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건자(李建子)명창의 제9회 발표회, <선녀와 놀량>을 기획하여 성북구민들에게 선을 보였다는 이야기, 소리꾼 이건자의 순수함과 남다른 열정, 선녀와 놀량과 관련해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선녀가 하늘나라로 떠나간 이후, 상심에 차 있던 나무꾼은 다시 한번 사슴의 도움을 받아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살게 된다. 그러나 두고 온 인간 세상의 어머니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말을 타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말이 세 번 울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나 시간을 보내다가 그만, 말이 세 번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 다시 하늘나라에 오를 수가 없게 된다. 그 후, 나무꾼은 언제나 하늘만 쳐다보고 선녀와 아이들을 그리며 살다가, 죽어 수탉이 되었다고 한다. 수탉의 울음, ‘꼬끼오 꼬꼬!’는 바로 “곧 갈 거요, 곧”이라는 풀이여서 이야기의 끝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건자 명창의 <선녀와 놀량>이라는 발표회 이름이 주는 의미가 재미있다. 선녀(仙女)는 땅이 아닌 하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임진의 <소리 한마당> 이야기를 하였다. 오래전부터 서울을 올라다니며 당대 이름을 날리던 박태여, 이호연. 묵계월, 최근에는 최창남 명창에게 소리를 다듬고 있다는 이야기, 그의 ‘목청이 좋다’, ‘발림이 좋다’라는 평가는 공력(功力)이 남다르다는 표현이란 점, 비인기 종목의 어려운 민속가(民俗歌)들을 섭렵하고, 그 소리들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면서 그간의 공력을 펼쳐 보인 발표공연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 이건자(李建子) 명창의 발표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이건자 명창은 20여 년 전, 서울 성북구에 사설 국악원을 개설, 운영해 오면서 <산타령 보존회>의 정례발표, 나라 안팎 발표공연, 전승활동, 지역활동, 봉사활동, 경연심사 등에 참여하면서 국악원 및 개인발표회 8회를 기록하고 있다. 요령이나 변통을 모르는 이 명창으로서는 국악원 운영에 흰 머리가 많이 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근래 모두가 힘들어하는 코로나 정국에서도 그는 제자들과 함께 제9회 이건자 발표회를 열어 화제를 뿌리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정례발표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방 명창은 대통령상 수상 이후,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해마다 발표회를 해 왔다는 이야기, 2021 발표회에서도 ‘산타령’, 경기민요와 좌창, 병창, 유지숙의 서도소리,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등을 무대에 올렸는데, 집터 다지는 중노동에 장단이나 소리는 노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충남 서산시에서 오랜 기간, 우리 소리, 특히 경기지방과 서도 지방의 소리들을 중심으로 일반 동호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소리꾼 이임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임진은 서산 <경서도 예술원>의 원장으로 충남 인근에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열성파 소리꾼으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을 올라다니며 당대 이름을 날리던 유명 소리꾼들에게 소리공부를 해 왔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우선, 그의 소리에서 깊은 공력이 묻어 나오는 점으로도 알 수 있거니와 각종 경연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수상해 왔다는 점으로도 증명이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원장에게 소리를 지도해 주었던 여러 명창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와 함께 그의 성실함을 칭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제7회 벽파(碧波) 전국 국악제전에서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와의 대담내용을 소개하였다. 현재 서울《한성 여중》의 과학교사로 서도소리를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 초한가는 서도의 좌창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항우의 싸움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라는 이야기, 학교 선생님이 국악을 배우게 되면 학교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다는 이야기, 한국인의 우월한 유전자가 만든 노래가 바로 우리 민요이며 전통음악이란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정례발표 공연 <2021년도 우리소리를 찾아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방영기 명창은 성남에서 태어난 명창으로 전국 국악경연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이후, 이를 계기로 더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스스로 발표회를 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왔다는 것이다. 항상 결실의 계절 12월이 되면 해마다 공부해 온 것을 공개적으로 발표해 온다. 이번 제21회 발표회는 벽파 전국국악제전이 열리던 날, 곧 작년 12월 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가졌는데, 그는 해마다 자신의 정례 개인발표회를 실시해 온 명창으로 유명하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제7회 벽파전국국악제전에서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는 현재 서울 <한성여중>의 과학교사로 20여년 전부터 다양한 장르의 국악을 배워 왔다. 초한가는 서도지방의 유명한 좌창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항우의 싸움 이야기가 중심이며 가락은 서도 지역의 치켜 떠는 요성(搖聲)이 일품인 소리다. 이렇게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대상을 받을 정도로 학교의 선생님이 국악에 심취하게 되면 학교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 그가 근무하고 있는 한성여중에서는 올해 가야금병창 동아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국악 전공의 예술강사와 일반 교사가 협업하면 쉽게 동아리 활동이 확대됨에도, 학교 현장은 동아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유대관계가 형성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도 말이다. 그가 가끔 들려준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견줘 우월한 분야가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저는 <노래>도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세계에서 노래를 가장 사랑하고, 또한 잘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엇보다도 BTS가 이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전국 국악제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 교사와의 대담내용을 일부 소개하였다. 현재 서울《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지도하고 있는 현직 교사로, 20여 년 전부터 풍물굿,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왔으며 현재는 이건자, 김경배, 유지숙, 조영숙, 명창 등에게 소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도지방의 긴소리, 초한가 ‘楚漢歌’를 불러 벽파 제전의 대상에 올랐는데, 서도지방이란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의 소리는 수심가조로 엮어진 소리가 대부분이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서도소리의 범주에도 여러 종류의 노래가 있다. 대표적인 장르로는 앉아서 긴 호흡으로 부르는 좌창(坐唱)과 시창이 있고, 여러 명이 서서 부르는 선소리 곧 입창(立唱)이 있는가 하면, 각 지방의 특징을 살리고 있는 다양한 통속민요, 그리고 이은관을 떠올리는 소리극 형태의 ‘배뱅이굿’ 등도 있다. 이 가운데 좌창의 대표적인 소리가 ‘초한가’, ‘공명가’, ‘배따라기’, ‘영변가’. ‘제전’ 등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000쪽에 다다르는 벽파 이창배 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경서도 소리를 비롯하여 판소리, 단가(短歌), 시창(詩唱), 송서(誦書), 불가(佛歌), 각 도(道)의 전통 민요와 신민요 등을 망라하고 있다는 이야기, 성경린ㆍ이혜구ㆍ김기수 등 국악계 원로 등은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자, 교수, 학생들의 필독서’, ‘사설만이 아닌 악보의 첨가,’ 등으로 한국 경서도창의 대표적인 문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선생의 아호를 걸고 열린 바 있는 제7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최은서와의 대담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수상자는 서도의 긴소리 초한가<楚漢歌>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는데, 그는 현직 중학교 교사여서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미 20여 년 전, 교사가 되면서부터 풍물굿이나 사물,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 민요 등을 틈틈이 배워 온 실력자로 서울 <한성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다. 그가 풍물굿을 배우고, 판소리를 접하다가 경서도 소리에 심취하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 선생은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 소리꾼으로는 흔치 않은 학자(學者), 시대를 앞서가는 국악교육자, 무엇보다도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존경을 받아 온 대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있어 선생은 역사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다. 선생은 민요시간에도 사설 중에 역사적 인물, 지역 이름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실감이 나게 풀어내 마치 역사 공부 이상의 수업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는 벽파 이창배의 역저 《한국가창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벽파 선생은 예전부터 불려 내려온 민요들을 정리하여 《가요집성》을 펴냈고, 이를 수차례에 걸쳐 《증보 가요집성》을 낸 바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보완, 증보하여 1976년 2월, 경서도창의 교본, 《한국가창대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 책을 펴내게 된 배경을 보면 국악 중에서도, 성악 분야에 있어서 난해한 가사가 많아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홍인(弘人)문화사>의 획기적인 시도로 성악곡 전반에 걸쳐 해설과 아울러 난삽한 어휘를 일일이 주해를 붙이고, 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 벽파는 <청구고전성악학원>의 설립과 운영,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 인정, 《가요집성》, 《한국가창대계》의 출간 등 공연이나 방송활동 외에도 교육과 저술 등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0여 년 전 ‘벽파학술대회’에서 나는 벽파야말로 “경서도 민요를 소리로 지켜온 명창”이며 소리꾼으로서는 흔치 않은 학자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명창이며 학자가 전부는 아니었다. 벽파 선생이야말로 민요의 중요성을 강조한 진정한 국악교육자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1955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두가 힘겨운 재건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서울 종로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우고, 일반인과 정규 수강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국악고교>와 <국악예술학교>를 비롯하여, 국악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 학생들에게 좌창이나 입창, 일반 민요 등 경서도 소리를 지도하면서 이 분야의 확산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2021년 현재 경서도 민요와 관련한 국가와 지방의 예능보유자나 전승교육사 대부분은 그의 직간접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7회 벽파 전국국악경연대회 관련 이야기로 <벽파(碧波)>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벽파란 경서도 명창 이창배 선생의 아호(雅號)라는 점, 1916년 서울 성동구 출생이며, 원범산과 최경식에게 잡가와 가사, 이명길, 탁복만에게 산타령을 배워서 오늘에 이어주었다는 점, 해방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경서도 소리 공부를 하였고, 1955년에는 종로 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워 경서도 입창, 잡가, 속요들을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당시 전문인, 비전문인 등이 모두 이곳에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1960년대, 선소리 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벽파는 김순태, 김태봉, 정득만, 유개동 등과 함께 이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서울음대 이혜구 교수, 국립국악원장 성경린 등과 함께 《국악대전집》과 《민요삼천리》를 펴냈다. 또한 1976년까지 《가요집성》을 7차례 증보하여 경서도 소리의 전범(典範), 《한국가창대계》를 출간하였다. 이것은 경서도 소리를 위해 매우 유용한 저서로 지금까지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