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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아들 위해 목숨 던진 양사언(楊士彦) 어머니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0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전에 박정숙 박사가 쓴 책 《조선의 한글편지》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지요?

https://blog.naver.com/yangaram1/221272726322

 

 

그 박정숙 박사도 이번 <다섯 손가락>의 필진 가운데 한 분입니다. 《조선의 한글편지》는 박 박사가 조선의 편지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것인데, 박 박사는 이번에 그 가운데 9개의 편지에 이야기를 덧입혀 정답고 따뜻한 글로 피어냈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통곡하는 추사 김정희, 남편 첩질에 타는 속내를 드러내는 신천 강씨, 숙모에게 문안을 올리는 원손(元孫) 시절의 정조의 편지 등을 읽으면서 조선 시대의 선조들에게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네요. 그 중에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경우에는 편지가 아니라 그 유명한 ‘태산이 높다 하되...’의 시조와 허강이 한글로 지은 서호별곡을 양사언이 붓을 놀려 쓴 글이 나옵니다. 양사언의 경우에는 아들의 출세를 위하여 목숨을 끊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박 박사님이 한 꼭지로 올린 모양입니다.

 

 

양사언의 위 시조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양사언 어머니 이야기는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해봅니다. 양사언의 할아버지 양인이 어느 날 우연히 촌부의 딸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받았답니다. 이에 양인은 감사의 뜻으로 청홍(靑紅) 부채 두 자루를 줍니다.

 

그런데 그냥 주기에는 멋쩍어서인지 결혼예물인 채단(綵緞)이라며 주었답니다. 양인은 농담조로 채단이라면서 주었겠지만, 이를 받는 처녀는 정색을 하고 공손히 부채를 받습니다. 그 뒤 처녀는 아버지가 시집을 보내려고 하여도 일체 거부합니다. 딸을 추궁하여 부채의 사연을 알게 된 아버지가 양인을 찾아오고, 남아일언중천금이라 양인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지고 처녀를 아들의 후처로 받아들입니다.

 

이리하여 양사언과 그의 동생 양사기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 형제는 서얼입니다. 엄격한 신분사회의 조선에서 서얼은 출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양사언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바로 남편 뒤를 따라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조선에서는 여자가 수절을 위해 남편 뒤를 따라 죽으면 열녀로 추앙하면서 정려문을 세워주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자신이 열녀가 되면 아들들도 서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요. 양사언 어머니 이야기는 조선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구전되면서 여러 설화집에 실립니다. 그러다보니 약간씩 이본(異本)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어떤 설화에는 양인이 양사언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로 나오기도 합니다.

 

 

양사언은 어머니가 목숨 던진 그 소망을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1546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또 조선의 유명한 서예가, 시인이 되었습니다. 양사언은 금강산 인근 지방관을 할 때에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란 글씨를 새겼는데, 워낙 양사언의 글씨가 유명하여 “만폭동 경치값이 천 냥이면, 그중 오백 냥은 양사언의 글씨값”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였지요. 양사언의 호가 봉래(蓬萊) 아닙니까? 양사언이 금강산을 좋아하여 아예 호를 금강산의 여름 이름인 ‘봉래’라고 지었네요.

 

양사언의 이복형 사준과 아우 사기도 문장으로 일가를 이루어 이들 3형제는 중국의 미산삼소(眉山三蘇 : 송대의 저명한 문장가 소순, 소식, 소철)에 견줄 정도고, 또 양사언의 아들 만고도 저명한 문장가이자 서예가라고 하네요. 아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어머니! 박 박사님이 글 한 꼭지로 올릴 만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