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호법 시행령 제18조를 보면 “문화재청장은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로 하여금 해당 중요무형문화재의 전수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자에 대하여 기능 또는 예능을 심사하여 그 기능 또는 예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자에게 전수교육 이수증을 교부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전수교육 이수증을 발급한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는 1월 이내에 그 사실을 문화재청장에게 알려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과거에는 문화재청이 주관하던 이수증 교부의 권한을 보유자들에게 맡겨 놓고 이수증을 누구에게 발급했는가에 결과만 알려주게 되어 있다. 이수증 교부문제로 무형문화재의 해당 종목마다 반목과 불신의 벽이 높아만 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문화재청의 편의주의는 그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으로 해당 문화재의 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자를 이수대상으로 한다는 점, 이들에 대한 기예능을 심사하여 상당한 수준임을 판단하는 방법, 이수증을 보유자나 보유단체가 발급하고 그 결과를 문화재청장에게 알린다는 사
문화재는 유형과 무형으로 구분된다. 유형이란 남대문이나 석굴암과 같이 형체가 있는 문화재이고 무형은 인간의 기예능과 같이 형체가 없는 문화재이다. 무형문화재 종목 안에 성악이나 기악과 같은 전통음악, 전통무용, 의식이나 놀이 등 등이 포함된다. 문화재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 문화재청이다. 국악인 중에는 뜻밖에 무형문화재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필자 역시 이 분야가 매우 중요한 문제점들을 다루는 분야이기에 학술대회에 참여해 논문을 발표하거나 토론에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해 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가능한 한 현장의 목소리들을 청취해서 핵심 사안에 접근해 보려고 다수 전승자나 학자, 관계전문가, 일반 애호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기도 했던 것이다. 대부분 전승자는 본인들의 입장만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행정당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학자나 전문가들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행정당국과 전승자들을 비판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대조를 이루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은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지정이니 보유자를 비롯
지난 10월 21일, 경기도 김포에서는 사단법인 ≪우리소리보존회≫ 이사장 조옥란 명창 외 공연자 60여 명이 김포지역의 어르신 위안을 겸한 제5회 시조발표회를 열어 가을밤 운치를 한껏 멋지게 장식하였다. 조옥란 명창은 여류 시조인으로 이름을 굳히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오래전에 전국 시조대회를 휩쓸다시피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얼마 전에는 경기민요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경기 국악제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차지하여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한 장본인이다. 시조의 명창이 경기민요계를 제패하였다는 점으로도 그의 시조창 실력이나 민요창의 실력은 충분히 인정받고도 남는다 하겠다. 필자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 출강할 때로 기억된다. 미모의 한 수강생이 매일 강의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데, 늘 책상 위에 녹음기를 앞에 놓고 앉아서 다소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가령 시간 중에 시조에 관련된 내용이거나, 또는 민요에 관련된 내용이면 그에게 시범창을 부탁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가 불러주는 노래소리에 모두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목소리도 목소리이지만 목구성이 뛰어나고
그동안 농악에 관한 연구는 기원에 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승과정이나 실태에 관한 연구, 구성이나 판제에 관한 연구, 각 차(次)에 따른 기본형 리듬과 변형리듬에 관한 연구, 동작이나 춤사위 연구,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해서 상호 비교나 특징을 찾는 작업들이 활발한 편이었으며 상당수준의 연구성과도 축적되어 가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특히 농악의 리듬을 발췌하여 이를 무대음악으로 만든 꽹과리, 장고, 북, 징의 타악합주 사물놀이는 시연 3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미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급학교의 사물놀이 팀이나 평생교육원, 직장의 동호인 중심으로 점점 확산해 가고 있다. 이제는 농악의 외양이나 내면의 매력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응답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농악 속에 어떤 미적인 가치가 있어서 한국인들은 농악과 더불어 긴 세월을 함께 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지방마다 전해오는 농악은 각각 어떤 독특한 멋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한국 농악 속에 녹아있는 미적인 특징이나 농악
농악은 한국의 대표적인 향토음악이다. 그런데 농악의 기원을 딱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옛날 삼국시대 이전에도 5월의 파종 후나 10월의 추수 후에는 천신,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이 있었는데, 이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겼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오늘날의 농악과는 다르다고 해도 농사일과 관련하여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에서 농악의 시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가요인 동동의 후렴에 나오는 「아으 동동다리」라는 가사에서「동동」을 농악에 쓰이는 북소리의 의성어인「둥둥」에서 온 말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농악의 기원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가 하면 농악의 기원설도 다양하다. 농사와 안택(安宅)을 위한 축원설이 있고, 농군을 훈련 양성하는 방안의 하나로 군악(軍樂)설도 있으며, 사찰건립이나 중수목적의 모금방안과 관련한 불교 관계설 등도 있다. 이중에서는 농사를 위하고 안택을 제신에게 비는 농사안택축원설이 농악을 하게
충청남도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매해 인삼축제를 열고 있어서 이 기간 중에는 국내는 물론, 동남아를 비롯하여 세계의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금산을 찾고 있다. 또한, 금산군에서는 축제기간 동안 각 지방의 농악대를 초청하여 대대적인 농악공연을 계획해 놓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농악의 실기뿐 아니라 한국 농악의 미학이란 주제로 전국 국악학 학술대회도 준비하고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을 둔 학자나 연구자들, 그리고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실기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개최일시는 10월15~16일 양일간 충남 금산의 다락원 소공연장에서 오전 10부터 열릴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국악속풀이는 농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언제 어디서 보고 들어도 한국인을 신명나게 해 주는 농악은 음악적인 요소뿐 아니라, 무용적인 요소와 연희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농악이나 농악무는 농사와 관련하여 집단노동을 할 때,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혹은 명절 같은 때에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하는 농민들의 음악과 춤인 것은 분명하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를 ‘풍물’ 또는 ‘풍장’이라도 하는데, 풍물(風物)이란 말은 풍악에 쓰이는 기물을 말하는 것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 중에 전통(傳統)이란 말이 있다. 전통이란 무슨 말일까? 아마도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문화적 가치’ 혹은 ‘유산’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은 과거의 모습을 급속하게 바꾸는 개혁의 사회가 된다거나 혹은 동시 다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외래문화를 만나게 될 경우, 두 얼굴의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하나는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오랜 전통은 지켜가야 할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쪽은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통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기반’이라고 믿고 있다. 반대로 과거의 양식은 고리타분한 관습이어서 우리사 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고 보려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이 점차 높아지는 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 중앙이나 지방의 국악계가 전례 없이 고무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경기소리 노학순 명창이 이끄
경북대 국악과의 정해임 교수가 이끌고 있는 고령의 ≪대가야 가야금연주단≫이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창단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축적된 연주단의 성장 모습을 보이고 평가와 함께 격려와 축하를 받는 기념 잔치를 열겠다는 것이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흘렀으니 연주단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로서 음악사에 남을 굵은 선 하나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어찌 없겠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지역 고령은 옛날 가야국이었다. 가야국 하면 제일 먼저 가야금이 떠오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가실왕이 나타나며 가야금을 잘 탔다는 악성 우륵선생이 연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우륵과 진흥왕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 있다.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금 한 틀을 가슴에 품고 신라에 들어가 매일같이 가야금을 타며 세월을 보낼 적에, 때마침 진흥왕이 이 음악을 듣고 계고, 법지, 만덕 등 3인에게 선생의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이들의 음악이 어느 정도 익어갈 무렵 진흥왕은 좌우에 늘어선 신하들과 함께 감상하고는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펼치자 신하들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대의 이유는 “망한 나라의
가곡의 노래 말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짜여진 3장 형식의 시조(時調)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래 말을 가곡에 얹어 부를 때에는 5장으로 분장한다. 남창의 26곡, 여창의 15곡 전체가 동일하게 5장으로 나눈다. 가령, 우조 ‘초수대엽’에 얹어 부르는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시를 가곡으로 나눈다면 제1장은 시조의 초장 안귀의 동창이 밝았느냐이고 제2장은 초장의 바깥귀인 노고지리 우지진다이다. 가곡의 제3장은 시조의 중장인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이다. 시조의 중장 전체가 가곡에서는 3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4장은 종장의 첫 3음절인 재 넘어이고 나머지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는 제5장으로 나뉜다. 다시 정리하면 시조의 초장은 가곡에서 1장과 2장으로 분장이 되고, 시조의 중장 전체는 가곡의 3장이 되며 종장의 첫 3음절만이 가곡의 제4장, 나머지는 제5장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형식이 바로 시조창과 가곡창의 큰 차이점이다. 간혹 시조의 중장이나 종장이 정형에서 벗 어나 길게 확대된 엇시조라고 해도 이를 별도의 장으로 늘리지 않고 모두 5장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곡의 형식이다. 반주 악기군이 먼저 대여음(大餘
전통가곡에 관한 속풀이를 하다가 잠시 다른 장르로 옮겨 갔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가곡의 멋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통가곡은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대별되고 있다. 남창 가곡은 우조 음계(흔히 서양음악의 장조 음계로 비교 됨)로 된 11곡과 계면조(단조에 비교 됨)로 만들어진 13곡, 그리고 중간에 조가 바뀌는 2곡 등 모두 26곡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여창 가곡은 우조가 5곡, 계면조 8곡, 그리고 변조의 2곡 등 모두 15곡이 모두 불리고 있다. 남창의 곡수에 비해 여창의 곡수가 적은 셈이다. 남창이든, 여창이든 간에 이들 가곡은 부르는 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다. 느린 빠르기의 긴 호흡으로 부르는 곡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순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에 몇 곡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나, 절대로 앞뒤 악곡을 뒤바꿔 부르지 않는다. 창자 임의대로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순서를 정해 놓고 순서대로 부르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 시대 가곡의 명인들, 즉 이주환이 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