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채 즈믄 길을 홀 가도 내 삶이라 봄내음꽃 벗 삼아 하늘 땅을 누비느니 무엇이 아니 모자라 울며 불며 살까나 * 즈믄 길: 천리 길 * 봄내음꽃: 매화꽃
때 오면 활짝 피어 하늘땅을 나아가는데 아직은 굳혀서 때오기를 기다리느나 그래도 이겨내야만 꽃이어니 이쁘구려
한 종합편성TV 미니시리즈에서 등장하는 김치의 수는 5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겨레는 김치와 살아왔고, 김치는 우리 음식의 바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5대 건강식으로 뽑히고, 미국과 유럽 일대, 중국, 일본에서도 한국의 '김치'가 인기가 있음에도 정작 한국인들은 김치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수많은 우리 김치 가운데 “감동젓무”라는 것이 있는데 들어 보셨는지요? 감동젓무는 무와 배추에 잔 새우로 담근 감동젓(곤쟁이젓), 생굴, 낙지, 북어, 배, 밤, 실파, 미나리, 오이 같은 부재료를 넣어 담근 고급 깍두기로 곤쟁이젓깍두기라고도 합니다. 섣달 그믐 무렵에 담가 귀한 분들에게 감동을 선물하던 서울지방의 음식입니다. 깍두기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조선요리학》을 보면 200년 전 정조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이 임금에게 처음으로 깍두기를 담가 올려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각독기(刻毒氣)라 불렀으며, 그 뒤 여염집에도 퍼졌는데 고춧가루 대신 붉은 날고추를 갈아서 쓰면 빛깔이 곱고 맛도 더욱 좋다고 하지요. 깍
예전 선비들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선비들이 공부할 때는 어떤 자세를 가졌을까요? 우암 송시열은 ‘궤좌공부’와 ‘과언공부(寡言工夫)’를 했다고 합니다. 궤좌공부는 꿇어앉아서 하는 공부로 정신을 해이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는 공부이며, 과언공부는 말을 적게 하는 공부로 분명하게 그 뜻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상덕이라는 선비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수묵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공부에 가장 앞서는 것은 ‘쇄소응대(灑掃應對)’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개고 물을 뿌리며 마당을 씁니다. 그리고 집안의 어른이 부르면 얼른 일손을 놓고 달려가 공손히 말씀을 기다립니다. 이것은 아무리 훌륭한 공부라 할지라도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부터 배워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성리학 공부만이 전부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지요. 남명 조식은 퇴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쇄소응대’를 말했습니
“대대로 내려오던 큰 종택 / 임청각 안주인 / 고래 등 같은 집 뒤로하고 / 만주땅 전전하며 / 독립군 뒷바라지 / 스무 해 성상이었어라 (중략) 밥 먹듯 드나들던 형무소 고문으로 숨져간 남편 / 장사 치를 돈도 없이 / 올망졸망 일곱 남매 데리고 / 남의 집 문간방 떠돌던 반백의 시간이여” 위 시는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삼일절을 맞아서 새롭게 펴낸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에 있는 “아직도 서간도 바람으로 흩날리는 들꽃, 허은” 여사에게 드리는 시 일부입니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각 권에 20명씩 여성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헌시와 함께 해적이(연보), 더보기를 붙여 그분들의 헌신적인 삶을 조명한 책입니다. 특히 이번 2권 가운데는 쟁쟁한 독립운동가 뒤에서 빛도 없고 훈장도 없이 묵묵히 독립군을 뒷바라지 한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600억 원의 재산을 모두 털어 독립운동에 뛰어든 6형제 가운데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인 이은숙 여사, 만주 호랑이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인 이해동 여사,
“일지매(一枝梅)는 도둑 가운데 협객이다. 그는 탐관오리들의 뇌물을 훔쳐, 먹고살 길 막막한 사람이거나 죽어 장사지낼 돈조차 없는 백성에게 훔친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나는 듯이 다니고 벽을 붙어다니니 날래기가 귀신같아서 도둑맞은 집에서는 어떤 도둑인지 몰랐다. 그리하여 스스로 붉은색으로 매화 한 가지를 그려 놓았다. 다른 사람이 의심받지 않게 해서였다. 매화 한 가지 증표로 남겨두고 탐관오리 재산으로 가난한 이를 돕는다. 때 만나지 못한 영웅 예부터 있었으니 옛적에도 오강에 비단 돛 떠올랐었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중인 이하 계급 출신 시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쓴 ≪추재기이(秋齊紀異)≫ 일부입니다. 백성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일지매, 그는 탐관오리 집에서 도둑질을 하고는 늘 매화 한 가지를 그려놓았다고 하지요. 그런 매화는 일지매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들이 무척이나 좋아하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도 매화를 사랑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조가 죽
텔레비전 사극에 보면 정갈한 사랑방에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글을 읽는 선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선비가 책을 올려놓고 보는 앉은뱅이 책상을 서안이라 하고 그 옆에 벼루와 먹 그리고 붓을 보관하는 상자를 연상(硯床)이라고 합니다. 서안과 연상은 옛 선비들 사랑방에 꼭 놓여있었던 가구였습니다. 높이 16∼30㎝의 작달막한 연상은 윗부분에 뚜껑을 덮고 그 안에 벼루를 넣어 둡니다. 어떤 연상은 뚜껑이 없이 벼루를 바로 쓸 수 있게 해놓은 것도 있는데 이 이름은 따로 연대(硯臺)라 부르지요. 그리고 아래로는 서랍을 두어 붓이나 먹, 연적을 넣어두기도 합니다. 또 문갑이나 서안과 겸한 것들도 눈에 띕니다. 그밖에 벼루와 먹을 보관하는 작은 함이 있는데 이는 벼룻집[연갑(硯匣)]이라고 하지요. 재료로는 은행나무ㆍ소나무ㆍ먹감나무가 가장 많이 쓰였으며, 모과나무로 만든 투각장식의 연상과 나전칠기 연상은 매우 화려한 고급품입니다. 또한, 대쪽 같은 선비의 품격을 나타내는 대나무 연상도 많습니다. 벼루 10개와 붓 천 자루를 갈아치웠다는 추사 김정희와 왕희지(王羲之) ·안진경(
지난주에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윌리암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한국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는 말의 배경을 음미해 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감정 결과였다. 그의 논평문에는 한국의 피리와 대금이라는 악기 이름이 나오는데, 피리의 종류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가 있고 이들이 각각 어떤 음악에 편성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해 보았다. 이번 속풀이 45에서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소개부터 시작해 보겠다. 대금이라는 악기는 신라의 3죽 중에서 가장 굵고 긴 형태의 가로 부는 젓대 또는 저의 이름이다. 신라의 3죽은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신라 신문왕(神文王)때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그 산 위에는 대(竹)가 한 그루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 연유를 알아본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예전에 볼일을 보던 뒷간(화장실)은 집 하고 좀 떨어진 곳에 두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냄새를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한겨울 밤중에 똥오줌(대소변)을 누러 갈 때는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뒷간에서 달걀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숭숭 뚫린 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 뒷간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몸이 오그라들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60~70년대만 해도 도시의 부잣집을 빼고는 모두 뒷간이 집 밖에 있었고 그것도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나 노인 또는 식구들이 한밤중에 뒷간을 가지 않아도 되게끔 오줌(소변)을 받아 내기 위한 이동용 변기 "요강"을 마련하여 집안에 두고 거기서 볼일을 보았지요. 그래서 예전에 요강은 신부 혼수품 1호였습니다. 특히 딸이 시집가는 날 가마 안의 요강에 목화 솜을 넣어 소변을 볼 때 부끄럽지 않도록 친정어머니는 신경을 썼지요. 요강은 다른 말로 야호(夜壺), 음기(飮氣), 설기(褻器), 수병(甁), 요분(溺盆)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밖에 지방에
용추폭포에 가보셨나요? 어느 용추폭포냐구요? 용추폭포라는 이름의 폭포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전라북도 무주군의 안성면 공정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함양의 용추폭포가 최근(2012년 2월 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 제85호로 지정받았습니다. 함양 심진동 용추폭포는 우리나라 동천구곡의 대표격인 폭포로 높이 약 15m, 폭포가 떨어지는 곳의 늪 지름이 약 25m로 지우천 상류에 형성된 좁은 골짜기를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의 울창한 숲과 바위 위를 흐르는 맑은 계곡물, 떨어지는 우레와 같은 폭포수, 그 아래의 깊은 연못 등이 어우러진 명승지입니다. 명승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이나 보고 즐기는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곳이라 판단하여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문화재의 하나이지요. 명승에는 연못, 골짜기, 바닷가, 호수, 폭포, 강, 화산, 온천은 물론 꽃과 나무, 단풍 또는 새와 짐승 같은 어충류(魚蟲類)가 사는 곳도 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제1호인 명주 청학동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