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누구’와 ‘아무’는 요즘 거의 가려 쓸 수 없는 낱말처럼 되었다. 국어사전들을 들추어 보아도 두 낱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알기 어렵다. 오히려 두 낱말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만을 헷갈리는 풀이들로 확인시켜 줄 뿐이다.
1) 《우리말큰사전》, 한글학회, 어문각, 1992
· 누구 : 알지 못할 의문의 사람. 또는 이름을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
· 아무 : 누구라고 지정하지 아니하고 막연히 가리키는 사람.
2) 《조선말대사전》, 사회과학원, 사회과학출판사, 1992
· 누구 : ① 어느 사람인지 모를 때 의문의 뜻을 나타내는 말. ② 알기는 알아도 그 이름을 꼭 짚어 낼 필요가 없는 사람이나 확실히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아는 사람을 들띄워 놓고 가리키는 말.
· 아무 : 누구라고 꼭 찍어서 이르지 않고 들띄워 놓고 가리키는 말.
3)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연구원, 두산동아, 1999
· 누구 : ① 잘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 ② 특정한 사람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 ③ 가리키는 대상을 굳이 밝혀서 말하지 않을 때 쓰는 인칭 대명사.
· 아무 :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르는 인칭 대명사.
▲ "누구"와 "아무"는 분명히 다른 말이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두 낱말이 모두 사람을 가리키는(인칭) 대이름씨(대명사)라는 점, 가리키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점, 어떤 사람을 꼭 찍어서 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토씨 ‘도’와 함께 써서 ‘그렇지 못하다’[부정]라는 풀이말에 흔히 어울리고, 토씨 ‘나’ 또는 ‘라도’와 함께 써서 ‘그러하다’[긍정]라는 풀이말에 어울리는 데서도 두 낱말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누구’와 ‘아무’는 서로 아주 다른 낱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뜻에서 ‘누구’와 ‘아무’는 서로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처음부터 한 사람을 찍어서 뜻하지만, ‘아무’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여러 사람인 동아리를 바탕으로 해 놓고 거기서 한 사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누구’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한 사람을 뽑아 놓고 쓰는 말이고, ‘아무’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여러 사람을 뭉뚱그려 놓은 채로 쓰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보기에서 그런 가늠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누구에게 물어보면 이걸 알 수 있을까?
아무에게 물어보면 이걸 알 수 있을까?
㉯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안에 누구도 안 계십니까?
㉮에서 ‘누구’는 반듯하게 쓰여서 시원하지만, ‘아무’는 어설프게 쓰여서 말이 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이걸 알 수 있는 사람’을 하나로 뽑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는 알맞지만 ‘아무’는 맞지 않는 것이다. 거꾸로 ㉯에서 ‘아무’는 반듯하게 쓰여서 시원하지만, ‘누구’는 어설프게 쓰여서 껄끄럽다.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안에 계시는 사람’을 하나로 뽑지 않고 여럿으로 뭉뚱그려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안에 누구도 안 계십니까?” 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때에는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어떤 사람 하나를 뽑아 놓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말을 틀리게 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