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진해군항제를 비롯하여 각종 벚꽃잔치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틀 전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낮 뉴스에서 진해군항제 소식을 첫 번째 소식으로 전하면서 해군기지에 몰려든 사람들을 화면 가득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벚꽃의 만개시기를 일기예보처럼 낱낱이 예보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방송에서 진해의 흐드러진 벚꽃놀이 보도이후 다시 몇 가지 뉴스가 지나간 뒤에서야 “일본의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는 뉴스를 배치하고 있는 점이다.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로 기정사실화하면서 교과서에 실어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사실 마저도 한국의 방송은 “벚꽃놀이” 보다 못한 기사로 다루고 있는 것이 속상하다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 진해군항제를 상세히 보도하는 방송 일제강점기인 1928년 4월 22일 치 동아일보에는 “불온기사”라고 딱지를 붙인 기사가 눈에 띄는데 불온의 이유인 즉슨 “피폐한 조선인의 경제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마산의 벚꽃놀이를 비판” 했다는 것으로 이를 문제 삼은 곳은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이었다
[한국문화신문 = 신부용 교수] 박근혜대통령은 새해 첫 부처 업무보고에서 한국에 난리가 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경제발전정책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개혁을 위한 기초체력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므로 노동시장, 금융 및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의지를 보였다. 이는 초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지원할 수 있게 제반 사회기반구조를 개혁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이참에 우리나라 교통행정체제도 개혁하길 바란다. 우리는 80~90년대 중진국 탈피 단계에서는 과감한 투자로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였으나 그 후 상당 기간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는 선진국들과 달리 육상교통의 중심(HUB)역할을 못하고 있으며 지하철 역사(驛舍)에서 바로 갈아 탈 수 있는 버스노선 하나 만든 게 없다. 도로역시 개통 후 조급하게 다른 도로와 연결하느라고 제대로 만든 교차로가 흔하지 않다. 더구나 교차로 교통신호운영은 경찰에 맡겨 도로구조와 신호운영이 각각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도시교통이 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지고 있는 원인이다. 여기에 불합리한 신호운영에 대한 짜증은 운전자들의 신호를 무시하는 관행으로 이어져 OECD 최악의 교통사고국이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작심 3일이란 말이 있다. 새해 첫날 굳은 결심이 슬슬 풀리지는 않는지 단단히 자신을 점검할 시간이다. 수많은 자기 다짐이 있겠지만 책 읽기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이러한 사람들을 겨냥해서인지 서울도서관에서는 1월 2일자 보도자료에서 새해 맞아 서울도서관 사서들이 시민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32권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회과학 7권, 인문과학 9권, 어문학 16권을 합해 모두 32권을 뽑았으며 이 책들은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서울도서관에서 전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 새해 맞아 서울도서관 사서들이 시민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32권을 선정했다고 밝힌 서울도서관 보도자료 어떤 책들이 뽑혔나? 면면을 보니 제목부터 낯설고 작가 이름을 보니 더욱 낯선 것이 많다. 먼저 사서들이 고른 책을 한국작가와 외국작가로 나눠보았다. 사서들이 고른 총 32권 가운데 한국인 작가가 쓴 것은 18권이고 외국인이 쓴 것은 14권이다. 책을 고르면서 동서양을 골고루 안배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용을 보자. 사서들이 고른 책을 샅샅이 훑어보고 나름대로 분류해보니, 심리, 처세류가 17권, 역사 일반류가
[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국립국어원이 2011년에 ‘짜장면’을 비롯한 서른아홉 낱말을 표준어로 삼았다고 발표하여 얼마동안 이런저런 소리로 시끄럽더니 올해에 또 ‘꼬시다’를 비롯한 열세 낱말을 표준어에 넣었다고 발표하여 다시 적잖이 시끄럽다. 그런데다 나까지 나서는 노릇이 몹시 내키지 않으나 이쯤에서 우리도 표준어라는 말부터 없애면 좋겠다 싶어서 이런 글을 쓴다. 우리나라 ‘표준어규정’에는 표준어를 왜 두는지 그 까닭은 밝히지도 않았다.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ㆍ제1장 총칙ㆍ제1항부터 곧장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표준어규정 제1장 총칙ㆍ제1항은 표준어를 ‘무엇’으로 정하느냐를 밝힌 셈이다. 그런데 그 ‘무엇’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교양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으며, ‘두루’는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서울말’이란 과연 어떤 말인지 누구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있는 말들, 실체는 없이 이름만 있는 말들을 잇달아 놓았을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표준어란 애초에 글로써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최근 교육부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부터 한글에 한자를 같이 쓴다고 하여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겨레말살리는이들,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사)전국국어교사모임 등 17개 단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기자말) 교육부(장관 황우여)는 지난 9월 24일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이 교육과정 주요 사항에서 2018학년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나란히 적겠다고 했다. 무슨 까닭으로 그리하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아서 국민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한자 사교육 시장이 먼저 들썩이고 있다.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까닭을 들어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밝힌다. 아울러 교육부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당장 거두어들이기 바란다. 1. 세상에서 가장 쓰기 좋게 잘 만든 우리 한글이 우리말을 붙들어 담아놓는 그릇으로 넉넉하고도 남는다. 무릇 어떤 글자든 글자란 말을 붙들어 담아놓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자를 스스로 만들어 수 천 년 써온 중국조차 너무도 어려워 이제는 내버렸다. 우리도 수많은 싸움과 다툼을 거치고 겨우 반세기 동안 한글만 썼더니 젊은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지난 8월 14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 소설가)가 문인 33명을 맞춰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기마민족의 본산 고조선고구려발해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넋과 혼이 살아 숨 쉬는 흑룡강성길림성요녕성의 동북 3성과 간도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역사문화기행을 다녀왔다. 8월 15일 1909년 초대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던 역사의 현장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하고 다시 일본의 대동아공영에 따라 동남아를 점령하기 위해 세균무기 개발의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천인공노할 731부대도 방문했다. 다시 하얼빈역에서 밤차로 12시간이나 달려 8월 16일 새벽에 연길역에 도착하니 우리말 간판이 우리 문인들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한글간판을 바라보면서 이곳이 바로 우리 민족이 지배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 길림성에서는 간판을 제작할 때 한글 다음에 중국 한자를 쓰도록 되어 있다고 하니 우리 조선족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조중국경도시 도문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잠시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다시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찾아갔다.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문화재청에서는 사진 촬영술에 의하여 현판규격을 정하였다고 하였으나 33과 22cm의 오차가 나왔다. 두 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광화문 복원에서 목제 문루(門樓)가 복원되고 2010년 준공식을 했지만 문화재 복원에 대한 신뢰가 급속히 추락하는 상황에서 목제 문루 복원에도 의구심이 들고 있다. 전체적 모습에서 어딘가에 불 안정한 모습과 비례의 불균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목조 건축은 치수에 기반을 둔 디지털자료가 기본이지만 전제적 균형은 어림셈 수치에 기반을 둔 아날로그 비례 수치다. 조선의 목수를 대표하는 대목장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일인 건축 기사 실측 도면을 참고했다고 했지만 무너진 동편 광화문에서 실측 수치를 찾아냈던 고 강봉진 씨의 자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강 씨는 불타서 무너진 광화문 문루의 흙더미에서 주춧돌의 정확한 위치와 기둥 간격을 확인하여 이를 콘크리트 복원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복원된 문루가 비교적 안정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 때문으로 판단된다. 콘크리트를 떡 주무르듯 한 사나이로 평가 받은 구일옥 씨의 장인 정신이 더해 진 결과 목재의 질감을 잘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콘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들어가는 말 광화문 현판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2014년 5월 7일 문화방송 보도를 접하면서 그리고 숭례문 화재와 부실 복원을 목격하면서 허탈감을 넘어 절망감이 앞선다. 글쓴이는 2005년 디지털 복제는 문화재 복원이 아니다.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썼다. 수많은 복제품이 남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문화재청장이 사진 원판 영상을 디지털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문화재 소위의 복원 쌍구 모본 방식 변경 청장이 갈리게 되자 현판 복원 방식도 변경 되었다. 디지털 복원은 문제가 있으므로 사진 원판 영상을 임태영 서체와 근접하게 복원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쌍구 모본(雙鉤模本) 방식이다. ▲ 광화문 현판 복원 소위원회 회의록(2010년 2월 24일) ▲ 동경대 소장 일제강점기 광화문 유리원판 사진. 갈라진 틈이 보인다. 쌍구 모본이란 서체의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을 칠하여 채워 넣는 방식이다.쌍구 모본이란 서예의 습작단계에서 대가의 서체를 본뜨거나 탁본에서 시행하는 방안이다. 유명한 광개토대왕비문은 일본군 사코 중위의 초기탁본이 쌍구 모본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방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표기하느냐, 한자(光化門)로 표기하느냐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떼어내고 새로 만들어 내건 한자 현판이 쩍쩍 갈라지면서 한글 현판을 주장하는 이들의 외침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광화문이란 현판을 처음으로 내건 이는 세종이었고 한글이 반포되기 한참 전인 1426년이었고 당연히 한자 현판이었다. 광화문 건물은 태조 4년인 1395년에 완공되었으나 이때는 남쪽의 문이라 하여 오문(午門) 또는 정문(正門)이라 불렀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세종 8년(1426년)에 이르러서야 현판이 걸렸다. 물론 이때까지 현판이 아예 없었던 것인지 다른 현판이 있었는데 그걸 바꾼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1426년 음력 10월 26일에 세종은 집현전 수찬에게 명하여 근정전 앞 셋째 문을 광화라 하고, 궁성 동쪽을 건춘, 서쪽을 영추라 하여 각각 광화문(光化門) , 건춘문(建春門), 영추문(迎秋門)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때는 한글 창제 전이기도 하고 관습에 따라 한자 현판을 내건 것이다. 태조 4년 10월 기록에서 뒤에 광화문이라 불렀다.라고 한 것은 바로 세종 때부터 광화
[그린경제/얼레빗 = 도쿄 이윤옥 기자] 8월 9일 나가사키원폭의 날(長崎原爆の日)을 앞두고 다우에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어제 일본적십자 나가사키원폭병원을 찾아 입원해 있는 피폭자들을 위문했다.고 나가사키신문이 8월 2일 보도했다. ▲ 나가사키 시장이 원폭피해자들을 위문했다는 나가사키신문 보도 기사(8월2일) 69년 전 8월 9일, 일본은 미군에 의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세례를 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의 원자폭탄은 이 두 도시의 하늘을 검은 구름으로 뒤 덮었으며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당시 나가사키시의 인구 25만명 가운데 14만 9천명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은 36%가 파괴되었다. 그 희생자들이 아직도 후유증으로 병원에 살아 있어 나사키시장과 의회 의장이 꽃다발을 사들고 찾아갔다는 기사다. 동석했던 사토(佐藤) 의회 부의장은 원폭의 무서움과 평화의 존엄함을 젊은 세대에게 전해주십시오라고 했다고 신문은 전한다. 해마다 일본은 원폭일(8월 9일)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피폭자 위문, 평화 사수 같은 보도를 빠지지 않고 내보내는데 이러한 보도에 유감스러운 점은 왜 피폭자가 생겼는가? 왜 원자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