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속풀이에서는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나 선비, 사대부들은 거문고를 특히 애호하여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처럼 금을 좋아 하게 된 배경은 황폐화 되어가는 몸과 마음을 닦아 천리(天理)진정(眞情), 즉 하늘의 이치에 따르고 참된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다. 선비들에게 있어 거문고는 수양의 악기로 통한다. 글공부하는 선비나 사대부의 사랑채에는 금을 걸어놓고 책을 읽다가 분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거문고를 비껴 타는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말로 좌서우금(左書右琴), 즉 왼손에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거문고는 언제부터 연주되어 온 악기일까? 고구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처음 중국 진나라로부터 고구려에 금이 전해 졌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이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으나 어떻게 타는 것인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라사람들에게 이 악기를 타는 사람은 상을 주겠다고 방을 붙여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왕산악이란 재상이 거문고를 대폭 고쳐 만들고 스스로 곡을 지어 탔다고 한다. 거문고의
지난주까지 태평소와 단소, 퉁소, 훈과 지 등의 관악기들을 대략적으로 소개해 보았다.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또한 낯선 용어들이 등장함으로 친숙하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되나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한국의 전통악기들 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악기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현악기란 줄을 진동시켜 고저와 가락을 만들어 가는 악기들을 말하는데, 한국의 줄악기들은 대부분 명주실을 꼬아 만든 악기들이다. 현재까지 널리 활용되고 있는 한국의 현악기 종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어서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양금, 금, 슬, 향비파, 당비파, 월금, 공후 등이 있으나 이 중 현재까지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악기들은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양금 등이고 기타의 악기들은 재현을 위한 연구 중에 있다. 한국 전통의 현악기들은 그 소리내는 방법이 크게 4종류로 압축된다. 첫째는 거문고처럼 술대라는 도구로 줄을 내리치거나 올려침으로 해서 소리를 내는 방법이 있고, 둘째로는 가야금, 또는 금, 슬의 경우처럼 손가락으로 줄을 뜯거나 퉁겨서 내는 방법, 셋째는 해금이나 아쟁의 경우처럼 활로 줄을
지난주에는 퉁소에 관해 소개하였다. 퉁소는 아래 위가 통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 퉁소를 통소, 퉁수, 또는 퉁애라고도 부른다는 점, 단소보다 굵고 긴 악기로 청공(淸孔)이 있어 음색이 아름답다는 점, 옛 석비(石碑)나 석상에 퉁소 그림이 보인다는 점,『악학궤범』에도 9공의 퉁소가 소개되어 있다는 점, 그럼에도 궁중음악에서는 퉁소의 사용처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반면, 민간음악에서는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음악이나 시나위 음악을 통하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 우리보다는 중국의 조선족 동포사회에서의 퉁소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석전(釋奠), 즉 문묘(文廟)제례에 편성되는 관악기로 훈, 지, 약, 적과 같은 악기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문묘제례란 공자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그들의 학문과 정신을 받드는 의식으로 여기에는 초헌, 아헌, 종헌에 따라 음악과 춤이 따르는데, 그 음악은 고려때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으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고대의 음악을 전해 준 중국은 그 음악을 잊고 있으나 우리는 고려 때의 음악을 악보로 기록하여 지
‘퉁소[洞簫]’라는 말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쉽게 만나는 노래는 서도소리 초한가(楚漢歌)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八千弟子) 해산 할 제, 때는 마침 어느 때뇨. 구추삼경(九秋三更)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 밝은데, 외기러기 슬피 울어 객(客)의 수심(愁心)을 돋워 주고 장자방의 사향가(思鄕歌) 퉁소가락이 얼마나 애절했으면 항우(項羽)의 8천 군사가 일제히 전의(戰意)를 잃고 항복을 하고 말았을까? 퉁소를 퉁수, 또는 퉁애라고도 한다. 이 악기는 단소에 비해 보다 굵고 긴 세로악기여서 저음을 내고 있지만, 대금처럼 청공(淸孔)이 있어서 그 음색이 매우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함께 불기 시작하면 흥겹고 장쾌한 가락이나 리듬에 모두가 하나가 되는 힘을 지닌 악기이기도 하다. 원래 소(簫)라는 악기는 위가 열려있고 밑은 닫혀 있는 세로 부는 관악기이다. 위는 열려있고 아래는 막혀 있는데 소리가 날까? 가령 물병이나 술병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가 나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퉁소는 위와 아래가 통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지난 주 단소의 재료와 구조, 그리고 소리 내는 요령에 관하여 간단히 소개하였다. 단소는 퉁소에 비해 작은 소(簫)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재료로는 오죽(烏竹), 황죽(黃竹), 소상(瀟湘)반죽(半竹)이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 죽관의 제1공은 왼손의 엄지, 제2공은 왼손의 집게, 제3공은 왼손의 장지, 제4공은 오른손의 장지, 제 5공은 항상 열어놓고 연주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소리 내는 요령은 위아래의 입술을 최대한 넓혀서 - 휘 - 하고 바람을 넣으며 단소를 드는 각도도 다양하게 시도해 볼 것과 무엇보다도 약하고 부드럽게 바람을 넣어야 소리가 잘 난다는 안내를 하였다. 국악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 될 오늘을 기다리며 나는 학생들에게 엄한 단소의 실기 교육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단소는 소리내기가 약간 까다로운 반면, 한번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그 소리에 반해 쉽게 놓고 싶지 않은 악기이다. 그래서 단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소를 오래 사귄 친구와 같은 악기라고 말한다. 단소가 언제부터 우리 음악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악학궤범≫이나 영조 때의 ≪증보문헌비고≫에도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민간에
단소는 짧은 취악기(吹樂器, 입으로 불어서 관 안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는 40여 cm정도, 내경의 지름이 1.2~1.3cm 정도여서 그 이름처럼 작은 악기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세로 부는 악기인 퉁소가 있는데, 퉁소는 단소보다 굵고 긴 형태이며 단소는 퉁소에 비해 작은 소(簫)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소의 재료는 검은 색깔의 대나무인 오죽(烏竹)이나 오래된 황죽(黃竹), 또는 소상(瀟湘)의 반죽(半竹)이라 하여 유명 강가에서 자라고 있는 얼룩무늬의 대나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는 황죽이다. 그런데 마디가 촘촘하지 않은 일반 대나무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질 경우, 또는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갈라지기 쉽게 때문에 비교적 단단한 재질의 쌍골죽이 악기의 재료로 좋다. 이러한 쌍골죽은 대밭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종의 비정상적인 대나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제품을 위한 재료로 적합하지 않기에 일찍 베어 버리기 일쑤다. 때문에 주인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쌍골죽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단소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윗부분에 U 자 형태의 취구
한국의 관악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큰 소리를 내는 악기가 곧 태평소(太平簫)이다. 소리가 크고 높아서 실내음악에는 적합지 않고 야외 음악에 주로 쓰인다. 그래서 종묘제례악의 헌가음악이나 옛 군악인 대취타에 편성되고, 풍물이나 절에서 재를 올리거나 작법(춤)에 또는 시나위 음악에도 쓰이고 있다. 태평소를 호적, 쇠납, 소이나, 쇄나, 날라리 등으로도 불렀다. 태평소 역시 소리를 내는 서(舌, reed)와 관으로 구분되는데, 소리를 내는 서의 크기는 피리에 비해 매우 작아서 2cm정도이며, 관은 윗부분은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며 나무 관 끝부분에 나팔꽃 모양의 동팔랑을 달아서 소리가 널리 퍼지도록 하였다. 전체 길이는 35cm 정도로 세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이며 관은 오메, 산유자, 화류 등 성질이 강한 나무 관에 구멍은 뒤에 1공, 앞에 7공이 있어 모두 8공이다. 연주법은 피리와 거의 같으나, 피리에 비해 서가 작기 때문에 서가 모두 입 속으로 들어가는 점과 같은 음자리에서 한 음계 위아래 음을 피리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점은 다르다고 하겠다. ≪악학궤범≫에 당악기로 소개되어 있고, 율은 향피리와 같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음공
지난주에는 심상건의 1920~30년대의 공연활동이나 방송활동 이야기, 가야금산조를 비롯하여 풍류, 병창, 단가, 판소리, 시나위, 민요, 기악, 무용반주 등 취입 음반이 40여 매를 넘고 있는 점으로 당시 대중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광복 후에 녹음한 30여분 소요의 산조가《5·16 민족상》의 본선 지정곡이 되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45년전 이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학생이 바로 심상건 산조 전 바탕을 재현하게 된 서원숙 교수라는 이야기, 심상건이 말한 풀고 죄는 맛과 음악미학의 대가 한슬릭(Hanslick)의 긴장과 이완의 표현이 맥을 같이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음악이 다른 명인들의 음악과 다른 점, 즉 음악적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그 동안 국악연구자들은 심상건의 산조음악에 관심을 갖고 학위 논문을 비롯한 연구 결과물들을 발표해 왔다. 논의해 온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각 음반마다 담겨있는 산조의 가락은 대부분이 동일하거나 유사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가야금산조는 전라도제나 충청도제로 구분되는데, 충청제의 심정순 산조는 심상건과 심재덕이 이어 받았으나 맥이 끊겨 전승이 단절되었다는 점, 심상건의 4촌 동생들, 즉 심정순의 아들 딸들은 심재덕, 심매향, 심재민, 심화영 등인데, 막내동생 심화영(1913~2009)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서산에서 판소리와 춤 등을 전수하다가 타계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심정순의 큰 아들 심재덕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 막내가 대중가수 심수봉이란 이야기, 그리고 줄풍류란 거문고, 가야금, 양금과 같은 줄악기들 중심의 합주음악이란 점, 정부에서는 이리와 구례지방의 풍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을 관장하고 있다는 점, 국립국악원에서는 줄풍류를‘영산회상’또는‘별곡’이라 부른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심상건의 음악활동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겉으로 들어난 1920~30년대의 일제강점기에 심상건이 활동해 온 공연내용은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소개되어 있어서 그가 어떤 곳에서 어떤 공연활동을 했는
지난주에는 심상건류의 가야금 산조와 관련하여 산조(散調)는 1890년경 판소리의 음악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 형식의 음악이란 점, 산조의 형식은 만(慢)-중(中)-삭(數)의 세틀형식과 맥을 같이 하는 형식이어서 시대성을 지닌 양식이란 점, 산조는 연주자의 기법이나 표출력이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하는 예술음악이란 점, 종래의 헛튼가락이라고 했던 의미는 이제 널리 확산되어 나가는 가락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산조음악의 생명은‘자유분방함’이나‘즉흥성’인데, 지금은 고정된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자주 대하고 있는 가야금산조는 전라도제나 충청도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했다는 김창조(1856-1919)계열, 가령 김창조에서 한성기를 통해 김죽파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창조-최옥삼-함동정월로 이어지는 산조, 또는 김창조-강태홍-김춘지-구연우로 이어지는 산조, 그리고 김창조에서 시작된 가락이 안기옥-정남희-김윤덕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병호를 통해서 내려오는 산조 등 대부분이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