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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효대사가 아니고 그저 범인이야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과장은 술이 약했다. 기껏해야 맥주는 두 잔, 소주는 석 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음이 왔다. 그래서 김 과장은 아내로부터 ‘술새우’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도주는 한 병까지 마셔도 그저 즐겁게 취할 뿐이어서 김 과장은 스스로 포도주 체질이라고 생각해 왔다.

 

김 과장은 일요일마다 아내 따라서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간다. 어느 날 목사님 설교 가운데 예수가 가나촌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행한 동네 이름. 혼인식에 초대받은 예수가 술이 떨어지자, 물을 술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행한 곳) 혼인잔치에서 여섯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를 즐겁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를 믿더라도 포도주는 마셔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교회를 나가면서도 마주앙을 마시는 것이 조금도 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나가서 노래해요.”

“그러자.”

 

 

김 과장은 최희준의 ‘하숙생’, 양희은의 ‘내 님의 사랑’ 등 옛날 노래를 불렀고, 아가씨는 김 과장이 잘 모르는 최신의 대중가요를 불렀다. 함께 춤도 췄다.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도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다시 자리에 돌아와 김 과장은 마주앙을 더 시키고 아가씨는 과일 안주를 시켰다. 잔이 몇 번 더 부딪혔다.

 

“술 많이 못 하세요?”

“잘 못 해. 그런데 오늘은 귀여운 아가씨하고 마시니까 기분도 좋고, 지금 많이 마시는 중이야.”

“술 한 병 더 시킬까요?”

“좋아. 아가씨 마음대로 해.”

 

앞자리의 박 과장과 미스 리는 이제는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데 이쪽은 여전히 첫 번째 미팅에 나온 대학 신입생처럼 좀처럼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한 아가씨가 몸을 기대며 한 손을 김 과장 어깨에 걸쳤다. 아가씨는 애가 탔다.

 

“뽀뽀해 드릴까요?”

“사알짝.”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아가씨는 열이 올랐다. 김 과장은 변함이 없었다. 아가씨 생각에 이 남자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어찌 된 일인지 허리하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허리상학 그것도 지고한 형이상학(形而上學)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조명은 어둡고 술이 올랐으니 한 번쯤은 키스를 해줄 법도 하건만 그저 두어 번의 뽀뽀가 전부였다.

 

“제가 싫으세요?”

“아니, 아가씨가 좋아.”

“그런데요?”

 

“귀여운 아가씨야! 나는 원효대사(신라 때의 유명한 스님으로서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음)가 아니야.”

“네? 원효대사요?”

“그래. 원효대사 이야기 모르나? 옛날 신라 때에 고기 먹고 술 마시며 애까지 낳은 그 유명한 원효대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고기를 씹어도 나무껍질 같고, 미인을 껴안아도 송장 같더라.’ 나는 원효대사가 아니고 그저 범인일 뿐이야. 정말 예쁜 꽃은 두고 보는 것이 즐겁지. 꺾어서 향기를 맡으면 곧 시들고 금방 싫어지게 되지. 그래, 그래, 옳은 말이야. 꺾은 꽃 버리지 말고, 버린 꽃 밟지 말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