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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미주 동포의 큰별 '고 홍명기 이사장'을 추모하면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주한인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홍명기 이사장이 18일(이하 현지시각) 87살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묵념으로 홍명기 이사장의 타계를 애도했다. 기자가 홍명기 이사장을 직접 뵌 것은 3년 전(2018)으로 그날은 LA 가든스윗호텔에서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있던 날이다. 광복절 기념식이라고는 했으나 참석해보니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동포들의 잔칫날과 다름없었다. 그날 정식 행사이름은 ‘제73주년 광복절 및 도산 기념동상제막 17주년 합동 기념식 –파이오니어 소사이티 연례 오찬회-’ 였다.

 

 

1부 기념식에 이어 2부에서는 점심모임(오찬회)답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동포들은 잡채, 부침개, 삼겹살, 호박죽 등 한국 음식들로 가득한 뷔페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잔칫집 분위기였던 기억이다. 이십 여 년째 ‘광복절 잔치’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홍명기 이사장이다.

 

 

고 홍명기 이사장은 특수페인트로 미국 시장을 석권한 듀라코트사를 세웠다. 홍 이사장은 1954년 유학으로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화학과를 졸업하고 26년 동안 화학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51살의 나이로 창업을 했다. 그때가 1985년으로 홍 이사장은 컨테이너에서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사업에의 열정을 불태운 결과 산업ㆍ건축 철강용 특수도료를 개발했고 이는 미국 굴지의 페인트회사로 성장했다.

 

그 뒤 홍 이사장은 자신이 일군 부(富)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 환원을 위한 일에 쓰고자 2001년 1천만 달러를 출연해 '밝은미래재단'을 설립, 교육과 장학 사업을 펼쳐왔다. 또한 폐교 위기에 처한 남가주한국학원을 살려낸 것을 비롯해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로 꼽히는 LA 대한인국민회관 복원,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동포를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그런 홍명기 이사장께서 올해 광복절 행사(14일)를 마치고 나흘 뒤인 18일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미국 동포사회가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고 배국희 전 대한인국민회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곳 분위기를 전했다. 고 홍명기 이사장의 추모 분향소는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인랜드한인회 등이 19일 각각의 장소에 마련하여 조문을 받고 있다고 했다.

 

고 홍명기 이사장의 장례는 9월 3일, 몬테시토 메모리얼팍 채플(3520 E. Washington St., Colton)에서 오충환 목사 집례로 열릴 예정이다. 몬테시토 메모리얼팍 묘지는 지난해 8월 별세했던 부인 로리 홍 여사가 안장된 곳이다. 험난한 인생과정을 극복하고 동포들 사회에 큰 빛을 비추고 떠난 고 홍명기 이사장! 기자의 추도시로 홍명기 이사장의 명복을 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난 이국땅

가없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힘겨운 환경을 이겨내고

그 땅에 태극의 양기를

뿜어낸 님

 

주류사회에서 돈 벌어

한인을 위해 쓴다는

그 뚝심의 철학으로

 

동포사회를

환한 빛으로 구석구석 비춰

동포들 가슴에 촉촉한

조국애를 불러일으킨 님

 

이제 그 모습

영영 뵐 수 없지만

안식의 나라에서

동포들의 영원한 등불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