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윤지영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안창호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선생님이 한창 활동하셨던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편지 의뢰를 받았을 때 누구에 대해 쓸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와 관련 있는 분께 편지를 쓰자는 생각으로 선생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딸에게 쓴 엽서 하지만 저는 이제 공부의 길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사람이고, 대학원 전공도 현대사이다 보니 독립운동과 관련된 근대사에 대해 자세히 쓰기가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남의 귀한 정자를뜯어다 자신의 정원을꾸미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그런데여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일본 이와쿠니시가 바로 고양시에서 훔쳐간 정자로정원을 꾸며 놓은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고양초등학교 앞에는 벽제관 육각정 터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벽제관 육각정이란 고양시 벽제관터(사적 제144호)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부속정자다. 벽제관 터는 이 안내판으로 부터 십여미터 쯤 거리에 있으며 예전에 중국 사신들이 한양에 들어 오기 전에 머물던 요즘으로 치면 영빈관 같은 곳이다. ▲ 벽제관 터 앞 10여미터 쯤에 육각정이 있던 자리에 고양시에서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이 유서 깊은 곳에 있던육각정은 안타깝게도일제강점기인 1918년 제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가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모미지타니공원으로 떼어가 버렸다. ▲ 벽제관 육각정을 몰래 뜯어다 보란듯이 일본 이와쿠니시 모미지타니공원에 세운 모습 하세가와는 임진왜란 당시 왜의 승리를 거둔 벽제관터를 전승지로 삼아, 일본의 깃가와 장군 묘역에 어울릴 정자인 벽제관 육각정을 비밀리에 해체하여 일본으로 훔쳐가버린 것이다.이에 고양시(시장 최 성)에서는 이와쿠니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해골들이 여기저기 엉켜 뒹굴었다. 그 모습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볼 수없는 정경이었다. 발아래 유리판 밑 땅 속에 서로 뒤엉켜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있는 남경대학살 현장을 중국인들은 하나도 손상 시키지 않고 그대로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인류가 이런 죄악을 다시 일으켜선 안 된다는 무언의 항의 같아 보였다. 아니 그것은 피맺힌 절규였다. ▲ 남경대학살 기념관 안의 조각작품 (남경대학살 기념관 뜰)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2세 아이리스 장(Iris Chang, 張純如)은 《남경의 강간, The Rape of Nanking》을 쓴 똑똑한 중국여성이다. 그녀는 인류의 비극인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을 다룬 책을 미국에서 썼으며이 한 권의 책으로 서구인들은 잔악한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잊을 수 없는 신문 기사 한토막이 뇌리에 스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본군 소위(少尉)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츠요시의 기사다. 이들은 누가 먼저 100명의 중국인 목을 베는가 경쟁을 벌였는데 106대 105로 결과가 나오자 다시 연장전에 들어갔다고 기사는 쓰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경기도 안산 샘골에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모델이 된 최용신 선생의 무덤과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이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최용신(崔容信, 1909. 8.12 - 1935. 1.23) 선생의 삶을 흠모하여 자료를 모으고 그의 애국운동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최용신기념사업회 전 김명옥 회장은 1997년 1월 8일 ≪최용신 양의 생애≫를 쓴 류달영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심훈의 ≪상록수≫ 집필 사정과 최용신 여사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명옥 : 그러면 그때 심훈 씨가 샘골에 직접 찾아와서 조사했나요? 류달영 : 그야 물론이지. 샘골에 찾아가서 최 양의 활동 상황과 업적을 대강 알아보고 돌아가서 상록수를 구상하고 집필한 것이지. 심훈은 상록수로 일류작가가 되었고 동아일보의 현상모집소설이라 상금으로 많은 돈도 받았지. 그리고 상록수는 그 후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어 보고 모두들 분개 했어요. 상록수의 내용과 최 선생의 생애가 전연 다르다고 야단법석들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소설이란 재미있게 만들어서 쓰는 것이지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어느 날 당신이 나가는 교회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모이라고 한다면 혹시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느냐? 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19년 4월 15일,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제암리에서는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 순진하고 순박한 주민들은 일본군 중위놈이 설마 교회문을 걸어 닫고 총질을 해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며칠 전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가운데 찾은 제암리 교회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침묵에 휩싸였다. 하늘도 희뿌연 하게 흐리고 초목들도 아직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었다. ▲ 양민학살도 모자라불을 싸지른 일본군의 만행으로 폐허가된 마을 제암리 교회당에 총성이 울리고 양민들이 처참히 학살된 이후 세계의 양심은 기사로 타전하여 이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19년 5월 28일 저팬 애드버타이저 기자 앨버트 피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다소 길더라도 앨버트 피터 기자의 양심으로 쓴 글을 소개하니 인내하며읽어주길 바란다. 일본군이 제암리교회에 총부리를 겨눈 것은 유의해야 할 일이다. 조선 사람들이 전혀 무장 을 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는 전투행위가 아니다. 이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꽃반지 끼고 가야금 줄에 논다해도 말할 이 없는 / 노래하는 스무 살 순이 아씨 (중간 줄임)썩지 않는 돌 비석에 줄줄이 / 이름 석 자 새겨주는 이 없어도/ 수원 기생 서른세 명 / 만고에 자랑스런 만세 운동 앞장섰네. 위 시는 기생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 선 수원의 잔 다르크 김향화에 대한 이윤옥 시인이 쓴 시의 일부다. 이와 같이 한국에는 국난의 시기에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구한 유관순 열사 같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은 거의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5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묻혀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곳을 찾아다니며 헌시를 써서 그 일생을 알리는 작업을 하는 이윤옥 시인의 시에 청농 문관효 서예가가 묵향 짙은 서예작품을 써서 전시하는 제95주년 삼일절 기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33인 시서전(詩書展)이 오는 26일부터 3월 4일까지 서울 국악로 갤러리 일호에서 열린다. 이번 시서전에는 황거를 폭격하려던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 수원의 논개 33인의 꽃 김향화, 무명지 잘라 혈서 쓴 남자현, 평남도청에 폭탄 던져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인들이 가장 간절하게 반환을 원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천리대학(天理大學)에 있다. 또한, 13~14세기 고려불화는 90%가 일본에 있다.” ▲ 모진 인연으로 고국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일본 도쿄 센소지 소장 위 이야기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만든 동경의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잃어버린 조선 문화 유산 -식민지 하에서의 문화재 약탈, 유출, 반환·공개> 책 20쪽에 나와 있는 말이다. 이 책에는 구체적으로 약탈된 조선의 문화재 행방을 소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문화재는 고쿠라콜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동경국립박물관(약 4,000건)을 필두로 고적조사와 관련된 도쿄대학, 교토대학, 도쿄예술대학, 와코대학, 릿쿄대학, 사이타마대학 등에 있다. 또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약 800점), 야마토문화관(95점), 일본민예관(1,500점), 나라국립박물관, 네라쿠미술관, 이데미츠미술관, 마츠오카, 네즈미술관, MOA미술관, 고토미술관 등에 소장 되어 있다. 와세다연극박물관의 가면은 특이할 만하다. 또 교토대학 도서관의 하합(河合)문고 2,160권과 고려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재호주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현지 호주인들이 손을 잡고 아베정권을 꾸짖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현지시각 10일(월) 저녁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재호 한-중 동포연대 일본 전쟁범죄 규탄 및 신군국주의 부활 반대 총궐기대회를 연 것이다. 최근 아베정권의 신사참배 당연시와 군국주의 부활의 행동 조짐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해외 동포들이 이를 좌시하지 않고 궐기대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날 궐기대회는 한인커뮤니티에서 시드니한인회, 광복회 호주지회, 재향군인회 호주지회, 자유총연맹(호주지부), 대양주한인회 총연합회, 옥상두 스트라스필드시 부시장, 양상수 오번 시의원, 조국사랑독도사랑 호주연합회, 코윈(호주지회) 등 총 16개 단체 및 개인이 공동 주최로 참여하여 행사 내내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또한 중국 커뮤니티에서도 크리스티나 우 허스트빌 시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단체가 한-중 동포연대를 결성에 참여했다. 이 날 궐기대회에는 약 2백여 명의 한국과 중국 동포가 참석하여 극우화해 가는 일본의 아베정권을 꾸짖었다. 궐기대회는 한국, 호주, 중국 3개국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한국, 호주, 중국 순으로 불렀다. 이어 송석
[그린경제/얼레빗 = 윤지영 기자] 백범 김구 선생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지만 백산 (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 8. 41943. 8. 3) 선생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다. 올해는 백산 선생이 부산 중구 동광동에 백산상회를 설립한지 100돌을 맞는 해다. 백산 선생은 조국독립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 무역회산인 백산상회를 설립하고 임시정부에 돈줄을 대준 분이다. 임시정부가 등불이라면 백산상회는 등불의 심지가 꺼지지 않도록 기름이 되어준 것으로 독립운동을 이야기 할 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분이다. ▲ 백산 안희제 기념관 앞에서 종손 안경하 (부산광복회 지부장) 씨 뒤에 보이는 건물 지하에 전시관이 있고 지상 부분은 입구다. 삼각형 뒤 건물은 백산 기념관 건물이 아니다 백산 선생은 자금만 지원한 게 아니다. 선생이 중외일보를 발행할 때 백산 선생은 총독부의 눈엣가시였다. 총독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백산의 논조는 총독부의 시정을 비난, 공격하고 세계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조선이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하고, 매사를 편견과 중상을 바탕으로 한 집필을 강행함으로써 멋모르는 민중으로 하여금 총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정철, 이하 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첫 기획전 공예페스티벌 : 온기가 2014년 2월 11일(화)부터 3월 2일(일)까지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에서 개최된다.(가운데 줄임) 전시장 2층은 조각, 미술, 디자인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융․복합되어가는 동 시대 예술의 현재로서 전통-현대/공예-디자인의 협업(콜라보레이션)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또한 공예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의미를 조명하면서 장르 간의 관계와 예술적 결합과 소통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위는 2014년 2월 11일 치 문화체육관광부의 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그 모든 것 공예 페스티벌 보도의 일부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말 살려쓰기》에서 ~적이라는 말에 대해 단호히 나쁜 버릇임을 지적하고 있다. 무슨 ~적이라고 하는 말은 이제 입으로도 예사로 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일본말이고 우리 말을 거칠게 하고 때로는 뜻을 흐리멍덩하게 할 뿐이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고 했다. 그러고 보면 보도자료 처럼 사회적,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