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립국어원에서는 된소리가 아닌 예사소리 “자장면”이 표준말이 되어 짜장면으로 소리 내지 말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짜장면'은 1986년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면서 국립국어원이 '자장면'을 표준말로 삼은 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듯했지요. 중국어 표기 원칙에 따라 된소리를 피한다는 명목과 '짜장면'을 굳어진 외래어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은 많은 문인과 국어학자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다음 카페에 '짜장면되찾기국민운동본부'까지 결성할 정도였지요. 그런 ‘짜장면’이 무려 25년 만에 복권되었습니다. 이제 맘 놓고 ‘짜장면’을 써도 좋은 것이지요. 이번에 함께 표준말로 지정된 것들을 보면 조어법에 맞지 않는다며 쓰지 못하게 했던 “먹거리”를 표준어로 추가했으며, 문학용어로는 쓰였지만 그동안 표준말로 인정받지 못했던 내음, 나래, 뜨락 따위도 표준말이 되었고, 고양
세종임금은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정초ㆍ변효문을 시켜 《농사직설》을 펴내고 농법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조선 백성은 먹을 것이 부족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물론 《농사직설》에도 직파법뿐만이 아니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移秧法)이 있었지만 물이 모자라고 기술발전이 덜 되어 직파법에 의한 농사가 주였습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점차 이앙법으로 농사짓는 법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농학자 신속(1600~1661)이 이앙법을 강조한 《농가집성(農家集成)》을 펴낸 뒤부터입니다. 신속이 1655년(효종 6) 공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농서(農書)를 쉽게 구할 수 없어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권농문(勸農文)》, 《금양잡록(衿陽雜錄)》, 《사시찬요(四時纂要)》 등을 참고하여 이 책을 썼는데 효종이 이 책을 보고 호피를 내려 칭찬했습니다. 직파법에 견주어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은 노동력이 적게 들고, 보리를 심어 수확한 뒤 모내기를 할 수 있어서 한 해에 두 번 농사를 짓는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농
전통가곡에 관한 속풀이를 하다가 잠시 다른 장르로 옮겨 갔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가곡의 멋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통가곡은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대별되고 있다. 남창 가곡은 우조 음계(흔히 서양음악의 장조 음계로 비교 됨)로 된 11곡과 계면조(단조에 비교 됨)로 만들어진 13곡, 그리고 중간에 조가 바뀌는 2곡 등 모두 26곡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여창 가곡은 우조가 5곡, 계면조 8곡, 그리고 변조의 2곡 등 모두 15곡이 모두 불리고 있다. 남창의 곡수에 비해 여창의 곡수가 적은 셈이다. 남창이든, 여창이든 간에 이들 가곡은 부르는 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다. 느린 빠르기의 긴 호흡으로 부르는 곡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순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에 몇 곡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나, 절대로 앞뒤 악곡을 뒤바꿔 부르지 않는다. 창자 임의대로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순서를 정해 놓고 순서대로 부르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 시대 가곡의 명인들, 즉 이주환이 엮
1910년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우리 겨레는 이를 되찾으려 수많은 애국지사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 항일유적지들은 대부분 독립군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만주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활약했던 중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유적지들은 중국 정부의 개발 정책에 밀려 서서히 그 흔적을 잃어갑니다. 실제로 글쓴이가 올해 초 방문했던 중국 내 임시정부 유적지 가운데는 그 흔적을 찾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도 있으며 최초의 독립군 양성소였던 신흥무관학교도 이젠 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인제신문사 김좌훈 발행인은 2011년 8월 30일 자 기사에서 인제군에 항일유적지를 복원하고, 이곳을 자라나는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인제군수 재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그는 선거공약 제1호로 그동안 인제군에서 45만 평의 터에 자동차 경기장을 만든다며 토목공사를 하고있는데 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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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처럼 쌓인 보랏빛 돌들이 / 서로 껴안고 / 즈믄 세월을 보냈다 / 쓸어내리려는 억센 물줄기에도 / 서로 보듬으며 / 닳아 문드러질지언정 흩어지지 않았다 / 친정아버지 잃은 젊은 아낙도 / 용마 타고 다리 놓던 임 장군도 / 모두 떠난 지금 / 즈믄 해의 숨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살 위로 / 빠알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만 맴돌고 있다.” 위는 진여숙 시인의 '진천 농다리'입니다. 는 대그릇 농(籠) 자를 써서 큰물을 담을 수 있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한자 이름으로는 농교(籠橋)라고 부르며, 위에서 보면 커다란 지네 같다고 하여 지네다리, 장마 땐 물이 다리 위를 넘어간다 하여 수월교(水越橋)라고도 합니다. 이 다리와 관련된 전설로는 고려 고종 때 임행(林行) 장군이 눈보라가 치는 겨울 아침 마을 앞 세금천(洗錦川)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젊은 부인이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차가운 물을 건너려는 효심에 감탄, 용마를 타고 하루아침에 이 다리를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농다리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
행촌공(杏村公) 이암(李) 선생(1297~1364)은 고성 이씨 9세로 고려말 충신입니다. 고려 최고의 명필이요,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냈고, 서북면병마도원수(요즘의 참모총장)로 4만의 홍건적을 물리친 대단한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암 선생은 단순히 높은 벼슬한 것 말고도 “행촌3서” 곧 역사서인 ≪단군세기≫, 도학심법서인 ≪태백진훈≫, 경세실무서인 ≪농상집요≫를 펴낸 대학자입니다. 그 이암 선생의 친필을 우리나라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싹쓸이 강탈해 가 현재 야마구치(山口)여자대학 도서관에 “테라우치문고”로 보관 중이기 때문이지요. 한문수 선생님이 찾아낸 이 책에는 “고려국 문하시중 분정 행촌 이암 공의 친필 진본”이라는 확인과 함께 영인하였다는 도서관의 관인이 찍혀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일제는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가 우리 겨레의 자존심으로 생각되어 그것을 감추고 식민사관을 심으려고 한 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이암 선생의 후손으로 고성 이씨 30세인 일제강점기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호쿠사이란 풍속화가가 있다. 평생 3만 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72살에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을 그려 독보적인 화풍의 화가로 자리 잡은 호쿠사이(葛飾 北齋,1760-1849)는 풍속화의 일종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일렁이는 파도가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호쿠사이 작품 ‘바다(海)’는 프랑스 작곡가 드비쉬(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이 그림을 만난 뒤 영감을 얻어 ‘바다’라는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호쿠사이는 서양 예술가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키요에(浮世繪)는 에도시대에 성립한 그림으로 연극, 고전문학, 와카(和歌, 일본 전통 시),풍속, 전설, 기담, 초상, 정물, 풍경, 문명개화, 황실, 종교 따위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우키요(浮世)란 말은 ‘현대’라는 뜻인데 이때의 현대란 주로 에도시대(1603-1868)를 말한다. 우키요에를 판화그림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는 손수 그린 그림(肉筆)과 목판화를 모두 일컫는다. 육필화에는 병풍화, 두루마리그림, 족자, 화첩, 부채그림을 모두 포
1972년 12월에 일본에서 나온 역사독본에는 ‘일본 영웅 100명’이 소개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 후쿠자와 유키치(복택유길) 등이 나란히 등장한다. 정말 이들은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답은 'NO'다. 지면상 오늘은 일본이 ‘근대화의 아버지’라 추앙하고 있는 후쿠자와의 더러운 아시아 침략 근성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8월 29일은 101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게 조선이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날로 오늘 우리가 이날을 기억하는 한 ‘후쿠자와 유키치’란 인물도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가 아시아에서 왜 원흉으로 꼽히는지 3가지만 들겠다. 첫째. 후쿠자와 유키치는 (福澤諭吉, 1835~1901) 아시아를 능멸하고 침략을 선동했다. "조선 침략의 목적은 일본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다." "조선국은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같다." "대만인은 오합지졸 좀 도둑떼" "청국병사는 돼지꼬랑지 새끼" "조선과 중국 이 두 나라는 진보의 길을 모르고 구습에 연연하며 도덕마저 땅에 떨어진데다가 잔혹, 몰염치는 극에 달하고 거
김동석 씨는 미국의 명문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 교수로 알려져 있으며 미 서부지역에서는 한국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그가 한국인 최초로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재단은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가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려고 2년에 한 번씩 소수민족 음악인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서 연구사업을 후원해 주는 기관이다. 그동안의 수상자들로는 일본의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남미의 인디오 뮤직 연주자, 스페인의 전통기타 연주자 들이었다. 그는 연구 사업으로 약 70분이 소요되는 대곡 성금연 류 가야금산조를 한 장의 음반으로 담아 낼 것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연주해 오던 가락들을 다듬어 이번에 완성하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공생하고 있다. 한인 동포의 수는 약 200만을 넘는데, 그 중 LA지역에만 약 50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전통음악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