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부동산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미국 엘에이(LA) 카탈리나 거리의 흥사단의 옛 본부 건물(단소, 團所)이 현지 한인사회와 단체,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게 됐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2일 “일제강점기, 미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흥사단 옛 본부 건물을 재개발에 따른 철거를 막고, 독립운동사적지로서 보존하기 위해 지난 1월 31일(현지시각) 최종 매입계약을 맺었다”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나라 밖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 보존을 위해 부동산을 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흥사단의 발자취와 엘에이(LA)흥사단 옛 본부 건물]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의 자주독립과 부강한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1913년 5월 13일, 한인 이민사회의 중심지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을 창립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시카고에 지부가 설립된 데 이어 한인들이 거주하는 미주지역 전역으로 지부 설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1920년에는 상해에 흥사단원동위원부(지부)가 조직됐고, 이후 흥사단은 1945년까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다 청년 시기에 순국한 송몽규(1995년 애국장)ㆍ안창남(2001년 애국장)ㆍ김필순(1997년 애족장) 선생을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중국 용정 출생(1917년)의 송몽규 선생(윤동주 시인의 사촌형, 1995년 애국장)은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중국 남경의 학생훈련소에 입소했다. 학생훈련소 : 백범 김구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시킬 청년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립, 일제의 압력 등으로 인해 학생들의 군관학교 입학이 불가능해지자 1935년 해산 1938년 4월, 송몽규 선생은 윤동주와 함께 문학으로 민족계몽운동을 펼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문과학생들의 자치조직인 문우회 잡지 ‘문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정책에도 항일운동의 방법으로 한글 시(詩)를 ‘문우’에 수록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세계의 역사 및 문학을 연구하여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교토제국대학 사학과(1942년 4월) 입학했다. 교토에서 윤동주 등과 함께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오상근 애국지사가 28일(토) 향년 99살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오상근 지사는 1944년 12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 중국 충칭(重慶)에 있는 토교대(土橋隊)에 배속되어 임시정부 요인들의 경호와 그 가족들에 대한 안전 등을 위해 복무하였다. 정부는 지사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오상근 지사는 이날(28일, 토) 아침 7시, 폐렴 및 노환으로 충북 진천군 진천읍에 소재한 진천성모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진천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30일(월) 아침 9시 발인 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오상근 지사가 세상을 뜸에 따라 생존 애국지사는 9명(국내 7명, 국외 2명)만 남게 되었다. 국가보훈처는 고 오상근 지사와 그 유족에게 국민적 예우와 추모를 위해 안장식이 거행되는 오는 30일(월) 세종 본부는 물론, 전국 지방보훈관서와 국립묘지, 소속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7월, 미국을 방문 중이던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맥아더 기념관에서 현지 하원의원의 별세에 조기를 게양한 사례를 보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군경과 교전하던 중 순국한 김상옥 의사를 기리는 <일대 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이 31일(화) 낮 2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회장 윤홍근)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윤홍근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봉독, 의거 이유 낭독, 기념사,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1890년 서울 출생인 김상옥 의사는 20살에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하는 등 사회계몽ㆍ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윤익중(尹益重), 신화수(申華秀), 정설교(鄭卨敎)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드높였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軍政署員) 김동순(金東淳)과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제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열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펼쳐 나갈 것을 계획하였고, 일제 경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유공자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무덤에 안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이 추진됨에 따라 현재 서울현충원에 위패로 봉안되어 있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독립장)의 무덤 복원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유골이나 주검이 없는 순국선열을 배우자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때, 유족의 희망에 따라 순국선열의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무덤에 안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17일(화) 국무회의에서 의결, 이번 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유골이나 주검이 없는 국립묘지 안장대상자를 국립묘지에 배우자와 합장할 때, 영정이나 위패*로 함께 봉안하거나, 안장대상자의 영정이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봉안시설에만 안치**할 수 있었다. * 위패봉안 : 유골이나 주검이 없어서 매장되거나 안치되지 못한 사망자와 매장기간 또는 안치기간이 지난 사람의 이름 등을 석판(石板) 등에 기록하여 보존 * 안치 : 유골을 봉안시설(건축물이나 담ㆍ탑ㆍ조형물 등의 형태로 된 야외시설)에 수용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천도교중앙총부는 2022년 12월 29일 천도교 4대 대도주인 ‘춘암상사 박인호’의 이야기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춘암 박인호 선생의 출생과 성장 이야기 그리고 성인이 돼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와의 만남, 천도교에 입도하기까지 수련으로 단련하는 과정, 3.1운동 등 독립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천도교 교단을 중흥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방식으로 구성해 접근성을 높인 작품이다. 박인호 선생은 1883년 3월 18일 동학에 입교한 뒤 수련에 정진해, 충청도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교인과 십여 개의 포를 관할하는 동학의 지도자가 됐다. 1894년 9월에는 내포 지역 5만여 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출전해, 당진 승전곡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워 첫 승리를 거뒀다. 박인호 선생은 최시형과 손병희를 모시고 동학혁명 이후 무너진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최시형이 세상을 뜬 뒤 제3대 교조가 된 손병희를 도와 3.1운동 등 보국안민을 위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지원과 함께 교육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손병희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기 위해 박인호에게 대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미주 한인 이민 120돌을 맞아 하와이 지역 독립운동사적지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활동이 본격 추진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미주 한인 이민 120돌을 기려 13일 낮 12시(현지 시각, 한국 시각 14일 07시),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독립운동사적지를 알리는 표지판 제막식을 시작으로 모두 14곳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하와이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려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와이는 미주 한인 이민이 시작된 지역으로, 당시 한인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그러한 독립을 향한 염원은 국권 회복 운동을 후원하는 한인 단체는 물론, 독립군 사관 양성 기관, 민족적 정체성을 교육하는 학교설립과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교회설립으로 이어졌다. 특히, 독립운동사적지 표지판이 처음 제막되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미주 한인 이민 역사와 함께 시작한 나라 밖 첫 한인교회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종교적 역할을 넘어 한인 이민자들의 하와이 사회 적응을 돕는 것은 물론, 조국 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자금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윤병구(1977년 독립장), 이교담(1999년 애국장), 문또라(2019년 건국포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고려대학교(총장 정진택)는 '영원한 광복군'이자 '시대의 스승'이었던 김준엽 전 총장의 유품 기탁식을 1월 6일 (금) 10시 고려대 본관 총장실에서 열었다. 김준엽 전 총장은 1944년 일본 게이오 대학에 유학하던 중 학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자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광복군에 합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광복 뒤 중국과 대만에서 중국사를 연구한 뒤 1949년 고려대 교수로 부임해 학자의 길을 걸었다. 군사정권의 압력에 맞서다 지난 1985년 고려대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고려대학생들의 총장사퇴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광복군 정진대에서 활동하던 무렵 김준엽 선생이 친필로 작성한 국내진입작전 보고서(1945), 1950년대 대만 유학 시절 강의노트 등 유품과 원고 약 1천여 점이 기탁됐다. 기탁 자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광복군의 국내진입작전 보고서다.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의 명의로 작성된 국내진입작전 보고서는 1945년 8월 18∼19일에 걸쳐 진행된 한반도 진입작전에 대한 전후 경과가 상세히 소개돼 있다. 1945년 8월 13일, 광복군 총사령부는 이범석을 정진군 총사령관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하와이 이민 도착 120돌을 맞아 하와이 한인사회 통합과 독립운동을 이끈 안현경(1995년 독립장)ㆍ이원순 선생(1991년 애국장)을 <2023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서울 출생(1881년)의 안현경 선생은 1905년 하와이 노동이민에 응모하여 같은 해 5월 하와이에 도착했다. 선생은 1909년 4월 오아후(Oahu)섬의 와히아와(Wahiawa)에서 결성된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와히아와지방회 회장으로 뽑혔고, 1910년 7월 하와이 지방대표들과 함께 일왕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ㆍ강점에 항의하는 전보문을 발송하였다. 1913년 2월, 이승만이 하와이에 정착하여 출판, 종교 및 교육사업을 펼치자 이승만을 도와 1913년 9월 국문잡지인 《태평양잡지》와 1914년 4월 ‘한인교회보’발행, 1916년 11월 하와이 정부에 등록된 한인여학원 이사, 1918년 한인사회 자치교회인 ‘한인기독교회 선교부 이사원(재무)’ 등을 맡아 한인사회의 통합과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191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같은 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호랑이해(임인년)가 가고 하루 지나면 계묘년(癸卯年) 토끼해를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토끼해 덕담으로 분주하지만 기자는 토끼해라고 하면 96년 전 정묘년(丁卯年) 토끼해에 태어난 한 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 여성의 이름은 오희옥! 대한민국 여성독립운동가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오희옥 지사다. 오희옥 지사는 1927년 정묘년에 태어나 하루 뒤 계묘년엔 97세를 맞이한다. 지금은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시지만 병이 나기 전만 해도 구순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독립운동을 기리는 일에 앞장섰던 오희옥 지사다. 다행히 그러한 활동 모습을 7~8년 전에 기록해둔 <호국보훈영상> 등이 있어 지금 병상에 계시지만 그 자료를 활용한 생생한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2월 19일(월요일), 오후 2시부터 대전 신일여자고등학교 대강당에서는 아주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국가가치프로젝트의 한 고리인 <2022년 나라사랑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주제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인 김흥태 선생을 초대하여 당시 오희옥 지사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비롯하여 직접 부른 독립군가 등이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