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의 1주기를 맞아 임정란을 위시한 그의 제자 일동이 준비한 추모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10여 년 전 묵계월 명창은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라 예능보유자 자리를 물러나야겠다는 명퇴서를 써놓고 교정을 부탁했다는 이야기, 오뉴월 모닥불도 쬐다가 물러서면 서운한 법이라는데, 보유자 자신이 스스로 그 자리를 용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의 어머니는 딸에게 소리 공부를 시키기 위해 묵씨네 집안에 양녀로 보냈고, 소리선생 주수봉(朱壽奉)은 당대 속요계를 주름잡던 최정식(崔貞植)에게 보내주었다는 이야기, 묵계월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무척이나 좋아해 종일 연습에 몰두했는데, 특히 그날 배운 소리는 그날로 완전히 암기하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1995년 제자들과 함께 공연하는 고 묵계월 명창 세상 사람들은 묵계월의 소리를 두고 하늘이 낸 목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목청이 시원시원하고 힘차며 맑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소리꾼은 좋은 소리, 즉 맑고 깨끗한
[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작년에 세상을 떠난 서도소리의 지존, 이은관 명인의 제자들이 선생을 그리워하면서 정성껏 준비한 특별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은관 명인은 17살 나이에 서도소리에 입문하여 97살로 타계하기까지 평생을 오르지 배뱅이굿과 함께 살다간 진정한 소리꾼이었다는 이야기, 무대공연이나 방송, 또는 영화 출연을 통해서 전통의 서도소리, 그 중에서도 1인 소리극조의 배배이굿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유산이었나 하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서도소리의 지존으로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나 원인은 높고 맑은 목청으로 정성을 다하는 소리와 연기, 독보 능력을 갖추고 창작민요와 작곡활동에 전념해 왔다는 점,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점, 상대의 조언에 경청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의 소유자라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배뱅이굿 속에 나오는신수가 불길하여 한 집은 딸을 낳고, 한 집은 계집아이, 또 한 집은 여자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여성비하의 내용은신수가 대통하여로 고쳐 부르겠다고 약속한 이야기, 공연무대에서 장고를 돌리는 재주는 악기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지적에 연습을 접었다
[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경서도 소리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노학순 명창과 경토리민요단의 8,15 특별 공연의 이야기를 하였다. 경토리 민요단이란 말에서 경(京)은 서울 경기지방을 의미하는 말이고, 토리란 그 지역의 특징적인 창법이나 음계, 분위기 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 노학순명창이 지도하는 이 단체는 국악계 대소 기획공연은 물론이고 산골마을이나 해안가의 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경서도 민요의 멋을 전파하는 소리의 전도사역도 맡아왔다는 이야기, 국내뿐 아니라, 일본이나 호주, 러시아, 중국, 베트남, 캐나다, 미국 UCLA 와 한국문화원 등에도 초청되어 민간 외교사절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해 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노학순 명창은 이은관, 이은주 명창에게 배워 전수, 이수자가 되었고 현재는 서울시 재담의 보유자인 백영춘 문하에서 산타령, 장대장타령, 재담소리를 사사하여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받은 노력형 소리꾼이라는 점, 광복70주년을 맞는 기념공연에서 회심곡, 동부권의 민요, 서울의 휘모리잡가, 산타령, 해방가 등을 선보인다는 이야기, 특히, 해방가는 나레이션을 곁들여 아리랑, 해방가, 경복궁타령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다나베 일행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할 때, 동행하면서 노래를 불러준 장학선이라는 소녀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장학선은 일제강점기에 콜롬비아나 빅타레코드사 등에서 서도소리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으며 1959년도에는 8도 명창대회에서 1등을 한 인물로 서도소리의 전설이었던 김밀화주의 제자였다. 월남해서는 서도소리로 1969년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 뒤 김정연, 오복녀 등을 거쳐 현재는 김광숙, 이춘목, 유지숙, 한명순 등이 힘겹게 서도소리를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다나베는 기녀들을 예술가로 대접하였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특히 장학선이 불러준 노래가 세월은 흘러가고, 봄은 또다시 돌아 왔구나. 하늘은 세월을 더하고, 사람은 수(壽)를 더하고, 봄은 천지에 가득하니, 복은 집 안에 충만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상의 인심은 날마다 변해 가는가.라는 내용임을 알고 감탄했다는 이야기, 평양의 기생은 서울의 기생이나 일본의 예기들과는 달리, 예술가적인 품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 놀라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동안 1920년대 초, 조선에 와서 조선의 음악을 조사 기행
[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다나베의 대동강주유기(大同江舟遊記)를 보면서 그가 평양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기에 여러 가지 아름답게 묘사된 이야기를 하였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 중에도 아주 예쁜 사람이 많다는 대목이라든가, 아름다운 곡선으로 어우러진 건축물을 극찬하는 등, 조선의 건축 문화에도 탄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뱃놀이에 동행을 하게 된 4인의 기생 중에서 장학선(張鶴仙)은 훗날 월남하여 60년대 말, 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의 초대 예능보유자가 되었던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는 10살 때 평양 관우물 소리방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다가 14살 때부터는 평양의 기성권번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김밀화주(金蜜花珠)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이야기, 김밀화주의 제자들로는 장학선 외에도 이반도화(李半島花), 이정렬, 이부용, 장금화 등, 쟁쟁한 명창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기성권번 출신의 장학선이라는 명창은 일제강점기 콜롬비아나 빅타 레코드회사 등에서 서도소리 음반을 취입하기 시작하였으며 1959년에는 그 유명한 전국의 명창대회 8도 명창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하여 그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렸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부여에서 개최되는 내포제 시조강습회, 그리고 때를 같이해 김연소 보유자의 시조창 발표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시조창은 3장 6구체의 시조시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배열한 노래라는 점, 영조 이전 시대에는 5장 형식의 가곡(歌曲)이라는 틀에 얹어 불렀는데, 가곡은 16박이 한 장단이고, 구성음이나 잔가락이 많다는 점, 시조창도 촉급하지 않은 속도와 장중한 창법으로 부르기 때문에 한가하면서도 유장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라는 점,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으며 겨우 노인층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에 놓여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또 지방정부에서는 지방 고유의 시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 시조창은 세련 정제된 형식미, 유장미, 표현의 절제미, 그리고 창법의 장중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로 5박과 8박의 장단구조와 3음 중심의 간단한 선율형으로 이어진다는 점, 그래서 세상 영욕(榮辱)이 한낱 뜬구름에 불과한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노래라는 점, 6월 내포제 시조강습회가 해마다 성황을 이루어서 지역의 큰 축제로,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창 축제로 자리잡아 가기를 기대한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최창남 명창의 경서도소리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80을 넘긴 최창남 명창은 10대에 입문해서 평생을 올곧게 소리를 하며 살아온 명창이라는 이야기, 해마다 발표무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은 실로 젊은 국악인들에게 귀감이 되며 의지와 집념은 실로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 그는 1945년 해방되던 해,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내려왔고, 그곳에서 이북 출신의 서도 명창들에게 산염불이나 난봉가 류의 소리를 익혔으며, 이은관을 따라 공연을 하면서 배뱅이굿도 익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벽파 이창배는 최창남의 목과 기교, 목구성을 높게 평가하며 조교로 채용하였고 그 인연으로 최창남 앞에 소리를 다듬지 않은 명창들이 드물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는 강하고 부드러운 소리, 밝음과 어두운 소리, 그리고 진함과 옅음의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현란한 기교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어서 경서도 소리를 좋아하던 옛 애호가들이나 이름난 명창들, 전문 국악인들이 주된 관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 산타령과 난봉가류의 서도소리 외에 최숙희 팀의 장기타령, 큰 제자들인 한진자, 정재경, 이장학, 강연지가 부르는 노래가락과 창부타령, 임춘희, 조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산타령이란 산을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지난주는 지역에 따라 경기지방의 산타령, 서도 산타령, 남도 산타령으로 구분이 되고 있으며 서도지방의 산타령은 전쟁이후, 서도 명창들이 적었기에 배우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으며 경기지방의 명창들이 전수해 줄 정도였다는 이야기, 경기지방의 산타령은 입타령(口音)이 많고, 장단이 들쑥날쑥하며 강약이나 호흡조절이 까다롭고, 또한 고음역의 선율을 통성으로 질러대는 부분들이 많아 다소 남성취향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은 여성들이 소리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경기와 서도 산타령의 차이는 목을 쓰는 창법과 말 붙이는 자리가 다르며 장단도 경기보다는 서도가 빠르다는 점이 비교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산타령은 산천경개를 두루 두루 노래하기 때문에 사설의 내용이 매우 건전하고 상식이 풍부해 진다는 점, 독창보다는 합창으로 부르며 통일성이 강조되는 노래라는 점, 협동을 통해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이나 질서를 배울 수 있다는 점, 2박, 3박, 4박 등의 장단형태나 3분박, 2분박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씩씩하고 활달한 창법이나 다양한 표현법을 익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3회째 준비한 산타령의 발표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만 해도 산타령은 한국의 대표적인 합창곡으로 극장가에서는 선소리패를 초청해서 소리판을 벌렸다는 이야기, 산타령의 쇠락배경은 명인 명창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나, 타 장르의 구경거리가 동시에 등장했다는 점을 들었다. 60년대 말, 선소리 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당시에는 김태봉, 유개동, 정득만, 이창배, 김순태 등 5인이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이창배와 정득만의 제자들인 황용주, 최창남 외에 선소리산타령보존회회원들이 전승하고 있다는 이야기, 산타령은 1800년대 중반, 사당패들이 산타령 관련악곡들을 연행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예인집단이나 세속 음악인들이 전승시켰다는 점, 산타령의 곡명은 1910년~1920년대 문헌인『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한 여러 자료에 보이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다리밟기 놀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으며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서울, 경기 일원의 산타령패(牌)들이 전부 모여 축제를 열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혼신을 다해 소리를 하는 황용주 명창 산타령은 산을 노래하는 것이
[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도드리의 기본형 장단과 변형장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변형 장단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곡조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는 이야기, 특히 영산회상 중에 6박자 음악인 상현, 하현, 염불도드리에는 변형 장단이 많다는 점, 그러나 고수의 즉흥적인 변화형이 아니고 고정되어 있다는 이야기, 긴염불과 반염불의 관계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악곡들은 대개 어느 곡을 기본곡으로 하여 가락이나 장단을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일반적으로 긴염불에서 빠르게 연주하는 반염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은 그 반대의 경우라는 이야기, 그 이유는 긴염불이라고 하는 곡명은 문헌에 보이지 않으며 반염불의 가락이나 템포는 관악영산회상의 염불가락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이야기, 마치 종묘제악 희문(熙文)을 길게 느리고 가락을 첨가하여 전폐희문을 만든 예와 같다고 하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 보유자 황용주 명창의 공연 모습 긴 염불과 반염불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기로 하고, 이번 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선소리 산타령보존회》의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