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윌리암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한국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는 말의 배경을 음미해 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감정 결과였다. 그의 논평문에는 한국의 피리와 대금이라는 악기 이름이 나오는데, 피리의 종류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가 있고 이들이 각각 어떤 음악에 편성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해 보았다. 이번 속풀이 45에서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소개부터 시작해 보겠다. 대금이라는 악기는 신라의 3죽 중에서 가장 굵고 긴 형태의 가로 부는 젓대 또는 저의 이름이다. 신라의 3죽은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신라 신문왕(神文王)때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그 산 위에는 대(竹)가 한 그루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 연유를 알아본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
속풀이 43에서는 루 해리슨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그가 한국에 와서 피리를 배울 때, 자신이 익숙한 서양의 5선보가 아닌 한국의 정간보를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 세 번째 감정가인 미국 미시건 대학의 윌리엄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들어보기로 한다. 맘 교수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나는 전에 일본음악을 들어 본 일이 있다. 그러나 한국 음악은 들을 때마다 나의 호기심을 끌며 일본이나 중국음악과는 달리 완전히 독창적이며 독특한 데에 놀랐다. 한국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직접 한국음악과 춤을 접했을 때, 그들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한 구조로 된 악기들, 즉 피리, 대금, 장고 등이 있으나 소리는 전혀 다르다. 또한, 무용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감각적 요소가 풍부하여 매우 매혹적이었다. 한국의 음악과 춤은 우리 외국인을 더욱더 감동시킬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우아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음계나 가락도 중국의 5음계나 일본의 음
‘김 모씨의 항아리’ 이야기를 이 난에 소개한 이유는 그가 자기 집에 항아리를 두고도 그것이 귀한 보물임을 모르고 지내 왔듯이, 한국 전통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악이라는 항아리를 들고 전문 감정가들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제일 먼저 알렌․호바네스(Alan Hovhaness)를 만났는데, 그가 말한 논평문 속에 ‘아악’ ‘향악’ ‘거문고’ ‘가곡의 대여음’과 ‘처용무’ 등의 낯선 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풀이를 하는 중이다. ‘아악’ ‘향악’ ‘거문고’ 등은 이미 간단하게 풀이하였고 ‘가곡’과 ‘처용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리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풀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가곡’은 홍난파 이후의 신가곡이 아니다. 조선조 전기부터 문인이나 선비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오던 전통 가곡을 말한다. 가곡은 5장 형식이다. 시조시 초장을 가곡에서는 1장과 2장으로 구분하고, 시조시 중장 전체를 3장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종장을 4장과 5장으로 나누는데, 가곡의 4장은 시조시 종장의 첫 3음
지난주 국악속풀이 41에서 필자는 김 모 씨의 항아리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내다가 타인의 충고를 받고 그 유산이 매우 귀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는 ‘김 모씨의 항아리’를 김 모씨=한국인 항아리=국악 즉 ‘한국인의 국악’으로 비유하여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와 악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인격을 도야하며 자기완성을 실현코자 했던 할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귀중한 백자(白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집까지 잃고 가난 속에 푸대접을 받던 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깨져버린 항아리처럼 끊기고 잘리는 아픔을 견뎌 내야만 했던 식민시대였다. 일제는 우리 고유의 음악문화를 말살하려 들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지막 항아리처럼 힘겹게 그 명맥을 오늘에 잇고 있는 것이다. 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많은 한국인이 알고 있듯, 그렇게 볼품없고, 수준 낮은 과거의 낡은 음악인가 아닌가 하는 점을 확인하고자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을 만나 보기로 하겠다. 먼저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 모씨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의 집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그맣고 흰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의 집에는 이런 종류의 항아리들이 몇 개 있었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는 특히 조부가 그 물건에 관심이 많으셔서 매일같이 그 항아리들을 닦고 매만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누가 손이라도 댈라치면 걱정을 하시며 지극 정성으로 보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부께서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의 사업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가족은 작은 집,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다가 드디어는 남의 집 방 한 칸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사는 동안 가족들의 관심 밖으로 돌려진 항아리들의 보관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조부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항아리들은 관리소홀로 하나 둘 깨지고 조각이 나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한 개뿐이다. 가장이 된 김씨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고 생활
문화재의 지정 또는 인정의 해제와 관련된 조항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당해 문화재의 보유자로서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유자의 인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와 “특별한 사유”가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가? 만일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전수활동이나 발표공연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당연히 명예보유자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사유에 속하는 경우는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 ‘전수교육을 게을리하여 진전이 없는 경우’ ‘의무사항인 공개발표를 이유 없이 안 하는 경우’ ‘보유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거나 추락시키는 경우’ 등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인정을 해제시켜야 마땅하다. 개인종목이나 단체종목 구분 없이 1년을 주기로 보유자들의
무형문화재의 새 종목을 지정하고 이에 대한 보유자 인정이 내정되었다면 이를 일정기간 관보에 고시해야 한다.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결정사항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기본 취지가 간혹 악용되는 일도 있다. 의도적으로 이해(利害)관계에 결부시키는 집단이나 개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조사위원이나 기량의 평가위원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배가시킨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되거나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문제가 생긴다면 재조사를 통해 확인과정을 거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서연호의 “제도와 운영, 대폭 개혁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무형문화재의 조사나 심사과정이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미 지정된 모든 문화재들은 재심사를 통해 재지정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변질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재지정을 통해 대폭 정비하지 않는 한, 무형문화재의 난맥상은 가속적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그 전문성을 끊임없이
문화재법은 해당 문화재 종목을 원형대로 체득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예능보유자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이 제한은 없는 것인가? 딱히 제한은 없으나 어느 정도의 연륜은 요구되고 있다 하겠다. 시행규칙 제22조를 보면, 전수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자가 이수증을 받을 수 있고 이수자가 된 다음 전수교육 조교로 올라가는 데에는 특별히 연한을 제한하지 않고 있어서 실력이 출중하고 보유자에게 인정을 받은 이수자일 경우, 빠르면 2~3년 이내에도 가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20-30년이 넘어도 불가능한 것이다. 대략 전수기간의 두 배가 넘는 7~8년으로 잡아보고, 전수교육 조교가 된 다음, 보유자가 되는 기간을 10년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능력 있는 사람은 20년이면 보유자가 될 수 있는 체제이다. 입문 20 여년 만에 보유자가 된다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10살에 전수자가 된 사람은 30살 전후에 보유자가 될 수 있고 20살에 시작한 사람이라도 40살 전후에는 보유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가정이므로 실
중요무형 문화재의 기·예능 보유자의 인정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문화재의 예능 또는 기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보호법도 원형보존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원형의 개념이나 원형의 범주 문제는 간단치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어느 시대의 예술작품이나 행위를 원형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예술 대부분은 구전심수(口傳心授) 방식으로 전승되어 왔다. 입으로 전해오는 사이에 전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파생되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하는 변화의 범주 문제도 심각한 형편이다. 음악의 경우, 앞에서 예로 들었던 가야금산조나 거문고산조, 또는 대금산조에서 현재 지정된 유파 외에 다른 유파의 산조들은 또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지정 당시의 가락을 올곧게 이어가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지정을 받은 후에 보유자들에 의해 변화되는 상황을 또한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문제점이다. 이미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들의 원형도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역사적
문화재 보호법 제5조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의 지정과 관련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로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보유자를 인정할 수 있으며 추가인정도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로써 정상적인 전수교육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유자의 인정을 해제하고 명예보유자로 예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유자의 추가인정이 가능하다는 말은 보유자의 수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보유자가 기ㆍ예능의 전수교육을 정상적으로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명예보유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명예보유자와 관련된 내용은 시행규칙에도 명시되어 있다. 시행규칙 제2조에 보이는 보유자 등의 인정기준은 지극히 간단한 편이다. 즉 “ 중요무형문화재의 예능 또는 기능을 원형대로 체득,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단체종목도 “예·기능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단체”인데, 다만 예·기능의 성질상 개인적으로는 실현할 수 없거나 보유자로 인정할 만한 자가 다수일 경우에 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예보유자는 전수교육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