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고양시 덕양구에 효자동이라고 있지요?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면 북쪽 산사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지역이 효자동입니다. 동네 이름이 효자동이니, 뭔가 효자와 관련이 있는 동네라는 것은 짐작하실 테고... 그런데 전국에 효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이 많지만, 이곳 효자동은 다른 곳과는 또 다른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효자 박태성과 호랑이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 사는 효자 박태성이 있었습니다. 박태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 효자동에 모신 아버지 박세걸의 묘를 찾아와 문안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태성이 아버지 묘를 찾아오려면 무악재를 넘어야 합니다. 어느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박태성은 무악재를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불쑥 박태성 앞에 나타났습니다. 박태성이 얼마나 혼비백산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사실. 심장 약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바지에 오줌을 줄줄 쌀 상황입니다. 그런데 호랑이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박태성을 향하여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등을 내보입니다. 그리고 자기 등에 타라고 몸짓을 합니다. 순간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을 박태성의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에 갔었다가 마침 박사마을에는 신숭겸 장군의 묘도 있어, 이곳도 둘러보았습니다. 신숭겸은 후삼국 시대인 918년 배현경, 복지겸, 홍유 등과 힘을 합쳐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열게 한 충신입니다. 그런데 신숭겸은 여기에 더하여 왕건을 위해 대구 팔공산에서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 무덤이 3개인 신숭겸의 묘 팔공산이라면 당시는 신라의 영역인데, 어떻게 신숭겸이 여기서 목숨을 잃었을까요? 927년(태조 10) 견훤이 신라로 쳐들어가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생포하여 강압적으로 자결하게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경주로 향했지요. 그런데 왕건의 군대는 대구 팔공산 근처에서 도리어 후백제의 군대에 포위되어 태조 왕건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신숭겸이 나서서 태조를 피신하게 한 후 자신이 태조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태조의 마차에 올라 타 후백제 군대와 접전을 벌이다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려의 왕으로 오인한 후백제 군사가 전리품으로 목을 잘라 가지고 가는 바람에 머리 없는 시신으로 남구요. 전투가 끝나고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간 왕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2014년 1월 초에 의뢰인을 방문하기 위해 춘천시 서면 현암리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서면이 박사가 많이 나왔다는 박사마을이더군요. 그래서 온 김에 박사마을 선양탑을 둘러보았습니다. 선양탑에 새겨진 이 마을 출신 박사들의 명단을 보니 이 조그만 마을에서 무려 138명의 박사가 나왔군요. 그리고 명단을 새겨 넣은 대리석의 옆면은 비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올 박사들의 명단을 채워 넣기 위해 비워둔 것이겠지요. 박사들 명단을 살펴보니 낯익은 한승수 국무총리의 이름이 보이는데, 한승수 총리는 이 마을에서 3번째로 박사 학위를 받았네요. ▲ 박사모를 쓴 박사마을 선양탑 선양탑에는 박사마을답게 박사 모자를 올려놓았고, 또 탑 하단의 대리석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박사마을」서면! 춘천에서는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 바로 눈앞에 춘천 시가지가 펼쳐져 있지만 북한강이 가로막아 도도히 흐르고, 뒤로는 고산 준령이 솟아 교통이 늘 불편하기만 했던 곳,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했고, 참을성과 진취성이 강했던 주민들, 자신들만은 보다 살기 좋은 곳,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넓은 세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홍대 앞 기차건물을 아십니까? 홍대입구역 사거리에서 홍대 쪽으로 100여 미터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가늘고 길게 건물들이 일렬로 골목을 따라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건물들이 마포구 서교동 365-2에서 26번지까지 모두 23개의 필지에 들어선 가늘고 긴 건물 집합으로 너비가 2 내지 5 미터, 길이가 250 미터에 달하는 기차건물입니다. 모여 있는 건물들이 기차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서 있어 기차건물이라고도 하겠지만, 실제로도 기차와 관련이 있던 건물들입니다. ▲ 기차건물 전경 강북 강변도로를 달리다보면 마포구 당인동 한강변에 1924년에 지어진 당인리 발전소(현 서울화력발전소)가 있습니다. 화력발전소이니 발전소를 돌리기 위한 석탄이 있어야했겠지요? 그래서 용산에서부터 당인리 발전소까지 기찻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기찻길이 홍대 앞 기차건물 옆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참! 아니지요. 기찻길이 먼저 있었는데, 그 기찻길의 철둑을 따라 판잣집들이 하나, 둘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당인리 발전소가 땔감을 석탄에서 가스로 바꾸면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기찻길은 없어지고, 그 기찻길을 따라 들어섰던 집들만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3월 26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겠습니까? 대부분 아시겠지만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 10시에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기념관 강당으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셔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더군요. 강당 단상 전면에는 안의사가 하얀 한복을 입고 앉아 계십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정성들여 만들어 보낸 한복을 입고 계신 사진이지요. 바로 사형당하는 날 입으셨던 것이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수의를 짓는 심정으로 이 한복을 만드셨을 것입니다. 식은 이혜균 기념관 사무차장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애국가를 부르는 순서입니다. 보통 다른 행사에서는 애국가 1절만 부르는데, 여기서는 4절까지 다 부릅니다. 4절까지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네요. 애국가는 늘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통 1절만 부르니까 나머지 가사는 잊기 쉬운데, 그래도 이렇게 4절까지 부르니 다시 한 번 애국가 전체를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측에서 나눠준 행사 순서지에는 애국가 가사가 4절까지 다 적혀있더군요. 혹시 사람들이 2절 이하 가사를 잊어버렸을까봐 친절하게 넣어준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