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에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동포들 / 건질 이 너와 나로다” 이는 독립군가의 앞부분으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96) 지사께서 즐겨 부르는 노래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오희옥 지사는 4년 전 병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구순의 연세로 각종 모임에 나가 ‘독립군가’를 거침없이 부를 정도로 정정하셨다. 제77주년 광복절(8.15)을 앞두고 오희옥 지사를 위한 ‘특별한 기쁜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어제(5일) 낮 3시,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KBS 사내 동아리인 KBS사회봉사단(단장 이정호, 이하, KBS사회봉사단) 단원들과 강동융복합복지네트워크(회장 이순남)회원들이었다. 이날의 특별한 선물은 다름 아닌 독립군가 등을 녹화해 담은 신형 '노트패드'였다. ‘오희옥 독립지사를 위한 KBS사회봉사단 영상음악 녹음녹화’를 위해 지난 8월 1일(월) 낮 2시부터 <KBS16 녹음실>에서는 구슬땀을 흘리는 작업이 늦은 시각까지 이뤄졌다. 이날 녹화된 노래는 모두 오희옥 지사께서 병상에서 노트패드로 감상할 수 있는 곡을 고른 것으로 '독립군가'와 '그리운 금강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창립에 이바지하고 남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강제하ㆍ이웅해ㆍ백남준ㆍ최명수 선생을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남만주에 있는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광복군총영 등 17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 50여 명이 모여, 남만주에서 독립군기지 재건과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창립된 통합단체로, 민사부, 권업부 등 8개 중앙조직과 의용군으로 편성되었다.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1891년 태어난 강제하 선생은 1919년 창성 3·1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일제의 주요 시위 인물 검거를 피해 남만주로 망명했다. 선생은 남만주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부단장이 되어 독립군을 국내로 파견하여 일제 기관을 파괴하고 군자금을 모집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1920년 10월에는 대한독립청년단 단장이 되어 무장활동을 지휘했다. 1922년 8월 남만한족통일회의에서 통의부 탄생에 이바지했으며, 독립군의 생계를 책임지는 권업부장을 비롯해 교통위원, 재무부장 등의 직을 수행하며 통의부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19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3․1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단결과 힘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 곧 폭탄을 던지거나 칼로 찔러 죽이거나 총으로 사살하는 일회적 효과가 크게 주요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102년 전인 1920년 오늘(8월 3일)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과 평남경찰부 등에 폭탄을 투척한 안경신 애국지사가 한 말입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한 안 지사는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인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8월 무렵 미국의원시찰단의 방한을 계기로 세계 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폭탄거사를 실행하기로 하였지요. 이에 따라 결사대 제2대에 파견된 안 지사는 폭탄을 숨겨 평양으로 잠입한 것입니다. 이 폭탄 투척의 거사를 이끈 안경신 지사는 출산 직후인 1921년 3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평양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안경신 지사에게 1962년 건국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활동한 문또라 지사와 김예준 지사를 비롯한 나라 안팎 독립유공자 6명의 직계 후손들에게 하와이 현지에서 훈장이 전해졌다. 국가보훈처는 31일 “하와이에서 활동했던 독립유공자 5명과 외국인 독립유공자 1명의 직계 후손을 지난 5월 확인한 데 이어, 7월 30일(토) 11시 30분(현지 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와이키키 호텔에서 훈장 전수식을 열었다”라고 밝혔다. 전수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하와이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에드워드 슐츠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회장, 제프 정 하와이 케이비에프디(KBFD) 방송 사장, 백태웅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렉스 김 동서문화센터 이사, 홍석인 주 호놀룰루 총영사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이 자리에서 문또라ㆍ정월라(문또라 지사의 딸)ㆍ정원명(정월라 지사의 남편) 지사의 후손(문또라 지사의 외증손) 엘사 칼(Elsa Carl), 천진화 지사의 외손녀 파멜라 순이 유(Pamela Sonnie You), 김예준 지사의 자녀 김영호, 그리고 외국인 독립유공자인 조지 새넌 맥큔(George S. McCune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승병일 애국지사가 27일(수) 낮 1시 12분, 향년 96살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1926년 평북 정주(定州) 출생의 승병일 지사는 만주에서 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순국한 조부(승치현, 1991년 애국장)의 뜻을 이어 평북 정주 오산학교 학우들과 함께 조국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결의, 1943년 3월 비밀결사인 혈맹단을 결성하여 조국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혈맹단의 행동강령은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과 접선, 뜻있는 청년과 학생들을 망명시켜 광복군에 참여토록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던 중, 1945년 조직이 그러나 체포됐으며, 승병일 지사는 3달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정부는 지사의 공훈을 기려 200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또한, 승병일 지사는 6․25전쟁 시 통역 장교로 자원입대하여 창녕군 박진지구 전투 등에 참전하기도 했다. 승병일 지사는 노환으로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중앙보훈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30일(토) 아침 7시 30분 발인 뒤
[우리문화신문=김유 작가] 1931년 연말을 보름 앞둔 12월 16일이었다. 일본 관동군이 동북3성을 침략하고 그로부터 꼭 석 달이 지났으니 투쟁의 방향과 목표를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민족진영인사들이 모인 서세명의 집은 무순 교외 흥경현에 있었다. 여기에서 행정부와 같은 <국민부> 그리고 정치의 중심인 <조선혁명당>, 군 대표인 <조선혁명군> 그러니까 당ㆍ정ㆍ군의 대표들이 모여 앞일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 사람들 가운데는 밀정이 있었으며 그들로 인하여 회의 사실이 누출되고, 일본군의 습격으로 참석하였던 중요 간부 모두는 봉천에 있는 일본 헌병대에 잡혀갔다. 그러나 대표들은 굴하지 아니하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공석이 된 <국민부>의 위원장으로 양기하를, <조선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양세봉을 다시 뽑았다. 이것은 '흥경사건'이라고 하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것은 먼저 서세명이라는 애국자가 있었으며, 1930년대 무장운동이 <봉오동>이나 <청산리 전투>처럼 일회성 투쟁이 아니고 면면히 내려오는 독립운동의 하나였다는 것, 그리고 양세봉은 전투에 승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 지사를 비롯해 직계 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에게 대한민국의 적(籍)이 부여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11일 “윤동주 지사, 장인환 의사, 홍범도 장군, 송몽규 지사 등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추진, 민족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독립기념관로 1’로 등록기준지*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등록기준지(구 호적법에서 본적)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2009.02.06.)한 뒤 직계후손이 있는 경우*에 한해 후손의 신청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정부가 직권으로 직계 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신채호, 이상설 등 모두 73명의 독립유공자. 특히 신채호 선생 등은 1912년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등록을 거부, 호적이 없었으나 2009년 법 개정 이후 후손 신청에 따라 가족관계등록 창설 이번에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이 추진되는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은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1912년) 제정 이전 나라 밖으로 이주하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일제강점기 동제사(同濟社)에 가입,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갑ㆍ한흥교ㆍ민제호 선생을 2022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동제사는 1912년 신규식 선생이 중심이 되어 상하이에서 조직된 첫 독립운동 단체로, 상하이 한인들의 단결과 젊은 독립운동가들의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부산 동래에서 출생(1889년)한 김갑 선생은 1909년 영남지역 첫 비밀 결사조직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했으며, 1917년 5월 베이징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에 가입했다. 동제사의 박달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동제사 중견간부로 활동한 선생은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이 수립되자 경상도 대표 의원으로 활약했으며, 임시정부에서는 교통부 위원, 군무위원회 이사, 법제위원회 위원으로서 초기 임시정부 안정화를 위해 힘을 쏟았다. 1924년 4월부터 임시정부 법무총장대리차장, 노동총판에 이어 재무장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의 살림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1933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 있는 광제의원에서 44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수원박물관 누리집에서 수원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를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수원박물관은 올해 말까지 경기도여성비전센터와 온라인 교류전 ‘경기여성인물전 경기 여성, 과거에서 미래의 빛을 찾다’를 연다.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열리는 ‘경기여성 인물전’을 수원박물관 누리집(https://swmuseum.suwon.go.kr) 배너를 눌러 VR(가상현실) 콘텐츠로 볼 수 있다. 전시관을 누리집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번 전시에는 ‘수원의 유관순’이라고 불리는 이선경과 차인재, 김향화, 이현경, 최문순 등 수원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소개한다. 이선경(1902~1921)은 수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인 ‘구국민단’에 가입해 상해판 ‘독립신문’을 시내에 배포하며 시민들의 독립의식을 고취했다.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떠나려다 일제에 발각돼 옥고를 치르며 고문을 당했고, 석방된 지 9일 만에 순국했다. 19살 되던 해였다. 이선경의 언니인 이현경(1899~?)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1921년 3월 1일, 3.1운동 2주기를 맞아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됐다. 김향화(1897~?)는 수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는 22일 오전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지부장 이길호)에서 ‘서울출신 3·1독립만세의거 미포상자(학생) 발굴, 포상신청 현황 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보고회는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가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에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회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서울지역의 독립운동가 가운데 미포상자(당시 학생)를 발굴하여 포상을 신청하는 연구였다. 이번에 발굴해 포상 신청한 미포상 독립운동가는 경성의학전문학교 3년생 강학룡(姜學龍)·백인제(白麟濟) 등 61명으로 1919년 3월 1일과 3월 5일 경성부(서울) 탑골공원·광화문 등지에서 수만 명의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돼 1919년 8월 4일 예심을 거쳐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8월 실형이나 집행유예 3년이 선고돼 학업이 중단되고,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전신)에서 고초를 겪은 학생 출신 독립유공자들이다. 보고회에서는 먼저 61인의 발굴 과정에 참여한 이윤옥·전영복 박사, 임동한 연구원의 설명에 이어 공적 개요를 이태룡 소장이 보고했다.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이길호 지부장은 “일제의 강탈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