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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아래 기독교ㆍ 이슬람 공존 '성 소피아성당'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투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성 소피아성당 (지금은 성당이 아닌 이슬람 사원으로 터키어 Ayasofya, 영어로는 Hagia Sophia, 한국인들은 아야 소피아, 성 소피아성당으로 부름)으로 그리스에서 유래한 '성스러운 지혜(Holy Wisdom)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양한 이름 곧,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자미(모스크), 성 소피아성당(아래, 성 소피아성당)으로 불릴 만큼 이 성당의 역사는 기구(?)하다. 건립된 지 1,5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건축물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 성 소피아성당을 건립한 사람은 서기 537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로 처음에는 정교회 성당으로 완공되었으며 이후 약 900년 동안은 기독교 중심지 역할을 했다. 거대한 돔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이 건축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비잔틴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이후 서구 건축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정복하면서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당 시절에 없었던 외부에 네 개의 미나레트(첨탑)를 세우고 내부 벽면에 있던 성모마리아 등의 수많은 성화(聖畫)를 회칠로 덮어버렸다. 이슬람 예배당(모스크) 내부에는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두는 것이 우상 숭배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기에 예수와 성모마리아 성화(聖畫)를 모두 완전히 지워버릴 수도 있었는데 회칠해 버린 것은 이슬람교 역시 기독교의 예수(이사)와 성모마리아(마리암)를 이슬람의 중요한 예언자와 성녀로 인정할 뿐 아니라 비록 교리는 다르지만, 이슬람 신앙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의 성화를 함부로 부수거나 훼손하는 것은 불경한 일로 여겨 없애지 않고 회칠해 버린 것이다. 그 덕에 성 소피아성당 벽면 일부의 회칠을 벗겨내어 성모마리아상을 볼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이 회칠이 일종의 코팅제 역할을 하여, 수백 년 동안 습기와 공기로부터 모자이크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었고 이곳은 1935년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찬란한 비잔틴 예술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값어치와 건축적 독창성을 인정받아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스탄불 역사 지구'의 핵심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편, 2020년 터키 정부의 결정으로 성 소피아성당은 다시 이슬람사원(모스크)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종교 시설로 이용되고 있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1층은 무슬림들의 기도처이며 관람객들은 엄숙한 모습으로 2층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대형 규모의 돔 형식의 외부모습에서 압도당하고 내부에 들어서면 다시 한번 동로마 제국 시절의 화려한 내부 장식 등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내부 벽에 그려져 있던 성모마리아 앞에서 한 관광객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자 성당 경비원이 바로 다가와 기도하지 말라고 제지하는 모습에서 이곳이 ‘이슬람 성전’이지 ‘기독교 성전’이 아님을 실감해본다. 한지붕 아래 두 살림이란 말이 실감나는 곳이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이다. 바로 터키 남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에서는 터키 여행 내내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이 불기둥을 만들며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성 소피아성당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존(共存)’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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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과 이경숙 그리고 김경태의 노자 논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도올 김용옥은 K 교수보다 2살 위이다. 도올은 고려대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신학대학 역시 중퇴하고 고려대 철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그 뒤에 그는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 교수는 도올을 학자로서 존경한다. 그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 도올은 동양철학자로서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김용옥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자였고 매우 박식하였다. 그는 매우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책을 썼다. 연극, 영화, 미학, 태권도, 기철학, 중국의 고전, 기독교 성서 등등 수많은 주제에 관하여 수많은 책을 썼다. 그가 1999년 11월에 교육방송(EBS)에서 시작한 <노자와 21세기> 강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3개월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경상남도 마산에 살고 있던 평범한 주부 이경숙 씨가 도올의 노자 해석을 비판하였다. 이경숙 씨는 자기의 주장을 2000년 11월에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전문 학자가 아닌 평범한 주부가 당대 최고의 석학을 비판했다”라는 점 때문에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자들이 도올에게 이경숙 씨의 비판에 관해 물었다. 도올은 “9단이 9급하고 바둑을 둘 수 있느냐”라고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비판자들과 일일이 상대할 값어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숨은 고수가 많은가 보다. 노자 《도덕경》의 해석을 두고서 두 사람을 싸잡아 비판하는 제3의 인물이 나타났다. 김경태는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철학도였다. 그는 2001년 6월에 《노자를 팔아먹는 남자 그 남자를 팔아먹은 여자》라는 긴 제목의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올도 이경숙도 노자 《도덕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하면서 본인의 해석을 제시하였다. 노자 《도덕경》의 해석을 세 사람이 각기 달리 해석한 셈인데, 어려운 한자를 잘 모르는 K 교수 같은 일반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피아노를 전공한 파 교수는 도올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도올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박학다식한 학자이며 수많은 주제에 관해서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렇게 질문했다. “그런데 도올 선생이 음악에 대해서도 책을 썼나요?” K 교수가 이렇게 대답했다. “도올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할 줄 아는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집 거실에는 큰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는 서양의 화성학과 동양의 율려(律呂) 체계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비교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K 교수는 원래 음악과는 거리가 먼 공과대학 교수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도올의 책에서 읽은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의 차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다음처럼 풀어놓았다. 김용옥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을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이라는 개념으로 차이를 설명한다. 도올의 주장에 따르면, 서양의 존재 문명에서는 존재의 관념적인 질서 곧 이성을 진리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생성적 요소가 아닌 존재적 요소를 더 강조한다. 음의 요소를 크게 높낮이, 지속, 크기, 색깔의 4가지로 나눈다면 서양음악에서는 높낮이와 지속에 관심을 둔다. 쉽게 말해서 서양음악은 오선지에 그려지는 음표로 표현한다. 음의 높낮이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위치로 나타내고 음의 지속은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등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음의 크기와 색깔(음색)은 표현하기 어렵고, 오선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음의 크기와 색깔은 생성적이며 역동적이며 정성적이기 때문에 오선지에 표현하기가 어렵다. 동양음악에서는 음의 요소 가운데서 크기와 색깔에 관심을 가진다. 서양인들은 음의 크기와 색깔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정도로 취급하여 따로 대상화하지 않았지만, 동양인들은 이것을 철저히 대상화했다. 생성에 관심을 두는 동양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다. 동양인들이 음색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은 우리가 자연에서 소리를 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높이의 음이라도 크기와 색깔에 따라서 전혀 느낌이 달라진다. 호랑이 소리와 여우 소리, 걸걸한 소리와 가냘픈 소리, 성난 소리와 상냥한 소리는 음 색깔의 차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와 느낌을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음색의 차이를 오선지에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생성에 주목하는 동양 문화에서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의 색깔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존재에 주목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음악이 화성(harmony)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동양음악에서는 색깔을 강조하면서 선율(멜로디)과 리듬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선율과 리듬은 화성이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은 화성을 중요시하여 벽돌 같은 몇 개의 음이 합쳐져야 아름답다. 그러나 국악은 음 하나하나가 수석(壽石)처럼 색깔이 있으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궁중 아악을 보면 이러한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아악에서는 팔음(八音)이라고 하여 악기를 구성하는 재료의 차이로서 음색의 다양성을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음색의 발전은 우리나라 국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가야금 산조나 판소리에서 연주자나 소리꾼의 경지를 표현할 때 ‘성음(聲音)’이 좋다 나쁘다고 평하는데, 성음은 음색의 문제인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판소리를 배우는 현장에 가 보면 음색이 무엇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똑같은 단어라도 어떠한 색깔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음색을 정량화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판소리의 전수는 제자가 스승의 소리를 들으면서 무조건 따라서 반복하는 교수법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음악과 미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미스 K와 세 사람은 모처럼 즐겁게 보냈다.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느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만나서 스파게티를 먹기로 약속하고 세 사람은 학교로 돌아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