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까닭 가운데 하나로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동 정벌을 한다면 명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텐데,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을까요? 원나라가 명나라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 간 뒤, 요동은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도 새로 나라를 세워 안팎으로 나라 기틀을 잡는데, 힘을 쏟느라고 아직 요동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기에는 힘이 달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요동은 원래 우리의 선조 고구려와 발해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라서, 명나라로서는 고려나 뒤를 이은 조선이 이를 차지하려 들까 봐 꽤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이미 공민왕 때인 1370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온 일도 있으니까요. 우왕 14년(1388)에도 명나라는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위의 반환을 요구하여, 이에 반발한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무산되기도 하였지요. 이제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국경 분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명나라는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자꾸 시비를 겁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명나라에 조선 건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명 황제 주원장은 조선 건국을 승인하는 문서에 이제부터 영토를 잘 지키고 간사한 짓을 하지 말아야 복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한반도나 잘 지키고 요동을 넘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그다음 해인 1393년에도 주원장은 조선이 첩자를 보내고 여진족을 유인하고 있다면서, 데려간 여진족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겠다고 협박합니다. 이에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선에 들어온 여진족들을 신속히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원장은 점점 더 안하무인입니다. 그해 사신 이념(李恬)이 황제 주원장을 알현하면서 똑바로 꿇어앉지 않고 머리를 구부렸다고 일국의 사신을 몽둥이로 죽도록 팹니다. 그리고 뒤이어 황제 생일을 축하하러 명나라로 들어가던 사신 일행은 입국을 거부당하여 영문도 모르고 돌아옵니다. 조선은 이념이 겨우 살아서 돌아오고서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지요. 정도전은 이런 명의 무례한 태도에 뭐라고 했을까요? 뚝심으로 조선 건국을 밀어붙인 정도전이 그저 “네! 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정도전은 명의 조선 승인에 감사 사절로 명에 갔다가 올 때 산해관을 지나면서 명나라와 잘 지내면 좋겠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한판 붙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사신이 명나라에서 뚜들겨 맞고 돌아왔어도, 이에 굴하지 않고 군제(軍制)를 정비하고 군사를 모아 진법 훈련을 시키는 등 국방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그러자 주원장은 사신을 보내어 까불지 말라면서 괜히 말썽 일으키지 말고 동이(東夷)의 임금 노릇이나 잘하라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이들 사신이 아직 조선에 머무르고 있을 때 1394년 새해 벽두에 사신을 재차 보냅니다. 이번에는 조선이 장사배로 위장하여 명나라 정찰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사람 이름까지 거명하며 이들을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 직접 압송해 오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1394년 6월 1일 이방원이 명의 사신으로 가지요. 주원장은 이방원을 잘 보았는지 이후 당분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396년 초 새해 축하 사절로 명나라에 갔던 사신들이 억류되고, 수행원들만 명나라 예부의 공문을 갖고 돌아옵니다. 사신이 갈 때 명 황제 주원장에게 새해 인사하는 표전문(表箭文)을 갖고 갔는데, 표전문의 문구를 트집 잡아 작성자를 명나라로 압송하라는 것입니다. 표전문에서 은나라를 패망시킨 주 임금에 대한 사실을 인용한 것이 무례하기 짝이 없다나요? 말도 안 되는 트집인데, 주원장은 자기 나라에서도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신하들을 죽인 적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주원장은 문인들의 글에 대머리 ‘독(禿)’자나 빛날 광(光)‘가 있으면 자기의 출신을 업신여기려는 의도라며 작성자를 참형(斬刑)에 처합니다. 주원장이 젊은 시절 탁발승으로 밥을 얻어먹은 시절이 있었는데, 이 글자들이 탁발승이었던 자기를 업신여긴다는 것이지요. 또 도적의 ‘적(賊)’자나 이와 중국 발음이 같은 ‘칙(則)’자가 나오면 이는 젊은 시절 도적의 무리를 쫓아다녔던 자신을 조롱한 글이라며 또 죽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헌이라는 사람이 ‘천하에 도(道)가 있다’라는 글을 썼는데, ‘도(道)’자가 ‘도(盜)’자와 음이 같다 하여 또 죽입니다. 와! 이런 억지, 이런 생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어떡합니까? 힘이 약한 조선은 명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할 수밖에. 하여 전문을 작성한 김약항을 명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날강도 주원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표전문의 교정자도 압송하라고 하는데, 주원장의 주목적은 요동 정벌의 뜻을 가진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성계는 정총과 노인도, 권근만 추가로 압송하고 정도전에 대해서는 배가 부어오르는 병과 각기병을 앓고 있으니 도저히 보낼 수 없다고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합니다. 아! 이 약소국의 비애여! 약소국 조선의 읍소(泣訴)가 통했는지, 주원장은 압송된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변덕을 부리며 이방원의 오른팔인 권근은 돌려보내면서도 정총과 김약항, 노인도는 죽여버립니다. 도대체 왜? 왜? 왜? 이들이 억류되었던 동안 조선에서 신덕왕후 강 씨가 소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하여 황제 주원장에게 하직 인사를 올릴 때 정총, 노인도, 김약항은 신덕왕후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복을 입었는데, 주원장은 자기가 하사한 옷을 입지 않았다고 이들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권근은 주원장의 변덕스러움을 알았는지 아니면 사전에 귀띔을 받았는지 그대로 주원장이 하사한 옷을 입고 하직인사를 하여 무사히 조선에 돌아왔지요. 으~ 이 글을 쓰는 제 손이 분노에 떨립니다. 이것뿐입니까? 1397년 4월에는 조선에서 공물로 바친 말안장에 ’천(天)‘자가 쓰여 있다고 이를 불태워버리고 말안장 값이라며 57냥을 조선에 보냅니다. 이건 또 무슨 트집인가요? 사람이 어떻게 하늘(天)을 타고 다니느냐며 트집을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6월에 또 공물을 가지고 간 사신에 대해서는 아예 공물을 거부하며 요동에서 돌려보냅니다. 그때 사신에게 준 공문에는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려면 괜히 사람들을 수고스럽게 왔다 갔다 고생시키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나라나 잘 다스릴 것이며, 변경에서 말썽이나 일으키지 말라’고 합니다. 곧 요동 정벌의 헛된 꿈일랑 꾸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는 데에도 한도가 있습니다. 참다 참다 못 한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의 승인을 얻어 1397년 6월 14일 요동 정벌론을 공식화합니다. 여기서 정도전은 요동 출병은 단순한 정벌이 아니라 고토(古土) 회복임을 힘주어 말하지요. 주원장은 1398년에도 사신 조서가 가지고 간 표전문에 역시 조롱하는 글귀가 있다며 조서를 억류합니다. 조선이 과거 김약항 등이 죽임을 당하고 예물로 바친 말안장이 불태워진 것에 분을 품고 교묘하게 조롱하는 글을 표전문에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역관 곽해룡은 명의 내정을 탐지하려 했다며 같이 억류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과 같은 말도 안 되는 트집거리도 잡을 것이 없자 조서와 곽해룡이 이를 시인하는 자술서를 보내옵니다. 아마 조서와 곽해룡은 갖은 협박과 고문 끝에 허위 자백서를 쓰지 않았겠습니까? 이때는 조선의 조정에서도 그대로 순응하지 않고 일대 격론을 벌이지만, 결국 이번에도 명의 요구에 굴복하여 표문 작성에 관련된 세 사람을 명나라로 압송합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에 굴하지 않고 평양과 경원부에 성을 쌓고 군량을 경원부로 실어가며 두만강에 병선을 정박시키는 등 요동 정벌의 준비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정도전의 세력이 강화되고 자신의 세력이 약화하자 이방원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방원은 명의 목표가 정도전이고, 오히려 명에서는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도전에 반대할 구실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주원장이 1398년 윤5월 10일 갑자기 죽습니다. 이제 조선을 압박하던 주원장이 죽었으니, 이방원으로서도 요동 정벌을 반대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기회를 엿보던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은 1398년 8월 26일 살해된 것이지요. 이성계와 정도전이 추진한 요동 정벌이 실행되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명은 주원장이 죽고 왕위 계승 문제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고, 이에 반하여 조선은 정도전의 강력한 토지 개혁으로 민심을 얻고 국력도 신장하고 있었으므로 그때까지 명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던 요동은 쉽게 정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국 명나라가 다시 국내 혼란을 정비하고 반격을 가할 때가 되겠지요. 괜히 대국의 코털을 건드려 몇 배의 보복을 받을 수도 있지만 조선의 힘을 확인한 명나라와 외교적으로 잘 해결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
미세먼지 가득한 날, 당신에게 '한 모숨'의 숨결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뿌연 하늘 아래, 당신에게 건네는 '한 모숨'의 숨결 봄으로 달려가는 들봄달 2월의 설렘을 시샘하듯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채울 거라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대기 정체', '미세먼지 농도' 같은 딱딱한 한자어들이 가득하겠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맑은 공기 한 자락입니다. 이런 날, 여러분의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모숨'입니다. 손끝에 닿는 가장 따뜻한 하나치(단위) '모숨'은 한 줌 안에 들어올 만한 아주 적고 가느다란 뭉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이 말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 속에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세 가닥으로 모숨을 고르게 갈라 곱게 머리를 땋아 내려”가던 다정한 손길 속에 모숨이 있고, 고된 일을 마친 “일꾼들에게 담배 두어 모숨을 나누어주던” 넉넉한 인심 속에도 모숨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넘쳐나고 거창해야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공기가 탁해 숨쉬기조차 버거운 날엔, 그 어떤 말보다 내 코끝을 스치는 '한 모숨'의 싱그러운 풀 내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내 손가락 사이로 만져지는 가장 작고 확실한 생명의 하나치가 바로 '모숨'인 것입니다. 가장 작기에 가장 소중한 것들 '모숨'이라는 말은 비단 물건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주 작고 사소한 마음의 조각들에도 붙일 수 있습니다. "한 모숨의 햇살" "한 모숨의 희망" "한 모숨의 여유" 뿌연 미세먼지 때문에 세상이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우리 마음마저 흐려지게 둘 수는 없습니다. 비록 온 세상을 단번에 맑게 바꿀 수는 없어도, 지금 당장 내 마음의 창을 열어 '한 모숨'의 맑은 생각을 채워 넣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모숨'은 무엇인가요? 값비싼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방 안에서도 마음이 답답하다면, 잠시 눈을 감고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읽어보세요. 그때 여러분의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그 기분 좋은 울림이 바로 마음의 '한 모숨' 공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잿빛 하늘에 속상해하기보다, 그 속에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는 작은 풀잎 한 모숨을 발견하는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구석구석에 맑고 깨끗한 행복이 한 모숨씩 차오르기를 마음 다해 바라고 빕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 당신만의 '행복 한 모숨'을 나눠주세요 아주 작아서 평소엔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따라 유독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나요? 아이의 머리카락을 고르게 갈라 땋아줄 때 느껴지는 온기 한 모숨 지친 친구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모숨 퇴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모숨 여러분의 마음을 채워준 '한 모숨'은 무엇인가요? "나에게 오늘 [ ] 은/는 한 모숨의 선물이었다"라고 짧게 적어보세요. 여러분의 작은 적바림들이 모여,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할 커다란 숲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모숨 1. 한 줌 안에 들어올 만한 분량의 길고 가느다란 물건. (보기) 세 가닥으로 모숨을 고르게 갈라 곱게 머리를 땋아 내려갔다. (송기숙, 녹두 장군) 2. 길고 가느다란 물건의 수량을 세는 단위. (보기) 동근이는 담배 두어 모숨을 일꾼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한 줄 생각] 세상을 다 바꿀 순 없어도, 내 마음 한 모숨은 맑게 채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