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벼룩이자리꽃”이라고 하면 “무슨 꽃?” 이라고 반문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사전에서는 ‘한해살이풀’이라고 풀이하고 있는 이 풀(꽃)은 피어있는 모습이 앙증맞고 매우 귀엽다. 이 꽃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석죽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0~25cm 정도이고 가늘며, 뿌리에서 뭉쳐나고 잘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달걀 모양이다. 4~5월에 흰색 오판화(五瓣花)가 취산(聚繖) 화서로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를 맺는다. 밭이나 들에 나는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말에서 유래한다는 말도 없을뿐더러 실물을 보지 않고 국립국어원의 사전풀이를 읽어 보면 언뜻 무슨 풀(꽃) 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특히 “오판화(五瓣花)”니, “취산(聚繖)화서”니, 열매가 “삭과(蒴果)”로 맺는다느니 하는 말들은 어른이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어렵다. 하물며 아이들이 이 사전을 본다면 어떠할까? ▲ 일본말 '벼룩이자리'라는 이름 말고 어여쁜 우리말 이름은 없을까?("이명호의 야생화" 누리집 제공) 식물의 이름과 그것을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한라산에서는 복수초가 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월 18일치 <온라인한라일보>에 “최근 제주시 절물자연휴양림에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가 노랗게 하나 둘씩 피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새봄을 알리는 복수초는 '얼음새꽃' '설연화' '원일초' 등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복과 장수를 의미하는 한자어로 구성된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 '슬픈 추억'이다. ”라며 복수초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원한 관계에 있는 꽃인가 싶지만 여기서 말하는 복수초(福寿草)는 복수(復讐)와는 전혀 다른 꽃이다. 노란 햇병아리 같은 어여쁜 꽃 이름이 왜 하필 복수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수초(福寿草, フクジュソウ, 후쿠쥬소-)란 이름은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한자말로 우리가 따다 부르는 것이다. ▲ 눈을 뚫고 올라와 핀 얼음새꽃(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복수초” 풀이가 있지만 어디에고 꽃이름의 유래는 없다. 풀이를 보자.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5~30c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고 세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1702년(숙종28)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 이형상이 관내 순시와 한 해 동안 거행했던 행사 장면을 제주목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40폭의 채색도로 그리게 한 화첩이다. 매 화폭의 아래에 간결한 설명을 적고, 호연금서(19번)라는 이름의 그림 한 폭을 곁들여 총 41폭이다.당시 제주 관아, 성읍, 군사 등의 시설과 지형, 풍물 등을 기록화로 남겼으며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다. (보물 652-6호) 탐라순력도 14번 째 그림에는 2종 3개의 살꽂이 솔이 있다. 1자눈섶과 훅관정곡의 살꽂이소을 두 개가 있는 데 1자 논섶은 숫자로 기재되어 있다/ 이로선 1자 눈썹은 살꽂이 소의 개수구분 기호임을 알 수 있다. 탐라순력도에서 솔포나 솔판 그림은 제주목에 10군데. 정의현과 대정현에 11군데 등 모두 21곳에서 나온다 아래 그림은 24번째 그림 명월사회(斜會)에 나오는 과녁의 부분도이다. 솔포에 물림대와 조절끈으로 세워져 있으며 일자 눈썹은 태극이괘, 그리고 흑단정곡과 백적벡심으로 되어있다. 눈섶 부분에 왜 태극 이괘가 그려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주역에서 남쪽이고 헛개 태양을 상징할 수도 있어 두 개의 태양
[한국문화신문 = 이나미 기자]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조선희)은 2월 17일부터 3월 1일(일)까지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 3기 기억수집가 20여 명을 모집한다. 2013년 시작해 올해 3회를 맞는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는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해 사장될 수 있는 서울 고유의 미시사적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사업 시작 이후 현재까지 846명의 시민이 참여해 1,369개의 일화가 수집되었으며 음성으로 채집된 이 기억들은 현재 메모리인서울프로젝트 누리집과 서울도서관 메모리스튜디오에서 들을 수 있다. 기억수집가들은 녹음장비를 들고 서울 곳곳을 찾아가 시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서울에 대한 기억을 채록하게 된다. 또 서울도서관 메모리스튜디오를 거점으로 그동안 수집된 이야기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즉석에서 기억 제공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맡는다. 기억수집가로 선정되면 10주간의 소양 교육을 거친 후 주제별 실행공동체(COP) 활동 등을 병행하며 11월 말까지 기억수집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13년부터 50명의 시민들이 기억수집가로 활약해 왔다. 기억수집가 선발은 서류 및
[한국문화신문 = 교토 전수희 기자]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여섯 달을 앞두고 27살의 나이로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조선청년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모임이 그가 다니던 교토 동지사대학 교정에 있는 그의 시비(詩碑) 앞에서 어제 16일(월) 오후 3시에 있었다. ▲ 교토 동지사대학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에 바쳐진 꽃 ▲ 재일한국시인, 일본시인공동 윤동주 추도회를 이끈 시인 김리박 공동 대표 이 추모회를 주최한 사람들은 재일한국시인,일본시인 공동 윤동주시인추도회 로 재일본문학회 회장인 김리박 시인이 한인 공동대표를 맡아 이번 행사를 열었다. 추도회가 있기 전까지 쌀쌀하던 교토의 날씨가 추도회날은 화창한 봄날처럼 포근했다. 오늘의 일본 시인들은 윤동주 시인의 목숨과 재능을 앗아간 죄를 곱씹어 생각하면서 다시는 이런 끔직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고두고 반성하고 추모하는 뜻과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우리 한국 시인은 앞으로도 일본 시인들의 그 맘과 뜻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손을 잡고 어울려살며 서로 절차탁마하여 좋은 창작품을 내었으면 합니다 라는 김리박 공동대표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어서 한남수 (한글
[한국문화신문 = 교토 이윤옥 기자]대덕사(다이토쿠지, 大徳寺)의 대덕이란 이름은 절이 건립되기 전의 고려(高麗) 연호지요. 그런데 스님은 1459년 대덕사의 주지가 조선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 한국인 주지가 바로 전대의 주지를 지낸 여소이며 그 스님을 그린 화가 문청도 조선인 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이는 미국인 최초로 일본미술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01~96) 박사가 그의 책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2008』의 대덕사 삼문(三門)의 고려 16나한상 편에서 한 말이다. 기자는 2월 14일(토) 어제 오후 2시쯤 교토시 서북쪽 외곽에 있는 임제종 사찰인 대덕사를 찾았다. 임제종대덕사파 총본산인 만큼 규모도 엄청나서 30만평 부지에 말사만도 23개소에 달하고 있는 절이다. 평소 코벨 박사의 글을 읽기도 했거니와 기자 역시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글을 쓰는 사람으로 교토에 발걸음을 한 김에 코벨 박사의 발자취도 돌아 볼겸 대덕사를 찾았다. 날씨는 쾌청했으나 약간 쌀쌀했다. 교토역에서 버스로 금각사 방향으로 40분을 달리면 닿는 곳이다. ▲ 삼문(일명 金毛閣) 안에는 고려시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세종실록 卷131 오례(五禮) 무과전시의(武科殿試儀)의 살꽂이 솔 그림 주례에 기준한 정곡 관혁의 구조 세종실록에는 돼지를 그려 넣는다 했다 [웅후] ◎ 武科殿試儀[원문] 前二日, 兵曹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射壇南向; 幄次於帳殿之後,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南向; 訓鍊觀張步射之侯; 【遠侯距壇二百四十步, 以靑色布爲質, 崇廣丈八尺三分。 其廣而鵠居一, 鵠方六尺, 白漆皮方制之, 棲於侯中, 畫以豕首。 侯左右相距五十步, 竪旗爲標。 侯後五十步, 左右相距七十步, 竪旗爲標。 取遠至者中者。 及者。 中侯距壇一百八十步, 亦以靑色布爲質, 崇廣丈四尺, 鵠方四尺六寸有奇。 近侯去壇八十步, 以白漆皮爲質, 崇廣四尺六寸, 皆畫以豕首, 取中者。 세종실록 135권 오례 / 군례 서례 / 사기 / 웅후미후시후과녁 조 같은 실록이지만 약간 다른 서술의 살꽂이 솔이 나온다. 원후와 웅후와 미후를 3종으로 나누고 그림과 함께 해설이 있다. 왕의 살꽂이 솔은 붉은 빛에 곰의 머리를 그리고,. 종친과 신하는 청색포에 순록의 머리를 그리고 흰색가죽에 돼지머리 살꽂이 솔[豕侯]을 그려 붙인다 했다.
[한국문화신문 = 김연갑 국가상장연구회 위원] 애국가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헌을 꼽는다면 1965년 발행된 《배재팔십년사》(培栽八十年史)이다. 이 책은 아펜젤라(appenzeller)목사가 설립한 신학문 발상지 배재학당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여기에 애국가에 대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정초식 기념식장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조선가독립가진보가를 불렀는데, 이중 조선가가 애국가라며 윤치호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벙커(D.H. Bunker) 교사가 편곡한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는 10년 전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6개월간의 조사 끝에 윤치호 작사 확정 유보로 결론을 내린 이후 기록이기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사자 문제를 미결로 남긴 이후, 윤치호를 작사자로 주장하는 편과 안창호가 작사자로 보는편으로 갈라져 최근까지도 논쟁이 이어졌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랜 논쟁의 주제가 바로 이 애국가 작사자 문제인데, 지난 해 까지도 국가싱징연구회 회원과 흥사단 간에 격한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로 주장하는 편에서 이 책은 20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조문기 어록 가운데서- 오늘 오전 11시,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 폭탄 의거의 주인공인 독립지사 조문기(19272008) 선생의 추모식이 경기도 화성에서 조촐히 열렸다. 추모식은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지부장 이호헌)와 광복회 화성지회 (지회장 신창우) 주최로조문기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화성시 화성매송초등학교에서 신용승(민족문제연구소 전 수원지부장)등 지역원로와 선생의 뜻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선생의 독립의지를 새기는 자리였다. ▲ 추모식에 묵념하는 참석자들 조문기 독립지사는 경기 화성(華城) 사람으로 1943년 5월 일본 가와사키(川岐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의 민족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여 이를 주도하였다. 그리고귀국 후인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의 유만수(柳萬秀)의 집에서 유만수우동학(禹東學)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일투쟁을 결의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국궁에는 활과 화살 그리고 살꽂이 솔[과녁]이 있다. 활은 손으로 쥐는 줌통을 시작으로 커브를 트는 오금, 활시위를 올리는 부분 고자가 있다. 발사 직전까지 화살을 올려 두는 출전피가 붙은 쪽이 윗장, 아랫쪽이 아랫장이다. 활시위 중앙에 화살을 매기는 부분을 절피라 한다.이에 대한 각의 명칭과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다. ▲ 그림 출처- 웬하키피디아 살꽂이란 솔 또는 과녁을 말한다. 표적[的]에다 가죽[革]을 붙여 관통[貫通] 하기를 바랬으니 관혁[貫革]이라 했고 독음은 과녁이다. 우리 문헌 자료에서 관혁(貫革)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왜어유해》(1781~1782, 上:40b)에서이다. 유성음인 ㄴ과 모음 사이에 있는 ㅎ이 탈락하면서 만들어진 과녁은 19세기 무렵에 나타나서 현대에 이르는데 우리 사전에서는 이미 어원 의식을 상실한 말로 보고 관혁(貫革)을 이 말의 원래 말로 처리한 것 이외에 별도의 관련을 맺어 주지 않았다. 16세기에는 관혁(貫革)의 의미를 갖는 고유어로 솔이 있었다. 관적(貫的 사적(射的) 표적(標的) 등이 비슷하게 쓰인다. 이때 관의 중앙을 관중, 적의 중앙을 적중이라 하며 모두 정확하게 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