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對馬島本是我國之地]” 이는 서지학자 이종악 선생이 독도 박물관 앞에 세운 빗돌에 있는 내용이다. 일본 시마네 현은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하는데 이에 당시 마산시 의회는 대응차원에서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출발한 날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했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 관여행사로 지속하지만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관여하지 않으며 대마도 고유 영토설은 소수 의견에 그치고 있다. 대마도의 양속성[兩屬性]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평화 시에는 한돌곶[한반도]과 왜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대마도는 처음 아비루 가문이 지배하였으나, 12세기 송(宗) 씨가 아비루가를 평정 하면서 이후 송 씨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며, 왜국에서 대명으로 임명 받는 등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관계(양쪽에 다 속하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생존과 존립을 위해 문화적 경제적으로는 한돌곶[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귀국해야 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반에 시작하는 예불에 참여했다. 5시 50분에 아침 공양을 하고 병산과 헤어졌다. 병산과 하라상은 순례를 계속할 것이다. 두 사람은 네팔 국경을 넘어 다시 인도로 가고, 계속 서쪽으로 가서 다람살라에 도착하여 유명한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날 계획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병산에게 물었더니 전 세계에 450개나 있는 핵발전소와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 가르침을 주시라고 말하겠단다. 부디 병산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부처님에게 기원한다. 아침 8시에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아주 작은 시골 공항이다. 부다 에어 (Buddha Air) 항공기를 예약했는데, 30명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이다.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30분 정도 비행하여 카트만두 공항으로 갔다. 네팔은 북쪽으로 길이가 2,500km나 되는 히말라야 산맥이 길게 펼쳐 있다. 날씨가 맑으면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볼 수도 있다는데, 이날은 날씨가 흐려서 흰 눈이 쌓인 히말라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카트만두 공항 대합실에 있는 커다란 에베레스트 산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썸벅/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썸벅 [뜻]크고 여린 몬(물건)이 잘 드는 칼에 쉽게 싹 베이는 소리.또는 그 모양 [보기월]그런데 물박(수박)이썸벅잘리는 바람에 칼에 손을 베일 뻔했습니다. 어제 아침 눈을 뜨니 밖이 아주 환했습니다.언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이 하늘도 맑고 햇빛도 밝았습니다.아침부터 이런데 한낮에는 얼마나 더울까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배곳(학교)에 오니 아이들은 얼마나 뛰었는지 벌써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어제 그제 놀지 못한 것을 몰아서 다 노는 것 같았습니다.삿날(수요일)마다 할 일을 챙겨 놓고 모임을 한 다음 티비엔 경남교통방송'토박이말바라기'꼭지에 나가는 때를 맞추려면 마음이 바쁩니다. 어제는4배해(학년)아이들이 겪배움(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좀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둘레 분들이 많이 헤아려 주시고 도와 주시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토박이말바라기 어버이 동아리 모임이 있었습니다.지난 이레 모이고 이어져서 그런지 오신 분들이 적었지만 토박이말 살려 쓰기,쉬운 배움책,토박이말을 살린 노래에 클래스카드 놀이까
[우리문화신문=시시ㆍ사진 김명호 시인]
[우리문화신문=이창수기자] *매지구름,비설거지,바람꽃 [맞춤토박이말] /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날이 빠르게 간다고 느끼는데 달도 참 빨리 지나갑니다.어느새 또 달이 바뀌었습니다.지난달은 여름으로 들어서서 여름다운 날씨가 이어지는 달이라‘온여름달’이라고 했는데 이 달은 더위가 이어지는 달이라고‘더위달’이라고 합니다.오늘은 이렇게 바뀐 더위달(7월)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을 알려드립니다. 앞서 알려 드린‘오란비(장마)’가 비롯되었습니다.그래서 많고 적은 것은 좀 달랐지만 여러 날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비가 내리다가 그쳤다가를 되풀이하기도 하고 쉬지 않고 내릴 때도 있습니다. 비가 올지 안 올지는 구름을 보면 알 수도 있습니다.조금씩 구름이 끼다가 점점 짙어져 마침내 비가 오기도 합니다.하지만 갑자기 매지구름이 일면서 비가 오기도 하지요.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을‘매지구름’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비설거지’라고 합니다.우리가 먹은 그릇 따위를 씻어서 치우는 일을‘설거지’라고 한다는 것을 알면 바로 알 수 있는 말입니다.비가 잦은 요즘에 알고 쓰면 딱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행당동 아기씨당에 대한 역사적 유래 또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 실체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마을당의 경우와 마찬가지여서 아기씨당을 포함한 전국 마을당에 관한 역사적 실체를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그러함에도, 행당동에 있는 아기씨당 건축물 봉건기의 기록이라던가 3대째 아기씨당을 관리하면서 당굿 의례를 담당하고 있는 당주 구술을 토대 삼아 그 실체를 더듬어 볼 수가 있다. ① 다음은 아기씨당 건축물 봉건기의 내용이다. 이 봉건기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써 현재는 사진 자료와 조사보고서로만 남아 있다. <阿祈氏堂奉建記> 本祠宅杏堂洞居民崇 拜地神之祠也奉載筆 源往昔渺然未詳正確 然祠宗少建物形態與 歷代傳言綜合則推祭 二百年前奉祠也舊祀 宗年久頹落不禁恐戄 故有意人士誠出物心爰 建新宗宣敬神之道殆 解宿念 伏願 神安保佑衆民育畜 檀紀四二八O年 丁亥 三月二日起工 同年 四月 十五日 上樑 同年 五月 二十九日 落成 總工費 二十五萬圓有志獻納 造成委 檀紀 四二八O年 四月 十五日 杏堂洞會 總成員(이문웅 ‘제2편 민간신앙’ 《한국민속종합보고서》 (서울 편) 문화관광부 문화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옥니/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옥니 [뜻]안으로 옥게(오르라져)난 이 [보기월]그쪽은옥니가 되어 빠진 이를 채운 곳이라 늘 마뜩잖았었거든요. 날이 바뀐 뒤에야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에 일어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우레가 치는 바람에 잠이 깼습니다.눈을 뜨지 않았지만 빗소리를 들어도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자꾸 빗소리는 굵어지고 많이 내렸습니다.그렇게 잠이 깬 뒤에 다시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수레는 탈이 나서 타고 갈 수가 없는데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갈 일이 걱정이었지요.비신을 하나 장만한다 하다가 안 했는데 말입니다.다른 수가 없어서 집을 나섰는데 마침 제가 갈 무렵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그나마 신에 물이 들어오지 않고 바지만 적신 게 좀 나았습니다.젖은 바지를 걷고 앉아 일을 하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는 걸 보니 약이 좀 오르더군요.^^ 앞낮(오전)일을 끝내고 낮밥을 먹으러 갔습니다.제가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제가 그리 즐겨 먹지 않는 자두가 나왔습니다.다른 것을 먹고 마지막으로 자두를 먹었습니다.시면 먹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썰레놓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썰레놓다 [뜻]안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다. [보기월]앞으로 많은 일을 썰레놓을 우리 아이들을 믿고 나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엿날(토요일)시골집에 갔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부니 참 시원했습니다.들살이(야영)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새벽에는 추웠지 싶습니다.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밤새 얼마나 비가 많이 내렸는지 냇물이 많이 불어 있었습니다. 오란비(장마)와 한바람(태풍)이 겹쳐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제가 사는 곳에는 그렇게 많은 비가 오지 않아서 큰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그런데 곳곳에 작달비가 내려 어려움을 겪게 된 분들이 있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집이 물에 잠기기도 하고 수레,살림살이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흙이 무너져 내려 집을 덮친 곳도 있더군요.한바람이 더 많은 아픔을 주지 않고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람이 부는 쪽을 바꿀 힘이 제게 있으면 얼른 바꿨을 것입니다.그런데 그럴 힘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비손하고 있을 수밖에 없네요.이렇게'알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다'는 뜻을 가진 토박이말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친엄마 아니에요?" 딸애는 종종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짐짓 정색해서 되묻는다. "응? 어떻게 알았지? 내가 고아원에 가서 나 닮은 애를 데려다 입양한 줄을." 그러면 딸애는 이렇게 대꾸한다. "거짓말, 그럼 사람들이 왜 나를 엄마 꼭 빼 닮았다 해? 난 엄마 친딸이야.“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나이 삼십이 다 되어 딸애를 본 우리는 애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쥐면 부서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애 아빠도 나도 다 애한테만 사랑을 쏟고 애가 없었던 나날들은 어떻게 살았던가 싶을 정도로 아기에게 엄청 집착하였다. 뒤늦은 아이의 탄생은 그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완전히 다른 즐거움과 쾌락을 안겨주어 우리는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중시절 한 숙사에서 가깝게 보내던 동창생이 상해에서 연길로 출장 왔던 길에 아기도 볼겸 그 동안 헤어져 살았던 회포도 풀겸 겸사겸사 우리집에 와서 며칠 묵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자기가 먼저 애를 키워보았노라고 애 키우는데 천방지축인 나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들어주면서 이런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밤 고요하자 산도 흔들림 없고 나 한가로워 진리의 정 펴나니 그 중에서도 뛰어난 멋은 백옥의 폭포 구슬 소리 날리다 – 월파대사, 산경치를 즉석에서 읊다- 월파대사(月波大師,1695~?)는 속성이 김씨이고, 15살에 출가했다. 부모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묘향산으로 들어가 삼변(三卞) 스승을 은사로 삼았다. 그러나 1년이 채 안돼 아버지 상을 당해 귀가했다가 다시 산문으로 들어가 운봉화상(雲峰和尙)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운봉, 혜월, 운파, 환암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이름을 날렸으며 30여 년간 교화에 힘썼다. 그러나 제자는 많이 두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씨 뿌린 것은 많으나 거둬드릴 곡식이 적다. 이 또한 분수이니 한스러워해 무엇하랴”라는 뜻을 자신의 행장(行狀)에 남기고 있다. 월파대사는 월파집<月波集>을 남겼는데 이 문집에는 시 125편이 전해지고 있다. 힘겹게 오른 신선의 경계 자연풍경 어찌 쉽게 거두랴 언덕머리에 봄 그림자도 사라지고 하늘 끝에는 햇살이 떠 있다 –상원사의 경치 가운데- 동서남북으로 담담히 노니는 나그네 이름난 산 천만 층을 다 밟았다 종일토록 진경 찾아 돌아오는 길 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