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 불었단 말 문득 듣고 /허겁지겁 높은 언덕에 오르니 / 놀란 물결이 모래톱을 삼켰고 / 세찬 물살에 기슭이 다 잠겼네 / 흐르는 나무 등걸 포구에 널렸고 / 물에 잠긴 버들은 시내 속에서 춤춘다 / 이 늙은이 보기에는 장관이지만 / 농부들은 머리를 맞대고 시름하누나. 위 시는 이응희(1579-1651)의 ‘옥담사집(玉潭私集)’에 나오는 “불어난 물살을 보며”라는 시입니다. 요즘처럼 장맛비에 불어난 물을 보러 높은 언덕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모습을 ‘장관’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농부들의 시름이 컸음은 짐작이 갑니다. 명종실록 10권, 5년(1550) 윤 6월 11일자에도 전라도의 큰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주에 이번 6월 24일 유시(酉時)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큰비가 퍼붓듯이 내려 잠시도 쉬지를 않았습니다.(중략) 하천이 넘쳐, 물가의 전답은 내가 되기도 하고 모래가 덮이기도 했습니다. 산이 무너져 여자 3명이 압사(壓死)하고 남자 2명은 치여서 다치고, 1명은 압사했습니다.” 이에 대해 임금이 전교하기를 “지금 전라감사의 장계(狀啓)를 보았다.
밤 하늘 별처럼 초롱초롱 어여쁜 그대 긴긴 장마 무더위 가시고 햇님이 서산으로 넘어가 아침이 될 때까지 내 가슴에 들어와 속삭이는 별꽃 아씨여 - 김신옥 '별꽃'- 지금 산과 들에 나가면 온갖 들꽃들이 무리지어 또는 외롭게 피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경기도 평안북도 함경북도 등에서 자라는 작은 들꽃 긴별잎꽃도 보입니다. 이 꽃은 실 같은 잎이 마주나고 솜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이 긴잎별꽃처럼 별을 닮은 것으로는 별꽃, 긴개별꽃, 나도개별꽃, 덩굴개별꽃, 개별꽃, 큰개별꽃, 애기별꽃, 숲개별꽃, 참개별꽃, 쇠별꽃, 덩굴별꽃, 애기별꽃, 갯별꽃, 점나도나물, 벼룩이자리, 벼룩나물 등이 있는데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긴잎별꽃은 7~8월 한여름에 피는데 실제 꽃 크기는 안개꽃 정도로 작지요. 서양꽃이나 관상용 꽃에 견주어 들꽃들은 대부분 꽃의 크기나 키가 작습니다. 이 긴잎별꽃도 역시 작은 꽃에 속하기에 사람들은 눈길을 잘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다고 마음까지 작은 건 아니지요. 길 가다 긴잎별꽃과 마주하면 귀한 놈을 만났구나 생각하며 다가가 눈길 한번 주는 것도 좋을 일입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한 번째인 소서(小暑)입니다. 소서라는 말은 작은 더위를 뜻하지만 실은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인데다 장마철과 겹쳐서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때입니다. 소서 무렵에는 논의 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로, 김을 매거나 피사리를 해 주고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하기도 하지요. 이때에는 호박과 각종 푸성귀가 나오기에 다양한 음식이 입맛을 돋우는데, 특히 국수나 수제비 등 밀가루 음식이 구미를 당깁니다. 또 민어가 한창 나올 때로 민어로 요리한 조림·구이·찜·회를 비롯해 민어고추장국ㆍ민어포 등의 먹거리도 인기 있지요. 요즈음은 농약을 치면서 농사를 지어 예전처럼 피사리를 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김매기를 하는 농부들은 허리가 휘고 땀범벅으로 온몸이 파김치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이지요.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합니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기만 지나가도 볼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지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7일은 칠석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똑같이 칠석 전설이 있는 한국에서는 칠석날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는 데 견주어 ‘마츠리의 나라’ 일본에서는 이 날 근사한 칠석축제(다나바타마츠리)를 한다. 견우와 직녀가 한 해에 한 번 만난다는 칠석날은 원래 음력이지만 명치시대 이후 양력만을 쓰는 일본은 칠석축제를 양력으로 치른다.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도쿄 한복판 증상사(죠죠지)에서는 올 7월 7일에 “동북부 대지진피해지원 칠석축제”를 연다고 일찍부터 광 고가 대단하다. 올해로 5번째인 이 칠석축제는 칠석 당일만 2,000 여장의 소원을 적은 종이(短冊, 단사쿠)가 높이 세운 대나무 가지(笹, 사사)에 주렁주렁 나붙고 하루 찾아오는 사람만 2,000명이 넘을 정도로 북적인다. 경내에는 대나무를 세우고 색종이를 준비하여 칠석축제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적어 대나무 가지에 매달 수 있게 하는데, 준비된 종이는 100엔을 받는다. 이렇게 모금된 돈은 모두 지진돕기에 쓰인다고 한다. 또한, 이날 밤은 조명을 쏘아 올리고 각자의 촛불을 준비하여 밤하늘의 반짝이는 은하수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도 마련되어 칠석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을 즐겁게
바다 떠날 땐 바윗물이 닿으니 어이 짜냐 짝사랑 사나이의 눈물이라 하는데 하늘은 어디를 가고 땅 또한 어디 있나. 골 : 만 즈믄 : 천 골골히 : 영원히 바윗물로 떨어진 가람 물은 바다로 닿아 골골히 마를 줄 모르고 힘세고 넓은 즈믄 골 동아리가 되지만 소금을 지녀 그냥 마실 수는 없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가람은 소중히 여겨 보내지 말고 바르게 다스려야 한다.
무 대 식히려 뒷쪽가고 데우려 마쪽 가나 오르고 내리고 새쪽 가고 갈쪽 가도 언제나 한 집안이라 상냥케 마주치네. 무대: 해류 뒷쪽: 북쪽 마쪽: 남쪽 새쪽: 동쪽 갈쪽: 서쪽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곶나라(반도 나라)여서 세 쪽이 바다다. 바닷물은 ‘남’도 ‘북’도 헤아리지 않고 한 해 열두 달 흐르며 오간다. 그런데 얼 담고 사는 우리는 쭈삣하면 ‘남’이요, ‘북’이요 하고 잘 맞선다. 무대처럼 서로 흘러가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뜨거우면 식혀야 하고 차면 데워야 몸과 맘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뭍바람(2) 바람은 내 바람냐 알몸은 내것일까 멀어져 더 멀어져 외쳤던 피 타는 소리 어호야 늦마 되어서 건너보자 옛 여울. 바람 : 소원.희망.꿈 바람냐 : 바람이냐 늦마 : 서남 쪽으로 부는 바람 사람은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되어 있어야 곧게 앞날을 내다볼 수 있고 힘이 나고 슬기도 돋는다. 그러나 재일동포는 일본사회의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천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왔기에 아무리 머리가 우수하고 인품이 있어도 맘과 꿈을 다 포기하여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새 일본인이 되든지 똑똑한 이는 '주먹'세계서 도사리면서 사는 이가 적지 않았다. 믿나라 위정자들도 재일동포를 버린지 오래된다. 그러니 지금도 연금 없이 살지 않으면 안 된 노인들이 많다. 넉넉한 나라 대한민국이 있는데도… 믿나라가 그렇게 냉냉해도 재일동포들은 그래도 건너온 옛 여울(현해탄)을 다시 되건너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것이다.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시조창이 너무 어려워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쉬워서 모두가 명창이기 때문에 없다는 뜻일까. 시조창이라 해서 명창이 없을 리 있겠는가마는 이 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하다. 조선조 전기부터 불리던 전문가의 노래가 가곡이라면, 이를 일반인들이 부르기 쉽도록 고쳐 만든 노래가 곧 시조창이다. 시조창을 부르기 시작한 시기를 학계에서는 대략 영조 무렵으로 보고 있다. ≪유예지≫를 비롯한 시조창의 악보는 순조 무렵부터 보이고 있는데, 이 악보를 분석한 결과 현행의 경제 평시조-京制平時調로 알려졌다. 경제란 서울 경기지방을 말함이고, 시조는 3장6구체의 시형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경제시조의 대칭개념이 곧 향제시조-鄕制時調이다. 향제에는 지난주 소개되었던 충청지방의 내포제를 비롯하여 경상도의 영제시조와 전라도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석암 정경태 명창이 완제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시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어 이를 석암제시조로 부르고 있다. 어느 지방의 시조가 되었든 간에 시조는
내포제 시조란 내포지방에 전해오는 노래를 말한다. 내포지방이란 충청남도 서해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홍성, 당진, 서산, 보령, 연기, 부여, 청양, 논산, 예산, 서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시조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창이 밝았느냐” 또는 “태산이 높다하되”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 3~4조의 시형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포제 시조는 서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충청 지역민들이 즐겨 불러온 고유한 시조가 될 것이다. 참고로 경상도 지역의 시조를 영제, 전라도 지방의 시조를 완제, 서울 경기지방의 시조를 경제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역에 전해오는 시조를 분류하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충청남도는 내포제 시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과 계승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시조인들은 《충남통합시우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강습회를 열기도 하고 전국 시조창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 중심에 김연소, 이규환, 김영숙 등과 같은 시조인들이 있다. 충남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소동규 명인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그 뒤로 김원실 명인이 2대 보유자가 되어 도내에 각 지부를 조직, 세를 확산해 오면서 선생의 유지를 충실하게 이
문갑(文匣)은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일상용품을 넣어두거나 중요한 서류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랑방이나 안방에서 쓰는 가구입니다. 천장이 낮은 한옥에서 벽면에 시원한 여백을 주고 공간이 넓어 보이도록 높이를 낮추고 폭을 좁게 만들었지요. 일반적으로 아랫목 옆 벽이나 뒷마당으로 난 문, 들창 아래에 두었습니다. 문갑에는 쌍문갑과 (雙文匣)과 단문갑(單文匣)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외짝으로 만든 단문갑(單文匣)은 쌍문갑에 견주어 키가 크지요. 양쪽에 뚫린 공간은 두루마리나 편지를 꽂을 수 있게 한 것이며, 서랍과 문짝이 달려서 물건을 넣을 수 있게 한 공간에는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해서 중요한 서류 등을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쌍문갑은 두 개가 한 조를 이루는 전형적인 문갑인데 앞면에 네 개의 문을 달아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내부에는 중심에 두 개의 서랍이 있고 좌우에는 선반이 있지요. 문은 왼쪽에서 세 번째 문을 위로 밀어 떼어낸 후 나머지 문들을 그 자리로 밀어서 떼어내는 두껍닫이문 형식입니다. 이러한 문은 쉽게 여닫을 수 없어 일상 생활용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