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마완근 기자]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협회가 주최하고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주관하는 2014 몽양 아카데미가 지난 9월 13일 토요일 14시~17시까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위치한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에서 50여명의 수강생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와 몽양 여운형이라는 주제로 지난 4월부터 월 1회씩 시민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하였는데 이 날은 제5강으로 변은진(한국방송통신대)교수가 해방직전 국내외 독립운동 진영과 친일세력에 대해 2시간 동안 일제의 침략전쟁이 확대되고 친일행위가 심화된 이른바 해방직전시기의 나라안팎 민족운동의 현황과 몽양 여운형 선생이 중심이 된 조선건국동맹의 활동과 의의에 대해 열강하였다. ▲ 2014 몽양 아카데미 한국 근현대사와 몽양 여운형 수강 모습 이후 참가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몽양기념관의 장원석 학예사는 31혁명을 기획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셨으며 해방 전후엔 건국동맹과 건국 준비위원회를 지도하신 몽양 여운형선생의 활동과 독립운동 정신을 알리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매번 강의실이 꽉 찰 뿐 아니라 안동, 파주, 용인 등 먼 곳에서도 관심을 갖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인으로 중국 음악, 예술의 전당에 빛나는 이름을 새긴 걸출한 음악가 정율성(鄭律成, 1914-1976)을 기리기 위한 정율성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8월 25일 중국 장춘국제회의센터에서 성황리에 열렸다고 길림신문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에서 주최한 이번 기념행사는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71) 를 비롯하여 전 길림성정협부주석 정용철, 전 길림성인대상무위원회부주임 남상복 등을 비롯한 길림시의 지도층과 길림성 관계기관, 조선족지도자 간부, 조선족학교 등 1000여명이 기념식장을 가득 메웠다고 전했다. 중국의 3대 작곡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은 격동의 시대를 풍부한 음악으로 표현한 위대한 작곡가로 옌안송, 1928년,중국인민해방군군가(팔로군행진곡), 조선인민군행진곡 뿐만아니라 오페라, 항일가요, 군가, 서정가곡, 민요, 동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총 397곡의 명작을 남겼다. 정율성은 곡을 만들 때 중국 각지를 돌며 민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창작의 바탕을 삼고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곡가로 유명하다. ▲ 중국 장춘서 열린 '정율성 탄생100주년 기념음악회' 사진 조선족네트 제공
[그린경제/얼레빗=한성훈 기자] 현충사관리소(소장 최이태)는 영화 명량의 흥행으로 이순신 장군과 현충사에 대해 높아진 국민의 관심을 지속해서 담아내기 위하여 9월부터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한다. 청소년 리더십 함양을 위한 생생 이순신은 현충사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의 학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야외 강연이다. 이순신 장군이 무예를 연마했던 은행나무 활터 특별무대에서 임원빈 소장(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이 청소년들이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배워야 할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이 행사는 오는 11일부터 매주 목요일 진행되며, 참가를 원하는 학교나 단체는 오전과 오후 중에 시간을 선택하여 신청하면 된다. ▲ 현충사 자연캠프(2014년 상반기) 현충사 자연캠프는 현충사 경내의 수려한 조경과 풍부한 수목을 배경으로, 초등학생과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숲 체험 프로그램이다. 오는 17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며, 20~40명 단위로 단체 신청하면 된다. 현충사 휘호교실은 현충사 경내의 은행나무 활터에서 오는 20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진행된다. 현충사를 방문한 관람객은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드디어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칼을 빼들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다할지라도 유엔의 이번 조치는 타당한 조치이며 늦은 감 마저 있다.최근 극에 달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재일동포와 한국인에 대한 증오표현(헤이트스피치, hate speech)에 대하여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国連人種差別撤廃委員会)로부터 일본정부가 법적규제를 하도록 권고 받았다고 아사히신문이 8월 30일자로 보도했다. 유엔인종철폐위원회(이하 유엔)는 8월 29일 일본정부에 대하여 증오표현(헤이트스피치) 문제에 의연히 대처하고 법률로 규제하도록 권고하는 최종견해를 밝혔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 조사와 사죄를 요구했다. ▲ 한국은 '악'이 아니라'적(敵)'이므로 죽여라고 쓴피켓 이번에 유엔이 밝힌 최종견해란 일본이 1995년부터 가입하고 있는 인종차별조약에 기초하여 2001년, 2010년에 이어 이번이 3회째이다. 유엔이 지적한 권고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은 외국인노동자의 차별문제 등 약 30항목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했다. 이는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재일한국조선인을 중상모략하는 데모가 최근 심각한 수준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 당시 스미다구에서는 혼쵸(本町)지역을 중심으로 대화재가 발생하여 아라카와(荒川) 강변에는 피난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 조선인이 공격해온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구(舊) 요츠기바시(四つ木)에서는 군대가 기관총으로 조선인을 총살하였으며 일반인들도 살해 행위에 가담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아라카와 강의 방수로 개설 역사를 조사하던 어느 소학교 교사가 이 지역의 노인들로부터 관동대지진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교사는 이러한 증언을 토대로 이들을 추모하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일어난 지 두 달 뒤인 11월 도쿄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헌병경찰의 감시 하에 아라카와 강변에서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 발굴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때 유해를 어디론가 운반하였으나 희생자 유골의 행방은 그 후 조사할 수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여 유골도 무덤도 없이 진상도 규명하지 않은 채 86년이 흘렀다. 이에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역사를 반성하며 여러 민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본사회의 창조를 염원하여 민간 여러분이 힘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2
[그린경제/얼레빗=윤지영 기자] 2011년 8월 30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해결 노력 부재를 위헌이라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선고 이후 3년이 지났다. 3년이 지나는 동안 18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고인이 되었고, 여전히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세 차례의 한일 국장급협의가 진행되었지만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 대해 진정성 없는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고, 한국정부 역시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 사진 최우성 작가 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대표 윤미향ㆍ한국염ㆍ김선실)는 한국정부에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 대일외교와 다각적 노력 등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8월 29일(금) 오전 10시에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연다. 기자회견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 등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발언이 있을 예정이다. 이어서 릴레이 1인 시위를 11시에서부터 18시까지 청와대와 외교부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은 헌법이 명령한 한국정부의 의무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문제해결 앞당겨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 얼숲(페이스북)을 보는 일본인을 위해 결론 부분을 먼저 일본어로 싣는다. 群馬県の朝鮮人強制連行追悼碑撤去という事態を見守りながら、日本が過去の侵略戦争の反省をきちんと整理できないまま、再び火薬庫を爆発させる火種を育てている現実に心が痛む。群馬県の朝鮮人強制連行追悼碑撤去の方針は、日本帝国主義が犯したアジア侵略の歴史的事実を撤去し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これは侵略戦争の被害国民であり、平和を愛する人として決して座視できない重大な事案で考える。群馬県に対抗して闘っている角田義一氏を中心とした日本の良心と勇気に大きな応援の拍手を送る。(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추도비 철거라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의 반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또 다시 화약고를 터뜨릴 불씨를 키우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 철거 방침은 일본제국주의가 범한 아시아침략 사실 철거하려는 것이다. 이는 침략전쟁의 피해국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명량대첩비의 수난사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326년 전인 1688년 전라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해남에 세운 명량대첩비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민족정기 앙양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제자리에서 끌어내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 충무공 '명량대첩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 (동외리) 이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가 행방불명되었던 명량대첩비 찾음이란 제목으로 당시 매일신보 1945년 11월 2일치 기사에 실려 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기념비가 일본인 관리의 손으로 전남 우수영(右水營)바다 기슭에서 자취가 없어졌던 것이 이번에 다행히도 전 총독부 박물관 구내에 내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민족적으로 자랑할 이순신대첩비(李舜臣大捷碑)는 지금으로부터 330여 년 전 3천리 강산을 짓밟은 소위 임진왜란 때 왜국의 수병을 꼼짝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우리 민족의 자랑인 충무공의 공훈을 길이 새기고자
[그린경제/얼레빗 = 최미현 기자] 남파 설진영(18691940)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민족사상을 배향하였던 곳으로 1910년에 세웠다. 남파 선생은 고종 32년(1895) 기우만과 함께 장성에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1910년 한일병탄이 되자 오랑캐는 상대할 수 없다고 하여 아미산 남쪽에 남파 서실을 세우고,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영재와 항일 애국지사를 배출하였다. 1940년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창씨개명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다가 성(姓)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서와 유서를 남긴 채 서실 앞 우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선생의 본관은 순창(淳昌). 초명은 진삼(鎭三).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 또는 율재(栗齋). 아버지는 통정(通政) 상기(相基)이며, 어머니는 탐진최씨(耽津崔氏)로 덕순(德淳)의 딸이다.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광선(高光善)박인섭(朴寅燮) 등과 교유하였다. 전라북도 진안 이산묘영광사(駬山廟永光祠)에 충의열사 33인과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로 『남파유고』가 있다. ▲ 독립정신의 산실, 설진영서실 (薛鎭永書室) 서실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앞뒷면 모두 툇마루가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2014년 8월16일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바오로1759~1791)을 포함해 124위에 대하여 복자 시복식을 거행한다. 이에 앞서 1984년 한국인 103인 성인에 대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5월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식을 거행했다. 103위 순교 성인들이다. 한국 천주교는 1645년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 세자가 북경에 온 독일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와 조우하고 수차의 교류를 통해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차원에서 전래되었지만 양명학과 실학으로 수용되었다가 서교(西敎)로 발전하면서 종교적 실체로 발전했다. 이어서 1784년 이승훈(1756 ~ 1801)은 북경에서 베드로(반석)라는 세례명을 받고 귀국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자발적 태동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7년 후에는 박해가 시작되고 최초의 순교자가 나왔다. 전라도 양반 가문 진사 출신인 윤지충은 제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천주교 예절에 따라 치른 이른바 '진산(충청도 금산)진사 사건'으로 체포되어 참수형을 당했다. 육신의 부모보다 더 높은 부모, 임금보다 더 높은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