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이 차지하는 사랑방에는 선비의 특징을 보여주는 가구들이 있습니다. 사방탁자(四方卓子)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다과(茶菓), 책, 가벼운 꽃병 등을 올려놓는 네모 반듯한 탁자를 말합니다. 선반이 너덧 층으로 되었으며 널빤지로 판을 짜서 가는 기둥만으로 연결하여 사방이 트이게 했지요. 사방이 터졌기 때문에 사방탁자라고 하는데 제일 아래층은 장(欌)형식으로 짜인 것도 있습니다. 골격이 가느다란 각목으로 이루어지는 이 가구는 강도에 있어서나 역학적인 면에서 짜임새가 단단해야 하므로 골조(骨組)로는 배나무나 참죽나무를, 널빤지 재료로는 오동나무 ·소나무를 쓰고, 앞면은 먹감나무나 느티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줍니다. 간결한 구성과 쾌적한 비례로 좁은 한옥 공간을 시원하게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는데, 이러한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 때문에 현대적 감각에 가장 가까운 가구로 평가받지요. 또 사방탁자는 앙상한 뼈대 사이로 기품이 유유히 흘러 선비의 방을 한층 안정감있고 돋보이게합니다. 이제 우리의 방에도 사방탁자를 놓음으로써 조선시대 선비의 기풍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뭍바람(1) 해달은 끊임없이 오갈 날 잇돋는데 어제는 스승 가고 오늘은 또래 가고 남나라 눈칫밥이면 이런 일은 흔한 일. 뭍바람 ; 육풍.고향 쪽서 불어 오는 바람 해달 ; 세월 오갈 날 ; 오고 가는 날. 어제와 오늘 잇돋는데 ; 이어 돋는데. 계속하는데 "타향살이 10년이면 …내 고향되는 것을…"이라는 흘러간 노래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타향"으로 마감을 짓는데, 왜정 때 징용으로 끌려온 재일동포들은 죽어도 목비 하나 세울 곳도 없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은 다 '빨강이'어서 고향을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 때면 서쪽을 향하여 울었다. 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가곡이야기 4. “삭대엽의 순 우리말은 자진한잎이다.” 《대악후보》나 1580년대의《금합자보》에 실려있는 만대엽이 가곡의 원형임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만대엽은 늦어도 17세기 후반까지는 화려하게 각광을 받았던 것이 확실하지만 그 이후로는 점차 중대엽에게 자리를 내 주기 시작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이고 있다. 1680년대에 제작된《신증가령》이라는 악보에는 중대엽이나 삭대엽이 각각 1, 2. 3으로 확대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엽부터는 만대엽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가 하면 위세를 떨치던 중대엽 역시 평조의 음계를 잃는 등, 점차 그 기세가 꺽이기 시작하면서 가곡의 중심은 가장 빠른 템포의 삭대엽으로 옮겨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삭대엽(數大葉)이란 무슨 뜻일까? 삭(數)은 자주 혹은 잦게(빠르게)라는 의미이다. 수로 읽기도 하나 그럴 경우에는 세다의 의미가 된다. 대(大)는 크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한’으로 읽었다. 대전(大田)을 ‘한밭’이라고 했던 것처럼 크다는 뜻을 우리말로는 ‘한’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엽(葉)은 잎이나 갈래 등의 뜻을 지닌 글자이기 때문에 음악용어로는 ‘악곡’이 될
1809년(순조 9) 빙허각(憑虛閣) 이 씨가 엮은 생활 경제 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삼합미음(三合米飮)”이란 죽이 나옵니다. 삼합미음은 홍합ㆍ해삼ㆍ쇠고기를 찹쌀과 함께 만든 미음이지요. 미음은 죽보다 훨씬 묽은 농도로 재료의 낟알갱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고아 먹는 것으로 환자에게 쉽게 영양분을 보충해 줄 수 있습니다. ≪규합총서≫의 만드는 법을 보면 마른 해삼은 물에 담갔다가 돌에 문질러 깨끗이 씻어 검은 빛을 없애고, 홍합은 털을 없애며, 쇠고기는 기름기 없는 것으로 준비한 뒤 찹쌀은 씻어 불려 두는데 찹쌀 대신 생동찰(차조의 하나)을 넣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 큰 솥에 손질한 홍합ㆍ해삼ㆍ쇠고기를 넣고 물을 부어 고아 내지요. 재료가 충분히 무르면 찹쌀을 넣고 쌀 알갱이가 퍼질 때까지 끓인 다음 체에 걸러 냅니다. 3년 묵은 검은 장을 조금 타서 간을 맞추어 먹으면 노약자의 원기를 보충해 주고 병든 사람에게도 좋다고 합니다. 명리학 용어에서 유래한 삼합(三合)은 한국에선 주로 성질과 맛이 서로 다른 세 가지가 어우러져 기이한 조화를 이룰 때 쓰이는 말입니다. 삼합미음 말고 삼합음식을 들라하면 삭은 홍어ㆍ묵은 김치ㆍ삶은 돼지고기를 함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지난 5월 2일부터 6월 12일까지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順天 松廣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뱃속에 있는 복장유물(腹藏遺物)을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복장유물은 불경과 옷가지 등 모두 50여 점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배자와 쪽빛 저고리가 인상적인데 저고리 주인은 경안군으로 궁중 나인들이 저고리 안쪽에 경안군(1644~65) 내외의 장수를 기원하여 발원문을 만들어 넣은 것입니다. 경안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얼마 후 세상을 떠난 소현세자의 아들이지요. 섬유류의 유물이 존속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기후ㆍ환경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 섬유류 유물은 복식사뿐만 아니라 직물, 염색, 민속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번 공개된 복장유물은 모두 보물 제1660호로 지정되었고, 함께 공개된 복장전적(腹藏典籍)도 보물 제16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장전적에는 세조 8년(1462) 펴낸 간경도감본 ≪대방광불화엄경합론大方廣佛華嚴經合論≫ 유일본을 비롯한 8종의 불교경전 등이 있는데, 보존상태가
원교체(圓嶠體)라는 특유한 필체를 만들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양명학자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50살 되던 나이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 땅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는 이후 23년 동안 부령과 전라남도 신지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삶을 마쳤는데 늘그막에 낳은 어린 딸과 많은 한글편지를 주고받았지요. 하지만, 이광사는 어린 딸에게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유배를 떠나고 아내는 유언을 남긴 채 목을 매 죽었기에 부모가 곁에 없는 딸에게 이광사는 사랑을 담아 편지로 가르침을 주었지요.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네 손으로 개어 깨끗한 곳에 두어라. 이어 비를 가지고 자리를 깨끗하게 쓸고 머리는 얼레빗으로 빗고, 빗을 빗통에 넣어 두어라. 이따금 거울을 보며 눈썹과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을 족집게로 뽑고 빗에 묻은 때를 씻어 깨끗하게 해라. 세수하고 양치하며 다시 이마와 살쩍을 빗질로 매만지고, 빗통을 정리하고 세수한 수건은 늘 제자리에 두어라. 무릎을 꿇고 앉아 한글 한 번 읽고 한자 몇 자를 단계에 따라 읽어라.” 이광사는 어린 딸에게 하루 일과를 옆에서 가르치는 것
지난 6월 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金星坤·金世淵·趙舜衡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社)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와 (社)韓半島平和統一連帶가 주관한 “漢子敎育基本法을 위한 公聽會”가 열렸습니다. 그들은 “광복 이래 초등 및 중등학교 국어교육에서 한자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 우리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에 대한 문해불능자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서, 우리말을 올바로 사용하는 데에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라며,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또 그들은 일본이 가나글자와 한자를 같이 써서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는 주장까지 했지요. 하지만, 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 박용규 사무총장은 우리말 70%가 한자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만든 ≪조선어사전≫(1920년)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신 1957년 한글학회가 만든 ≪큰 사전≫에는 토박이말이 47%, 한자말이 53%라며 왜 침략자가 만든 사전을 따라 70%를 되뇌느냐며 개탄합니다. 또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일본이 한자를 쓰는 것은 가나글자에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 부득이 한자를 쓸 수밖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도화서 화원으로, 한국적이고 운치 있는 멋진 작품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하고 사실적인 그림 곧 풍속화를 많이 그렸지요. 여기 '서당'이란 이름의 그림도 역시 그러한 작품 중 하나로, 당시 서당에서 공부할 때 일어난 재미있는 광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가운데서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회초리가 훈장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동몽선습이나 명심보감을 외우지 못해 방금 종아리라도 맞은 모양입니다. 이를 바라다 보는 다른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으며, 훈장마저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 그림이 종아리를 맞기 전의 모습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대부분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데 갓을 쓴 기혼자도 있습니다. 정면이 아닌 사선구도의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데 배경은 역시 아무것도 없이 비워 놓았습니다. 종이에 수묵담채 곧 먹으로 그린 위에 엷게 색을 칠한 그림입니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지나친 교사의 체벌과 매질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김홍도의 '서당'은 풋
먼 곳이 하늘이면 이웃은 한울이요 밝음이 오는 날면 어둠은 오늘이네 그러리 밀물 썰물이 죽살이라 할까나 *한울 : 큰 나, 온 세상 곧 우주의 본체 오는 날면 : 오는 날이면 죽살이 : 인생,생애,평생 일본땅에 오래 머물어 살면, 일본땅과 일본 사람들이 못되어 밉고 침 뱉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쩌다가 정이 들어, 정이 들고 보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늘은 '한울'이 된 일이 적지 않다, 곧 우리 '이웃'이 된 것이다. 사람은 썩은 미움과 더러운 욕심을 품지 않고 안 돋구면 다 한집안 사람이 된다. 계절에 봄과 가을이 있고 여름과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맘이 뜰 때가 있고 깔아 앉혀야 할 때가 있고 땀이 뻘뻘 흐르는 힘겨울 때가 있고 추위에 벌벌 떨 때도 있다. 그때 그 처지를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 사람의 값어치가 오르내린다. 우리 재일동포는 오랫동안 모국이 던져 주는 ‘콩밥’을 얻어먹고 '누더기'를 입고 다녔지만 '수구초심', 한 때도 모국을 잊지 않고 고향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믿나라·(본국) 사람들은 눈물겹고 분한 그런 역사와 처지를 알까?
즈믄날을 못 이겨 피는 날이 자랑일까 여름은 탓이인지 하늘 헤는 부처꽃 이 밤도 길나그네는 믿고장을 안아 우니. * 부처꽃: 백일홍 나무꽃 * 즈믄: 1000 * 탓이: 죄진 사람 무궁화는 오래오래 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겨레도 이제는 하나가 되어 오래오래 피어야 하고 무궁화 꽃을 보면서 부처님께 배우고 또 배워 믿나라를 잊지 않도록 얼을 다루어야 하겠습니다. 백일홍은 되나라(중국)에서 들어온 나무라는데 우리 말로는 부처나뭇과의 나무라 하니 부처꽃이 좋을 성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