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유라 명창이 강원의 소리를 발굴하고 이를 채록, 연구해 왔다고 이야기하였다. 지역민들의 삶을 그려내기 위한 전통적 소리는 무엇보다도 노랫말이나 가락 구성이 강원도라고 하는 지역의 특징을 제대로 표출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이유라 명창은 종래 창극단이나 소리극단에서 무대에 올려오던 창극(唱劇), 또는 소리극에 관심을 갖고 이를 ‘국악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0년에 선보인 <절기(絶技), 전계심>이라든가 <아, 김유정>과 같은 작품이다. 전자는 춘천 기생, 전계심의 삶을 민요와 판소리, 창작음악, 춤, 연기, 등으로 극화(劇化)한 공연물로 대단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의 또 따른 능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또한 <아, 김유정>은 춘천 출신의 작가, 김유정의 삶과 작품을 전통의 소리와 춤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유정은 춘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를 잃고 서울재동초등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문맹 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한 엘리트였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춘천시립국악단》 이유라 예술감독은 어려서부터 무용을 배우다가 안비취 명창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를 익혔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이 감독도 그의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여 전국 각 대학에 진학시켰고, 젊은 명창들을 많이 배출해 냈다. 2000년에는 본격적으로 <춘천국악원>과 <강원소리진흥회>를 만들어 강원도의 소리를 발굴, 채록, 연구해 왔다는 이야기는 지난주에 한 바 있다. 이유라 감독이 꿈꾸는 강원소리의 본질은 강원도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거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서가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에 담겨 있어야 하며 그 노랫말들은 강원도의 환경이 그들에게 만들어 준 가장 강원도다운 메나리조에 얹힌 가락들로 그 땅에 살면서 오랫동안 함께 불러온 전래 민요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옛 소리가 불리고 있는 지역이 있다거나, 또는 이러한 소리를 흥얼거리는 주민이 거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갔다고 한다. 춘천 시내는 물론이고, 양구, 정선, 평창, 철원, 인제, 횡성, 홍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960년대부터 춘천의 국악회, 국악협회, 국악연구원, 등에서 악(樂), 가(歌), 무(舞)의 강습활동이 펼쳐졌으나, 민요창 분야는 전문 강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교장을 지낸 연구원장이 직접 서울의 안비취 명창을 찾아가 강사 추천을 요청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안 명창은“ 가르치는 것도 공부”라는 말로 이유라를 설득하였다고 한다. 춘천과 인연을 맺게 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 <춘천시립국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유라 명창은 어떻게 경서도 민요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유라의 소리 인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부친의 권유로 무용학원을 다녔고, 춤을 추면서 춤사위의 속 가락에 매료되어 중학생 때에 안비취 명창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유라에게 경서도 소리를 지도해 준 안비취 명창은 일제강점기, 경서도소리의 거목으로 이름이 높았던 최정식(1886-1951)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최정식은 「금강산타령」이나, 「풍등가」 등을 작사 작곡하였고, 서도 잡가, 제전(祭奠)을 축소 개편하여 세련되게 변화시켰던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펴낸 1976년도 《문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1945년 광복 직후, 국립국악원의 전신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춘천에서 공연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정으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춘천지방 지역 사람들이 전통음악을 대하는 열정이 대단했음을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실 지금도 재미없는 음악으로 치부되고 있는 정악(正樂)에 대한 반응이 이 지역에서는 생각 밖으로 뜨거웠다는 점도 이채롭다. 1962년에 <춘천국악회>가 창립되고, 각급 교육기관에 국악취타대나 농악대, 관현악단 등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뒤를 이어 한국국악협회 강원지부가 탄생하는가 하면, <강원국악연구원>도 설립되어 악(樂), 가(歌), 무(舞)의 강습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래 가운데 가곡이나 가사, 시조의 경우는 지역 자체에서 또는 국악원의 협조가 이루어져 그런대로 진행되었지만, 일반 대중이 가장 바라고 원하던 민요창 분야는 전문 강사를 확보하지 못하여 협회의 운영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국악의 보급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강습활동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당시 춘천지역 내에는 민요창을 지도할 만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 주는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써 왔다. 관찰부(觀察部) 행사는 정가 중심인 반면, 일반에서는 속요(俗謠)로 그 소리제는 경토리가 가미된 메나리조였다는 점, 속요에는 <노동요>, <상여소리>, <아리랑>류가 대표적이며 춘천의 옛 마을 이름과 특산물을 노래하는 「큰 애기 노래」에는 <장사타령>이나 <장타령> 등이 유명하다는 점, 그 외에 일반 민요로는 서울 경기의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1930년대 기록에 춘천정악회(春川正樂會)라는 음악단체가 조직되어 조선악 연구발표회를 하였는데, 강연, 성악, 기악이 중심이었으며 그 음악적 성격은 정악(正樂)을 표방하고 있었다고 한다. 벌써 정악회라는 단체의 이름에도 그 음악적 색채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춘천의 정악활동은 일제강점기, 아니 조선이나 고려 이전으로 올라가 춘천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삼국시대부터 이미 수많은 문사(文士)가 은거하거나, 경관이 빼어난 곳을 찾아서 춘천의 곳곳에 여러 작품을 남겼다는 점으로도 충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천시립국악단》의 연주회 평가와 관련하여 단원의 증원 문제, 공연의 홍보와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춘천시청과 춘천의 문화예술인, 악단의 관계자, 그리고 국악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예로부터 춘천은 강원도의 중심 도시이면서 특히 산수(山水)의 경관이 빼어나서 많은 사람이 발걸음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반의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인터넷 자료나 향토 연구자들이 남긴 결과물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본래 고대 부족 국가인 맥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그 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대로 점령하게 되는데, 백제시기에는 주양(走壤), 고구려때에는 수추성(須鄒城), 신라가 점령하던 시기에는 우수주, 수약주(首若州), 삭주(朔州), 광해주(光海州)등으로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춘주(春州),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현재와 같은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도(道)의 으뜸 행정관청을 감영(監營)이라 불렀는데, 그 우두머리 관찰사(觀察使)가 업무를 보던 곳이어서 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 아리랑>은 1896년, 헐버트(Hulbert)가 채보한 <구아리랑>을 고쳐 만든 아리랑이라는 이야기, 또한 <긴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나 <구아리랑>과는 노랫말, 가락, 장단형, 빠르기, 분위기 등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는 춘천시립국악단의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경기 및 서도 지방의 전통 민요를 전공하고 있는 소리꾼들은 여러 지역의 다양한 소리를 잘 부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 마치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해서 각 지역의 언어, 예를 들면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의 고유한 언어, 또는 충청도나 강원도, 제주도의 독특한 지방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경우와 같기 때문이다. 각 지방의 고유한 언어가 익숙해질 수 없는 경우처럼, 민요창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래서 발성법이나 표현법, 시김새의 처리 등등이 서로 다르기에 전공 분야 외에 소리는 제대로 잘 부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곧 경기소리에 능한 사람이 서도소리를 제대로 부르기 어려운 법이고, 서도소리를 잘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천 시립국악단》 상임 단원들이 부른 <금강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 노래는 6박의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부르며 서울의 긴잡가 형태의 좌창이란 점, 끝 절에서 <노랫가락>으로 이어간다는 점, 일제시대에 최정식 명창이 지어 불렀으며 금강산의 경관을 노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주에는 최은영, 박희린, 이현진, 왕희림 등, 4인의 젊은 단원들이 부른 <긴 아리랑> 외 흥겨운 경기민요창이 이날 밤, 거의 절정의 시간이었으며 특히 <긴 아리랑>의 구슬픈 가락은 이날의 압권이었다. <긴 아리랑>이란 어떤 노래인가? 대부분 아리랑은 그 제목 앞에 지역 이름이 붙는다. 예를 들어,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그러하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로 진행되는 서울, 경기지방의 아리랑이 그러하다. 서울이나 경기지방에서 주로 전승되고 있는 아리랑을 우리는 <본조 아리랑>, 줄여서 <아리랑>이라 부른다. 이 노래는 1896년,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천 시립국악단의 류지선, 최은영, 박희린, 이현진, 왕희림 등 5명의 출연자가 합창으로 <관동팔경(關東八景)>을 불렀다고 이야기하였다. 관동의 8경이란 총석정(叢石亭), 삼일포(三日浦), 청간정(淸澗亭), 낙산사(洛山寺), 경포대(鏡浦臺) 죽서루(竹西樓), 망양정(望洋亭), 그리고 월송정(越松亭) 또는 시중대(侍中臺)로 박헌봉이 가사를 짓고, 벽파 이창배가 서도(西道)식 창법으로 곡을 지어 세상에 내놓았으나, 이 노래는 생각 밖으로 세상에 널리 확산하지 못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창단 두 번째 정기공연의 시작은 <관동의 팔경>, 곧 강원도의 소리로 시작했다는 점이 참신하다. 또한 거의 단절된 노래를 찾아 단아하게 연출했다는 그 자체로도 공연의 성공은 이미 예고되었다. 이 노래는 가사의 내용이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곡조 또한 특유의 창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를 배운 소리꾼들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그들의 공개 발표회에 이 노래를 포함하지 않아 아쉽게 생각해 오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에 춘천시립 국악단 이유라 감독의 지도와 연출로 무대에 올리게 되어 여간 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휘몰이잡가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분야 으뜸 권위자로 알려진 박상옥 명창의 소리제를 익힌 이수자들의 발표회여서 그 기대치가 매우 높은 가운데, 박상옥 명창의 <변강쇠타령>을 놓치지 않으려는 청중들이 몰려들었다는 점, <휘몰이잡가>란 빠르게 몰아가는 해학이 담긴 소리인데, 과거 공청(公廳)에 모인 가객들은 가사, 시조창을 부르고 이어서 긴잡가, 산타령과 같은 흥겨운 소리 뒤에 <휘몰이잡가>를 불렀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휘몰이잡가 전곡을 이수자들이 교차 출연하며 부르고 아울러 <경기 산타령>이나 <배치기>도 준비해 주었다는 점, <휘몰이잡가>가 서울, 경기, 인천지역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아직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강원도 춘천시립국악단의 제2회 정기 공연 이야기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공연 당일, 이날은 몹시 춥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예보된 대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춘천시 기온이 영하 17도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글쓴이가 발표회장으로 이동하면서 ‘이 추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