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거금도 부두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우리는 이틀 전에 전화를 드렸고 또 절이 부두에서 별로 멀지 않다고 하여 전화를 다시 하지 않고 찾아갔다.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무려 네 사람이나 붙잡고 계속 길을 물어물어 갔다. (주: 당시에는 차에 길찾게-내비가 없었다.) 조그만 골목길을 지나 논을 지나고 호젓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 겨우 찾아가니 송광암이라고 쓰인 절이 나온다.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금산정사가 어디냐고 계속 물었는데, 송광암이 나오다니. 주차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 토종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일어서지도 않고 몇 번 짖다 만다. 참으로 느긋한 강아지였다. 인기척 하나 없는 조그마하고 조용한 산사였다. 옆으로 돌아가니 젊은 비구니 한 사람이 보인다. 연담거사가 공손하게 합장하고 금산정사가 어디냐고 물었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무표정한 비구니는 자기는 잘 모르겠으니 마을로 내려가 물어보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섬에 절이 두 곳뿐이라는데 자기는 다른 절의 위치를 모른다? 잠시 원망스러운 생각이 스쳤다. 수행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 곧이어 마음을 바꾸었다. 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표를 예매한 우리는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들고 즐거운 기분으로 열차에 탔다. 사실 이렇게 두 남자가 금산정사 방문 여행을 실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 두 남자야 의기가 투합했지만, 문제는 사모님의 내부 결재. 연담 거사는 불교 신자로서 법사 자격증까지 있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나는 당시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십일조까지 내는 기독교 신자였다. 나는 화성군 봉담면에 살지만,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그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3일이나 집을 떠나 전라남도 섬에 있는 스님을 만나러 간다? 아무래도 명분이 없었다. 마침 대학교는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지방 학회에 출장 간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명분을 찾았으나 마땅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궁리 끝에 결국은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선 며칠 동안 유별나게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다. 독자 중에는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 꼭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안 하던 방청소도 깨끗이 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놈 숙제하는 것도 보아주고, 나름대로는 열심히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