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기 303년 4월 23일 지금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인 리다(Lydda)라는 작은 마을의 한복판에서 조지(George)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처형된다. 로마군인이기도 한 조지는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황제인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기독교인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붙잡혀서 신(神)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00년 가까이 지난 12세기부터 이 청년은 용감함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1350년에 영국의 조지3세는 영국사람도 아니고 영국에 와 본 적도 없는 이 청년이 용을 죽이고 미녀를 구한 전설을 살려 최고의 훈장인 가터대훈장을 만들어 수여하는 등 그의 인기를 이용해 기사도를 살리고 신하들의 충성을 북돋아 주었다. 그의 무덤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이후 사람들은 이날에 가슴에 붉은 장미를 꽂아 용감한 조지 성인을 기렸다. 특이하게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에서도 조지 수호성인을 기리는데, 조지 성인이 죽은 날이 되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이에 대해 책을 받는 남자는 장미꽃을 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7살의 나이에 임금이 된 선조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왔지만, 그 자신 이미 70을 바라보던 퇴계 이황(1501~1570)은 임금에게 훌륭한 왕이 되어 선정을 펼 기본 조건을 다 말씀드린 뒤에 거듭 사직을 호소하다가 이듬해인 선조 2년(1569년) 음력 3월 4일 마침내 돌아가라는 허락을 받는다. 퇴계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임금에게 사직을 고하고 곧바로 도성을 나와서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이튿날인 3월 5일에 지금의 금호동 근처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에 배 안에 많은 명사와 선비들이 함께했다. 그 가운데는 편지로 사단칠정론을 논하던 제자 기대승도 있었다. 정신적 스승을 보내는 기대승은 이런 시를 지어 작별을 아쉬워했다; 江漢滔滔萬古流 한강수 도도히 만고에 흐르는데 先生此去若爲留 선생의 이번 걸음 어찌하면 만류할꼬 沙邊拽纜遲徊處 백사장 가 닻줄 잡고 머뭇거리는 곳 不盡離膓萬斛愁 이별의 아픔에 만 섬의 시름 끝이 없어라 이에 선생이 기대승의 시의 운을 사용해서 답시를 짓는다. 列坐方舟盡勝流 배에 둘러앉은 사람 모두가 훌륭한 인물들 歸心終日爲牽留 돌아가려는 마음이 종일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다시 4월이고 봄이 왔습니다. 올해는 봄이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늦어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망우리 공원 언덕을 오르는 길옆에는 노란 개나리꽃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길옆은 배수로 공사 때문인 듯 파헤쳐놓아, 차량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마치 한ㆍ일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험한 것에 비유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러나 봄이 온 듯 두 나라 관계에도 봄은 오겠지요. 곧 말끔히 포장된 길이 우리를 맞겠지요.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활짝 피어난 개나리꽃에서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한 한 일본인의 마음을 봅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한국)에 살다가 죽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 묻힘으로써 조선의 흙이 된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소반(小盤), 곧 작은 밥상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인정스럽고 사랑스럽고 깔끔한지, 그 매력에 빠져 그것을 모으고 사진과 그림으로 담아 이를 널리 알리는 책을 펴냅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소반이 아름답다는 것이 알려지는 첫 계기입니다 그는 우리가 일본이라는 이웃의 통치 아래 힘이 들었을 때 친구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문자를 배워도 제대로 못 배우면 유식한 척 한마디 하다가 창피를 당하기 일쑤인데 해마다 4월엔 늘 그랬다. 4월이 되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라는 말을 흉내를 내 은연중에 나도 그런 표현을 쓰곤 했는데, 막상 누군가가 "아 그러세요? 뭐가 잔인하다는 거지요?"라고 묻는 바람에 대답이 궁해 혼이 난 적이 있다. 이 표현이 영국의 시인 T.S.Eliot 란 사람이 쓴 <황무지>라나 뭐라나 하는 시 첫머리에 나온다는 것쯤은 나도 들은 바 있지만 사실 이 시는 번역된 것도, 원시도 전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왜 이 시인이 잔인하다는 표현을 썼는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짬을 내어 먼저 번역된 시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소설가 황순원 씨의 아들로 영문학자이신 황동규 님의 번역이 먼저 들어온다. 황 무 지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이 시가 엄청나게 길어서 다 보기는 그렇고 첫머리만을 보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지난해부터 그리 신경을 쓰게 만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니 허탈해진 국민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우리들의 관심을 끌 일들이 없어진 것 같다. 당선자가 청와대에 들어가니 마니 하는 문제로 시끄러워졌지만, 그거야 우리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며칠 전 화이트데이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이 문제도 연애하는 젊은이들 아니면 굳이 남과 여 사이에 누가 선물을 누구에게 하니 안 하니 하는 문제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달 3월은 같이 축하하거나 기념할 날이 이제는 없는 것 같다. 선거가 있던 날 투표를 하고 나서 심심하기도 해서 미국에 눈을 돌려보았더니 3월 9일 ‘무슨 무슨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7개가 있고 ‘무슨 무슨 주간’이라고 하는 것은 16개나 있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에서 3월 9일은 미트볼의 날(National Meatball Day)이고, 바비인형의 날(National Barbie Day)이고, 등록영양사의 날(National Registered Dietitian Nutritionist Day)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통령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후보 쪽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누가 되었든 간에 서로 상대방 후보의 나쁜 점, 잘못한 점만이 부각되는 바람에 상대방 후보와 진영에 대한 일종의 적대감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선거결과에 대해 서로 승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겠다. 과거 보아왔던 선거와 개표과정의 부정 여부, 재검표 하자는 주장이 없어진 점, 진 쪽이 졌지만, 진 것이 아니라며 미래를 거는 승복... 이런 것들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번에 드러난 0.8%도 안 되는 두 후보에 대한 차이. 30만 명도 안 되는 이 차이로 한 나라 대통령이 바뀌고 그 나라의 노선이 달라지는가? 그래도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두 쪽 다 50%에 바짝 닿는 지지율이 아닌가? 참으로 묘한 법이자 묘한 논리로 대통령이 결정되는구나. 희한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서로가 상대진영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견해차를 인정하고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주지 않으면 서로가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되었기에 과거 말로만 하던 협치라는 개념을 추구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해가 바뀐 다음 아침 세수를 하면서 문득 거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갑자기 낯선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거울 앞에 다가서니 나는 보이지 않고 세월을 잔뜩 덧칠하고 있는 백발노인이 나를 보고 서 있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 '거울 속 낯익은 백발노인' / 도정기 저 사람이 나인가? 왜 머리가 거의 백발인가? 얼굴은 젊을 때의 윤기가 없이 푸석하고 까칠하고 목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는가? 자네 누구인가? 그 사람이 대답은 안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에 자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렇구나. 저게 내 얼굴이구나. 내 얼굴이 저렇게 변했고 내 머리털 색깔이 바뀌었구나. 머리숱도 엄청나게 줄어들어 군데군데 맨땅이 더 많이 보인다. 머리털이 가늘고 힘이 없어져 바람에 너무 잘 날린다. 눈가에도, 입가에도 주름이 보인다. 그래,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분명 나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생경하구나. 설을 쇠고 나니 나도 확실히 이른바 세는 나이로 7학년으로 들어갔구나. 며칠 전 길을 가면서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과 목소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게 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어령 장관님! 기어코 가십니까?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고도 남들 다 하는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시고 담담히 암과 더불어 살아오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삶의 생각과 이야기를 해주시며 의연한 지성의 길을 보여주시기에 그래도 한참을 우리 곁에 더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황망히 우리 곁은 떠나십니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을 때도 또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라고 하시면서 왜 곧 피는 꽃을 마다하시고 먼 길을 떠나시는 것입니까? 청천벽력의 소식에 장관님이 아껴주시던 이태행 전 새천년준비위원회 기획운영본부장과 작곡가 김수철 씨, 그리고 제가 빈소에 달려가 “어서들 오세요!”라고 해주시는 장관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장관님은 국화꽃 뒤에서 말없이 내려다보시며 반갑다는 웃음만 보이시는군요. 해가 바뀌고 처음인 만큼 세배하는 기분으로 털썩 엎드려 절을 하고 싶었지만, 하느님께 귀의하신 분이시라 국화꽃 한 송이로 저희는 마음을 전하면서 3년 전 봄에 장관님이 우리 3명에게 맛있는 점심과 함께 격려해주신 다음 곧 다시 모시겠다고 한 약조를 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를 맞았기에 지난해 허송세월한 것을 반성하며 이제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해 보자고 자리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그런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고 하면 5분도 못 가서 생각은 어느새 한강에 가 있고 이태리 로마에 가 있고 멋진 경치를 보고 싶어 집 밖으로 줄달음친다. 생각을 도로 붙잡아 놓으면 또 모르는 사이에 어디론가 막 날아간다. 새해 결심이고 뭐고 굳은 맘을 먹고 뭔가를 결심하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이렇게 생각이 안정이 안 되고 마구 날아다니는 것을 불교에서는 ‘심원의마(心猿意馬)’라고 한단다. 우리 마음이 원숭이처럼 날아다니고 우리의 뜻은 말처럼 뛰어다닌다는 뜻일 텐데, 두 동물의 성질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촐랑대 마음이 조용할 새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말은 항상 뛰기만을 생각해 뜻이 가만히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오간다. 여기에서 사람이 근심걱정 때문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는 것이고,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위백양(魏伯陽)이 펴낸 것으로 전해지는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아래 문장과 같이 나온 뒤 역대 불교 선사들이 즐겨 쓰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겨우내 알몸으로 오들거리다 사색이 된 사시나무 무리들이 바람이 전하는 봄 희망에 젖어 휘파람으로 아우성인 우수 언저리 동장군에게 구속당해 두툼한 얼음이불 덮고 침묵 중이던 산골짝 웅덩이들이 해금되어 쩌렁쩌렁 살판났다 설렘으로 졸졸졸 자유 찾아 떠나는 물소리에 귀잠 깬 버들강아지도 꼬리가 제법 복슬복슬하고 권오범 시인의 ‘해토머리’란 시는 이처럼 겨우내 얼었던 대지들이 뜨뜻한 봄기운을 받아 몸을 녹이고 꿈틀꿈틀 되살아나는 자연과 초목과 동물들의 살판나는 분위기를 감칠맛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구나. 이번 주말이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렸다. 차가운 얼음덩어리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산골짝 웅덩이들이 살아나는 이 계절은 겨울은 아니고 봄도 아닌 어정쩡한 때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를 ‘해토(解土)머리’라고 불렀다. 땅이 풀리는 첫 계절이란 뜻이겠지. ‘따지기’라는 순수 우리말도 있네. 뭘 따진다는 게 아니라 따(땅)을 가두었던 얼음이 풀리면서 땅이 질척질척하는 때를 말한단다. 시기적으로는 우수에서 경칩 사이인 것 같고... 예전에 해토머리는 춥고 먹을 것이 모자라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필자의 성장기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