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작년 10월에 서울법대 문우회 회원이 되면서 여러 문우회 회원들의 시집과 책을 소개했었지요? 이번에도 한 권 소개합니다. 박영희 선배가 펴낸 시집 <그 잠깐 소낙비에>입니다. 지난 연초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이 시집을 받았습니다. 박선배로부터 직접 받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박선배는 그 날 참석하지 못 하시고 시집만 보내셨네요. 박영희 선배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 선배입니다. 저보다 16년이나 위인 대선배이시지요. 그 시절에 여자가 서울법대 들어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경남여고를 졸업한 박선배는 아마 경남여고에서도 수재로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박선배의 시집은 문우회 다른 회원들의 시집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습니다. 시집 가운데서도 시조집이라는 것이지요. 아마 박선배는 처음 시를 쓰시다가, 정형적인 시조의 운율에 맛을 느끼면서 시조로 정착하신 것 아닐까요? 아래에 박선배의 시조 몇 수를 소개합니다. 속삭임 산 그늘 묻은 여울에 잔설이 아직인데 꿈조차 없는 밤을 모로 누워 뒤척인다 이른 봄 매화 멍울에 가만가만 듣는 비 꿈조차 없는 밤이라고 하였는데, 몹시 피곤하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인생의 밀도>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에는 3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해오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 온 강부장의 깊이 있는 인생 사유가 펼쳐집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강부장의 직접 소개말을 들어보지요. 《인생의 밀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살아가는 것은 변한다>에서는 디지털 혁명을 맞아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조망하고, 그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2부 <살아남은 어떤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전해주는 이질적인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지요. 3부 <변화하고, 변화되고, 변화시켜가고>에서는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만드는데 동참했던 그 시절의 역사를 반추해 현재의 귀감을 찾고자 했습니다. 판사가 디지털 혁명을 얘기하니까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강부장은 본인 말마따나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스티브 강스’입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얘기지요. 유투브에 들어가면 넓게는 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 8권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곽진근, 공백순 등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소개글은 이 시인의 시로 시작하고 있구요. 이시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국내는 물론 만주, 하와이 등 나라밖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뛰어다닙니다. 처음 1권을 시작할 때만 하여도 이 어렵고 힘든 작업을 언제까지 할까 하였는데, 벌써 8권까지 내셨네요. 이 시인은 10집까지는 내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을 헤치고 꿋꿋하게 이 작업을 계속 해오는 것을 보며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이 시인이 소개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제 자신의 무지함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8권에서 이 시인이 소개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 가운데 몇 분만 말씀드리지요. 먼저 평생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 동안 제가 작년 국제도서전시회 때 사두었던 책을 읽고 나 후의 느낌에 대해 몇 차례 썼었지요? 처음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에 대해 썼고, 최근에는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을 읽은 느낌을 썼습니다. 오늘은 그 때 사두었던 책 가운데 마지막 책인 《한국 한시선》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이 책은 정진권(1935 ~ )이란 분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수많은 한시 가운데 156편을 엄선하여 한시 원문과 한글 번역시 그리고 자신의 독후감을 실은 책입니다. 번역시는 한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아닌 시의 맛이 나도록 많이 의역한 시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라는 말은 시 번역에서 더욱 실감나는 말인데, 정진권씨는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자유롭게 번역했습니다. 한국체대 교수를 역임한 정진권씨는 수필가로서 많은 수필집을 냈는데, 한시의 맛에 꽂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한시를 섭렵하고 난 후, 이렇게 한시집도 냈습니다. 정진권씨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시를 가려 번역하고 또 주석을 달고 그 독후감을 쓰고 하는 것이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는 한문도 시도 특별히 공부한 게 없는 내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고교 은사님이신 권오길 교수님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달팽이 박사,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정년퇴임, 책을 30권 넘게 쓰신 1세대 생물수필가 등등. 전에 월간중앙에 ‘양승국 변호사가 산에서 만난 사람’을 연재했는데, 그 때 권오길 선생님과 봉의산 산행을 하면서 선생님에 대해 취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 1월 권오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고 1 때, 그리고 고 3 때 권오길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셨던 친구들이 같이 매년 1월에 반창회를 하고 있지요. 늘 앞장서서 반창회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부르는 이는 친구 최만식입니다. 만식이는 고등학교 때 약간 껄렁거려 권오길 선생님께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런 친구가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제일 큽니다. 이 날 선생님께서 최근에 내신 생물 수필집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매년 반창회 때면 그 동안 새로 내신 책을 춘천에서부터 들고 와 일일이 친필 사인을 하여 제자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출판하신 책은 40권을 돌파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생 황혼기에 글을 쓰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며칠 전 우리나라 성인들이 너무 책을 보지 않는다는 통계 뉴스를 보고 한 마디 썼었는데 그 글을 보고 제 고교동창 친구가 아래와 같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독서량은 삶의 깊이를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자신과 주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며 사는가에 대한 척도입니다. 과거 10 여 년 전 부터 책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 디지털 매체입니다. 요즘 전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슬기전화에 머리를 파묻고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게임 아니면 동영상 입니다. 그런 영상 신호는 선악과 가치를 판단하는 두뇌의 전두엽을 우회해서 바로 시각 신호에 감각적으로 반사하는 곳을 자극한다고 합니다.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현재의 문화적 추세는 생각하기를 기피하고, 감각적이고, 성급한 세대를 양산할 것 입니다. 문화적 후퇴는 물론이고 범죄 증가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총으로 쏘아 적을 쓰러뜨리는 게임에 몰두한 10대가 게임을 못하게 하는 어머니 이마를 정조준해서 살해하고, 아버지까지 추격해서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가치 판단을 못하게 되니까 그냥 영상에 나오는 쓰러뜨려야 하는 적과 동일시 한 것이지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등산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산꾼들이 배낭에서 먹을 것을 하나, 둘 꺼내지 않겠습니까? 제일 먼저 꺼내드는 것이 물일 것이고, 이것저것 간식으로 먹을 것도 많이 꺼내듭니다. 그 중 많이 꺼내드는 것 중의 하나가 귤입니다. 지난 토요일 대학동기들과 같이 2018년 새해 첫 산행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한 친구가 귤을 꺼내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줍니다. 저도 친구가 주는 귤을 먹으면서, 문득 지금은 이렇게 흔하게 귤을 먹고 있지만, 이 귤이 조선 시대에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에서만 귤이 재배되고, 또 그 귤이 거친 바다를 넘어 육지로 들어오는 것이므로 일반 백성들은 감히 먹을 생각도 못했지요. 아니 백성만이 아닙니다. 육지로 건너온 귤은 곧바로 궁궐로 진상되는 것이므로 양반들도 먹기 어려운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다만 임금이 신하들에게 귤을 나눠주면 ‘성은이 감읍하오이다’ 하면서 받아먹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요즈음 여름에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얼음도 마찬가지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요즘 같은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겨울에 얼어붙은 한강에서 잘라와 서빙고에 보관한 소량의 얼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1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사단칠정 논쟁은 8년간)을 벌인 것은 우리나라 철학사에 유명한 논쟁이라,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요? 이 두 대유학자 사이에 오간 편지를 김영두 선생이 뒤친(번역)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도서출판 소나무》를 읽었습니다. 퇴계와 고봉은 오고 간 편지 속에서 딱딱한 철학 논쟁만 펼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고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단칠정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태극, 상례(喪禮)나 제례(祭禮), 왕실의 전례(典禮)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더군요. 퇴계가 우리나라 최고의 성리학자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퇴계가 학문적으로만 최고의 성리학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스승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퇴계는 고봉보다 26살이나 연장자로, 고봉은 퇴계의 아들뻘, 그것도 일찍 결혼하던 조선에서는 몇 째 아들뻘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이들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할 때 퇴계는 이미 조선에서 성리학의 거봉으로 인정받고 있었으나, 고봉은 32살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고, 적을 놓아 주고 공격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까지 한 것 또한 엄중한 죄다. 이렇게 죄상이 허다하므로 용서할 수 없으니 법률로 다스려 죽여야 함이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이다. 선조가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내린 전교(傳敎)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이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부대를 공격하라는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 하였다고 이순신을 잡아들여, 고문으로 초죽음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모자라, 이순신을 아예 죽이려고 이런 전교를 내렸습니다. 사실 선조의 명령은 잘못된 첩보에 따른 것입니다. 일본이 교묘하게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허위정보를 흘린 것이지요. 당시 대마도 출신으로 요시라(본명 : 가케하시 시치다이후)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중간첩이었습니다. 일본은 요시라에게 가등청정이 모월 모일에 바다를 건너 쳐들어 올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흘리라고 지령을 내립니다. 요시라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이 허위정보를 흘렸고, 이 허위정보는 당연히 선조에게까지 보고됩니다. 임진왜란 때 도망가기에 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이윤옥 시인이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시로서 조명하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7권을 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벌써 7권째를 낸다고 하니 이윤옥 시인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지네요. 이번 책에서 이 시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외친 가파도 소녀 고수선으로부터 조국 광복의 어머니, 하와이 황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20분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우선 그 독립운동가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를 먼저 실은 후, 독립운동가에 대해 글을 쓰고, 필요한 것이 더 있으면 마지막에 ‘더보기’라는 제목으로 관련 글을 실었네요. 이번 7권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 박신애, 심영신, 전수산, 황마리아에 대해 조명을 한 것입니다. 하와이 교민들 가운데 남자들은 1902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들과 사진만 보고 결혼한 소위 ‘사진신부’인 경우가 많았구요. 사진신부들은 사진 속의 젊은 총각만 보고 하와이에 갔다가 늙은 총각이 나타나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이미 고국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상황,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