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요즘 인문학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도 정작 대학가의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강의와 이벤트 중심으로 이뤄지는 인문학 열풍은 인문학 위기의 또 다른 반증일지 모른다. 취업과 한줄 세우기식 대학 평가에 매몰되어, 대학의 본분을 읽어버린 대학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세종대학교는 철학과가 없고 역사학과도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그밖에 많은 대학들은 문예창작학과를 없앤 지 오래고 주시경을 낳은 배재대학교도 국어국문학과를 없앴다. 인문학 분야는 취업이 안 된다고 경쟁률이 줄어들고 있고,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영어 파시즘이 강의와 논문을 지배하다 보니 한글과 한국어 관련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 더불어 배려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위기를 뜻한다. 인문학은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는 학문으로 인문 정신 곧 사람다움의 뜻을 담은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뼈대는 사람답기 위해 주고받는 배려와 소통의 언어학, 상상의 나래를 통해 서로 다른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총체성으로서의 더불어 문학, 왜 그래야 하는지를 따져 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근본을 따지는 상생 철학,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흔히 세종은 10여년의 비밀 연구 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말한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홍사내 연구원이 지적(홍사내, 2013.11.9., 세종은 언문 창제 작업을 언제부터 했을까? 얼레빗 )했듯이 그런 추정은 대체로 옳다고 본다. 본격적인 연구 기간을 말한다면 그런 추정이 맞지만 실제 새 문자에 대한 고민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감을 글쓴이는 김슬옹(2011).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개정판)》. 지식산업사, 1장, 2장에서 밝힌 바 있다. ▲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 김슬옹, 지식산업사 훈민정음 창제 17년 전인 1426년 10월 27일(세종 8년) 세종이 법은 함께 하는 것(人法竝用)임을 강조하며, 법률문이 복잡한 한문과 이두(한문을 우리식으로 일부 고친 표기체)로 되어 있어 문신조차 알기 어렵고 더욱이 배우는 학생들은 더욱 어려움을 지적했다. 법률문과 같은 꼭 필요한 정보의 소통 문제를 고민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훈민정음 창제 11년 전인 1432년 11월 7일(세종 14년)에도 보인다. 세종이 신하들에게 주요 법조문을 우리식 한문체인 이두문으로 번역 반포하여 무지한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문제를 의논한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우리 겨레는 천 년 이상을 한자를 빌어 문자생활을 해왔다. 15세기, 한문 사용으로 인한 문자 모순이 극에 달했을 때 다행히 고유 문자인 한글을 갖게 되었지만 그 뒤로도 오백 년 이상을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한글을 철저히 비주류 문자로 묶어 두었다. 올해는 한글이 창제된 지 572돌, 반포된 지 569돌이나 되었지만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대 대학신문 등은 한글전용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한글이 주류 문자로 자리 잡은 마당에 몇몇 언론이 한자 섞어 쓴다고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언어학자나 문자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제 한글이 주류 문자로 제대로 인정받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남한의 경우는 1988년 5월 15일에 이르러서야 한글 반포 542년 만에, 국민모금으로 한글전용 신문인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한글 주류 문자의 꿈을 먼저 이루었지만, 안타깝게도 독재와 세뇌의 도구로 전락하여 세종의 소통 정신을 반영한 한글(조선글이라 부름)이라 보기 어렵다. 결국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교수] 이 글은 전국국어교사모임(2002). 중학교 2학년을 위한 우리말 우리글[대안 교과서]. 나라말. 218-221쪽.에 최초로 실렸다. 그 뒤로 말의 중요성, 7차 독서 교과서, 민중서림 , 244쪽, 말에 담긴 세상. 2007 교육과정 교과서(2011-2012년), 말에 담긴 세상, 2012학년도, 비유와 상징 출판사. 중학교 2학년 1학기 교과서. 133-135쪽., 말에 담긴 세상, 2012학년도 중학교 생활국어 교과서, 금성출판사, 중학교 2학년 1학기 생활국어 교과서 118-121쪽., 김슬옹(2013).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 글누림. 254-259쪽에 실리는 과분한 영예를 누렸다. 일부를 다듬어 여기 싣는다.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고, 말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다. 거울에 세상의 온갖 것이 비취듯 말에는 세상살이의 온갖 모습이 비취고, 그릇에 살림살이의 갖가지 것들이 담기듯 말에는 세상살이의 갖가지 속살들이 담긴다. 아래 사진의 표어를 보자. 앞 차는 가족처럼, 뒤차는 친구처럼이라고 했다. 비록 짧지만 이 두 마디 말에도 우리 사회의 속살과 겉모습이 드러나 있다. 우선,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기자] 인류 최고의 발명품, 훈민정음. 세종은 어떻게 이런 발명을 할 수 있었을까? 흔히 세종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던 임금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임금이었기에 성공은 가능했겠지만 그것이 바탕스러운 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후대 임금들은 발명해 놓은 문자조차 세종만큼 온 몸으로 실천한 임금은 없기 때문이다. 제2의 세종이라 추앙받는 정조조차 한문 위주의 실천과 정책을 폈다. 그렇다면 세종이 대천재라고 가능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노력하는 천재라고 하면 말이 맞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확한 답은 아니다. 천재라는 말은 타고난 재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기 때문이다. ▲ 훈민정음반포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그럼 도대체 뭣이란 말인가? 나는 그 답을 《세종실록》을 읽다가 발견했다. 1440년, 그러니까 세종 22년 1월 30일의 사건이다. 병진년에 최해산이 도안무사가 되어 급히 아뢰기를, 정의현(旌義縣)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한꺼번에 승천하였는데, 한 마리의 용이 도로 수풀 사이에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라고 하였다. 다급하게 보고를 받았지만 세종은 오히려 차분하게 묻는 임금의 교지를 내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김슬옹, 아이세움, 참조). 그 기적은 세상에 소리 없이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 《세종실록》 25년(1443년) 12월 30일자 기적이라 하는 것은 여섯 가지 측면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훈민정음은 사람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리 문자인 셈이다. 곧 훈민정음은 사람의 말소리뿐만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교수] 자판은 정보시대 글쓰기와 정보 입력의 핵심 도구이다. 스캐너나 음성 인식이 발달하고 손으로 쓰는 최첨단 컴퓨터까지 개발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판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자판이 어떻게 설계되었느냐에 따라 정보 생산성의 속도와 양이 결정되고 건강문제(키펀치병 따위)까지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판은 그 물질성과 습관성의 강고한 결합으로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표준화가 중요하다. 자판 입력의 역사 한글 자판은 현재 한국의 두벌식, 세벌식 그리고 북한의 두벌식 자판 등이 쓰이고 있다. 남한의 표준 자판은 두벌식이다. 이는 한글 모아쓰기에서 자음과 모음의 관계에 따라 발생하는 한글만의 독특한 문제다. 타자기는 자판의 한글 배열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초성-중성-종성의 삼분법의 특색을 살리면 세벌식이요, 자음-모음의 이분법을 따르면 두벌식이요, 초성 자음, 종성 자음, 종성 없는 모음, 종성 있는 모음과 같은 사분법을 따르면 네벌식이다. ▲ [표 1] 자판 벌식 구별 글쓴이는 고등학교 때(1977-1979) 표준인 네벌식 타자기를 배웠다. 대학에 들어가 세벌식이 더 합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필자는 주로 국어선생이 될 국어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학기 초에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여러분은 보고서를 아래한글로 내게 될 것이다. 엠에스워드 문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만 허용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니다. 전 세계 문서작성기는 다국적 기업인 엠에스워드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아래한글도 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것은 아래한글 만든 사람들이 잘 만든 탓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의 힘이었고 한글의 자부심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 앞에 토종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그 기적의 의미를 국어 교사가 지켜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이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가꾸는 것이다. 둘째 정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지키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학생들한테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줄 것이다. 나 또한 1989년 아래한글 1.0부터 정품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왜 특정 회사의 홍보맨이라는 오해를 가끔 받아가면서까지 이렇게 교육하는 핵심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래
▲ 한자로 먼저 크게 쓰고 작은 한글로 토를 단 《석보상절》 ▲ 한글로 먼저 크게 쓰고 한자로 작게 토를 단 《월인천강지곡》 ▲ 훈민정음 언해본 첫장 ▲ 청농 문관효 서예가가 《월인천강지곡》과 같이 먼저 한글을 크게 쓰고,작게 한자로 토를 단 작품을 선보였다. * 월인천강지곡식 훈민정음 언해본 전시(청농 문관효 서예가) 2013년 10월 7일 ~ 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부근 ▲ 훈민정음 언해본을 청농 문관효 서예가가 쓴 작품
[그린경제=김슬옹 기자] 글쓴이는 2004년 북한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국의 중국조선어신식학회. 남한의 국어정보학회가 공동 주최한 , 2004 코리언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남북 정보기술 교류 10주년 기념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Processing of Korean Language 2004((ICCKL, 2004, Shenyang, China)에서 한국어를 가리키는 남북 공동 명칭으로 한말글을 제안한 바 있다. 남한과 북한의 우리말글 명칭이 달라 코리언이란 외국식 용어를 쓰고 있어 새 용어를 제안한 것이다. 북한 학자들은 남한 쪽 한글 용어의 변종이라 한사코 반대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단 남한만이라도 공식적으로 써야 한다. 분단의 비극은 우리말글의 이름까지도 갈라놓았다. 남한의 한국어는 사전에서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 형태상으로는 교착어이고, 계통적으로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 한반도 전역 및 제주도를 위시한 한반도 주변의 섬에서 쓴다. 어순(語順)은 주어, 목적어(또는 보어), 술어의 순이며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의 앞에 놓이는 것 따위의 특성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면에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