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그 아이의 말버릇은 나와 사뭇 달랐다 조곤조곤 풀어내는 게 내 말 맵시라면 퉁명스레 툭 던지거나 어깃장이 그 아이 말투였다 첫인사를 나누던 날도 그랬다 겉은 심드렁했지만 끌림이 흐르고 있음을 그 아이는 마음으로 이미 읽고 있었다 우리 혼례 때도 그랬다 아빠에게 안 가고 엄마에게 붙은 건 온이 엄마가 좋아서만은 아님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 전화기를 몰래 가져가 “예쁜 딸 공주님”이라 저장한 속을 왜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내게 “아빠”라 불러 볼 겨를도 없이 조잘조잘 손잡고 걷자 벼르기만 하다가 서둘러 제 별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만질 수 있음을 내가 낳아야만 피붙이가 아님을 짧은 만남도 긴 사랑으로 남을 수 있음을 그 아이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첫 기일(忌日) 해 놓은 건 없어도 하루는 바쁘다 오늘도 해 놓을 것 없는 하루를 위해 뻑뻑한 셔터를 올린다 젖은 솜 물 빠지듯 반나절이 지나야 몸놀림이 좀 쉬워지지만 행여라도 누군가 올까 하여 소스를 끓이고 푸성귀를 씻는다 나중에라도 팔릴까 하여 산나물 다듬어 지 담그는 동안 몰래 해가 저물고 음악 마실 손님 기다리다 어느새 거품 같은 하루가 꺼진다 기대로 하루를 열고 허탈로 하루를 닫다 보면 한 달이라는 덧없음이 쌓이고 열 두 장의 덧없음이 딸아이 떠나던 날의 벚꽃을 다시 피운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노비(奴婢)라는 신분이 있었지요. 노는 사내종, 비는 계집종을 일컬었답니다. 이들은 관노와 사노로 나뉘는데 관노는 국가기관에 딸린 종이고 사노는 개인 소유의 종으로 재물로 간주되어 매매도 가능하고 국가에 신고만 하면 목을 떼고 붙이는 것도 주인 맘대로였다네요. 그렇긴 해도 주인을 잘 만난 외거(外居)노비는 자유도 누렸고 저만 잘하면 막대한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지요. 백정 계급도 있었지요. 흔히 도축인으로만 알지만 갖바치나* 광주리 장인도 싸잡아 그렇게 불렀다네요. 고려 때는 화척으로 불리다가 조선 조 들어와 백정이라 했는데 아예 사람 축에도 못 든다는 뜻이랍니다. 이들은 성 안에는 물론 기와집에서도살 수가 없었고 외진 데서 모여 살아야 했다지요. 혼인 때 말이나 가마도 탈 수 없었고 상투나 비녀 머리도 할 수 없었고 상여도 장례식도 못 치르게 했답니다. 일반 백성과의 혼인 금지는 물론이고 어린아이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일반인들을 앞지를 수 없었으며 이런 것들을 어기면 죽도록 얻어맞았다지요. 하지만 이들도 먹고 살기위해 빚을 지지는 않았습니다. 상노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로는 사장님이라
[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애고애고는 왜? 누가 신주라 일컫던 중국 땅의 십억이 넘는 인간들을 송구영신 춘절 대목에 그 무슨 수단으로 모두 불시에 “가택연금” 당하였는가? 폭죽소리 요란하고 꽹과리 북치며 만민이 즐길 신춘가절에 이제 그 누가 이런 횡포를 부렸나 이제 이 무거운 인간비극 족쇄를 그 누가 풀어줄까. 어떻게 풀가? 장강에 묻거니, 지금 내가 무슨 죄요, 또 황하에 묻거니, 우리가 무슨 죄인이요. 묻고 묻는다만 또, 하늘에 물어도 모른다 하고 땅에 물어도 그 답이 없단다. 14억 인간을 “가택연금”한 세상에 들리는 소리 이제 우리 모두 창문 열고 마음을 열고 석고대죄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단다. 하늘이 웃을 때까지 땅도 웃어 자연이 용서할 때까지 빌고 또 빌자. 거룩하신 대자연이여. 정말로 잘못, 잘못했습니다그려 ……하고서 이제 보름만에는 제발 세상살이 나가게 해주소서. 우리 모두 살려고는 하는 인간들입니다그려. 이제 다시 꽃피는 고향동산에서 제발 환생, 재생하도록 속수무책인 우리 인간들한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가택연금” 빨리 풀어줍소서 농장에, 공장에, 학교에 가야 합니다. 죄없는 우리의 살길을 활짝 열어주소서. 제발 빨리. 애고 애고(哀
[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편집자말) 요즘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혼돈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연변 동포 ‘중국조선어신식학회(조선어정보학회)’ 현용운 회장이 ‘춘절 가택연금 영탄곡’이란 시 두편을 보내왔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깊기에 두 번에 걸쳐 싣도록 합니다. 아, 무슨 죄로 춘절 가택연금 영탄곡 1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를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어이도 없이 집 안에 갇혔다. 그것도 모두가 하루한시에 새초롱 같은 아파트에 촘촘이 갇혀있다. 지은 죄명도 모르는 채. 수천수만의 도시와 농촌이 전 중국이 한 달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 포위망에 같혔다. 경자년(庚子年) 춘절 벽두에 14억 중국이 보이지도 않는 망에 발도 묶이고 손도 묶이고 입도 코도 막혔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 공포속에 눈, 귀만 살아 판들펀들 세태를 주시한다, 살아는 보자고 세상을 살핀다. 천지만물을 길들이던 초라한 인간들이 인공지능이랍시고 만물을 련통시킨다는 인간세상이 야생들의 대반격속에 덜덜떨며 살려달라고 아우성 친다. 하늘 길도 막히고 땅 길도 막혔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폐업 전문가 우리는 좋든 싫든 배운 도둑질로 살아간다 나는 내 도둑질이 좋다 좋아하는 음악 듣고 들려주고 하다 보면 어쩌다 간이 맞는 손님이 찾아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찾는 이 없으면 없는 대로 글 쓰며 앉아있는 맛도 좋으니 이 재미로 가게를 하는데 돈벌이가 될 리 없고 집세는커녕 공과금 밀리기도 다반사요 삼시 세끼 라면도 버거워 빚으로 먹고사는 날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도둑질을 이으려고 가게를 줄여 옮겨간다 삼십여 년을 이렇게 여닫기를 반복하며 얻은 벼슬이 폐업 전문가! 그래도 이번에는 겉은 망했어도 속으로는 남았다 종자기*를 얻었고 짐을 꾸리며 도닥거려 주는 아내를 얻었음이니 경자 원단의 저 맑은 지저귐 붉은 원 안에 걸린다 * 종자기 - 춘추시대 초나라의 거문고 명인 백아의 절친한 벗으로 연주할 때 백아의 마음을 훤히 꿰었다. 종자기가 병사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에 "백아절현"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꿈도 앞으로 간다 (1) 시간은 앞으로 간다 오늘이 가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와서 오늘이 된다 기억은 뒤에서 온다 시간이 지나가며 새겨 놓은 것들을 끌고 이 순간까지는 오지만 오늘을 앞설 수 없다 (2) 아내가 유난히 뒤척인 밤 새벽 이었다 “엄마. 성은이 안 들어 왔지? 사고 나서 죽었대. 친구들이랑 놀러 가다가 차가 물에 빠져 다 죽었대.“ 아내는 바다를 사랑했다 자주 까막바위를 찾아 지그시 파도가루를 맞곤 했다 그날 이후로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3) 꿈 하나가 또 졌다 꽃망울 한 송이가 13층 옥상으로 올라가 스스로 나뭇가지를 잘랐다 딸아이를 따라 가겠다던 그 아이였다 소름 끼치는 숙명처럼 아내와 나는 하필 그 순간 그곳을 지나게 되었을까 육체의 소멸과 왜 또 마주하게 되었을까 (4) 이제 둘 남았다 밤낮으로 모여 재잘대던 꽃망울 다섯 가운데 벌써 세 송이가 졌다 시립묘지에 비석 하나가 또 는 것이다 이번 아이는 정말 딸아이와 한 몸 같은 아이였다 딸아이에게 받은 선물들을 곱게 싸놓고 두 번째 아이에게 배운 방법으로 친구들을 따라갔다 아내는 바람을 사랑했다 때때로 하평언덕에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딸의 49제 부정하지 않았다 꿈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칸나의 선연함으로 오는 게 아픔인지라 천국에서 만날 거라는 자위도 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뒷모습이 닮은 아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목소리 체할 때 마다 따 달라던 작은 손 못 본체 하지 않았고 못 들은 체 하지 않았고 지우려 하지도 않았다 우린 늘 함께 한다 아침에 방문을 열면 그 자리에 추모공원엘 가도 그 자리에 만질 수는 없어도 멀리 갔다고 생각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저 헬로키티 인형 밤색 피아노 앙증맞은 운동화 빼빼로 과자 제 손으로 접은 카네이션 사랑한다는 손 편지 진흙에 물이 스미어 늪이 되듯 늪에 물이 차서 호수가 되듯 쓰림의 앙금이 물 밖에서 보이지 않듯 그렇게 기억이라는 구더기가 살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