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물 제340호 “청자철채백화삼엽문매병(靑磁鐵彩堆花蔘葉文梅甁)”이 있습니다. 이 도자기도 역시 청자의 하나입니다만 보통의 청자가 비췻빛인데 견주면 흑갈색을 띠는 특이한 청자입니다. 이 도자기는 청자 바탕흙으로 매병을 만든 다음 어두운 흑갈색 물감인 철사를 바르고, 몸체 양면에 3개의 잎이 붙은 무늬를 얇게 판 뒤 백토를 발라 청자유를 입혀 구운 것으로 높이 27.5cm 크기입니다. 이 잎 무늬 매병은 자연스러운 붓자국이 잎맥처럼 남아 있는데 휙 꼬부려서 내리그은 줄기 끝 부분이 특히 아름답고 전체적으로 보면 단순 소박하게 그려 대비와 조화가 잘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또 목이 짧고 각진 입을 가진 이 매병은 풍만한 어깨로부터 몸체에 이르는 선이 과장되지 않고 아름답게 표현되었지요.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로 높이 35.2cm인 청자철재퇴화운학문매병(靑磁鐵彩堆花雲鶴文梅甁)도 있습니다. 이 청자가 위 작품과 다른 점은 잎새 무늬가 아닌 구름과 학 무늬가 새겨졌다는 점입니다. 고려청자 하면 무조건 비췻빛이라고 생각하던 분들은 흑갈색 청자도 있음을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비췻빛 청자와 흑갈색 청자의 아름다운 모
“한 여자가 있는데 손가락이 모두 달라붙어 물건을 잡지 못했다. 반면에 발가락은 가늘고 길어 바느질하거나 절구질하고 다듬이질할 때 편리하였다. 걸어가야 할 때는 손바닥을 짚신에 넣어 거꾸로 서서 비틀비틀 길을 걸었다. 밤이면 심지를 돋우고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위 내용은 조선후기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쓴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있는 “거꾸로 걷는 여성 장애인[倒行女]” 일부입니다. ≪추재기이≫는 타고난 이야기꾼 조수삼이 조선후기 소수자집단(마이너리티)의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책에는 여러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이 “거꾸로 걷는 여성 장애인” 편은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사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좌절하거나 나약하게 행동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생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최근 법관 임용마저 가로막았던 장애를 딛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힘써 온 김신(55) 울산지법원장이 29년 만에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또 양손 합쳐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희아 양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조혼이 성행하였습니다. 남자는 10살쯤, 여자는 14살쯤 되면 혼인을 서둘렀지요. 9살 어린 나이에 장가간 신랑이 적지않았고 여자가 18살쯤 되면 혼인이 늦었다고 걱정했습니다. 또 예전엔 어린 신랑이 연상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신혼풍습 가운데 “신방 엿보기”라는 것이 있었지요. “신방엿보기(신방지키기)”는 첫날밤에 친척이나 이웃들이 신방의 문구멍을 뚫고 엿보는 풍속인데 무엇 때문에 신방을 엿보았을까요? 전하는 얘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백정이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 무조건 벗겨야 한다고 했고, 신부의 어머니는 시집가서 고통스러워도 잘 참아야 한다고만 일러 주었답니다. 신랑은 옷을 벗기라는 말을 착각해 살을 벗기고, 신부는 ‘참아야 한다’는 말만 생각하고, 참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 신방을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보통은 신부가
6월 1일,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 무더운 날씨에 우리는 생존해 계신 오희옥 애국지사 집안 3대 독립운동가 산실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이날 답사는 오희옥 애국지사와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펴낸 이윤옥 시인 그리고 민족정신을 구현하는 수원일보 이화련 선임기자가 함께했지요. 오희옥(吳姬玉, 1926. 5. 7~ ) 애국지사는 경기도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오광선(吳光鮮)의 둘째 따님으로 87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과 화산면 일대는 오희옥 애국지사의 외가와 친가가 있는 곳으로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부터 3대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기리는 <의병장 해주 오공인수 3대 독립항쟁 기적비>가 세워져 있어 오씨 문중의 쟁쟁한 독립운동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죽능면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1867-1935)은 용인·안성·여주 일대에서는 그의 솜씨를 따를 자가 없을 만큼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지요.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의병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일진회 송종헌의 밀고로 8년형의 징역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한 뒤 1920년 겨울 만주 통
오늘은 24절기의 아홉째인 망종입니다. 망종(芒種)이란 벼,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알맞은 때라는 뜻입니다. 더불어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이기도 합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는데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지요. 또 이때는 사마귀나 반딧불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매화가 열매 맺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보리 베기 전에는 "보릿고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6월 7일 자 동아일보에도 ”300여 호 화전민 보리고개를 못 넘어 죽을지경"이라는 기사가 있었던 것이지요. 또 “보릿고개”를 한자로 쓴 “맥령(麥嶺)”과 더불어 “춘기(春饑)”, “궁춘(窮春)”, “춘빈(春貧)”, “춘기(春飢)”, “춘기근(春飢饉)”, “춘궁(春窮)“, ”궁절(窮節)” 같은 여러 가지 말들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옵니다. 이처럼 예전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았습니다. 보리는 소화가 잘 안 돼 ‘보리방귀’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보리방귀를 연신 뀔 정도로 보리를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방귀 길 나자
1994년 개봉한 영화 “구미호”에선 구미호가 뱉어내는 구슬이 등장했습니다. 이 구슬은 구미호가 고통스럽게 뱉어낸 것으로 이를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요. 그런가 하면 지난 2010년 방영된 KBS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여우구슬은 자식의 목숨을 구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구미호 곧 꼬리가 9개 달렸다는 여우에게 구슬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지요. 재미나게도 우리 토종 들꽃 가운데 “여우구슬"이란 것이 있습니다. 들어 보셨나요? 여우구슬은 키가 15~40cm로 작아 사람이 이 여우구슬을 제대로 보려면 키를 바짝 낮춰야 합니다. 더구나 이 꽃은 0.5mm밖에 안 돼 눈곱보다 더 작을 정도입니다. 특히 이 여우구슬을 잘 살펴보면 낮에는 잎이 하늘을 향해 펼쳐 있어서 작은 꽃과 열매를 받치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잎이 오므라져 꽃과 열매를 감싸지요. 여우구슬은 마치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듯 잎으로 꽃과 열매를 받치거나 감싸는 기막힌 들꽃입니다. 여기서 여우구슬 말고 “여우주머니”란 것도 있습니다. 여우구슬 열매는 열매자루가 없이 줄기에
“오늘은 왠지 칸초네가 듣고 싶어라. 1964년 산레모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질리올라 친켓티의 논호레타를 신청하셨네요. 나이가 어려 아직 사랑할 수 없다구요? 그러면 기다려 드릴게요. 감미로운 칸초네가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어떤 뮤직박스에서 디제이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악을 틀고 있는가요? 요즘이야 집에 음향기기도 있고, 스마트폰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예전엔 음악다방에서 듣는 팝송은 참으로 꿈만 같았습니다. 당시는 차가운 시디가 아닌 턴테이블에 올려진 지글거리던 LP음반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소리만은 따뜻했지요. 통키타 가수 송창식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을 듣기도 했고, 비틀즈의 ‘렛잇비’가 가슴을 휘젓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눈 내리는 날 아다모의 샹송 “눈이 내리네”를 듣고 있노라면 사랑하는 이가 그립기도 했지요. 또 칸초네의 아름다운 소리도 밤을 잊게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인기 많던 그 디제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손님들은 신청곡을 틀어주는 디제이에 대한 보답으로 뮤직박스에 커피나 담배 또는 껌 등을 넣어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지난 5월 26일(토)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풍습과 전통을 이어가고자 당산제 큰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여성 소리꾼 전옥희를 초청하여 배뱅이굿 한마당을 펼쳐 큰 관심이 쏠렸다. 이러한 전통의식이나 놀이야말로 지역민들을 화합시켜 명랑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적인 정신이요, 원동력임을 생각할 때,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 나가는 기본 질서라는 논리가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작게는 배뱅이굿을 통하여 함께 울고 웃는 재미있는 공연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웃이 하나가 되고, 그래서 지역민들의 화합과 나눔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더욱 컸다. 전옥희 한국 사람으로 배뱅이굿 한 가락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매우 유명한 서도의 창극조 소리이다.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
어릴 때 참꽃 따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누님이 “누나 몫은?” 하는 말에 그만 빙긋 서러운 일흔 나이테 누님 가신 진달랫길 진달래는 김소월이 아니더라도 다 좋아하는 우리 한겨레의 얼넋 꽃이다. 잘 알고 있겠지만 진달래에는 참꽃이 있고 개꽃이 있다. 참꽃은 개꽃인 철쭉과 달리 따 먹기도 하고 술로 빚어 마시기도 한다. 진달래는 긴긴 역사 속에서 쌓아 올린 우리 한겨레의 얼이자 넋이다. 꽃은 다 좋고 어느 꽃을 사랑해도 좋으련만 여름의 무궁화와 함께 봄의 진달래를 아무 구김살 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한국사람이라 하겠다. * 얼넋 : 정신과 영혼
예전에 음식을 얹어 나르거나 방에 놓고 식탁으로 쓰는 상(床)의 종류를 소반(小盤)이라고 합니다. 소반에는 다리 모양새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지요. 다리가 하나뿐인 상은 “외다리 소반[獨脚盤, 單脚盤]”이라 하고, 다리가 셋인 것은 “삼각반(三脚盤)”이라 하며, 다리 모양이 개의 발같이 조각한 것은 “개다리소반[狗足盤]”이라 하고, 호랑이의 발같이 조각한 것은 “호족반(虎足盤)”이라 합니다. 또 말의 발같이 조각한 것은 “마족반(馬足盤)”이라 하고, 대나무 마디같이 조각한 것은 “죽절반(竹節盤)”이라 하며, 잔치 때에 쓰는 것으로 다리가 높은 상은 “고각상(高脚床)”이라 하지요. 또 소반의 판을 이리저리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은 “회전반(回轉盤)”이라 하고 소반에 붉은 칠을 한 것은 “주칠반(朱漆盤)”이라 하며, 판에 자개를 박은 것은 “자개상”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반이 관가로 출장 다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고상(公故床)이 그것인데 옛날 고관이 궁중이나 관가에서 숙직할 때 집의 노비들이 이 상에 음식을 얹어서 머리에 이고 날랐다고 하지요. 번(番) 곧 숙직이나 당직을 할 때 자기 집에서 차려 내오던 밥상이라 하여 “번상(番床)”, 바람구멍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