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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금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지요? 그런데 지금도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과학적 이론을 들출 것 없이 인공위성이 지구궤도에서 찍은 사진만 보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도저히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세계가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성경구절(역대상 16:30, 시편 93:1, 시편 96:10)에서 지구는 평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는 2018. 3. 17. 성순출판사에서 <평평지구 국제컨퍼런스 인 서울>이라는 회의를 열었는데, 클락 바너드, 다릴 디 마블, 나탄 톰슨이라는 세계적 지구평평론자들이 와서 강연을 했답니다. 당시 포스터를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동안의 무지를 반성하고자 함에 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러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에 대해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 마디로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정선거론자들처럼 종교적 믿음의 단계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어도, 도대체 믿지를 않습니다. 그라임스는 <페이크와 팩트>에서 19세기 지구평면설 광신자 존 햄프던에 관해 얘기합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종교 광신자인 햄프던은 1870년 1월 <사이언티픽 오피니언>에 지구가 평평하다는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사람에게는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광고합니다. 여기에 순진한 윌리스가 걸려듭니다. 당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윌리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윌리스는 지질학자 라이엘과 함께 노퍽주 올드 배츠퍼드 운하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실험을 합니다. 9.6km 떨어진 다리 두 개에 수면 위 같은 높이에 표지를 붙입니다. 그리고 두 다리의 중간 지점에는 다리에 붙인 표지와 같은 높이에 막대를 세웁니다. 그리고 망원경으로 쳐다봅니다. 만약 지구가 평평하다면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세 표지는 일직선으로 나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운데 표지는 좀 더 높이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런데 햄프던이 지목한 심판은 실험의 세부 사항을 트집 잡습니다. 햄프던이 사전에 지구 창조론자를 심판으로 지목했었던 것이지요. 이런 트집이 계속되면서 실험은 반복되고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자아~ 그럼 햄프던이 마침내 굴복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햄프던은 승복하지 않고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며 시간을 질질 끕니다. 윌리스는 재판에서 여러 번 이겼지만, 햄프던은 끝내 상금을 주지 않았고, 주머니가 얄팍하던 윌리스는 마침내 파산하고 맙니다. 이것만 하여도 햄프던이란 놈은 파렴치한 놈임이 확실한데, 햄프던은 윌리스의 아내에게 독설이 가득한 협박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부인! 당신의 지긋지긋한 도둑놈 남편이 어느 날 머리뼈가 곤죽이 되도록 으스러진 채 들것에 실려 집에 돌아오면, 왜 그렇게 됐는지 당신은 알 거요. 당신 남편에게 거짓말쟁이에다 극악무도한 도둑놈이라고 전해주시오. 그놈의 이름이 윌리스라는 게 확실한 것처럼, 그는 절대 침대 위에서 곱게 죽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확실할 것이오.” 뭐~ 이런 놈이 다 있습니까? 결국 햄프던은 명예훼손에 살해 협박으로 감옥에 갑니다. 그렇지만 15년 내내 걱정과 소송, 박해가 이어지는 대가를 치른 윌리스는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지했던 것은 ‘역설가’는 절대로 이해시킬 수 없다는 드 모르간 교수의 유명한 가르침을 몰랐다는 것이며, 이는 자기 평생 가장 후회스러운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놈하고는 애초에 엮이지 말았어야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확실한 근거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기 주장만이 절대적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기 세계관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토론과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새는 자기들 생각을 증폭시키는 반향실(echo chamber) 안에서 더욱 자기 생각을 공고히 해서 더욱더 요지부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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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위턱구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우리가 사는 집에 켜(층)가 있듯이, 머리 위 드넓은 하늘에도 켜(층)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손에 잡힐 듯 낮게 깔린 구름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한껏 젖혀도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엷게 빛나는 구름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하늘이라는 집의 가장 높은 곳, 그 윗목에 머무는 구름, '위턱구름'입니다. '위턱구름'은 이름에서부터 그 높이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말집(사전)에서는 이 구름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대기권 윗부분에 떠 있는 구름. 권운, 권적운, 권층운이 이에 포함되며, 대류권의 상부에 위치하여 구름 입자는 주로 얼음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표준국어대사전》 높은 공중에서 생기는 구름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두 풀이를 모아보면, '위턱구름'은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높은 하늘(보통 6km 위쪽)에 떠 있는 구름입니다. 이곳은 숨씨(공기)가 거의 없고 몹시 춥기 때문에, 구름이 물방울이 아닌 작고 투명한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됨됨(특징)이지요. 우리가 자주 보았던 '새털구름(권운)', '비늘구름(권적운)', '털층구름(권층운)' 등이 모두 이 '위턱구름'에 들어 갑니다. 앞서 우리가 만났던 '밑턱구름'이 생각나시는지요? 이 두 구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 다름을 더 또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밑턱구름'이 하늘의 1켜(가장 낮은 턱)에 살며 땅과 뫼를 어루만진다면, '위턱구름'은 하늘의 꼭대기 켜(가장 높은 턱)인 다락방에 살며 해와 달을 벗 삼습니다. '밑턱구름'은 촉촉한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어 묵직하고 짙은 그늘을 만들지만, '위턱구름'은 차가운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어 깃털처럼 가볍고 맑은 빛을 냅니다. '밑턱구름'이 궂은 날씨나 비를 미리 알려주며 나날살이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면, '위턱구름'은 맑은 날 높이 떠서 야릇한 자리느낌(분위기)을 자아냅니다. 이렇게 견주어 보니, 하늘 위아래 턱에 걸린 구름들의 쓰임새가 저마다 다름이 참 재미있지 않나요? '위턱구름'은 맑은 날씨에 자주 볼 수 있으며, 햇빛을 받으면 얼음 알갱이가 반짝거려 하얗고 아름답게 빛납니다. 나날살이에서 다음과 같이 써 보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르니, 아까 본 뭉게구름은 발아래 있고 창밖으로 위턱구름이 보이네요. 오늘은 하늘 저 높은 곳에 위턱구름인 새털구름만 한가롭게 떠 있어요. 땅에 가까운 낮은 구름은 '밑턱구름', 저렇게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건 '위턱구름'이라고 부른단다. 우리가 춥고 힘든 곳이라 여길 수 있는 그 높은 곳에서, 가장 맑고 고운 빛을 내뿜는 '위턱구름'을 보며 우리 삶의 높은 뜻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까마득히 높은 곳에 하얀 구름이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면, 곁에 있는 이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저기 하늘 높이 있는 구름 좀 봐. 저게 바로 '위턱구름'이래." 그 높고 맑은 이름이 우리의 마음까지 맑게 씻어주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