로 헌병보조원으로 발탁되어 경기도 양주군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1909년 고안헌병분견소에 의병들이 수감되고 의병의 실상을 접한 선생은 자신도 의병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1909년 1월 15일 옥문을 부수고 길인식 등 2명의 의병을 탈주시킨 후 총과 탄환을 탈취하여 의병장 이은찬이 이끄는 창의원수부에 투신, 의병으로서 대일항장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창의원수부는 1909년 1월 한 달 동안 포천 양주지방의 산악을 배경으로 약 27회에 걸친 반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헌병보조원 시절의 정보를 바탕으로 효율적 군자금 확보책과 일본군대 헌병 경찰의 정보를 제공하여 창의원수부의 반일투쟁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이러한 공로로 투신한 지 1개월만에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