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 친일문학인들과 달리 붓을 꺾었던 늘봄 전영택 다시 한 칼이, 내 가슴에 원수 왕의 충신 되란 맹세리니 이 맹세 내 붓으로 써 펴내라니 아프구나 이 칼이 더 아프구나 몇 십 년 아낀 내 붓 들어 이 글을 쓰단말가 꺾어라, 꺾어라, 내 혼도 꺾이누나. 늘봄 전영택 선생의 벽서라는 시입니다. 선생은 일제 말 왜놈들이 우리의 문학인들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의 글을 강요할 때 저 벽서라는 시를 쓰고 붓을 꺾습니다. 서정주,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요와 협박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들이 요구하는 붓을 들 때에 늘봄 선생은 붓을 꺾었습니다. 늘봄 선생을 보면서 저들의 말은 한낱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그리고 일제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게 중에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친일의 붓을 놀린 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설가 김동인씨는 일제가 항복 선언하기 불과 2시간 전까지도 총독부 학무국을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을 꾸리자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놓기까지 합니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의 붓을 들 수밖에 없다고 칩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
▲ 《그림, 영혼의 부딪힘》, 김민성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헬레나와이즈앤컴퍼니라는 예술과 의료를 연결하여 마케팅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김민성 대표가 《그림, 영혼의 부딪힘》이란 책을 냈습니다. 그림, 영혼의 부딪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열망하는 화가의 영혼의 부딪힘을 목격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어서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저하고는 성공회대 인문공부 11기 동기입니다. 김대표가 이번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서양화가들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할 때에,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은 꽤나 많이 나왔고, 저도 이런 책은 틈틈이 읽어보았기 때문에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는 그 동안의 미술사 관련 서적에 또 하나의 책을 얹는 정도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김 대표가 화가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기존의 책과는 달랐습니다. 김 대표는 한 화가의 인생 스펙트럼에서 한 가지 점을 주제로 잡으면 우선 그에 관한 자신의 경험이나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풀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그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보자든가, 그 시간으로 떠나보도록 하자면서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현인 선생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속으로 되뇌면서 이 글을 씁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의 과거로의 회상 장면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철수 현장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떠오른 것이지요. 1.4 후퇴 때 미 함정에서 내려준 그물망 같은 줄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소년 덕수, 그의 등에는 어린 여동생 막순이가 꼭 붙어 있습니다. 덕수는 막순이에게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다. 꼭 붙잡으래이!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러나 거의 함정 위에까지 다다랐을 무렵 막순이는 그만 다른 피난민에 떠밀려 떨어지고 맙니다.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소년 덕수의 피 토하는 아우성. 여기서 굳세어라 금순아 1절 후반부 가사가 다시 떠오릅니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먼저 배에 올랐던 덕수 아버지는 딸을 찾으러 배를 내려가면서 덕수에게 내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이다.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잘 보살피거래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그게 그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제주 재판 갔을 때 가보았던 4.3 평화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 평화공원 사무실에서 4.3과 평화라는 잡지를 받았었는데 글 중에 저승사자 탁성록이란 글이 눈길을 끄는군요. 탁성록은 당시 제9연대 정보참모로 중위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증언은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라고 몰아 죽였다거나 여러 여성을 겁탈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탁성록은 아편중독자였군요. 아편에 취하니 눈에 뵈는 게 없었나봅니다. 탁성록은 제주에서만 만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고향 진주로 돌아가 특무대장을 지내며 고향 인근의 주민들을 보도연맹원으로 몰아 집단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는군요. ▲ 제주의 저승사자 탁성록 같이 근무했던 김정무 대위도 훗날 이렇게 증언합니다. 탁성록은 마흔이 다 된 사람인데 정보참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악대에서 나팔 불던 놈인데 어떻게 특채됐는지 나보다도 먼저 대위를 달았어요.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여자들 성폭행을 많이 했어요. 이 정도 인간이라면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는 비열한 인간상이니까 제가 이 정도만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책을 읽다가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와 결혼하였던 궁중무희 '리심'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아리따운 리심을 알게된 플랑시는 고종에게 리심을 요구하여 리심을 선물 받은거죠. 당시 궁중무희는 노비 신분이고, 더구나 왕의 명령이니 플랑시는 어렵지않게 리심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 그런데, 날이 갈수록 리심의 아름다움과 지적인 총명함에 빠져든 플랑시는 3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리심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리심을 데리고 프랑스로 귀국하여 결혼을 하지요. 아마 리심이 최초로 프랑스 땅을 밟은 조선여인이 아니었을까요? 그 후 리심은 플랑시가 모로코 공사로 부임하자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땅도 밟습니다. 이 역시 아프리카에 상륙한 최초의 조선여인? 조선여인 리심에 비친 서양세계는 어떠했을까요? 또 낯선 백인들 땅에 유일한 조선여인 리심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요? 리심의 행복은 1896년 플랑시가 다시 조선 공사로 부임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고종이 리심을 미끼로 프랑스의 힘을 빌리고자 플랑시를 회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요즈음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요? 12. 11.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더니 지금까지 그 기세를 몰아오며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이 기세대로라면 독립영화로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워낭소리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15일(월) 저도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하니까, 흐~음~~ 영화가 뜬다고 하니까, 평소 영화 잘 안 보는 양변까지 영화를 보는구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영화를 감독한 진모영 감독과의 개인적 인연이 저를 더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나눔문화라는 시민단체 회원으로 있는데, 나눔문화 회원들 중 같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여행를 같이 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행을 통해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며 지내오고 있지요. 그렇기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극장에 걸리면서, 당연히 같이 모여 영화를 보았는데, 저는 그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일 송년모임에서 진감독을 만날 텐데,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
▲ 《다니니까 길이더라》,박희채, 책과나무,2014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박희채 전 영사의 책 《다니니까 길이더라》를 읽었습니다. 책은 저자가 오랜 직업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화나 삶에서의 느낌을 장자(莊子)적 관점에서 풀어본 수필집입니다. 저자는 2001. 12. 캐나다 밴쿠버에 근무할 때에 《장자》에서 종교를 초월한 인간 삶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아예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종교철학과까지 들어가 장자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더니, 장자의 생명적 사유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요.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지요. 책을 통해 장자의 사상을 알아 가면서, 더 큰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정된 나의 세계에 빠져 살던 나에게 타자(他者), 그리고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 생각은 옳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대상을 판단하며 살아왔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서도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여운 한 마리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바깥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기록한 내용을 장자적 사유를 바탕으로 반추해본 것이다. (중략) 내 우물만이
[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 몸을 받기 전에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이던가. 자라서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나라고 하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이런가 천등산 봉정사 고금당 기둥에 있는 주련(柱聯)으로, 청나라 순치제가 읊은 게송 중 일부랍니다. 이 또한 산사의 주련에 나오는 주련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련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청나라 순치제가 읊은 게송 중 일부라는 글귀에 눈이 갔습니다. 아니? 청나라 황제가 이런 게송을 읊었단 말인가? 순치제라면 청나라 제3대 황제(1643~1661)인데, 어떻게 청나라 황제가 이런 게송을 읊는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저로 하여금 순치제에 대해 찾아보게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순치제는 6세 때 황위에 올라, 처음에는 숙부 도르곤과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의 6남 지르하랑이 좌우 섭정왕으로서 정무를 대리하였답니다. 그러다가 1650년 도르곤이 죽자 직접 통치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10년만인 1660년 총애하는 후궁 동악비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1661년 황위를 황태자 애신각라 현엽에게 물려주고 출가를 하였다는군요. 이 현엽이 바로 그 유명한 강희제입니다. ▲ 청나라 순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산사의 주련을 보면 만공의 스승 경허 스님의 일화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인용해봅니다. 천장암에 모시고 있던 늙은 어머님이 생신을 맞은 날, 스님은 어머니를 위해 특별 법회를 열었다. 많은 불자들이 법문을 듣기 위해 모여든 가운데, 법상에 앉아 있던 스님이 벌떡 일어나 주장자를 한 번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스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불자들 앞에서 옷고름을 풀고 알몸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들렸고, 아낙들이 자리를 박차 밖으로 나갔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 놀란 것은 경허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경허가 실성을 했구나! 세상에 이런 망측한 짓을 내 앞에서 하다니! 스님은 벗었던 옷을 다시 주어 입은 뒤,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의 젖을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빨면서 자랐고, 어머니는 나를 벌거벗겨 씻기며 귀엽다고 만지고 예쁘다고 주무르셨소. 이제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늙고 나는 장성했으되 어머니와 자식 사이는 변함이 없음에도 어머니는 오늘 벌거벗은 내 몸을 보시고 망측하다 해괴하다 질겁하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남자들이라면 많이 들어본 노래이지요? 저도 젊었을 때 술 한 잔 걸치면 젓가락 두드리며 이 노래 부르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이런 노래를 1930년대 말 만공스님이 상궁나인에게 법문을 행할 때 어린 행자에게 부르게 하였답니다. 절 근처 나무꾼들이 어린 행자 스님을 놀리느라 가르친 노래라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노래임이 맞을 것 같습니다. ▲ 만공스님 초상화(수덕사 금선대) 실제로 상궁나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얼굴을 붉히거나 혹은 키득거리며 쑥덕거렸다고 하니까, 그들도 같은 뜻으로 들었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만공스님이 법문을 행하면서, 그것도 상궁나인들에게 법문을 행하면서 행자 스님에게 이런 노래를 하게 했을까요? 한민이란 분이 쓴 산사의 주련이란 책을 보면 만공스님은 행자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 후 다음과 같이 법문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노래 속에 만고불역의 핵심 법문이 있소. 세상의 모든 것이 법문 아닌 게 없지만 이 노래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어야 내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