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의 입니다. 오늘은 단군조선이 열린 개천절이지요. 일제강점기 일제와 식민사학이 신화로 치부해버린 단군조선은 분명히 신화가 아니라 역사입니다. 이날을 기리는 거족적인 제천의식은 먼 옛날부터 있었으니,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한과 변한의 계음(契飮), 고구려의 동맹(東盟), 백제의 교천(郊天),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에서 행하여진 제천행사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이러한 역사인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같은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천절은 1909년 대종교(大倧敎)가 시작되면서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대종교와 합동으로 이날을 기렸습니다. 그리고 해방 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이날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지요.
서도민요에는 “~난봉가”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를 보면 “병신의 종자가 어디 또 따로 있나요 돈 쓰다 못쓰면 병신이로다. 님이 저리 다정 타고 속의 속정을 쓰지 마라 일후에 남 되면 후회막심이라”라고 합니다. 임에게 속마음을 주다가는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이 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는 더 기가 막힙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고 이십 리 못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가서 되돌아오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나누나.”라고 부릅니다. 일반 가사에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이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한 술 더 떠서 이십 리 못 가서 불한당을 만난다고 하고 에는 없는 뒷집 총각의 처녀 짝사랑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는 “우리집 새서방 재간이 좋아서 게딱지 타고서 낚시질 간다네 깐죽깐죽 시누이 잡년 범난 골로 다 몰아 들여라 살림살이를 할려니 바가지 한쌍없고 도망질을 할려니 가자는 님이
불타듯 노을인 듯 온산이 다홍이요 멀고 먼 뫼 사이 는개는 너울너울 젊을 때 못 이룬 뜻이 맘 가람서 노 젓는다 * 남산 : 교토 아라시야마(嵐山)는 가을 단풍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 는개 :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경북대 국악과의 정해임 교수가 이끌고 있는 고령의 ≪대가야 가야금연주단≫이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창단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축적된 연주단의 성장 모습을 보이고 평가와 함께 격려와 축하를 받는 기념 잔치를 열겠다는 것이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흘렀으니 연주단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로서 음악사에 남을 굵은 선 하나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어찌 없겠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지역 고령은 옛날 가야국이었다. 가야국 하면 제일 먼저 가야금이 떠오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가실왕이 나타나며 가야금을 잘 탔다는 악성 우륵선생이 연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우륵과 진흥왕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 있다.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금 한 틀을 가슴에 품고 신라에 들어가 매일같이 가야금을 타며 세월을 보낼 적에, 때마침 진흥왕이 이 음악을 듣고 계고, 법지, 만덕 등 3인에게 선생의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이들의 음악이 어느 정도 익어갈 무렵 진흥왕은 좌우에 늘어선 신하들과 함께 감상하고는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펼치자 신하들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대의 이유는 “망한 나라의
한국전쟁 때 한국에 온 미군은 한국인들이 땅속에서 김치를 꺼내 먹는 것을 보고 야만인이라고 비아냥댔습니다. 그리고 김치 냄새가 역겹다며 아주 싫어했었지요. 그런데 그 김치는 우리 겨레가 발명한 음식으로 항암효과도 인정되는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습니다. 특히 지난 9월 21일 미국 중서부 지역 신문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은 "한국의 전통음식 김치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며 새장(Kimchee's New Chapter)을 열어가고 있다."라며 음식 섹션 1쪽과 4쪽 2개 면에 김치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지요. 시카고 트리뷴은 1쪽에서 '김치 연대기(The Kimchi Chronicles)'라는 제목으로 요리책을 내고 TV 다큐멘터리를 찍은 한국계 혼혈 입양아 마르자 봉게리히텐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김치가 어느 음식과도 조화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철에 따라 생산되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고 전합니다. 또 뉴멕시코 주 산타페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퓨전 셰프 마크 밀러는 "김치는 지방과 소금기가 적은 식
“산에 사람 하나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저절로 피어난다” 이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에 있는 ‘추사 기념관’ 안에 전시되어있는 작품 가운데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라는 시입니다. 주소는 서귀포지만 볼거리 먹거리가 많은 서귀포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새로 꾸민 추사 기념관에는 찾는 이가 몇 안 되어 쓸쓸한 가운데 전시관 안에서 만난 수묵향이 흠씬 묻어나는 추사의 글씨는 색다른 감회를 느끼게 합니다. 추사의 세한도를 형상화한 새로 들어선 기념관 건물은 언뜻 창고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잣나무 한그루도 서 있고 기념관 앞뒤로는 억새도 심어 놓아 바람에 일렁이는 것이 운치가 있습니다. 서화가ㆍ문인ㆍ금석학자로 알려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8여 년간 이곳 제주 유배지에서 지내면서 고통스러웠을 나날을 학문과 예술혼을 불태우며 보냈는데 이 기념관에는 그의 유작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어 모처럼 제주 여행길에 들뜬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해줍니다. 기념관 뒤에는 추사 선생이 유배시절 머물던 강도순
"손도 없고 발도 없는 것이 / 입으로 돌을 물어다 탑을 쌓는다 낳은 알 노리는 녀석들 따돌리려 / 높이 높이 탑을 쌓는다 더러는 물살에 흩어져 / 쓸려가는 귀여운 내 새끼 오! 막아야한다 막아야한다 / 큰 눈 껌벅이며 / 피로 쌓아올린 알 보금자리" -김은주 '어름치 보금자리'- 물고기 가운데 우리나라 토종으로 잉어과에 속하는 어름치가 있습니다. 한강ㆍ임진강ㆍ금강 중상류에서 사는데 몸길이가 15∼40cm 정도로 주둥이가 둥글며 몸 표면에 검은 점이 있고 꼬리에 화살 모양의 검은 점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지요. 어름치는 4~5월 무렵 모래와 자갈이 많은 여울에 깊이 알을 낳은 다음 주변에 있는 자갈을 물어다 알을 덮어 산란탑을 쌓아서 알을 보호하는 진귀한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물고기입니다. 이 어름치는 환경변화에 민감하고 분포지역이 국한되어 있으므로 멸종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259호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한강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온 어름치가 1972년 금강의 중·상류에서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어름치가 한강과
내일은 24절기 중 추분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가을도 그만큼 깊어가지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추분의 의미는 이것이 다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보면 “(임금께서) ‘성문의 자물쇠를 여는 데 대해 의견을 모으라고 하시면서 종 치는 시각은 예부터 전해오는 관례에 따라 정하여 행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추분 뒤에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 기록처럼 추분날 종 치는 일조차 중도의 균형감각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날이 추분인 것으로 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곳에 덕(德)이 있다는 뜻이며 이를 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추분엔 향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합니다.
찬란한 금빛으로 눈부신 황홀한 교토 금각사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교토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절이다. 결코 싸지 않은 400엔의 입장료를 물고 들어가서 보는 것은 작고 아담한 연못 건너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금각사 하나뿐이다. 잔잔한 연못 건너편 금각사를 배경으로 방문객들은 저마다 가지고 온 카메라에 사진 몇 장을 찍고 발길을 돌린다. 금각사 뒤편으로 아담하게 꾸민 정원은 둘러보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지만 대부분 이곳은 성큼성큼 걸어 돌아 나오기 일쑤다. 금각사를 다른 이름으로는 녹원사(鹿苑寺)라 부르는데 이 일대에는 과거에 서원사라는 절이 있었고 주변에는 요즘으로 치면 지체 높은 공무원(公卿)의 별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경치가 썩 좋았던 듯 이 자리는 다시 무로마치시대 장수인 아시카가(足利義滿,1358-1408)의 화려한 정원을 갖춘 별장으로 활용되다가 명치 이후에는 금각사로 개조 되어 마침내 1994년에는 천년고도 교토의 문화재로 세계유산에 등록을 마쳤고 지금은 손꼽히는 교토의 볼만한 유적지로 자리 잡았다. 보기에 화려한 금박은 강렬한 자외선 햇살 탓에 1
가곡의 노래 말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짜여진 3장 형식의 시조(時調)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래 말을 가곡에 얹어 부를 때에는 5장으로 분장한다. 남창의 26곡, 여창의 15곡 전체가 동일하게 5장으로 나눈다. 가령, 우조 ‘초수대엽’에 얹어 부르는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시를 가곡으로 나눈다면 제1장은 시조의 초장 안귀의 동창이 밝았느냐이고 제2장은 초장의 바깥귀인 노고지리 우지진다이다. 가곡의 제3장은 시조의 중장인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이다. 시조의 중장 전체가 가곡에서는 3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4장은 종장의 첫 3음절인 재 넘어이고 나머지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는 제5장으로 나뉜다. 다시 정리하면 시조의 초장은 가곡에서 1장과 2장으로 분장이 되고, 시조의 중장 전체는 가곡의 3장이 되며 종장의 첫 3음절만이 가곡의 제4장, 나머지는 제5장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형식이 바로 시조창과 가곡창의 큰 차이점이다. 간혹 시조의 중장이나 종장이 정형에서 벗 어나 길게 확대된 엇시조라고 해도 이를 별도의 장으로 늘리지 않고 모두 5장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곡의 형식이다. 반주 악기군이 먼저 대여음(大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