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작지 해안 요즘은 나라밖 여행도 쉽게 하는 시대지만 나라 안의 제주도만 해도 아름다운 정경이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제주시 내파도리의 “알작지 바닷가”도 가볼만한 곳입니다. “알작지 바닷가”는 자갈이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자갈과 파도가 어우러져 노래하는 곳이지요. 다시 말하면 파도가 바닷가로 밀려왔다가 밀려갈 때 자갈을 쓸고 다닙니다. 이때 내는 파도와 자갈의 싱그러운 화음은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 그것이지요. 이곳 자갈들은 파도에 끊임없이 부딪혀 둥글게 된 몽돌입니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는 그동안 일부 제주도 사람들만이 알던 숨은 비경이었지만 최근 제주 올레 17길이 열리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알”은 아래라는 뜻이고 “작지”는 자갈밭을 뜻합니다. “쫘르르~~~쏴악~~~”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연주되는 이곳 알작지 바닷가 전체 길이는 약 500여 m 되지만, 중간에 용암덩어리가 알작지를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알작지
문화재청이 지정한 무형문화재 가운데는 북한 쪽에서 전승되던 것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사자탈을 쓰고 놀던 민속놀이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도 있지요. 이 사자놀음을 농경사회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놀았지만 요즘은 때와 상관없이 공연을 합니다. 또 이 놀음은 집안과 마을의 잡귀를 몰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지신밟기 계통의 놀이였습니다. 특히 이 사자놀음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됨을 비손하면서, 춤과 노래로 흥과 신명을 돋우고 새로운 기분으로 활력을 되찾기 위한 민속놀이였지요. 얼마 전 유지숙 명창(중요무형무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의 효공연에서도 이 북청사자놀음이 등장하여 관객들의 큰 손뼉을 받았습니다. 사자놀음은 먼저 마당놀이를 하고 사당춤, 무동춤, 꼽추춤 따위로 한바탕 놀면 사자가 등장하여 사자춤을 춥니다. 사자가 한참을 놀다가 기진하여 쓰러지면 스님을 불러 반야심경을 외우고, 효험이 없으
예전 어느 집이나 다듬잇돌과 다듬이방망이가 있었습니다. 하얀 홑청이 적당히 마르면 얌전히 접어서 다듬잇돌 위에 얹고 두드립니다.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아낙들은 어쩌면 마음을 몰라주는 낭군이 미워서 두드렸을 지도 모릅니다. 다듬질 할 때는 혼자 또는 다듬이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양쪽에 앉아서 합니다. 둘이서 할 때는 주로 모녀(母女)나 고부(姑婦) 또는 동서(同壻)끼리 방망이가 부딪히지 않도록 서로 호흡을 잘 맞춰서 했지요. 다듬잇돌은 옷감·이불감 등의 천을 다듬을 때에 밑에 받치는 살림도구로 화강암·납석·대리석 따위로 만들며, 박달나무·느티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로도 만듭니다. 두꺼운 직사각형 모양으로, 크기는 보통 길이 60cm, 높이 20cm, 너비 30cm가량입니다. 윗면은 반들반들하게 하고 밑면보다는 약간 넓습니다. 밑면의 양쪽에는 손을 넣어서 들어 옮길 수 있도록 홈을 팠구요. 다듬이 도구에는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한 틀이 되며, 방망이는 두개가 한 틀입니다. 명절이나 혼사(婚事)가 가까워질 때, 그리고 겨울옷을 마련 할 때면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가 밤새도
일본에는 어린아이들의 돌이 없는 대신에 시치고상(七五三)이라는 풍습이 있다. 시치고상이란 11월 15일에 여자아이는 7살과 3살, 남자아이는 5살 되는 아이들을 축하 해주는 행사이다. 이러한 행사는 어린아이의 무사성장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빌어주는 풍습으로 기모노 차림의 아이들을 부모님이 데리고 신사에 참배한다. 신사에서 ‘시치고상’ 의식을 치른 아이들은 손에 ‘치토세아메(千歲飴)’를 하나씩 들고 있는데 이는 가늘고 길게 만든 사탕으로 장수를 비는 뜻이 있으며 학과 거북이,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이 그려진 봉투에 담아준다. 요즈음은 일본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 꼭 11월 15일에 얽매이지 않고 토, 일요일이 낀 주말에 신사 참배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따라서 이 무렵 일본을 여행하게 되면 길거리 어딘가에서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신사참배를 하러 신사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날은 잘 차린 일본 전통옷을 입은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손을 잡고 신사참배를 하러 나서는 정겨운 모습을 신사 경내나 시내
남았느냐 남겼느냐 머리 숙인 붉은 감 봄철에는 너나 없이 푸르름을 자랑터니 누구는 어딘들 갔나 남은 놈의 부끄럼야? * 까치밥; 늦가을에 까치 따위의 먹이로 감나무에 몇 개 남겨 놓은 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아홉째 절기인 입동(立冬)입니다.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입동(立冬)이라고 하지요. 예전에는 입동 무렵 농가에서는 고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장만하여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냅니다. 고사가 끝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 나누어 먹었지요.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그믐날에 나이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 대접했는데 이를 치계미라 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살림이라도 한해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냈지요.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습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지요.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
유교 경전의 하나인 ≪주례(周禮)≫를 보면 떡 가운데 인절미를 가장 오래 전부터 먹어왔다고 하며, ‘인절미는 찰지면서 쫀득하여 떡의 으뜸으로 여긴다.’라고 합니다. 인절미는 “인병(引餠)”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는데 그 종류로는 대추인절미, 깨인절미, 쑥인절미, 차조인절미, 동부인절미 같은 것들이 있고, 지방의 독특한 인절미로는 각색차조인절미, 감인절미, 혼인인절미 따위가 있습니다. 인절미로 가장 유명한 지방을 꼽으라면 당연히 황해도 연백인데 계산할 때에 숫자가 맞으면 “연안백천인절미”라고 소리친다고 하지요. 인절미의 이름에 관한 속설을 보면 조선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을 때 지었다고 합니다.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임금께 바쳤는데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것이어서 임금이 “임 서방이 절미한 떡”이라 하여 “임절미”라 한 것이 “인절미”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인절미는 혼례 때 상에 올리거나 사돈댁에 이바지로 보내는 떡입니다. 찰기가 강한 찹쌀떡이기에 신랑신부가 인절미의 찰기처럼 잘 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또
한옥의 모양새를 보면 일자집, ㄱ자집. ㄷ자집, ㅁ자집과 같이 네 가지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먼저 “일자집”을 보면 지붕마루가 “一”자 모양으로 되거나, 평면이 “一자” 모양으로 된 집입니다. 외양간이나 벽장이 덧붙여져서 평면모양이 ㄱ자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지붕의 용마루가 一자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면 일자집이지요. 집의 구성으로 보면 안채 하나로 이루어진 외채집, 헛간채나 행랑채 또는 사랑채 같은 곁채 하나를 더 마련한 쌍채집, 둘을 더 두는 세채집, 네채집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다음으로는 “ㄱ자집”이 있는데 또 다른 말로는 “고패집”이라고도 합니다. 일자로 된 집 부엌 옆에 외양간 따위를 직각으로 이어붙인 집으로 집의 평면이 ㄱ자인 집을 말하지요. 드물게는 안채가 ㄱ자인 집도 있습니다.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서 많이 보입니다. 또 “ㄷ자집”은 지붕이 ㄷ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집을 말하는데, 곱은자(ㄱ)집 안채와 일자집 행랑채로 구성되지요. 마지막으로 “ㅁ자집”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ㅁ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고 지붕이 모두 연결된 집을 말하는데 우물 정(井) 자를
지난 시간에는 한문으로 된 7언, 또는 5언으로 된 시에 고저를 넣어 부르는 노래가 곧 시창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이 어사(御使)가 된 후에, 거지 행세를 하면서 변 사또의 잔치석상에서 부르던 7언 절구의 유명한 시(詩)를 읽었다. 이러한 시 한수는 암기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금준(金樽)미주(美酒)는 천인(千人)혈(血)이오, 옥반(玉盤)가효(佳肴)는 만성(萬姓)고(膏)라. 촉루(燭淚)낙시(落時)에 민루(民淚)락(落)이요, 가성(歌聲)고처(高處)에 원성(怨聲)고(高)라. 7언의 한문시를 노래하던 계층은 아무래도 글공부를 좋아하던 지식인 계층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어려운 한문시를 외우고, 쓰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에 고저를 붙여 읽는 독서성(讀書聲)을 익혔을 것이고, 여기에서 더 음악적으로 발전된 형태가 시창(율창)이라 하겠다. 벽파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는 경포대(鏡浦臺), 만경대(萬景臺), 촉석루(矗石樓), 만류무민(挽柳武愍), 영풍(詠風), 신추(新秋), 관산융마(關山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