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공민왕, 남색에 빠지고 관음증 즐겼다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제 공민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공민왕은 망해가는 고려에 마지막 희망을 던지며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사랑하는 노국공주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심지어는 자제위를 설치하여 미남 청년들과 남색(男色)을 즐기기도 합니다. 《고려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민왕이 심화병이 나서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비를 강제로 능욕하게 했다. 비가 이를 거절하자 임금이 노하여 칼을 뽑아 치려고 하니 비가 겁을 먹고 복종했으며, 그 뒤에도 홍륜 등은 임금의 명령을 핑계 삼아 여러 번 왕래했는데, 비도 그것이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 드디어 임신했다.”

 

공민왕은 남색을 즐길 뿐만 아니라 관음증에도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자제위의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인 익비를 간음하게 하고 그걸 보면서 즐겼습니다. 당연히 왕비가 반항을 하니 칼을 뽑아 협박하고요. 으~음~~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 강간하는 것을 보면서 즐긴다? 제 정신으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세상에! 개혁군주가 타락하니 이렇게 변하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는 다른 한편으로 한 때 고려 부흥을 위해 개혁의 팔을 걷어 올렸던 공민왕이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자꾸 듭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려사》는 조선 건국 뒤 조선의 시각에서 서술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기본 사실은 《고려사》의 기록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자기들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일부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반대되는 역사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반박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자꾸 왜곡, 과장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익비가 그만 임신을 해버렸네요. 여러 명이 번갈아가며 왕비를 능욕했으니 도대체 익비가 누구의 씨를 잉태한 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 공민왕은 익비가 잉태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내시 최만생에게 홍륜과 그 무리를 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최만생은 고민합니다. 이들을 죽이고 나면 과연 공민왕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신을 가만두겠냐는 것입니다.

 

자신도 죽임을 당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한 최만생은 오히려 홍륜 등과 공모해 공민왕을 죽입니다. 그렇겠지요? 자신도 죽게 되는데 아무리 상대가 임금이라도 이판사판격으로 임금을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이들은 술에 취하여 잠들어 있는 공민왕을 칼로 무참하게 죽입니다. 이로 인하여 공민왕은 즉위 23년 만에 44살로 죽게 됩니다. 참 허망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노국공주를 잊지 못해 자신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공민왕이기에 저 세상에서 노국공주를 만나게 되어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한편 공민왕을 죽인 최만생과 홍륜의 무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임금이 죽었는데 이들의 범행이 곱게 묻힐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들의 범행도 발각되어 이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요. 마지막 개혁군주 공민왕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었으니 고려도 끝난 것입니다. 비록 공민왕 이후 우왕, 창왕, 공양왕이 이어졌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