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20세기의 한 시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이에 앞선 태평양전쟁 중에는 노무동원 계획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이 전국의 광산이나 군수 공장 등에 동원되었으며 여기 군마(群馬) 땅에서도 사고와 과로 등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
21세기를 앞둔 우리들은 일찍이 일본이 조선인에 대하여 지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역사적 사실을 깊이 기억하며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응시하는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추진해나가고자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마음으로부터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이 비를 세운 우리들의 마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아울러 아시아 평화와 우호 발전을 원한다."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
2004년 4월 24일
▲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과 군마현의회가 합의 하에 채택된 추도비문
이것은 일본 군마현에 있는 군마현립공원(群馬県立公園) 내의 군마의 숲(群馬の森)에 있는 조선인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에 새겨진 "추도비 건립에 즈음하여"의 글귀다. 내용상으로 보면 이러한 일본인들이 있어 그나마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이 추도비를 둘러싸고 지금 극우세력들이 시비를 걸고 있다는 데 있다.
시비란 다름 아닌 이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들고 나온 것! 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본이 조선인을 강제연행 한 적이 없으니 이 추도비는 가짜”라는 것이다. 이러한 억지를 듣고 있자니 10년 전 일본의 한 대학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일본의 명문대학 교수로 학회 일로 한국에 왔기에 내가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안내하고자 했더니 “그건 모두 다 거짓의 역사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베내각을 비롯해 일본 극우파들이 입만 열면 내뱉는 ‘무지의 극치’ 를 나타내는 말이다
“남경대학살도 없고, 위안부 같은 것은 더더욱 없다”는 이런 역사인식이 결국은 군마현의 추도비를 철거해야한다는 억지로 까지 발전한 것이니만큼 이 역사의 왜곡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 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
다시 군마현의 추도비로 돌아가자. 이 추도비는 2004년 설립당시에 군마현 의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세운 것이다. 특히 비문의 글자 하나하나까지 심의에 들어가 원래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追悼碑を建てる会)이 새기고자 했던 것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어조로 바뀐 것이며 현유지(県有地) 땅에 이러한 추도비를 세운 예가 없을 정도로 꽤 깨어있는 결정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바뀌었다. 이른바 극우파인 배외주의단체(排外主義団体)가 끼어들어 현의회(県議会)를 구워 삼는 바람에 이 추도비의 설치여부를 다시 검토하게 만든 것이다. 배외주의단체는 이 추도비를 만든 순수한 시민단체를 “정치집회를 위장한 단체”로 몰아붙이면서 이것은 추도비 설치 조건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현재는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시민단체는 “추도비 철거를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본래 취지를 망각하고 갈등과 차별을 부추기는 행위이며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농간에 의회가 굴복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추도비 건립 당초만 해도 대내외적으로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 발전을 꾀하려는 깨어 있는 군마현의 행동은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한국에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고 미래의 한일 우호를 위하자는 상징물”로서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이제 와 “때려 부숴야 할 물건”으로 전락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 군마현에 있는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가 극우파들의 활개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단 한자국도 나아진 게 없다. 특히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잊어버리고 현의회와 충분한 협의 하에 세운 말없는 추도비마저 철거하라는 목소리를 세상 부끄러운줄 모르고 내고 있는 상황으로 전락 된 것이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의회는 이 문제를 다시 상정하겠다고 도마 위에 생선 올려놓듯 올려놓았으니 꼴이 말이 아니다.
추도비야 철거하고 다시 세우면 된다. 하지만 이 문제가 단순한 추도비 철거 문제가 아니라 “추도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게 하고 이웃나라에 크나큰 상처와 고통을 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일본의 양심”을 또 다시 짓밟으려는 “극우파들의 활개”가 도사리고 있어 우려스러운 것이다.
군마현 의회의 “조선인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 철거 논란”이라는 말 자체가 지난 10년간 일본의 극우성향이 얼마나 크게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는가를 대변해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러일전쟁, 청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지난 20세기는 일본의 전쟁도발로 인류가 공포와 죽음의 세기를 살아야 했다. 이제 평화를 좀 유지하나 했더니 또 다시 미친 광대가 되어 인류를 공포로 몰아 놓으려고 하는 일본의 아베정권! 그들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손뼉을 치고 있는 극우파들! 그들을 길러낸 일본사회!
“이 추도비의 철거 여부는 현지사(県知事)가 내린다. 현지사는 나쁜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추도비의 존재의의를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추도비를 지킬 것인가. 부숴 버릴 것인가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일본정부의 군사대국화 노선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고 일본의 조선신보(朝鮮新報)는 6월 23일자로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지켜봐서만 될 일 인가!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