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1670년경 안동 장씨(安東張氏)가 한글로 쓴 요리서입니다. 이 책은 국수ㆍ만두 따위의 주식류, 국ㆍ찜ㆍ회ㆍ김치ㆍ구이 같은 부식류, 인절미ㆍ강정 같은 떡과 과즐(한과), 과일ㆍ괴ㆍ생선 따위, 오가피주ㆍ황금주ㆍ소곡주 같은 술 종류가 다양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에는 음식 관련 책들이 여러 권 나왔지만 대부분 남성이 쓴 것들인데 여성이 한글로만 정확한 조리법을 써놓은 책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이 책이 최초라 하지요. 그런데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다양한 음식들을 정확하게 설명해놓은 점만이 아니라 맛깔스러운 낱말을 써서 재미나게 표현한 점도 있습니다. 우리 음식에서 모양을 내는 구실의 덧붙임 재료를 고명 또는 웃기라 하는데 여기서는 “교태”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 강한 불은 “매운 불”, 썩은 고기는 “독한 고기”로 표현했으며, 그때 바둑 두는 이들이 많았는지 “바둑 두듯 낱낱이 뒤집어”라는 말도 나오지요. 그런가 하면 그밖에 밥솥의 밥물이 약간 질벅거리는 것은 “즐분블분하다”라고 했으며, 샘이나 동이 안의 물이 가장자리에서 넘칠
중국 사람들이 “고려국에 태어나 한 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1926년 신혼여행 하러 금강산에 온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는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엿새 가운데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데 쓰셨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이름난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 “금강산은 진정한 약속의 땅"이라고 외쳤다 하지요. 그 금강산을 가장 잘 그린 이는 겸재 정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재는 금강산을 멀리서 한 폭에 다 넣고 그리기도 했고, 부분을 확대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금강산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 단발령에서 겨울 금강산 곧 개골산(皆骨山)을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 으로 겸재 작품 가운데서도 걸작입니다. ‘단발(斷髮)’이라는 것은 머리를 깎는다는 뜻인데, 이 고개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금강산의 모습에 반해 그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다는 뜻이 들어 있지요. 을 보면 인간이 사는 속세는 번뇌와 더러움을 상징하듯 짙은
책ㆍ두루마리ㆍ옷ㆍ옷감ㆍ제사그릇 따위를 넣어 두는 길고 번듯한 큰 궤(櫃)를 우리말로 반닫이라고 합니다. 앞판의 위쪽 반만을 문짝으로 하여 아래로 잦혀 여닫기에 반닫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반닫이는 지역에 따라 철장식을 쓴 남한산성반닫이, 개구멍 여닫이문을 쓴 남원반닫이, 은입사(쇠나 구리 같은 금속에 은실을 써서 무늬를 넣는 세공기법) 된 광두정(대가리가 둥글넙적한 장식용 못)을 쓴 통영반닫이, 숭숭이(박천) 반닫이, 제비추리 경첩을 달며 안쪽 윗부분에 세 개의 서랍이 있는 전주반닫이, 백통과 놋쇠로 조촐하게 장식한 서울반닫이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쇠판에 숭숭 구멍을 뚫어 무늬와 글자를 새긴 기하학적인 특성의 장식을 단 이름도 예쁜 숭숭이반닫이도 있지요. 평안도 박천지방에서 만들어 박천반닫이라고도 부르는데 추운 지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단단한 나무보다는 무른 피나무를 써서 반닫이가 변형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또 장식의 변형이나 빛깔이 변하는 것을 막으려고 소피에 삶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박천지방의 공예기술이라고 하네요. 반닫이는 모서리를 여러 갈래로
흔히 노란빛은 개나리 같은 꽃을 연상하고 봄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에도 마음을 설레게 할 노란빛 아름다움이 숲 속에 숨어 있지요. 선괴불주머니란 꽃이 바로 그놈인데 마치 겨울 찬 서리가 오기 전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줄을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괴불주머니는 우리나라 땅 어느 곳에서나 습한 숲 가장자리에서 자라지요. 양귀비과의 두해살이 들꽃으로 키는 보통 60cm 안팎입니다. 그런데 선괴불주머니말고 눈괴불주머니란 것도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눈괴불주머니는 누워 있는 듯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눈괴불주머니는 만주와 북한 지방에서 자라는 것으로 남한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입니다. 또 선괴불주머니와 비슷한 것으로 산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도 있는데 이놈들은 봄에 피는 종류이지요. 이 꽃은 열을 내리고 해독작용을 하며, 오줌을 잘 누게 하며 종기의 열을 내리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일도 하지요. 또 폐결핵으로 말미암은 각혈을 치료하기도 하는데 선괴불주머니는 날이 활짝 개이거나 흐린 날보다는 구름 사이로
흔히 오키나와는 춤과 노래의 섬이라고 한다. 일본 본토와 바다로 막혀 있는 지리적 조건, 아열대에 속한 자연환경, 또한 거듭 되는 외세의 풍랑을 겪어온 역사 속에서 오키나와의 춤과 노래는 자연스레 무르익어 온 것이라고도 한다. 1609년 일본 사츠마번(薩摩藩)의 침공을 받은 이래 현재의 일본 행정구역 단위인 43개현(縣) 가운데 마지막 43번째 현이 되기까지 오키나와는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중계 무역을 담당하던 해상국가 류큐왕국(琉球王國)으로 번영하던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태평양 전쟁 때는 미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오키나와전(戰)이 벌어져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은 큰 희생을 치러야 했으며 1972년까지 미군정하에 놓이기도 했다. 그 뒤 일본에 복속된 지금에도 오키나와는 대규모 미군기지 시설이 들어서 있어 춤과 노래보다는 미군기지 땅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오키나와의 노래와 춤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한 여러 섬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적인 춤과 노래의 출발은 마을신(神)에 대한 기원에서 비롯된다. 마을의 안녕과 재난을 막고 풍작을 기원하며 감사하는 노래로 출발한 민속 예술은 사자춤, 봉오도리 따위가 있다. 이들 춤에 빼놓을 수 없는 악기로는 샤미센(三味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 중에 전통(傳統)이란 말이 있다. 전통이란 무슨 말일까? 아마도 과거로부터 전해 오는 ‘문화적 가치’ 혹은 ‘유산’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은 과거의 모습을 급속하게 바꾸는 개혁의 사회가 된다거나 혹은 동시 다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외래문화를 만나게 될 경우, 두 얼굴의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하나는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오랜 전통은 지켜가야 할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쪽은 전통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통이야말로 ‘사회질서의 기반’이라고 믿고 있다. 반대로 과거의 양식은 고리타분한 관습이어서 우리사 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고 보려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전통문화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이 점차 높아지는 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 중앙이나 지방의 국악계가 전례 없이 고무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경기소리 노학순 명창이 이끄
지금은 흙탕 속에 갇히고 있거니만 폭풍이 미쳐 올 제 운암(雲岩)에 톺아 올라 강토(疆土)의 동서남북을 호령치고 말거다 * 톺아 : 톱다 = 가파른 곳을 오르거나 내리려고 발걸음을 매우 힘들게 더듬다.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에라 만수 / 에라 대신이로구나 / 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원이 본이 되야 / 제비원에다 솔씨 받어 동문 산에다 던졌더니 위는 집터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성주신에게 성주제를 지낼 때 무당이 굿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인데 지금은 민요로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안동땅 제비원을 아시나요? ▲ 경북 안동 제비원의 이천동 석불(보물 제115호) 제비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길손들이 편히 쉬면서 술과 음식을 먹었던 원(院)이 있었던 곳입니다. 조선 말기까지도 제비원을 중심으로 주막이 즐비했었지요. 봄철의 제비를 연상시키는 제비원은 안동시 북쪽 이천동 태화산 기슭을 말하며 이곳에는 보물 제115호 안동 이천동 석불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 명덕(明德)이란 사람이 세운 연미사(燕尾寺)라는 절이 있고 산기슭에는 커다란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에 사람 키의 대여섯 배나 되는 부처상이 새겨있습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성주풀이를 하는 토속신앙터로 자리 잡았고 불교 유입 뒤에는 자애로운 부처님의 영험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각자의 소원을 빌었겠지만 오늘도 두
한의학에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먹거리와 약은 그 뿌리가 같다.”라는 뜻입니다. 곧 한의학에서는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약에 못지않게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가 가진 기운 곧 생명력이 있는데 이 가운데 좋은 기운을 가진 먹거리를 먹게 되면 건강을 지키고 장수는 물론 아름다워진다는 논리입니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갖가지 먹거리가 가진 빛깔을 5가지로 나눠 이를 오행의 원리에 맞춰 다섯 장기와 이어놓았습니다. 그 예를 보면 먼저 부추, 쑥, 양배추 따위 녹색 먹거리는 간을 이롭게 하여 피로를 풀어주고 지혈작용이 있으며, 상처 치료에 좋고, 항암작용도 한다고 하지요. 또 호박죽이나 벌꿀 따위 노랑빛 먹거리는 위장에 좋고, 식욕을 돋우며 면역을 강화해줍니다. 그리고 흰빛 먹거리는 폐와 대장을 건강하게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라지인데 도라지의 사포닌은 해열 작용과 진해 거담 효과가 있고, 연근도 천식이나 가래, 기침에 잘 듣죠. 다만, 같은 흰빛 먹거리라도 흰쌀, 밀가루,
명당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명당엔 양택과 음택이 있다고 합니다. 음택은 묏자리인데 여러 대 자손에게까지 이어지지만 양택 곧 집 자리는 보통 당대에 끝이 난다고 하지요. 그러나 양택일지라도 여러 대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덕을 베푸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300년 동안이나 만석지기로 이어온 경주 교동 최부자집이 그곳입니다. 최부자집의 시작은 임진ㆍ정유 양란 때 큰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싸우다 전사한 최진립(1568~1636) 선생으로부터 비롯되어 1947년 대부분 재산을 영남대 설립에 기부하고 스스로 평범한 중산층으로 내려온 12대 최준(1884~1970) 선생에게로 이어집니다. 12대를 내려오는 동안 지켜진 가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라든지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최부자집 1년 쌀 생산량은 약 3천 석이었는데 1천 석은 집안에서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