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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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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꽃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6]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안치환의 노래 가운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가 애정이 넘치고 사랑스럽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아래 줄임) 다정한 연인끼리의 애정행각과 환상의 세계를 그림으로 펼치듯 그 감정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가사 내용에 꽃과 만난 적도, 꽃이 나라고 모습을 드러낸 적도, 꽃과 사람의 장단점을 대조하여 나타낸 근거도 없다. 하지만 어떤 발상에서인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꽃의 우월성을 말하기 전에 꽃은 꽃일 뿐, 인간과는 별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선암사 옛길을 걷다

문화가 없는 나라는 혼이 없는 거푸집과 같아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5]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순천 선암사를 가보자. 그곳에 가면 옛 정취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선인들의 숨결이 가슴에 파고든다.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고적지가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 선인들의 채취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암사만 한 데가 없다. 선암사는 옛 모습 그대로 조계산 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유적이란 옛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취나 건축물, 생활했던 터, 싸움터,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나 패총, 고분 따위를 이른다. 그리고 유물이란 선인들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을 말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자취나 사용했던 유물들을 총괄해서 말한다. 이처럼 유적과 유물 그리고 옛 선인들이 생활했던 생활방식을 통틀어 고전문화라고 한다면, 현시대에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근대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화를 두 가지 시대적 분류로 말할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근대문화가 아무리 월등하다고 해도 고전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고전문화 없이는 그 나라 민족 가치성을 주장하기 또한 궁색할 것이다. 하여 현대 문물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옛 문화와 문물을 소중히 다루고 있는 까닭은 나라마다

산(山)과 소통하기

중은 죽어서 산이 되고, 산은 다시 중을 낳는다.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4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아래 줄임)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의 선시다. 선시에서 나옹선사는 "산이 말을 한다."라고 했다. 나옹선사가 산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옹선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소통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산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되고, 누구나 가슴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 산과 대화가 어느 때고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내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열고 나오면 눈앞에 산이 우뚝 서 있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산은 뽀얀 안갯속에서 서서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낼 때쯤, 나는 두 손 모으고 앞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날 일과의 시작이다. 며칠 전 단비가 내린 뒤 산은 생기를 되찾았다. 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지고, 온 산은 연한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모습을 변화시켜가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부지런히 연출해 내고 있다. 그 가운데 봄 산은 다양한 꽃

앵무새가 된다는 것은

붓다 “그대는 내가 마땅히 법을 설한 바 있다고 말하지 말라"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3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앵무새는 신기하게 사람 말을 곧잘 따라 한다. 하지만 진정 사람들의 의사전달에 대한 의미와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나 하는 걸까?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따라 하므로 말 잘하는 사람을 흔히 앵무새 같다고 한다. 자기 주관 없이 말을 한다거나, 지조 없이 남의 말에 이끌려 그대로 조잘대는 경우를 이른다. 또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말이 무성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선인들은 말을 적게 하고 실속 있는 말을 챙기라 했다. 그런데도 세상엔 자기 주관이 분명하지 않거나, 정체성이 없는 말을 앵무새처럼 옮겨 악성 뜬소문으로 확산시키는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말의 의미나 진실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지껄이고 보자는 심리에 기인한다. 말이 많으면 혼탁하고 어지러워지지만 사노라면 말로써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경우도 더러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로 기선제압을 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떠벌리는 사람을 만나면 뒤돌아서서 “입만 살았네,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떠다니겠다, 말 못 하고 죽은 귀신은 없다.”라는

“나 때는 말이야”, 언어의 벽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2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모자라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나도 내 전생을 좋은 말로 다 채우기에는 자신이 없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처럼 살라고 입에 달고 다니지만, 정말 부처님은 언어에 완벽했을까? 괜한 의심을 해본다. 예수가 말하기를 “어느 누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어주어라.”라고 했다. 과연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언어에 대해서 필자는 지난번에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글을 썼는데, 이번 글에서는 언어문화에 열쇠말(키워드)을 맞추어 언어적 갈등에 관한 내용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세상만사는 대화 속에 이루어진다. 언어는 마술사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에 천사가 될 수도 있고,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를 맞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 잘하면 상을 받을 수도 있다. 말이 불씨가 되어 다투고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고, 말을 잘하여 직업으로 삼아 돈벌이가 짭짤하게 잘 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어 때문에 살고 죽고 하는 기이하고 험난한 장면들이 극적으로 심심치않게 이루어진다. 이런 사건들이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

말이 끊어진 자리(言語道斷)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1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세상사는 언어에 이끌려가고 언어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언어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이 트면 새벽같이 창 너머에서 조잘대는 참새도 그렇고, 밤새워 임을 부르는 소쩍새나 생명을 가진 모든 유정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통을 할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아기가 엄마의 태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응애~’ 소리 질러 우는데 그 아이의 언어는 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구상 언어는 나라마다 다르고 다양하다. 언어가 다르다고 하지만 소통에는 서로 막힘이 없다. 한 치 오차 없이 유연하게 잘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크게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 볼 때, 말 한마디가 약이 되고 독이 된다는 양면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언중유골(言中有骨)” 곧 ‘말속에 뼈가 있다’라는 말처럼 한마디 말이 사람을 해치는 독화살 같은 것도 있다. 그래서 언어는 인간관계 속에서 불멸의 화신처럼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여 행복을 주기도 하고 불행의 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