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병철님의 《사물의 소멸》이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제 땅과 하늘이 아니라 구글 어스와 클라우드에 거주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다른 사람)와 마주치지 않는다. 우리는 탈사물화한 세계, 정보가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설파한 글입니다. 슬기말틀(스마트폰)은 절대적 기능을 하는 디지털 성물이 되어가고 있고 누리집마다 사람을 꼬드기는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우린 널려있는 주변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세상을 살고 있고 먼 이야기들이 검색어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질 때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달아 놓은 댓글에 함몰되어 스스로 판단력을 내려놓고 암묵적 지지자가 되기도 합니다. 검색 단어 몇 개만으로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해 버린 빅데이터의 영향으로 같은 주제 같은 색깔의 데이터만 물어다 주는 디지털 편향인 세상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집을 더욱 공고히 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본인은 변고를 겪은 뒤 놀람과 걱정이 병이 되어 신하들을 이끌고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 마음이 없습니다. 부득이 둘째 아들 혼(광해군)에게 국사를 섭정하고 영토를 보존하도록 명했고, 본인은 적에게 쫓겨 저희 땅에는 몸 둘 곳이 없으니 스스로 식구 몇 명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즉시 (황제에게) 아뢰어 실행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소방은 부모를 따르듯 대국을 받들고 있습니다. 자식이 위기에 처하면 부모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혹시 황제의 허락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적의 예봉이 날로 닥쳐오면, 본인은 (압록)강을 건너 명(命)을 기다리겠습니다. 급히 처리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영진 《임진왜란》에서 재인용) 선조가 요동도사에게 보낸 자문(咨文, 조선의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외교문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북상해오자 서울을 버리고 줄행랑을 놓은 선조는 평양도 위험해지자 다시 북으로 올라가 압록강 변 의주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대동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다급해진 선조는 자기가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들어갈 테니 제발 자신을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지난 3월 3일과 28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탈원전, 반핵 운동 등 사회운동도 앞장섰으며, 대표적 친한파로서 한국에서도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던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이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들의 고뇌와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문화정보실 자료 제공-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1.31~2023.3.3 (향년 88세)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만엔원년의 풋볼,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체인지링, 책이여 안녕 등 【작품 1】 《동시대 게임(同時代ゲーム)》 주인공 ‘나’는 멕시코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강사다. 멕시코 체재 중, 신관(神官)이었던 아버지의 직업인 ‘마을=국가=소우주’의 신화와 역사를 쓰는 일을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나’의 고향인 ‘마을=국가=소우주’는 도쿠가와 시절에 권력에서 도망쳐 탈번(脱藩)한 사람들이 시코쿠의 산속에 창건하였다. 메이지 유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어머니께서는 젊어서부터 한 번 보거나 들으신 것은 종신토록 잊지 않으셨으니, 궁중의 옛일부터 국가 제도, 다른 집 족보에 이르기까지 기억하지 못한 바가 없으셨다. 내가 혹시 의심스러운 바가 있어서 질문하면 하나하나 지적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으셨으니, 그 총명과 박식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다. 「혜경궁지문」, 《순조실록》, 1816년 1월 21일 / 20쪽 혜경궁 홍씨. 정조의 어머니이자 순조의 할머니인 그녀는 죽은 다음 ‘헌경(獻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총명하다고 해서 ‘헌’, 늘 조심스러웠다고 해서 ‘경’이라는 글자를 썼다. 칠십 년 가까이 계속된 그녀의 궁중생활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이런 살얼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지고, 조심스러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열 살에 입궁한 혜경궁은 빨리 어른이 되었다. 1744년 가례를 올리고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약 18년 동안 이어진 불안한 혼인 생활,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외척 척결에 따른 친정의 몰락, 그리고 마침내 손자 순조가 즉위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칠십 년 궁중생활이었다. 정병설 작가가 쓴 이 책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새벽 장거리 산행을 하기 위하여 세 시쯤 집을 나섭니다. 아무리 빨리 새벽을 맞아도 길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은 아직 꿈속에 헤맬 거로 생각하겠지만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빠릅니다. 도시에서는 새벽이슬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밤새 맺힌 이슬이 이른 아침의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새벽이 살아있음을 이슬을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이슬은 밤새 뿌리가 흡수한 물이 밖으로 빠져나온 것입니다. 넘치기 전에 비우는 것이 좋습니다. 비움을 실천하지 못하면 욕심을 부리게 되고 결국 욕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이 들면서 기상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짐을 느낍니다. 새벽 시간이 좀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안온한 이불 속에서 실컷 게으름을 구가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은 행복입니다. 새벽의 어둠은 한밤중의 어둠과 그 깊이가 다릅니다. 새벽은 밝음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슴푸레한 사물이 점점 뚜렷하게 다가올 때의 환희를 생각합니다. 중국 송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인생은 단품입니다. 영산홍 꽃떨기도 봄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는 한국의 어린이날이었다. 일본도 이날은 ‘어린이날(고도모노히 , 子供の日)’이다. 일본의 어린이날을 ‘탄고노셋쿠 (端午の節句 )’라고 하는데 원래 이날은 남자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비손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이날은 형형색색의 모형 잉어를 띄우는데 이를 “고이노보리 (こいのぼり)”라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 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긴 장대에 모형잉어를 매달아 놓았지만 아파트 생활을 하는 현대는 아파트 베란다에 모형잉어를 장식하기도 한다. 왜 모형 잉어인가? 중국 《후한서 (後漢書)》에 보면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 (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에서도 잉어는 입신출세와 건강의 상징으로 믿어왔다. 일본의 단오풍습은 에도시대 (江戶時代.1603-1868)에 무사집안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입신출세란 ‘덕천가강 (도쿠가와이에야스)’ 같은 씩씩한 장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이면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갑옷과 투구 등을 현관에 장식으로 걸어두고 아이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효백 교수가 《한국 진달래 오라》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표지에는 제목 옆에 작은 글씨로 ‘일본 무궁화 가라’가 적혀있고, 또 표지 윗부분에 ‘어느 경솔한 자가 진달래를 놔두고 궁벽한 무궁화를 조선의 꽃이라고 불렀는가’라고 적혀있습니다. 표지에 적혀있는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강 교수는 ‘일본 무궁화를 왜 우리나라 국화로 하느냐? 그보다는 한국 진달래를 국화로 해야 한다’라고 목청껏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궁화는 일본 열도 전체에 자생함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금북정맥 이남에서만 자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일본에는 무궁화에 대해 많은 자료가 있음에 반하여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강 교수는 이런 무궁화에 대해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전에 펴낸 책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자세히 얘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책의 끝에 그럼 무궁화 대신 어느 꽃을 국화로 봐야 할지에 대해 여러 후보 꽃을 들면서 그 가운데 진달래를 유력한 후보로 거론했습니다. 그렇게 강 교수는 그 책에서는 진달래를 유력한 후보로 거론하고 책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UFO는 우리말로는 ‘비행접시’ 또는 ‘미확인 비행물체’ (Unidentified Flying Object)라고 말한다. UFO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상한 모양의 비행체 사진을 증거로 제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에 경기도 가평군에서 문화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UFO의 생생한 사진이 공개됐다. 그러나 UFO라고 주장하는 사진은 많지만, 사진에 찍힌 물체가 실제로 지구에 착륙했거나 파편이라도 남은 흔적은 아직 발견된 적은 없다. 1952년 7월 미국의 워싱턴 D.C. 공항 근처에서 목격자의 진술과 일련의 레이더 탐지 결과가 일치하였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공학자, 기상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UFO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는 극비로 분류되어 한동안 공개되지 않아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목격한 것의 90%는 미지의 물체와 빛의 반사가 작용한 현상이라고 밝혀졌다. 곧 인공위성, 유성, 오로라, 기상관측기구, 비행기, 새떼, 풍선, 탐조등, 구름의 사진을 UFO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부는 기상학적 조건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공자는 논어에서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니라 곧 "나의 도(道)는 한 가지로 일관된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붙여 놓은 사회적 약속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물의 이름은 숱한 세월을 거친 지혜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그 일관성이 이름을 낳은 것이지요. 우린 일관성 하면 늘푸른나무 곧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낙락장송의 멋스러움을 떠올리지요.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고독한 귀양살이를 할 때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 이상적이 고마워서 그려준 그림입니다. 그리고 《논어》의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를 그림 귀퉁이에 적어 두었지요.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사람도 어려움을 당했을 때 진정한 친구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지요. 세상인심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람이 성공하고 부유하게 살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실패하고 가난해지고, 귀양을 떠나게 되면 외면하게 마련입니다. 세한도를 그린 추사 김정희는 물론 대단한 사람이지만 어쩌면 스승에 대해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인 제자 이상적이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릅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꽃은 무궁화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을 불렀고, 무엇보다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무궁화는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닙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무궁화가 왜 나라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파고들어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강 교수는 전 세계의 나라꽃을 조사해보니, 세계 각국은 나라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5가지 특성을 보유했거나, 보유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⓵ 지리성 : 원산종 또는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거나 국토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꽃 ⓶ 민주성 :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정이 아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선정한 꽃 ⓷ 역사성 : 예로부터 그 나라의 신화, 역사, 문학과 예술에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한 꽃 ⓸ 접근성 :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고 국민 일상생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꽃 ⓹ 상징성 : 나라와 겨레의 특징과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꽃이거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특산종 그런데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