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은결들다/(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은결들다 [뜻] 1)안쪽을 다쳐서 헐다(생채기가 나다). [보기월] 사람 몸도 겉으로 보이는 곳보다은결들면더 오래간다고 합니다. 동무들을 만나 잘 먹고 잘 놀고 와서 기운이 펄펄 나서 일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그런데 어제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마음처럼 몸이 가볍지 않았습니다.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자는 바람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 일을 끝내 놓고 밥을 먹고 나니 기운이 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기운을 차려서 일을 한 가지 더 끝내고 바깥일을 보러 나갔습니다.먼 길을 다녀온 끝에 수레가 마뜩잖아서 손을 보러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갔는데 어제와 똑같이 수레가 덜컹거리고 얼른 빨라지지 않았습니다.큰길에 올려 달려보니 수레가 안 좋은 곳을 더 똑똑하게 알 수 있었지요.아무리 밟아도 수레가 빨라지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먼저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수레집(카센터)에 갔습니다. 제가 어림했던 곳이 탈이 났다고 했고 고치는 데 돈이 좀 많이 든다고 하였습니다.사람 몸도 겉으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으밀아밀/(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으밀아밀 [뜻] 남이 모르게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양 [보기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으밀아밀귓속말을 주고받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지난 닷날(금요일)은 김해도서관 책읽기배움터(독서교실) ‘토박이말 속으로 풍덩’마지막날이었습니다.제철 토박이말로 눈과 아랑곳한 토박이말들을 알려주는 움직그림(동영상)을 보여준 다음 토박이말 찾기 놀이로 토박이말 놀배움을 열었습니다. 다음으로 토박이말 딱지놀이를 했습니다.귀를 잡고 있다가 술래가 불러주는 토박이말을 찾아 가져 가는 놀이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때새(시간)이 짧아서 다른 놀이를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는지만 알려주는 것으로 끝내서 아쉬웠지요. 마치고 토박이말 놀배움이 어땠는지 물었더니 너도나도 손을 들고 아주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으밀아밀 귓속말을 주고받는 아이도 있었습니다.놀이를 끝내고 받은 선물을 들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잘 왔다 싶었습니다.그리고 뒤낮(오후)에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모임에 들어와 좋은 글을 남겨준 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 겨레의 발상지인 동북지역은 예로부터 고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 발해의 성스러운 터였다. 1800년대 말 함경도지역의 심한 가뭄과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에 떠밀려 많은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오면서 이 땅에 다시 흰옷의 그림자가 비끼게 되었다. 이들은 북방의 거친 땅에 개척의 괭이 날을 박았으며 일제에 항거해 피 타는 싸움을 벌이고 새 중국의 탄생을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1952년, 이 땅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창립하며 중국조선족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 200만 동포들은 새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역사를 엮어나갔다. 그러나 디아스포라(離散)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20세기 90년대 이후, 중국과 동북아정세의 변화로 새로운 이동을 진행하여 현재 한국 거주자만 70만 명을 웃돌고 있다. 이와 반대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10년, 20년이 넘는 시간을 “신 조선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4년 연변과학기술대학 상경학부 경영정보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연길에 와서 10년이 훨씬 넘게 살아가며 연변사랑을 실천하는 “신 조선족” 김한수 선생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토박이말 되새김] 한밝달(1월) 두 이레 모르는 게 있으면 제 힘으로 찾아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찾았다면 그게 맞는지 다시 알아봐야 하구요. 그런데 그것을 안 했다가 또 일을 그르쳤습니다. 세무서에 볼 일이 있었는데 글틀(양식)을 잘 몰라 다른 글틀에 써 가는 바람에 으뜸빛 님께서 헛걸음을 하게 만들었지요. 누리그물(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갖춰야 할 것까지 잘 챙겼는데 글틀이 잘못되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말틀(전화)만 걸어 봤어도 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뒤늦게 물어본 다음 글틀을 찾아 다시 만들었지만 끝내 일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이레까지 늦춰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주 뜻깊은 일도 있었지요. 토박이말바라기 모람(회원)들이 함께 ‘말모이’라는 빛그림(영화)를 보았습니다. 앞서 올린 알림글에 같이 보기로 한 사람들이 모이니 모두 열일곱 사람이었습니다. 3.1혁명 100돌을 맞는 해이자 임시정부를 세운지 100돌이 되는 해인 2019년 첫 달 아흐렛날(1월 9일)을 여는 날로 잡은 것도 허투루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있었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일전 중국 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의 맛기행다큐멘터리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舌尖上的中国)”의 연변편에서는 단아한 우리옷차림으로 여러 가지 우리민족 음식을 만들며 차근차근 그 제조법까지 가르치고 배우는 조선족 모녀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과 맵싸한 갓김치 같은 일상의 음식에서부터 여러 가지 떡과 요리 같은 명절음식에 이르기까지 맛깔 나는 우리 음식을 일일이 소개하며 고향의 맛을 전 중국에 널리 알리는 이 프로그램은 방송된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연변이라는 이 변강산골에도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연길에서 장춘까지 2시간, 연길에서 심양까지 4시간, 연길에서 북경까지 9시간으로 수천 리 강토가 일일생활권이 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연변을 찾아오고 연변에 와서 우리 음식을 찾게 되었다. 이 텔레비전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바로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延盛传统饮食有限公司) 총경리 및 연변전통음식문화연구소 법인대표 허향순 회장과 그녀의 딸 최희연 사장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음식과 동고동락하면서 연길시내 뒷골목의 허술한 밥집 “연성뚝배기”에서부터 현재 6,000평이나 되는 널따란 부지에 네 귀가 번쩍 들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으르다/(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으르다 [뜻] 다른 사람에게 무서운 말이나 짓을 하다.(위협하다) [보기월] 그런데 막 빵빵 거리고 불을 번쩍이며으르는듯이 수레를 모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제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했기 때문에 그제 밤에는 여느 날보다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잠자리에서 읽은 책 알맹이가 자꾸 생각이 나서 얼른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나만 잘 살기가 아닌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제 생각과 놀랍도록 같은 분이 계셨다는 것이 가슴을 뛰게 했지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걸 막지 못 하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때알이(시계)소리가 아닌 밥이 다 되는 소리를 듣고 잠이 깼습니다.함께 가자고 했던 한 사람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혼자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라 길은 아는데 다들 일터로 나갈 때와 겹쳐서 길이 막혔습니다.능을 두고 나서긴 했지만 그렇게 길이 막히는 바람에 마음이 좀 바빠졌습니다.그런데 막 빵빵 거리고 불을 번쩍이며 으르는 듯이 수레를 모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막혀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아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생각하는 정치인 세종은 신하인 관리들과는 현실정치에서 다른 먼 앞을 보는 눈과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본다. 관리는 자기가 맡은 직(職)의 위치에서 자기 업무에 충실하면 된다. 나라의 큰 책임을 진 사람은 현재의 일만이 아닌 미래에 벌어질 결과를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소인배는 과거에 얽매이고 관리는 현재에 살고 지도자는 미래에 눈[視點]을 두고 살 것이다. 여기 한 예로 북방의 여진족에 대한 대비한 세종의 멀리 보는 눈을 살필 수 있다. 멀리보기[후일지효-後日之效]의 눈 세종은 임금으로 날마다의 일을 처리하는 것 외에도 나라의 미래를 보고 ‘천년사직’을 유지해 가야 한다. 나라의 경계를 지키는 일이 그 중 하나다. 김종서(1390~ 1453)와 조말생의 예가 있다. 후일지효(後日之效, 김종서에게 4진의 형세와 앞으로의 추세를 보고하게 하다): 오늘날 변방을 개방하는 것으로써 상책을 삼으면 의심이 없다. 뜻밖에 첫해의 큰 눈[雪]과 이듬해의 큰 역질(疫疾)로서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고, 지난해의 적변(賊變, 도둑의 변)으로 지치고 죽은 사람이 또한 적지 않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내 뜻으로는 오히려 대사를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은 4282해(1949년) 만든 ‘셈본 5-1’의 29, 45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29쪽 첫째 줄에 ‘작은 수’가 있습니다. ‘작은 수’라는 말은 여기서 배울 것이 무엇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풀이말입니다. 일곱째 줄에 “작은 수는 다음과 같이 쓴다.”라고 풀이를 해 주는 것을 보면 똑똑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배우는 아이들을 헤아려 주는 듯한 낱말과 월(문장)이 참 반갑고 좋습니다. 셋째 줄에 ‘하나치’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처음 보시는 말일 것이고 보신 적이 있는 분들도 참 오랜만에 보실 테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옛배움책에서는 ‘하나치(단위)’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홉째 줄에 ‘견주어 보아라.’도 제 눈에는 쏙 들어 옵니다. 이렇게 잘 썼던 말을 누가 무슨 까닭으로 바꾸었는지 참 알고 싶습니다. 45쪽 첫째 줄에는 반갑고 고마운 말이 이어서 나옵니다. 요즘 배움책에 나오는 말이 묶음표 안에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도 무슨 뜻인지는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배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봉화산(烽火山)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46-1번지에 있는 높이 160.1m의 산이다. 행정구역상 서울 동북부 외곽지역인 중랑구의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하여 있다. 이 산은 평지에 돌출된 독립 구릉이어서 한편에서는 ‘봉우재’라고도 부른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아차산(峨嵯山, 295.7m)의 봉수(烽燧)로 역할 하였던 봉수대(烽燧臺址, 1993년 11월 3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 지정)가 있다. 북쪽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대이산(大伊山, 173m) 또는 한이산(汗伊山)에서 연락을 받아 서쪽의 남산(南山, 262m) 또는 목멱산(木覓山)으로 연락을 해 주는 구실을 했었다. 꼭대기에 오르면 동쪽에 아차산 봉우리가 있는 것을 빼고는 북쪽으로 불암산, 도봉산 그리고 양주 일대까지 조망이 잘되며,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서 남산과 이남 지역도 잘 보인다. 한편, 봉화산은 1963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로 있었던 것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봉화산 정상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산신각이 있는데 이를 ‘봉화제도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곳의 전각은 봉화(烽火)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며 오래전부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위없다/(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위없다 [뜻] 그 위를 넘는 것이 없을 만큼 가장 높고 좋다. [보기월] 토박이말 살리기에 힘과 슬기를 보태 주시는 분이 느는 일이야말로 제게는위없는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밝날(일요일)마음 놓고 낮잠을 자서 그런지 잠자리에 누웠는데 얼른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도와야 될 것 같은 딸아이 생각을 했습니다.도움은커녕 그냥 봐 주는 것도 참 어렵다 싶었습니다.그리고 만나기로 한 분들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그렇게 이쪽저쪽으로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가 놀라서 잠이 깼는데 조금 있으니 제가 맞춰 놓은 때알이(시계)가 울더군요. 그렇게 비롯한 하루도 바쁘게 흘러갔습니다.늘 나오시는 분과 맡은 일 때문에 나오신 분들까지 여느 날보다 많은 분들로 좀 북적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토박이말 맛보기 글을 올리고 곽상윤 교장 선생님과 정순호 평거동장님을 뵈러 갔습니다. 때 맞춰 오신 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