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세종이 독단을 내리는 때 세종의 정치는 사맛[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을 통해 나타난다. 많은 경우 신하들과의 토론을 나누지만 그 마지막은 임금의 결단이 따른다. 그 결단은 생각/사유의 결과이기도 하다. 세종 이도의 사유세계는 유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뿌리에는 불교가 있고 마음속에는 심학이 있다. 정신의 핵심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유가에 집착하지 않은 포용성이다. 이는 임금이라는 직(職)에 충실한 실천적인 실용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직에 대한 태도는 유교적인 것만이 아닌 불교의 ‘업’ 개념이 섞여 있다. 그리고 도학, 심학 그리고 종교와 풍속의 영역에서 무가, 풍수도 이해하려 했다. 결코 한 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사상을 백성[나라]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가늠했다. 세종은 사맛 정신으로 정치를 수행하며 마지막은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대면하여 듣고 토론을 거치지만 확신이 가는 일은 권도로서 독단 처리하게 된다. 독단(獨斷) : 무릇 일이 의심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만은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다. (《세종실록》 30/7/18) 凡事之可疑者則謀於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봉화산 도당굿은 원래 봉화산 자락에 거주하였던 여섯 개 마을 즉, 서 씨가 많이 살았던 서촌말(현재의 상봉동), 황 씨가 많이 살았던 황촌말(현재의 상봉동), 최 씨가 많이 살았던 최촌말(현재의 중화동), 파평 윤 씨가 많이 살았던 피울(현재의 신내동), 먹굴(현재의 묵동) 그리고 현 씨네 마을(현재의 면목동) 등이 힘을 합쳐 거행하였다. 그런데 먹굴은 떨어져 나갔고, 60년대 말 부터는 중화동과 상봉동 두 개의 주민들이 한 조직이 되고 신내동 등의 주민들이 한 조직이 되어 두 개 조직이 해거리(격년)로 번갈아 가면서 도당굿을 주관하였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당제보존위원회가 조직되어 행사를 주관하면서 중랑문화원과 중랑구청이 공식적인 주최와 후원을 하여 도당굿 재정을 도맡고 있다. 봉화산 도당굿은 오랜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 당일굿으로 치르는데 그 제차(차례)는 다음과 같다. ① 거리부정 - 산꼭대기 들머리에서 하며 일명 죽동부정이라고도 한다. 서서 행하기 때문에 선부정이라고도 말한다. ② 길군악 - 거리부정을 마친 후 잽이와 만신이 길군악에 맞춰 도당으로 올라간다. ③ 주당물림 - 당지기 집 앞 마당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응어리/(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응어리 [뜻] 가슴속에 쌓여 있는 못마땅함 따위의 느낌(감정). [보기월] 머지않아 제 마음속응어리도 말끔하게 풀릴 거라는 믿음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밝날(일요일)뒤낮(오후)에 마신 커피 탓인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였습니다.잠이 오지 않으니 이런 저런 생각이 자꾸 나서 잠이 더 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그렇게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을 꿨는지 놀라서 눈을 떴는데 아직 밖은 깜깜했습니다. 다시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또 얼른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저녁에 일찍 잠을 자면 새벽에 잠이 깨서 잠이 안 올 수도 있다지만 늦게 잠이 들어 얼마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지?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참 얄궂다 싶었습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었다가 때알이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잠을 푹 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몸은 여느 날보다 가벼웠지요.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씻은 뒤에 배곳(학교)에 갔습니다. 가자마자 지난 닷날(금요일)하려고 하다가 못 끝낸 해끝셈(연말정산)을 마저 해 놓고 들말틀(휴대전화)을 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였습니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음전하다/(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음전하다 [뜻] 얌전하고 점잖다. [보기월] 앞쪽에서음전하게있던 아이가 가장 좋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지난 닷날(금요일)은 진동도서관 겨울책읽기배움터(독서교실)마지막 날이었습니다.아침에 가서 셋째날에 빛알갓(전등갓)만들기와 팔찌 만들기가 어땠는지 물었더니 참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기로 한 것은 그동안 익힌 토박이말을 누가 많이 아는지 솜씨를 뽐내는 것이었습니다.여러 가지 배움딱지가 있는‘클래스카드’에 들어가‘토박이말 익힘감1’을 가지고 겨루기를 했지요. 첫 판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는 셈치고 했는데 아이들이 엄청 재미있어 하더군요.그래서 익히기를 하고 겨루기를 하고 또 익히기를 하고 겨루기를 세 판을 하고 잘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앞쪽에서음전하게있던 아이가 가장 좋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세 판을 다 좋은 셈을 얻은 것으로 봐서 따로 익히기를 했지 싶었습니다.토박이말 딱지놀이를 할 수 있는 놀잇감과 달력,선물꾸러미,두루마리 보들종이(화장지)가운데 골라가도록 했는데 다들 선물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고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아침의 맑은 이슬 한 방울에 찬란한 햇살의 일곱 빛깔이 깃들어 눈부신 무지개빛을 뿜어내듯이 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에도 그 민족의 굴곡진 역사가 올곳게 담길 수 있다. 그것은 나라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한 가족, 한 동네, 한 지역…… 이렇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문화신문”에 이어싣기(연재)로 시작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장편실화문학 “엄마가 들려준 엄마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다시 들려주는 독특한 구성으로 엮어가는 이 작품은 중국 연변의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로 중국조선족의 백년 남짓한 이주와 정착 및 번영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글을 쓴 작가와 만났다. - 장편실화문학 “엄마가 들려준 엄마이야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는가? “우리 엄마는 연변의 여느 집 어머니처럼 지극히 평범한 엄마였다. 1915년 조선 함경도 갑산골에서 가난한 농삿집 딸로 태어나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지금의 중국 조양천 근로촌에 건너와 열여섯 살에 시집가서 아들딸 다섯을 낳았다. 그러나 1946년 일제가 투항하며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장백산》, 1987년 제4호 < 해설 > "바람이 분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문풍지를 바른 집"이라는 공간은 인위적인 "막힘"의 공간으로서 "안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폐쇄"와 "보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고금중외"로부터 불어오는 "락타"같이 거센 바람이 "집"에 사정없이 불어칠 때 처음의 부적응에서 오는 맹목적인 저항과 거부에서 초래한 "숨막힘", 그리고 주동적으로 바늘로 "문창"구멍을 뚫어 호흡을 하던 데로부터 나중에는 벽까지 없애치울 의향을 가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막힘" 공간에서 "트인" 공간에로의 진출의 지향을 말해준다.(광천 <공간의 미학>에서)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되새김] 한밝달(1월) 세 이레 하는 일이나 앉아 있는 자리를 보면 토박이말 살리기에 큰 힘이 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만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다들 도움을 주겠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서 얻는 보람이나 기쁨과는 견줄 수가 없답니다. 앞으로 어떤 큰 도움을 받고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이 토박이말 놀배움을 만나고 난 뒤에 받은 느낌이나 생각을 이어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뜻밖의 사람의 만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먼저 알아보지 못 해서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저를 알아봐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일을 한 가지 끝내서 앞으로는 토박이말 살리기에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이 좀 더 수월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에게 널리 알려서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에서 이루고자 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내야겠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못 하게 가로막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읊다/(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읊다 [뜻] 1)억양을 넣어서 소리를 내어 시를 읽거나 외다. [보기월] 그런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가락글(시)한 자락을읊고싶어졌습니다. 그제 바깥에서 좀 늦게 들어와 저녁을 먹고 좀 쉬었다가 일을 해야지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가 잠이 들어버렸습니다.자다가 잠을 깨고 보니 두 때새(시간)를 더 잤더라구요.써서 보내 주기로 한 글도 다 안 썼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글을 기다리는 분께 기별을 먼저 드리지 않아 많이 놀랐을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얼른 글을 마무리해 보내드렸더니 바로 글갚음을 해 주셔서 마음을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밀린 일 두 가지를 다 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얼른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나 잠이 들었다 깼더니 몸이 좀 무거웠습니다.가는 길에 들렀다 갈 곳이 있어서 집에서 일찍 나섰기 때문에 진동도서관에 일찍 닿을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아이들과 제철 토박이말을 맛보고 찾는 놀이를 먼저 했습니다.티비엔 경남교통방송 토박이말바라기 꼭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려주며 자리느낌(분위기)를 끌어 올렸습니다.이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스스로 결정하기 : 독단위지[獨斷爲之] 생각하는 사람의 마지막 실현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하고 생각하여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이는 신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임금인 세종이 결정하는 일은 개인의 일인가, 나라의 일인가. [화가위국] : 예조에서 고하기를, 전 왕조 말엽에 정치는 산란하고 민심은 이탈하여, ...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태조〉를 추대하시어 ‘집을 변하여 새 왕조를 이룩’[化家爲國]하셨습니다. (《세종실록》 즉위년 9월 11일) 惟我上王殿下應時決策, 倡義推戴, 化家爲國。(참고: 이한수, 《세종시대 家와 國家》, 한국학술정보[주], 2006) 임금이면서 개인일 수 있는 한 근거는 왕조국가가 한 가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바로 왕가는 아니다. 그러나 양녕 문제에서 ‘이것이 비록 일가의 일이라 하여도 또한 나라에 관계되는 것’이라 하였다. 나라가 한 가족의 연장선에 있다는 의식이 있다. 가사와 국사 : (상왕이 양녕의 산릉 제사 참여를 못하게 명하다) 이천(利川)과 거리가 멀지 않으니, 양녕으로 하여금 효령의 예(例)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67- 쓰다, 그림, 나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 4282해(1949년) 만든 ‘셈본 5-1’의 60, 61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60쪽 첫째 줄에 ‘수판셈’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수판’은 ‘주판’이라고 했고 ‘수판셈’은 ‘주산’이라고 했지요. ‘수판’을 ‘셈판’이라고도 했기 때문에 ‘셈판셈’이라는 말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말은 말모이(사전)에 올라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요즘 배움책에서는 사라진 말이 되었지만 방과후학교에선 ‘주산 암산’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답니다. 옛배움책처럼 ‘수판셈’과 ‘속셈’이란 말을 쓰면 더 좋겠습니다. 61쪽 둘째 줄에 ‘사람을 쓰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쉬운 말이 있는데 ‘고용’ 또는 ‘고용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사람’을 셀 때도 ‘명’이라는 하나치(단위)가 아닌 ‘사람’을 쓰고 있습니다. 셋째 줄에 ‘원꼴’, 여섯째 줄에 ‘얼마꼴’, 열아홉째 줄과 마지막 줄에도 ‘꼴’이라는 말이 나오네요. 요즘 배움책에서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