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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돕다’와 ‘거들다’

<우리말은 서럽다> 18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돕다거들다같은 낱말도 요즘은 거의 뜻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만하다.  

· 돕다 :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
· 거들다 : 남이 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돕다.
                                                                  표준국어대사전
 

이러니 사람들이 돕다거들다를 뒤죽박죽 헷갈려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쳐지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돕다는 사람을 겨냥하여 쓰는 낱말이고, ‘거들다는 일을 겨냥하여 쓰는 낱말이다.  

앞을 못 보거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돕고, 배고픔과 헐벗음에 허덕이는 사람을 돕고, 힘겨운 일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사람을 돕는다. 한편, 힘이 부쳐서 이겨 내지 못하는 일을 거들고, 너무 많고 벅차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거들고, 정한 시간에 마무리를 못 해서 허덕이는 일을 거든다. 이처럼 사람을 돕고 일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옳지만, 일을 돕고 사람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틀리는 것이다. 

 

   
▲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리고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돕는 것은 지니고 가진 것을 모두 다해서 주는 것이지만, 거드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만 주는 것이다. 따라서 거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도울 수 있지만 거들 수는 없는 일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사랑이 깨어져 슬픔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거들 수는 없다.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나, 마음에서 나오는 위로의 말로써 어루만져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돕다는 주고받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주기만 하는 것이다. ‘돕는 것은 마음을 썼든 말았든 멀리 두고 보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도움을 받으면 받은 쪽에서 저절로 되돌려 갚으려는 마음이 생겨나 언젠가는 되돌려 갚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되돌려 갚을 적이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의 가르침처럼, 되돌아오는 갚음이 도와준 바를 뛰어넘어 세상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든다.  

하지만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받는 쪽에서는 받기만 하면 그만이다. 더러는 거드는 만큼의 고마움을 값으로 치르는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덤이기에 주고받는 도움과는 속살이 다르다. 

게다가 또 돕다는 주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지만, ‘거들다는 받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다. ‘돕는 것은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다.  

길거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지만, 그럴 때라도 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주는 쪽에서 결정하고 받는 쪽에서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돕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지금 벌어진 일에만 갇혀서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