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신명/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신명 [뜻]흥겨운 멋이나 기분 [보기월]동무들끼리 모여 그렇게 신명나게 어울리는 것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지난 닷날(금요일)토박이말날 첫돌 기림풀이를 잘 마쳤습니다.많은 분들이 마음을 써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아이들이 보낸 편지와 토박이말바라기 어버이 여러분께서 보낸 편지가 방송에 나왔다는 기별을 듣고 더 기뻤습니다. 토박이말날을 함께 기뻐해 주시고 많은 분들께 널리 알려주신 브레이크뉴스,뉴스페이버,경남일보,경남신문,경남도민일보,엠비시경남,서경방송,우리문화신문,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립니다. 엿날(토요일)뒤낮에는 토박이말바라기 푸름이 동아리 이바지하기 첫만남이 있었습니다.알음알이와 앞으로 어떻게 동아리를 꾸려 가면 좋을 것인지 앞생각을 짜 보았습니다.저마다 가진 솜씨와 좋아하는 것을 곁들이면 즐겁고 재미있는 동아리 모임이 될 거라 믿습니다. 밝날(일요일)에는 꽃배곳(초등학교)마침모임(동창회)에 갔었습니다.자잘먼지(미세먼지)가 많아서 밖에서 모임을 하기에는 알맞지 않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목멱산대천제(木覓山大天祭)’는 조선 건국 이념을 담아 계승된 산천 신앙의 한 축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종묘와 사직에 제를 지내면서 목멱산에도 대천제를 올렸다. 범민족적 산악숭배 사상을 표방하고 천지를 감동케 하여 나라의 태평성대(太平聖代)와 시화연풍(時和年豊, 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목멱산대천제는 나라 안녕과 백성 통합을 위한 국중행사와 다를 바 없이 겨레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의 뿌리를 되살리고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범국민적 축제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해발 270m 높이의 ‘목멱산(木覓山)’을 ‘남산(南山)’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조선에서 정궁으로 삼았던 경복궁(景福宮) 맞은편인 남쪽에 있으면서 조선시대 한양의 안산(案山,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으로 한성부를 지켜주는 수호산 역할을 하면서부터이다. 그리하여 남산(南山)은 북악산(北岳山), 낙산(駱山), 인왕산(仁王山)과 함께 서울 분지(盆地)를 둘러싼 자연 방벽으로 역할 하게 된 것이다. 한양 성벽(城壁)도 이와 같은 사산(四山)의 능선에 따라 쌓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 또한 그러한 균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제가 쓴 글에 저도 모르게 바쁘다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저는 그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나 제가 받았던 느낌,제가 했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제가 그런 말을 많이 썼다면 바쁘게 사는 게 맞긴 맞나 봅니다.^^ 어제도 참일 빠꼼한 때가 없었습니다.교육연구회를 만드는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서 마음이 바쁜 가운데 좀 더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은 마음에 보낸 글이 뜻밖의 일을 벌이기도 해서 마음이 된 일도 있었습니다.제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끝내 다른 분을 어렵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오히려 널리 헤아리는 따뜻한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고맙다는 말이 나왔습니다.경남신문 이현근 부장님 고맙습니다. 오늘은 토박이말날 첫돌입니다.많은 분들이 함께 기뻐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여러 가지 잔치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잔치를 하는 가운데 토박이말이 더 많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을 다녀 오느라 토박이말 맛보기가 하루 빠져서 되새길 낱말도 둘밖에 없으니 천천히 뜻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오늘은 신당동과 창신동으로 오래된 골목길을 걸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그런데 신당동의 낡고 오래된 건물사이 골목 어디쯤에 환하게 밝히고 있는 시 한 편을 보았다 주인이 자기 집 대문 앞에 내건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곳곳에 세워진 돌비석 시비들 마치 돌무덤처럼 보였는데 여기 어두운 골목길을 훤히 밝혀주는 분필로 적어놓은 저 시 한편 우리 맘도 밝게밝게 비춰준다 그 골목길 시판에는 다음에 어떤 시가 또 내 걸릴지 궁금하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는 열사흘(13일)은 (사)토박이말바라기(으뜸빛 김수업)에서 펴 알린 '토박이말날' 첫돌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에서는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토박이말날을 기리는 날이 얼른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를 그대로 올립니다.(편집자말) [토박이말날 첫돌을 맞으며] 그렇게 맵차던 겨울을 밀어내고 어김없이 봄이 와서 좋았습니다.그래서 때 아닌 눈과 꽃샘추위,소소리바람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추운 겨울도 봄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고,더운 여름도 서늘한 가을을 생각하며 참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그런데 우리 토박이말이 사는 걸 보면 이제껏 겨울만 이어지는 듯합니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은 뒤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 하게 한 까닭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때 가장 먼저‘우리말 도로 찾기’를 한 까닭도 함께 말입니다.그렇게 바르게 채웠던 첫 단추를 다시 풀어 어긋나게 채우고 말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글살이 모습은 비뚤게 채워 입은 옷차림과 닮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일터 이름,가게 이름을 영어로 바꿨으며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염통/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염통 [뜻]'심장'을 뜻하는 토박이말 [보기월]"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제 일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가장 무게를 둔 일은 토박이말날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광화문 널마당(광장)에 서서 무지개달 열사흘(4월13일)이 토박이말날이라는 것을 알렸습니다.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를 찍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가는 분도 있어 봄볕을 쬐며 서 있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박용규 교수님께서 제가 서울에 와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둘레 사람들께 알려 뉴스페이퍼 육준수 적음이(기자)님이 오셔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마음 쓰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고개 끄덕여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 일뿐만 아니라 박 교수님은 제 옆에서 함께 널알림감(홍보물)을 들고 봄볕 쬐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고 기운을 내서 얼른 토박이말 말모이(사전)을 만들라며 맛있는 낮밥(점심)도 사 주셔서 절로 고맙다는 말이 자꾸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가면서 본 우리말과 글을 밀어낸 가게와 일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1960년대의 월남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노래이다. 매우 시사적인 점도 있지만, 이 노래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이 곡의 독특한노래 분위기라고 하겠다. 김추자의 특징 있는 음색이 그러한 분위기에 더욱 보탬이 되고 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품에 안겼네 모두다 안겼네 말썽많은 김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젓하게 훈장달고 돌아온 김상사 김추자의 데뷔곡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의외의 큰 성공으로 신인 무명가수를 일약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작곡가 신중현은 당시 이 노래를 작곡하면서 작곡자의 새로운 자세를 제시하기도 했다. 곧 그는 신인 김추자가 가요계에 발을 드려놓기 전에 창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이 점을 장점으로 발굴해 내기 위해 바로 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곡자는 무턱대고 작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부를 가수의 특기, 특징, 음색, 창법까지 계산해가며 여기에 어울릴 곡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신중현, 김추자 콤비는 당시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확고하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초 최창권이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단체인 '예그린 악단'의 음악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발표한 뮤지컬 이다. 또'살짜기 옵서예'는 여색을 멀리하는 배비장과 천하일색 제주 기생 애랑의 사랑 이야기가 토대를 이루는 내용으로 조선의 풍자소설 배비장전을 뮤지컬화 했다. 애랑이라는 미모의 기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여기에 배비장이니 정비장을 등장시켜, 가식만을 내세우는 형식주의적인 양반의 인습을 코믹하고도 사실적으로 풍자한 이 설화는 오늘날까지도 조선 풍자소설의 백미로 일러지고 있다.영정조의 시대에는 이것을 대본으로 하는 창극(판소리)이 발표되었던 기록이 있으니 확실히 뮤지컬로 안성맞춤인 소재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이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로서 한국 최초의 시도였다고 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는 작품 이었지만 그만큼 관계자의 고심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면에 또 그 성패는 한국에 있어서 뮤지컬의 장래를 점치는 것으로 큰 관심을 쏠렸지만, 다행히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밝은 장래를 약속하는 것이 되었다. 초연에서의 주연은 패티 김, 그녀는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알려진 가수이다.'살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설 > 이 시를 피뜩 보기에 거저 빈들을 얘기한 같다. 그러나 ‘그루터기’의 비극과 ‘뿌리’의 희망을 통하여 배달민족의 비극 및 희망이라는 거창한 역사와 현실적 의미를 싱징적으로 톺아내고 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석화시는 소박하다. 미사려구나 난해한 표현보다는 누구나 다 잘 아는 어휘를 선택하고 범상한 표현을 구사한다. 그의 시의 이런 특점은 “나는 나입니다”를 비롯한 초기시에서 기틀이 잡히고 줄곧 이어져 왔다. 그의 시는 소박하다 못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담시-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시형식으로 많이 나간다. 그의 시를 읊고 있노라면 누가 소곤소곤 혹은 조곤조곤 혹은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감칠맛이나 서정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친근하고 정답다. 애인 같고 친구 같은 시다. 그렇다하여 그의 시는 범상하지 않다. 심상치 않은 데가 있다. 전반 상징적인 경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진정한 시의 본령에 가닿는다. (우상렬, “석화시인의 시세계 —50년대 시인세미나 발표론문”)