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20년대 중국 북경과 상하이 등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통합한 단체인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이하‘촉성회’) 결성에 참여한 박건병ㆍ강경선ㆍ배천택 선생을 2022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 강원도 김화 출생(1892년)의 박건병 선생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대한독립애국단 소속 강원도 철원군단(鐵原群團, 일명 철원애국단)에서 학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를 선전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벌였다.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강원도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4년 8월 북경한교동지회(北京韓僑同志會) 결성에 참여하여 기관지인 ‘도보(導報)’의 집필진으로 참여, 강력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을 강조하기도 했다. 1927년 북경에서 관내 촉성회 연합회가 결성되자 15인의 집행위원으로 뽑혔고, 1928년 5월 만주에서 전민족유일당 조직 촉성회가 열렸을 때 북경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촉성회는 1928년 5월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고, 1929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가 일제강점기, 학생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2천 5백 90여 명의 학적부를 수집ㆍ확인했다. 이에 따라 당시의 학생 독립운동 연구는 물론, 다수가 아직 포상이 이뤄지지 않아 학생 독립유공자 포상 확대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3일 “제93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지난 201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교의 학적부를 수집ㆍ분석한 결과, 전국 60개교 학적부에서 독립운동 참여자 2,596명을 확인해 공개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학생 독립운동 참여 기록이 담긴 학적부 발굴은 지난 3년 동안 각급학교와 국가기록원의 협조를 통해 진행됐다. 특히, 학적부를 통해 드러난 학생 독립운동은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 함흥학생사건, 동맹휴학, 노다이사건 등 지역에 따라 다양했는데, 독립운동 참여로 인한 퇴학과 정학 등의 징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전국적으로 발발했던 학생 독립운동의 양상과 내용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이번에 확인된 학적부를 징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퇴학이 1,033명으로 가장 많았고, 무기정학 565명, 유기정학 483명, 훈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흥사단 독도수호본부(상임대표 이용민, 운영위원장 나명숙)는 10월 25일 낮 1시부터 4시까지 흥사단 대강당에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독도칙령) 반포 제122돌 기념대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독도가 국제적으로 우리의 영토임을 선포한 독도칙령이다. 이용민 흥사단 독도수호본부 상임대표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과거의 반성조차 없고, 독도에 대한 영토 야욕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라며 10월 25일을 ‘독도의 날’이 아닌 ‘독도칙령의 날’로 제정해 독도가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역사와 사실을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의 발전적 평화와 협력 및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일본은 우리의 독도 영토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은 “서기 152년, 신라 지증왕 13년부터 1,500여 년이 흐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역사적으로도 명백히 알 수 있다”라며 “일본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부균 한국독도연구원 이사장은 “1877년 당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조국독립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다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주검이 하얼빈산(産)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치됐다는 순국 당시의 중국 현지 신문 기사를 처음으로 발굴해 26일 공개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안중근 의사 의거 113돌을 맞아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직후 중국 현지에서 보도된 안 의사 주검에 관한 기사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사회장 거행에 관한 기사를 처음으로 발굴해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국가보훈처와 주상하이총영사관이 독립유공자 발굴ㆍ포상에 필요한 입증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 1년여(2021년 5월 ~ 2022년 8월) 동안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발행된 신문과 간행물 88종’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 기사 3만 3천여 매를 발췌한 뒤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굴됐다. 첫 번째는 중국 만주지역 발행신문인 <성경시보(盛京時報)>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1910.3.26.) 나흘 뒤인 1910년 3월 30일에 보도한 기사로, 안 의사의 둘째 동생인 안정근 지사가 안 의사의 주검을 한국에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나, 일본당국이 거부한 사실과 당시의 정황을 상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1909년 하얼빈 의거를 통해 우리 겨레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 의거 제113돌 기념식이 26일(수) 아침 10시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낭독, 기념식사, 기념사, ‘안중근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1879년 황해도 출생의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뒤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세우다가 돌아와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안 의사는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나라 밖으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펼쳤다. 그 뒤 안 의사는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찾았고, 1909년에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0월 26일 낮 2시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서파 류필영ㆍ동산 류인식 부자의 학문과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행사는 지역 출신 인물의 학문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널리 알리고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퇴계학맥을 계승한 부자 독립운동가, 서파 류필영과 동산 류인식 서파 류필영(1841~1924)은 정재 류치명의 제자로, 경상도 남쪽에는 곽종석, 북쪽에는 류필영이라는 뜻의 ‘남곽북유(南郭北柳)’라 불렸을 만큼 뛰어난 학자였다.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이끌었으며, 시와 예를 강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는 3.1만세운동 직후 137명의 유림이 일제의 국권 침탈을 세계에 알리고 독립을 요구한 청원서인 ‘파리장서’에 곽종석, 김복한, 고석진에 이어 4번째 서명자로 올려져 있다. 그의 아들 류인식(1865~1928)은 30대에 의병항쟁에 참여했으며, 성리학적 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 위해 안동 내앞마을에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이상룡, 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항일운동을 이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삼천만대중 부르는소리에 젊은가슴붉은피는 펄펄뛰고 반만년역사 씩씩한 정기에 광복군의 깃발 높이 휘날린다 칼잡고 일어서니 원수치떨고 피뿌려물든곳 영생탑 세워지네 광복군의정신 쇠같이 굳세고 광복군의사명 무겁고크도다 굳게뭉쳐 원수때려 부셔라 한맘한뜻 용감히 앞서서가세 독립독립 조국광복 민주국가 세워보자 -이두산 작사, 작곡 ‘광복군가’<1>- 10월 3일 개천절 오후,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스튜디오에서는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름하여 '독립군가 복원'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부른 광복군가(광복군행진곡)는 이두산 작사ㆍ작곡으로 이두산 지사는 1917년 9월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하여 한국독립당ㆍ민족혁명당ㆍ조선의용대ㆍ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음악가로서 활동을 한 분이다. 이날 독립군가 복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차리석 지사 후손 차영조 씨, 오희옥(오광선 장군의 따님) 지사 후손 김흥태 씨, 장이호 지사 후손 장병화 씨, 김규식 지사 후손 김수옥 씨, 조문기 지사 후손 김슬샘 씨 등 18명으로 10대에서 8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여 의미를 더했다. 프로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이하 ‘학우회’)에서 핵심 간부로 활동하고 동경지역 한국인 독립운동을 주도한 이옥ㆍ유원우 선생을 2022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학우회는 1912년 동경에서 창립된 유학생들의 민족항일 단체로, 학우회 잡지인 ‘학지광(學之光)’을 펴내 항일의식을 드높였으며, 특히 1919년 2월 8일 2·8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이는 뒷날 3·1운동의 도화선뿐만 아니라 1920년대 일본 유학생 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1895년 경북 안동 출생의 이옥 선생은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안동지역의 유력가, 재산가, 학교 등을 조사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고하는 조사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하며 학우회 서무부장, 총무 등 주요 간부로 활동한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학살 만행을 목격하고 유학생들의 피해 상황을 조사ㆍ지원하기 위해 서울에 꾸려진 임시재경일본유학생회 상무위원에 뽑혔다. 1924년 학우회뿐만 아니라 동경지역 독립운동을 주도해 일본 경찰이 요시찰인물 ‘을호’로 지정, 주요 감시와 경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휠체어에 탄 오희옥 지사를 모시고 병원 뜰로 나오니 어디선가 비둘기 한 무리가 날아든다. 녀석들도 오희옥 지사를 반기는 것일까? 실외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는 방역 당국의 발표(26일)가 난 뒤 어제(29일) 찾아뵌 오희옥 지사의 표정은 밝았다. 완연한 가을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 병원 뜰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환자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연세가 있으시니까 병세가 더 ‘호전되기보다는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병문안을 갈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지난번에 영면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와 동갑(1926년생, 96살)인 오희옥 지사! 뉴스를 보니 여왕은 별세 전날까지 새로운 총리 지명자와 악수를 하는 등 업무를 봤다고 한다. 오희옥 지사도 사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4년(2018) 전인 92살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각종 광복과 관련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었다. 나이와 질병에는 그 어떤 장사도 견디기 어려운 법이라지만, 그래도 오희옥 지사는 그동안 강인한 정신력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특히 3.1절이나 8.15 광복절이 다가오면 ‘힘내라 대한민국’과 같은 글귀를 손수 써 보이시는가 하면, 한가위와 설 명절 때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중수교 30돌을 맞아 대한민국 보물로 등록된 윤봉길 의사의 자필 이력서와 유서를 비롯한 백범일지 초판 서명본 등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5일 “9월 6일(화)부터 12월 25일(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임시정부기념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1992년 맺어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수교 이후 진행된 임시정부청사 복원 등 각종 유물 155점을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금란지교(金蘭之交), 위대한 동행’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중수교 이후 진행된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독립운동가의 유해봉환 사업’, ‘공동학술조사와 연구’ 등 3부로 나눠 전시된다. 1992년 맺어진 한중수교는 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한 유적지를 찾아 보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상하이 보경리(普慶里) 4호 청사를 시작으로 충칭 연화지(蓮花池) 건물과 항저우 호변촌(湖邊村) 청사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까지 복원되어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1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복원’에서는 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의 긴박함과 그 과정에서의 임시정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